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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이 노년을 오래오래 신나게 살기로 했다

박길수 | 기사입력 2022/08/15 [08:07]
멀쩡한 사지가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이제야 알다니!

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이 노년을 오래오래 신나게 살기로 했다

멀쩡한 사지가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이제야 알다니!

박길수 | 입력 : 2022/08/15 [08:07]

딱 한 번만 살다갈 세상살이 이제 드디어 우리 부부도 노년 삶에 접어든 듯싶다. 별난 재주 없이 주변 사회의 덕택으로 그동안 그럭저럭 잘 살았던 모양이다.

 

이십육 년 전 마흔 중반에 우리도 혹시 새로운 뜻을 품어볼 수 있지나 않을까 싶은 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급팽창하는 중국을 알아야한다는 명분으로 회사는 북경지역 대학에서 1년 간 학습하며 연구할 중국지역 전문가과정을 만들었고 내가 운좋게 선발된 것이다.

 

나는 일 년 동안 북경 이공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래서 먼 길을 떠나기 전날 찍은 가족사진 한 장만 남게된 모양이다.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치열하게 학습하며 나는 그런대로 잘 견뎌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IMF 경제위기로 전문가 교육은 아무런 진척 없이 끝나버렸고, 또 이십오 년이라는 세월도 말 그대로 정처 없이 흘러버렸다.

 

갑자기 아내가 의식없는 장애인이 되어버린 시간도 7년의 세월이 흘렀다. 마침내 일흔이 넘은 우리 동갑내기 부부는 따뜻한 볕이 내리쬐고, 문을 닫으면 사방이 조용한, 낮은 곳에 정착했다. 골짜기 실개천 같은 아기자기한 이 사회 한쪽 구석에 우리는 안착한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이따금 볼을 간지럽히고 땀을 식히면서 지나간다. 육신만 바쁘고 마음은 아무 걱정 없이 한가롭기만 한 노년에 우리는 새벽녘 하늘을 벗삼아 일하며 매일매일 행복하게 지내게 되었다.

 

새벽 일찍 출근해 손발을 부지런히 놀린다. 안타깝게 전신을 까닥할 수도 없는 장애인 눈물을 닦아준다. 나는 이제야 어쩔 수 없이 더 겸손해졌고, 더 솔직해졌으며, 더 미안해하고, 더 양보하는 마음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게된 모양이다. 사지가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 속에서 멀쩡한 사지가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이제야 알다니! 나이 일흔 넘어 겨우 고마워할 줄 알게 되다니!

 

배려 못 할 일이 없구나 싶다. 어느 것 하나라도 몽땅 양보하며 살다가 죽기로 마음을 먹는다. 아내와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끝까지 교류하고 화합하며 즐기면서, 이 노년을 오래오래 신나게 살기로 했다. 

박길수

1952년 광주 출생, kt퇴직, 요양보호사, 부인이 뇌출혈로 쓰러져 7년 째 재택 간병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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