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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66) 정신체(감성)

정영부 | 기사입력 2023/01/13 [09:16]
혼(魂)에 대하여

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66) 정신체(감성)

혼(魂)에 대하여

정영부 | 입력 : 2023/01/13 [09:16]

이번 회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6()에 대하여정신체(감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참고로 제6장의 목차와 그중 이번 회에서 다룰 부분은 다음과 같다.

 

6. ()에 대하여

6.1. 혼의 정의

6.2. 영과 혼의 탄생시기와 환생횟수

6.2.1. 영의 탄생시기

6.2.2. 혼의 탄생시기와 전생횟수

6.2.3. 영과 혼의 전생(轉生)횟수와 출신

6.3. 혼의 구성

6.3.1. 생기체

6.3.2. 마음의 구성요소

6.3.2.1. 마음의 정의

6.3.2.2. 여러 사상에서의 마음론

6.3.3. 정신체

6.3.3.1. 감성

6.3.3.2. 욕망

6.3.3.3. 욕구

6.3.3.4. 감정

6.3.3.5. 지성

6.3.4. 양심체

6.4.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혼

6.5. 자율신경과 혼

6.6. 양자역학과 표준이론

6.7. 혼의 장기(臟器)

6.8. 혼의 물성(物性)

6.9. 유학(儒學)마음에 대한 담론

6.10. ()에 대하여

6.11. 강시(僵尸)

6.12. 의식상태별 혼의 활동

6.13. 집단무의식

 

정신체

 

정신(精神)’의 어원은 도교의 정기신(精氣神)이론에서 유래하였는데 정기(精氣)와 신기(神氣) 두 가지를 결합시킨 말이다.(1) 여러 가지 해석이 많지만 정기는 생명력을, 신기는 마음을 의미한다. 또 두 가지 기의 모임이 정신이니 정신은 곧 라는 의미를 품고 있으며 동시에 생명력(생기체)과 마음(정신체와 양심체)의 합은 표준이론에서의 이니 정신(精神)은 곧 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서양전통에서 정신이란 물질에 대립하는 비물질적인 원리로 본질의 질서나 인식의 질서에서 최초의 것이라는 관념론적 이해와 육체의 한 활동일 뿐이라는 유물론적 전통이 있다.(2)

 

불가(佛家)에서는 정신을 육근(六根)에 기대어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이라고 본다.(3)

 

표준이론에서 정신은 생기체가 진화하여 탄생한 정신체의 기능인데 감성이나 욕망 같은 초보적인 형태의 기능을 갖추면 하위정신체라 하고 욕구과 감정 그리고 지성까지 갖추면 상위정신체라고 한다. 하위정신체는 동물의 혼인 각혼(覺魂)이 가지는 정신기능을 수행하며 프로이트의 이드(id) 정도에 해당한다. 상위정신체는 지혼(知魂)만이 가지는 정신기능체로 개체성에 기인한 자의식으로 인해 발달하는 부분인데 이를 갖추면 각혼은 사람의 혼인 지혼이 된다. 상위정신체는 프로이트의 에고(ego) 정도에 해당한다. 이로써 정신체는 아래로는 감성욕망위로는 욕구감정’(4) 그리고 지성을 가지며 지성은 다시 오성이성을 포함한다.

 

정신의 구성요소 중 감성, 욕망, 욕구, 감정까지는 정신의 기능으로 이해되는데 지성도 정신에 속하는가? 혹시 지성은 양심이나 영()의 기능이 아닌가? 아니다. 표준이론에서 지성은 정신의 기능으로 본다. 지성은 양심체의 영향을 받아서 정신체에서 발전한다. 영은 혼의 양심체를 키우고 양심체는 정신체의 지성을 키운다.(5) 따라서 영이 없는 사람은 양심도 약하고 자연히 지성도 약하다. 지성은 지식과 다르다. 영이 없거나 양심이 부족한 사람도 지식은 뛰어날 수 있다. 지식은 뇌의 기능이다. 물론 육체에 속박된 정신체는 그 활동에 있어 육체의 성능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뇌의 기능이 뛰어나 지식능력(智力, 知能)이 넘친다면 정신의 지성도 왕성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혹시 혼의 지성은 육체의 지력에 종속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혼의 지성에 육체의 지력이 종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우선 환생 시 지성이 높은 혼은 똑똑한 부모를 고른다. 높은 지력의 육체를 고르는 것이다. 또한 지성 있는 혼은 육체의 지능을 100% 사용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지성적인 혼도 육체의 지능이 현저히 낮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혼은 그 활동에 육체의 성능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상위정신체의 중요한 속성은 개체성의 발로인 이기심(利己心)과 자존심이며 그 구체(具體)는 소유욕과 명예욕인데 이기심과 자존심으로 무장된 정신을 표준이론에서는 에고(ego)라고 한다.(6)에고라는 말은 원래 프로이트의 용어이나 그 내용이 표준이론의 상위정신체와 서로 유사하여 차용하여 사용한다. 한편 표준이론에서는 2단계 자아를 가진 사람의 자아를 에고의 자아라고 부른다. 2단계에서는 상위정신체가 자아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정신은 감성(感性)과 욕망(慾望)으로서의 이드와, 욕구, 감정(感情), 지성(智性)의 에고를 포함한다.

 

감성

 

감성(感性, sensibility)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로 이성(理性)에 대응되는 개념이며 대상을 오관(五官)으로 감각하고 지각하여 표상을 형성하는 인간의 인식 능력이다. 어찌 보면 감성은 정신의 기능이라기보다는 몸과 정신을 이어주는 생기체의 기능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표준이론은 생기체의 물성은 감각으로 표현하고 정신체의 비물성은 감성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감성은 정신 중 몸에 가장 가까운 부분이다.(7) 불교의 오온으로 치면 상()에 해당한다.

여기서 불교의 오온(五蘊)이 육근에 작용하여 의식이 발생하는 과정과 표준이론의 지혼 탄생과정을 비교하여 보자. 우선 ()’은 외부 대상이고 ()’는 육체의 가해지는 자극을 감각(感覺)한 것이니 생기체의 기능이며 ()’은 심상(心像)을 취하는 취상작용인 표상, 개념 등의 작용으로서 의식 속에 상()을 구성하고 마음속에 어떤 것을 떠올려 관념을 형성하는 지각기능이다. 이는 마음의 최하위 기능인 감성(感性)’에 해당한다. ()은 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식 작용으로 의지력, 충동, 의욕 등으로 표준이론의 욕망(慾望)’에 해당한다고 본다. ()은 식별하고 판단하는 의식 작용인데 이는 육식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안이비설신의의 육근에 붙어 각 감각기관의 식별기능의 합으로서의 의식이 되니 상(감성)과 행(욕망)의 합으로 표준이론의 하위정신체. 결론하면 불교 오온(五蘊)의 명() 부분인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생기체와 하위정신체의 합() 정도로서 제6식에 해당하고 그 위의 제7식은 자의식으로서 상위정신체의 에고이며 제8식은 제7식에 다시 양심체까지 합한 것이니 지혼, 즉 사람의 혼()이다. 결국 불설과 표준이론은 사실상 같은 주장을 다른 언어로 말한 것이 아닌가.

 

4세기 인도 무착스님의 유식학파는 오온에 의하여 탄생한 위 제8식이 표준이론과 비교하여 보나 그 기능이 윤회의 주체인 점을 보나 틀림없는 혼이요 자아(自我)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혼이 아닌 무아(無我)로 만들기 위하여 인도 삼키아 철학을 변형한 생경한 논리를 작성하였다. 즉 우리 신체의 기관(器官)인 오관(五官)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감각기능으로 인도철학에서는 이를 오근(jnanendriyas)이라 하던 것을 의각(意覺)이라는 희한한 감각기관(8)을 더하여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六根)을 만들고 다시 삼키아학파의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오경(五境, panca-tan-matra)이라는 감각대상을 추가하여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경(六境)을 만들더니 육근의 각각에 오온의 을 붙인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의 육식(六識)(9)을 제조하여 이를 위 육근과 육경에 더하여 십팔계(十八界)라 하고 이들이 오온(五蘊)의 내용물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또한 육식의 마지막 식인 의식(意識)이 아()의 최초 실체인데 의식의 정체가 알고 보면 이처럼 신체의 기관 중 하나인 의()에 허망하고 변화무쌍하여 실체가 없는 오온(五蘊)의 식()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여기에 기반한 제7식과 제8식의 아() 역시 허망하고 무상(無常)한 존재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는 깨달음에 의한 새로운 논리라기보다는 우주가 25가지 구성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삼키아철학의 우주적 전개 원리를 역으로 구성한 논리에 불과하다. 이는 아트만을 부인하는 붓다의 무아(無我)의 덫을 우회하기 위하여 아트만(Purusa)과 프라크리티(Prakriti)의 합으로부터 우주의 전개가 시작되었다는 삼키아의 논변(10)을 거꾸로 바꾼 것이라는 뜻이다.(11)

 

이러한 오온의 무아론을 표준이론으로 해석하면, “덧없는 오관의 감각기관에서 만들어진 外處에 대한 정보를 역시 허상인 생기체를 통하여 얻어 형성된 정신체는 당연히 실체가 없는 것이니 정신체를 주요 구성요소로 하는 마음 즉 혼도 허깨비이다. 따라서 혼을 자아의 주인으로 본다면 자아란 진정한 아가 아닌 무상한 존재이다.”가 된다. 허상(虛像)을 무상(無常)으로 얻은 망상(妄想)의 아(). 이것이 불교의 오온의 무아논리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지 범인(凡人)의 머리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외처도 생기체도 분명한 실체이며 둘을 연결하는 센서도 실체다. 정신도 실체고 윤회하는 혼도 허깨비가 아니다. 무식한 중생이라도 열 번 들으면 이해는 되어야 하는 것이 진리다. 제아무리 이해하려 하여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것은 사술(邪述)이다. 기껏해야 방편(方便)으로서 도그마다. 불교가 자랑하는 오온의 무아를 이렇게 타박했다가는 백 가지도 넘는 가르침이 經律論3(三藏)에서 풀려 나올 것이다. 그 가르침을 받고도 우이독경이면 소가 된다. 소가 될까 무서워 말 못 하는 중생을 그 三藏으로 어찌 구제하겠는가.

 

표준이론으로 다시 무아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1) 사람은 불설(佛說)처럼 혼(12)과 육의 구성체가 아니라 영혼육의 구성체이고

2) 오온은 18()로 이루어졌다 하니 외처(外處)인 육경을 제외하면 12계로서 이는 대부분 표준이론의 감성에 해당하는 것인데 표준이론의 혼은 감성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구성요소가 많으며

3) ()오온의 식()이 의식(意識)으로 바로 이어져 만들어진다는 단순한 구조의 불설과는 달리 표준이론의 자아(自我)는 감성 외에도 수많은 구성요소를 가진 혼과 이와는 다른 주체인 영으로 구성된다는 점

4) 표준이론에서는 몸 또는 외부와 교통하는 통로도 감성뿐 아니라 정신의 감정, 양심의 예지, 영의 직관 등으로 다양하고

5)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몸의 장기인 오관(五官)이 직접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혼의 장기인 생기체가 주도한다는 점

등으로 보아 오온의 무아는 표준이론에 도저히 대입할 수 없겠다.

 

또한 오온이 사람의 구성요소이고 따라서 육식(六識)으로서의 아는 무상하다는 불설(佛說)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어찌 보면 유물론(唯物論)적이기까지 하다. 아의 이기심과 자존심을 버리게 하려는 중생제도(衆生濟度)의 방편에서 나온 설이라고 하더라도 진실과는 너무 동떨어졌으니 가히 무리한 주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註釋>

1) 한편 국어사전에서는 정신의 신은 귀신 신()이라서 신()의 의미가 엄연히 부여되어 있으나 이를 애써 외면하고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또는 간단히 의식으로 풀어 놓았다. 곡학아세(曲學阿世).

2) 이종란, 기란 무엇인가, 118. 여기서 이종란은 기도 물질인 만큼 동양전통도 유물론적인 입장이라고 말하는데 이 주장은 자신의 책 다른 부분과 논리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영혼이 물성을 가진다는 수많은 유신론 앞에서 무색한 의론이다.

3) 정신을 한자사전과 영어로는 간단히 의식’, ‘consciousness’으로 풀이한다. 의식을 그런 뜻으로 쓴다면 결국 정신은 의식과 거의 동의어다. 불교에서 의식이란 육근(眼耳鼻舌身意) 중 의근에 기대는 인식이라는 의미로 뜻이 좁다. 불교의 의식 정의를 좀 넓혀서 六根에 기대어 깨어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이라고 정의하고 정신을 의식 또는 육근에 기대어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으로 보면 정신이 곧 의식이라는 풀이를 수용할 수 있겠다.

4) 감정(感情, feeling)=정서(情緖, emotion)+정취(情趣, flavor)+정조(情操, sentiment)

5) 표준이론은 혼의 진화이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혼이 발전할수록 이드 에고 양심 순으로 고급기능이 발달한다고 본다. 에고도 욕구 감정 지성의 방향으로 발달하게 된다. 약하거나 없던 기능들이 개발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많은 사상들은 처음부터 이러한 요소들이 인간에게 두루 갖추어져 있는데 상황에 따라 또는 자아의 수승 정도에 따라 발현되는 것이 다르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혼의 생물학적 진화(발전)를 지지하지 않은 사상은 모두 그러한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사상들이 대부분 진화론이 등장하기 전에 형성되었으니 그들도 이제 업데이트할 때가 되었다.

6) 표준이론의 무명(無明)

1. 표준이론에서 지혼의 중심체인 상위정신체(에고)의 속성으로서 개체성(separateness)은 상위정신체가 탄생되는 때인 군혼에서의 탈피시점에서 혼이 확보한 자연스러운 속성이지만 이후 영으로의 진화과정에서 개체성은 오히려 진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지혼은 자신을 로부터 구별함으로써 생겨났지만 그 구별은 일원의 세계로 돌아가는 데 있어서 극복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는 혼이 無明으로 인해 자타일체의 일원의 이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환상(maya)으로서 개체성을 갖게 된다는 힌두의 설명과도 일치한다(미주84 ‘혼의 個體性(separateness)과 영의 個別性(individuality)’ 참조). 표준이론의 무명(無明)도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무명이다.

2. 따라서 무명의 발생과정은 [개체성 확보 자의식 발생 이기심과 자존심 등장 소유욕과 명예욕으로 구체화 무명 발생]이다. 이를 무명(無明)의 공식이라고 하자. ‘12연기 공식보다는 간단하니 외기도 쉽다.

3. 지혼은 진화를 위하여 이러한 이치를 깨달아 무명으로부터 탈출하여야 하나 그 깨달음은 그룹혼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하느님으로의 합일을 향한 길이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지혼은 개체성(separateness)은 극복하되 오히려 개별성(individuality)은 발전시켜 자의식을 의 순수의식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이는 至難한 상구보리(上求菩提)의 길이다.

4. 개체성의 극복작업은 혼에 내재한 하느님의 불씨動因이 되어 시작된다. 원래 하느님으로부터 발출한 불씨가 혼으로 하여금 그의 궁극적인 진화목표점이 하느님과의 합일임을 깨닫게 하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7) 감성(sensibility, 感性)

1. 감성은 이성(理性, 知性)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감성과 이성은 둘 다 정신체의 기능에 속하지만 정신체는 감성과 이성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감성과 이성 사이에는 욕망, 욕구, 감정이 존재하며 따라서 둘 간의 간격은 너무 멀다. 감성은 외계의 대상을 오관(五官)으로 감각하고 지각하여 표상을 형성하는 정신체의 최하위 기능이다. 감성은 인간과 외부세계를 잇는 다리(bridge)로서 인간 생활의 기본적 영역을 열어 주는 역할을 한다. ,

1) 이성(理性)을 위해 감각적 소재를 제공하고,

2) 이성의 지배와 통솔을 받을 감정적 소지(素地)를 마련하며,

3) 미적(美的) 인식에서는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인간적 생의 상징적 징표(徵表)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 감성을 감성 아닌 것으로부터 분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오히려 감성이 삶을 영위(營爲)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국면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한다.

2. 표준이론의 감성을 불교의 색((((()의 오온(五蘊)중 하나와 비교한다면 무엇에 가까울까.

1) ‘은 외부 대상이고

2) ‘는 육체의 감각에 의해 생긴 지각(知覺)이니 생기체의 기능이며

3) ‘은 심상(心像)을 취하는 취상작용으로서 표상·개념 등의 작용으로서 의식 속에 상()을 구성하고 마음속에 어떤 것을 떠올려 관념을 형성하는 기능이다.

4) ‘은 의지작용과 그 잠재적 형성력을 의미하고

5) ‘은 인식판단의 작용을 가리킨다.

이처럼 어려운(사실은 모호한) 설명을 들으면 감성은 ()’쯤에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 오온은 불교에서 보는 인간의 구성요소다. 그런데 불교는 인간에게 몸과 마음만 있고 혼이나 영은 없다 하니 오온의 색만 빼면 나머지 사온(四溫)이 마음이다. 그러나 불설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불설에 의하면 오온에서 분별식인 육식(六識)이 나오고 거기에서 자의식인 칠식(七識)이 나오며 다시 거기에서 윤회체인 팔식(八識) 아뢰야식이 기인한다. 게다가 어느 불설은 그 위에 청정식인 제9식 아말라식도 있다 한다. 그렇다면 결국 불설도 에둘러서 그렇지 결국은 표준이론으로 대치(代置)할 수 있다. 즉 청정식은 영(), 아뢰야식은 양심, 자의식인 7식은 당연히 에고인 상위정신체, 6식은 하위정신체인 이드다. 순서에 따라 오온은 당연히 생기체의 기능인 감각기능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드에 속하는 감성은 오온의 무엇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부록4 ‘영혼육의 구조참조).

 

8)1. 생각해 보면 의각이란 감각기관은 마음인데 마음을 감각기관 중 하나라 하여 육근에 가져다 붙이고 다시 이 의각에 오온의 식을 붙여 의식을 만들어 낸 후 다시 이 의식이 마음이라고 하니 마음인 의각에 마음인 식을 붙여 마음이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오온의 색((((() 도 모두 마음의 기능이라고 하니 더욱 알쏭달쏭하다.(미주128 ‘육경과 육근 그리고 오온에 의한 제6식의 생성참조)

2. 인도 삼키아학파는 인 푸루샤의 작용으로 인 프라크리티에서 양심격인 붓디(마하트)가 만들어지고 이어서 자의식인 아함카라(불교의 제7식 말나식)가 나타나며 다시 여기에 기원하여 마나스(, 마음, 불교의 제6)가 만들어진 다음 마나스에서 오근(jnanendriyas)이 나오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유식불교에서는 삼키아의 마나스를 느닷없이 오근에 갖다 붙여 육근을 만들었다. 8식인 아뢰야식을 發見하였다고 하는데 발견이 아니라 발명한 것이거나 삼키아의 붓디를 개명한 것이다.

3. 한편 삼키아는 이처럼 프라크리티에서 생성된 만물은 모두 허상이고 마음 또한 허상이므로 이를 버리고 실재인 아트만에 복귀하라고 한다. 그러나 유식학은 이 주장의 앞부분만 살리고 뒷부분은 다짜고짜 잘라 버렸다.

4. 이러한 견강부회는 모두 부처님의 무아윤회의 교리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 나머지 후학들이 저지른 오류다. 그리고 그 오류는 도그마로 정착되어 아무도 손을 못 댈 만큼 굳어 버렸다. 도그마가 항용 그렇듯이 그 위에 수많은 도그마가 더 쌓였기 때문이다.

9) 六境(객관적 만유의 대상. 즉 색(((((()六根(, , , , , )의 감관을 통하여 六識(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으로 인식된다. 즉 육근이 육경을 만나면 육식이 나타난다. 이 육식은 認識의 뿌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온의 식이 육근을 만나면 육식이 나타난다고도 하는데 범벅이다.

10) 8.6.3. ‘힌두철학 삼키아학파의 인간론참조

11) 삼키아의 우주 전개 원리와 불교의 유식설

1. 유식설(唯識說)은 삼키아를 표절하여 역순(逆順)으로 논변한 것이 찝찝하였든가 다시 순리(順理)를 말하기도 한다. 즉 인간의 현실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존재)은 부처님의 삼법인(三法印)에 따라 제법무아(諸法無我)이므로 실유(實有)가 아니며 따라서 공()하고 연기적(緣起的)이기는 하나 모든 법이 현재 있는 상태(아리스토텔레스의 現實態)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모두 에 근거하는 원인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이미 공()에 가능성의 상태(可能態)로 존재한다고 보며 그것을 종자(種子)라고 부른다. 그 종자가 종자식 즉 제8식인 아뢰야식이다. 여기에 의존하여 사량(思量)의 작용을 하는 제7식인 말나식이 나오고 다시 여기에서 안식,이식,비식,설식,식식,의식의 6식이 나와 각각 육경(六境, 색성향미촉법)을 인식한다.

2. 이렇게 되면 유식과 삼키아의 논변과 무엇이 다른가. 이러한 공()은 우주의식인 힌두의 브라만(Brahman)이고 거기에서 나오는 종자는 아트만과 다를 바 없으니 도로묵인 셈이다. 불설의 공이 이렇다면 이는 사실 도가의 도()이고 태허(太虛)이며 유가의 태극(太極)이요 카발라의 아인(Ein)이며 신지학의 로고스요 뉴에이지의 우주의식이다. 또 종자는 영지주의의 영()이요 카발라의 최초의 세피라인 케테르(Kether)요 신지학의 모나드(Monad)이며 유가의 성()이고 우리나라 전통 혼령관에서 말하는 생령(生靈)이다.

3. 그러나 유식학은 이처럼 다시 힌두의 길을 걷고도 어색해 할 일이 없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제법무아가 사실은 제행이 무상하니 제법의 아도 緣起에 따라 변화하는 無常즉 제법무상아(諸法無常我)를 말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부처님의 무아의 덫을 피해가는 논리일 뿐이었다. 후생들에게 이것이 또 다른 덫이 되어 귿르이 여기에 걸려드는 것은 후생들의 몫(karma)이다.

4. 원래, ()사상은 서기 1세기경 용수 중관학파가 상좌부(上座部) 계통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주장인 법유(法有)를 논박하고, 일체의 존재를 연기(緣起)의 입장에서 파악하여 무애자재(無礙自在)의 세계를 전개하려는 사상이었다. 부처님의 아이디어인 연기(緣起)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한 논변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공사상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연기의 무상성을 이해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부처님은 모든 현상은 인연소생(因緣所生)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항상하는 아(常我)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법무상아(諸法無常我)를 말씀하셨다. 그러니 무아에서 아나트만(Anātman)과 무신(abrahman)을 유추하면 무아의 덫에 빠지게 된다.

5. 부처님은 위파사나 명상에 의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는데 위빠사나 명상은 사념처(四念處)의 명상이다. 즉 사람의 구성요소인 오온(五蘊)에 따라, ()이 주는 자극을 식()하여 6근을 통하여 감각()한 후 이를 인식()하면 이에 대한 반응으로 감정이나 욕망이 분출하는데() 이를 색 즉 몸 단계 직후에서 끊어내거나(호흡관찰, 身念處觀, kāyānupassanā) 감각 단계 직후에서 끊어내거나(감각관찰, 受念處觀, Vedanānupassanā) 마음 단계에서 끊어내거나(마음관찰, 心念處觀, Cittanupassanā) 법의 단계에서 끊어내는(담마관찰, 法念處觀, dhammānupassanā) 것이 위빠사나다. 고엔카에 의하면 부처님은 이중 감각관찰에 집중하였다. 이를 통하여 부처님은 육근의 감각()은 수시로 변하니 무상하고 여기에 연하여 만들어지는 제식(諸識) 또한 모두 무상한 것임을 아셨다. 아울러 사람을 구성하는 오온 즉 몸과 감각 그리고 인식과 욕망 그리고 의식이 모두 서로 연기하여 변하고 또 변하니 이 또한 무상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아가 이러한 무상한 아상(我相)에 집착함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고(, Dukkaha)의 실상을 정관하고 자연스럽게 사성제(四聖諦)와 삼법인(三法印)을 토()하신 것이다. 결국 무아(無我)는 어떻게 보아도 무상아(無常我)이다.

 

12) 혼도 아니다. 아뢰야식이라는 이름의 장작불 윤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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