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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宗敎人 김병윤의 ‘하나님과의 대화(24)지옥 그리고 연옥 외

김병윤 | 기사입력 2022/04/08 [08:13]
기독교는 중세 말에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지옥의 이미지 만들어

無宗敎人 김병윤의 ‘하나님과의 대화(24)지옥 그리고 연옥 외

기독교는 중세 말에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지옥의 이미지 만들어

김병윤 | 입력 : 2022/04/08 [08:13]

누가복음 16장에 거지 나사로와 나사로의 요청을 거부한 부자가 죽고 난 후에 천당과 음부[KJV판의 영어 표현은 지옥(hell)이어서 지옥으로 볼 수 있으나, 그리스어로는 하데스(Hade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음과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신)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스올(sheol, 무덤)을 일컬음]에 따로 가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승에서 선하게 살아야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교훈을 천당과 음부(지옥)를 비유하면서 전합니다. 여기에서 묘사되는 천당과 지옥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서로 왕래할 수는 없지만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성경에서 지옥과 음부를 뜻하는 단어는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로 스올(sheol)’이며, 신약성경의 그리스어로는 하데스(hades)’. ‘스올이 구약성경에서 쓰일 때는 음부와 지옥을 다 포함하고 있기에, 음부의 의미일 때는 영어 KJV판에서는 무덤(grave)’으로 번역되었고, 지옥의 의미일 때는 지옥(hell)’으로 번역된 것이며, 개역개정판에도 마찬가지로 음부지옥으로 각각 구분하여 적고 있다. 한편, 영어의 ‘grave’는 무덤의 뜻으로 쓰일 때도 있는데, 이 때는 음부를 뜻하는 스올과는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다. 즉 히브리어 베이(bei)’케부라(qeburah)’, 또는 케베르(qeber)’라는 용어가 사용되면 영어 ‘grave’무덤을 의미한다. 따라서 개역개정판에서도 히브리어의 차이에 따라 ‘grave’가 무덤으로, 또는 음부로 각각 구분되어 번역되었다.” 1)

 

지옥을 나타내는 신약성경의 표현은 마가복음 9:48-49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20-21에는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유황과 불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도 나오는데, 2) 구약성경에서는 여호와가 이승의 인간들을 괴롭히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지옥을 언급하며 불과 유황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이승에서 단기간에 겪게 되는 고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반드시 사후에 접하게 되는 지옥의 환경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옥 불에 대한 대부분의 언급은 마태복음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3)

 

성경에 지옥을 표현하는 곳이 더 있는데 마태복음 13:41-42천사들이 불법을 행한 자들을 골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니 그곳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라는 것과 요한계시록 14:10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및 같은 책 21:8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라입니다. 마태복음의 내용은 조로아스터교의 표현을 차용한 것입니다. “이들[조로아스터교]이 사용하는 용광로의 쇳물은 죄 지은 자들의 죄를 태워 없애 이들을 순수하게 만든다. 그런데 신약성경의 불 호수는 불량품이어서 성능이 떨어지는지, 정죄하고 정화하는 기능까지 수행하지 못하고 죄 지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만든다.” 4)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독교 성경에는 천당과 지옥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기원후 397년에 요한계시록을 기독교의 정경으로 채택한 이후에도 사후세계에 대한 조악한 서술과 빈약한 논리 전개의 한계로 지속적으로 정경으로 남길 것인가에 대한 내부적인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조로아스터교와 그리스 철학자들이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을 심도 있게 다루었는데,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면서, 선정된 경전 이외의 서적을 이교(異敎)’로 배척하면서 관련 서적들을 불사르고 관련 서적에 대한 개인 소장을 금지하였습니다. 당시 그리스 철학자들의 저서는 핍박을 피해 아랍 지역으로 넘어갔고, 이슬람교는 이런 이론들을 참고하여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여 자신들의 경전인 쿠란에 잘 반영하였습니다. 사후세계에 대한 교리는 종교를 위한 순교를 숭앙하고 전쟁터에서의 전사는 순교와 같이 성스러운 행동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군 전쟁을 겪으면서 이슬람교도들의 죽음을 불사하는 전투력에 대해 경이로움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담력의 배후에는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음을 파악하였습니다. 이후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논란이 종교개혁 시점까지 이어졌지만 이런 필요에 따라 결국 정경으로 남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기독교는 중세기까지만 해도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이 거의 전무한 상태로 운영되었습니다. 지금 기독교에서는 한편으로는 그리스 철학자들과 조로아스터교에서 언급된 사후세계의 개념을 활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단테나 스데벤보리 등 문학가나 과학자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려낸 책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와 천당과 지옥은 물론이고 연옥과 고성소와 같은 개념을 도입합니다.

 

기독교는 중세 말에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지옥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종교재판은 1233년경 교황 그레고리우스 9(Gregorius IX, 기원후 1145~1241, 1227~1241 재임)가 창설했는데, 인노켄티우스 4세가 1254년 교서를 통해 이단 박해 기구를 모든 도시와 국가의 사회 조직을 이루는 필수 구성 요소로 규정함으로써 제자리를 잡았다.” 5)

 

단테(1265~1321)신곡에서 지옥을 9개로 구분하며 제1옥을 림보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지옥에 속한 곳은 아니고, 2옥에서 제5옥까지를 상부지옥, 6옥에서부터 제9옥까지를 하부지옥으로 부른다. 9옥은 악마들의 대왕 루시펠이 머무는 장소라고 한다. 중간에 연옥이 있고, 천당은 월광천, 수성천, 금성천, 태양천, 화성천, 목성천, 토성천, 항성천, 원동천, 정화천 순으로 총 10[십층천(十層天)]로 나눈다.” 6) 단테는 이슬람교에서 일곱 개의 천당을 주장하는 것을 알고 이 보다 더 많은 숫자의 천당과 지옥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종교계는 서로 간에 보다 많은 천당과 지옥을 선점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당과 지옥의 구분이 이 정도로 심해진다면, 천당과 지옥으로 갈려 따로 살게 되는 사람들의 고통이 더욱 심해질 것이고, 천당이나 지옥에 가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같은 장소에서 만나 생활할 가능성은 하루에 번개 열 번 맞는 것보다 더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이슬람교는 지옥을 저승의 감옥으로 간주합니다. 한편 쿠란 2219-22절에는 불신하는 자들은 불길에 옷이 찢기며 머리 위에는 이글대는 물이 부어지리라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의 내장과 피부도 녹아 내릴 것이라 그 외에도 그들을 벌할 철로 된 회초리가 있나니 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것으로부터 피하기를 원하나 그들은 다시 그 안으로 되돌려와 화염의 징벌을 맛볼 것이라에 더해, 쿠란 456절에는 알라의 계시를 불신하는 자들은 화염 속에 넣어 그들의 피부가 없어질 때마다 새로운 피부로 바꿔 고통을 맛보게 할 것이라라는 표현을 덧붙입니다. 이처럼 잔인한 방식으로 고통을 준다며 겁을 줍니다.

 

이슬람교의 지옥에는 일곱 문이 있습니다. 쿠란 1543-44절에 실로 지옥은 그들 모두를 위해 약속된 곳으로 그곳에는 일곱 개의 문이 있으며 그것은 그들 죄인들에 배당된 각각의 문이라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단테의 신곡에서도 일곱 문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지지 않기 위해 상대방이 쓰는 묘사를 빌려와 사후세계를 보다 세분화하는 무의미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옥 이미지는 지배 권력을 거머쥔 교회의 이해가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중세 말 지옥 이미지의 공포 강화와 일상생활로의 침투는 교회가 지옥을 권력의 수단으로 만들어서 신자 대중을 더 엄격하게 통제하고 그들의 순종을 확보하기 위한 마키아벨리적 고안품이었던 것이다.” 7)

 

천주교에서는 12세기에 [그리스 철학자와 불교에서 언급하는] 연옥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연옥은 사람들이 천당에 들어가기 전에 정제하러 가는 영적 온천과 같은 개념의 장소다.” 8)조로아스터교도는 천당과 지옥에 가기 어정쩡한 사람들은 저택도 아니고 불화로도 아닌 중간 단계인 연옥(Hamistaken)에서 어슬렁거리며 지내는 것으로 믿는다. 이들은 가톨릭교가 자신들의 연옥 개념을 차용했다고 주장한다.” 9)

 

종교계는 저승에 간 사람은 천당이나 지옥의 최종 목적지가 결정되기 전에 연옥으로 먼저 간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일정 기간 머물게 되는데, 머무는 동안 남아 있는 가족이 자신이 믿는 신(실질적으로 혜택을 누리는 성직자)을 만족시키면, 이승에서 지은 죄과와 관계없이 천당으로 직행할 수 있는 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리가 면죄부를 발급하고 판매하는 명분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1903년에 교황 피오 10세는 지위에 따라 연옥에 머무는 기간이 얼마나 단축되는지를 표로 만들었다. 추기경은 200, 대주교는 100, 주교는 겨우 50일이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면죄부를 직접 돈을 받고 파는 일은 없었다. 중세에도 연옥에서 빠져나올 자격을 돈으로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도로도 지급할 수 있었다. 임종 전에 자신이 한 기도나 사후에 남들이 해주는 기도가 그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돈으로 살 수도 있었다.” 10)

 

그리고 20세기 초에 들어와서는 고성소라는 개념까지 도입하였습니다. “연옥과 고성소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고성소는 천주교에서 13세기에 채택한 개념으로 성 비오 10세 교황(1903~1914 재임)께서 1905년 교황령으로 존재를 확인해 준 곳이고, 세례를 받기 전에 죽은 유아들이 예수께서 가르침을 주시기 전에 활동했던 구약성경의 장로들과 함께 머무는 장소다.” 11) 하지만 최근 베네딕트 16세 교황(2005~2013 재임)은 이 개념을 철회하였습니다.

 

가톨릭에서 언급하는 고성소는 단테가 지옥을 구분하며 림보(limbo)라는 이름을 붙여준 제1옥의 개념을 차용하여, 교황의 지시를 받아 성직자들이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여 돈 한 푼 안 들이고 지은 장소입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지은 장소가 또 있습니다. 바로 연옥입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지었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지금은 공공연히 면죄부를 팔지는 못하지만, 기도의 효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합니다. 가톨릭과 불교에서 이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 장난이 아닙니다. 개신교에서는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에 동참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기존 종교는 의도적으로 단테나 스베덴보리 외 여러 작가들로 하여금 사후세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소설,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및 드라마를 만들도록 지원합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이런 장소가 마치 실재하는 곳처럼 묘사하고, 신도들로 하여금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고성소의 사례에서 불 수 있듯이 자신들의 사주를 받고 쓴 소설(이 경우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개념을 살짝 빌려옵니다. 그리고 마치 신의 계시를 통해 얻은 것처럼 치장하여, 자기 종교의 교리로 만드는 자의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릅니다.

 

어느 누구도 천당, 연옥이나 지옥을 다녀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곳을 다녀온 것처럼 조작하고 진리인 것처럼 믿고 따르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부처나 예수의 가르침에 위배되고,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지옥이 있다면 그곳에서의 영원한 삶이 보장될 것입니다.

출처:

1) https://blog.daum.net/bk1981/2457

2) 창세기 19:24, 신명기 29:23, 욥기 18:15, 시편 11:6, 이사야 30:33, 34:9, 에스겔 38:22

3)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존 쉘비 스퐁, 한국기독교연구소, 2001: 46

4) Life and Teachings of Zoroaster, the Great Persian, Loren H. Whitney, BiblioBazzar, 2009: 103

5) 일상적 폭력 폭력적 종교, 이종록, 쿰란출판사, 2017: 381

6) 단테의 신곡, 단테 지음, 유필 옮김, 밀리언셀러, 2011: 30-31, 145, 294-295

7) 일상적 폭력 폭력적 종교, 이종록, 쿰란출판사, 2017: 391, 사제와 광대-중세 교회문화와 민중문화, 유희수,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9: 264f

8) Heavens on Earth, Michael Shermer, Henry Holt and Company, 2018: 57

9) Life and Teachings of Zoroaster, the Great Persian, Loren H. Whitney, BiblioBazzar, 2009: 183

10)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김영사, 2007: 549

11) Heavens on Earth, Michael Shermer, Henry Holt and Company, 2018: 57 

 

필자 김병윤1957년생으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퍼듀대학교 MBA 과정을 졸업했다. 대우조선과 삼성전자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며 마케팅업무를 담당했으며,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국제화 및 외국어 교육팀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가천대학교, 신구대학교, 연세대학교 원주분교 및 호원대학교에서 겸임교수와 시간강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두레스경영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삼성신화 아직 멀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대한민국 판도라 상자를 열다, 정아에게 보내는 서른 장의 편지, ()과 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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