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無宗敎人 김병윤의 ‘하나님과의 대화(27) 천사와 악마

김병윤 | 기사입력 2022/04/19 [07:55]
“악마나 사탄은 다른 종교 믿는 사람이나 다른 민족 지칭하는 것”

無宗敎人 김병윤의 ‘하나님과의 대화(27) 천사와 악마

“악마나 사탄은 다른 종교 믿는 사람이나 다른 민족 지칭하는 것”

김병윤 | 입력 : 2022/04/19 [07:55]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악의 존재와 관련하여 에피쿠로스의 역설이라 불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문장들을 곰곰이 되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은 악을 멈추려고 하는데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신은 전능한 것이 아니다. 악을 멈출 수 있지만 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그는 선의의 존재가 아니다. 악을 멈출 능력도 있고 없애려 하기라도 하는가? 그렇다면어떻게 악이 존재할 수 있는가? 악을 멈출 능력도 없고 없애려 하지도 않는가? 그렇다면우리는 왜 그(그녀)를 신이라 불러야 하나?”

 

구약성경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는 완벽하며 [자신들에게만] 사랑을 베푸는 존재인 신이 만물을 창조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따르면 악마나 마녀 그리고 천당은 물론 지옥(물론 구약성경에는 천당과 지옥이라는 개념이 없음)까지도 모두 창조하였을 것입니다. 여호와가 전지전능하다는 주장이 통하려면, 여호와가 태초에 나쁜 역할을 하는 존재를 함께 만들고, 사후세계에서 이들의 영향을 받고 사는 사람들을 골라 심판 후 보낼 장소까지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진정 우리가 믿는 신이 완벽한 존재라고 한다면 창조할 때부터 악의 근간을 배제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며,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는 선택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신이 악을 창조하였다면, 신은 악의 특성과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악이 자기 스스로 나올 수 있다면, 신은 절대적일 수 없고, 만약 악을 손수 만들었다면 절대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존재라 칭할 수 없습니다. 결국 종교계에서 숭앙하는 신은 선()인 동시에 악()일 수밖에 없다는 역설이 성립하게 됩니다.

 

만약 신이 악이 나타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 자신이 만물을 만든 주체라고 주장하는 것에 모순이 생깁니다. 악이 신과 같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면 모든 존재도 스스로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적인 현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배제시켜도 충분히 모든 존재나 현상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길 수 있습니다.

 

자연법칙에는 선과 악의 구분이 없지요. 이런 개념이 개입되지 않고도 모든 존재는 지금까지 조화롭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자연법칙의 관점에서 보면, 천사, 악마나 사탄이라는 존재는 물론이고, 정령이나 귀신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종교계에서 그 존재를 부각시키는 귀신이나 악마 또는 사탄이 따로 존재하지 않다는 것은, 동물의 대다수가 야생에서 미치지 않고 온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증명해 줍니다.

 

이런 논리대로 따지면 인간만 없애면 모든 선과 악이 없어지고, 나머지 존재들이 평화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악과 선은 인간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기존 종교에서 천사에 반하는 악마나 사탄을 언급하며 이들과의 투쟁을 정당화하는데, 사실 악마나 사탄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다른 민족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악마와 사탄이라고 표현하는 대상은 성직자, 권력자나 부를 독차지하고 있는 기득권층이, 자신들이 향유하는 것을 빼앗으려는 대상을 그런 식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실 악마나 사탄으로 규정될 수 있는 성질이나 성향을 갖는 인간은 존재하였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형의 모습을 갖는 귀신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우리 주위에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유대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영감(靈感)을 주로 페르시아[조로아스터교] 경전을 통해 얻었다는 말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유대 신화에서 악마나 마귀가 인간과 대립하는 영적 존재가 된 것은 유대인들이 바빌론 유배에서 귀환한 이후였다. 이전에는 절대자가 세상을 지배하였기에 신의 사자인 천사들은 있었지만 악마는 없었다. 욥기에 등장하는 사탄은 오류를 발견하는 등의 하찮은 일을 수행하는 신의 사자일 뿐 악마는 아니었다. 그리고 사후세계와 최종 심판을 위한 부활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1)

 

욥기에 사탄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사탄을 비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는 주석이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사탄은 별개의 영적 존재가 아니라, 여호와 하느님의 지시를 수행하는 인간을 말합니다. 결국 사탄은 한 인간(구약성경에서는 여호와)의 심란한 심적 상태를 나타내거나 법정에 선 원고나 검사를 지칭하는 것이지, 악의를 가지고 인간을 괴롭히는 영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탄은 구약성경과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악마나 천사라는 존재는 신약성경의 사탄과 같이 형상 없이 저승에 사는 존재가 아니고, 바로 우리 인간이 악마가 되기도 하고 천사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법적으로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말하지만, 실제로 종교와 정치를 엄격하게 나누어 놓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와 종교는 이론적으로는 분리되지만, 이 둘은 실제로는 이권 관계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 종교는 이미 사회적 또는 공적인 것이 되었다. 이처럼 종교가 개인적인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 공적인 것이 되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에서 종교는 특히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 예전과 다르게 보수적인 기독교인일수록 이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삼위일체와 아세라:

 

삼위일체 이론을 촉발시킨 구절은 요한의 콤마라고 부르는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요한일서 5:7-8)라는 표현이다. 이 단락은 라틴어역 성서인 불가타 사본들에서는 발견되지만, 거의 모든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구절이다. 이 대목은 오랫동안 기독교 신학자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아온 구절이다. 왜냐하면 이 단락은 성서 전체에서 삼위일체의 교리를 분명하게 서술한 유일한 단락이기 때문이다.” 3)

 

마태복음 28:19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주문이 있습니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린도후서 13:13)는 표현으로 성자, 성부, 성령이 동시에 언급됩니다. 이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일체를 표현한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로마의 가톨릭교회가 기원후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정식 교리로 채택한 이론입니다.

 

고린도후서는 삼위의 역할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통(fellowship, 공동체 의식)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각자가 고유한 자신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위일체가 아니라, 삼위삼체라 불러야 합니다. 게다가 천주교는 성모 마리아도 끼워 넣었으니, 마리아의 역할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한편 데살로니가전서 4:8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모든 인간에게 성령이 들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구약성경에서 영을 숨이나 호흡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서 유일하게 보혜사로 등장하는 성령을 제외하면 성령이 일반명사인 숨이나 호흡으로 볼 수 있고, 모든 존재가 이를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확실한 신의 반열에 올리기 위해 성부, 성자와 성령으로 합체된 삼위일체로서의 신을 주장하였고, 성공하였습니다. 한편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까지 포함하여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라는 가정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신의 가정을 꾸려주려고 합니다. 속세의 화목한 가정과 접목되는 행복한 천상의 집안을 완성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거의 완성 단계에 오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성령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정확히 규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령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과 생명체를 포함하여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영, 즉 무유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천주교에서 성모 마리아를 신의 경지로 올린 것과 같이, 구약성경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부인은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분노를 자아내는 대상으로 우상과 더불어 항상 언급되는 아세라(Asherah)라는 여신입니다. 당대의 유대인들이 이 여신과 여호와가 다정히 껴안고 있는 형상의 조각품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미뤄볼 때, 이 여신이 원래 천사로 불리는 여호와의 아들들을 만들어낸 본처입니다. 아세라는 에셀(esel)의 복수형이고 아세라는 여호와 부인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여신을 섬기는 장소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우리 여호와의 부인은 한 명이 아니라 다수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여신을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으로 부르는데 이런 표현은 유일하게 예레미야에만 나옵니다.

 

아세라가 에셀의 복수라는 것과 엘로힘이 엘의 복수라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원래 유대교는 복수의 신과 여신을 모시다가 후에 유일신이 필요해서 여호와를 선정하여 유일신으로 떠받든 것 같습니다. 천지창조 전반부의 이야기에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자고 하면서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만든 것은 엘로힘과 아세라의 형상을 따서 아담과 이브를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후반부 창조주는 여호와기 때문에 아담을 먼저 만들고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 만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내용이 성경 여러 곳에 나옵니다. 서기관이 예수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고 묻자,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니라”(마가복음 12:29)라는 것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가복음 13:32)라고 말하면서,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과 구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삼위일체 교리를 만들어 따르니, 현재의 기독교는 분명히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과 고린도후서에 성부, 성자, 성신이 함께 나타나는 곳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라는 것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마태복음 28:16-20은 이미 15절에서 이야기가 다 마무리된 상태에서 선교의 대사명이라는 제목을 달아 어색하게 덧붙였습니다. 고린도후서도 마지막 13:11-13마지막 문안 인사라는 명목으로 끼워 넣었는데, 이미 12절까지 이 편지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선교의 대사명에는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및 사도행전에 같은 내용이 있는 것처럼 표기를 해놓았는데, ‘대사명의 삼위일체와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 부분이 나중에 끼워 넣어졌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정말 신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존재라면 사람들이 다른 신을 믿는 것에 대해 관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다른 종교들을 두루 섭렵해 보라고 제안하는 것이 보다 절대자다운 처신일 것입니다. 다른 신은 믿지 말고 오직 자기만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자신이 완벽하거나 전지전능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출처:

1) Life and Teachings of Zoroaster, the Great Persian, Loren H. Whitney, BiblioBazzar, 2009: 11

2) 일상적 폭력 폭력적 종교, 이종록, 쿰란출판사, 2017: 438-439

3) 성경 왜곡의 역사, 바트 어만 지음/민경식 옮김, 성림출판, 2006: 159 

 

필자 김병윤1957년생으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퍼듀대학교 MBA 과정을 졸업했다. 대우조선과 삼성전자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며 마케팅업무를 담당했으며,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국제화 및 외국어 교육팀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가천대학교, 신구대학교, 연세대학교 원주분교 및 호원대학교에서 겸임교수와 시간강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두레스경영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삼성신화 아직 멀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대한민국 판도라 상자를 열다, 정아에게 보내는 서른 장의 편지, ()과 영()등이 있다.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