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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③ 법륜은 왜 굴려야 하는가?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3/01/16 [07:46]
고타마 붓다 가르침의 표상(表象)으로서 팔정도, 계정혜 삼학실천과 연기의 통찰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③ 법륜은 왜 굴려야 하는가?

고타마 붓다 가르침의 표상(表象)으로서 팔정도, 계정혜 삼학실천과 연기의 통찰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3/01/16 [07:46]

어느 한 종교가 영원하다.’는 진리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지켜봐 왔다. 종교에도 생물학적인 흥망성쇠가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종교도 인간이 만든 소산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사람들에게 관심 없으면 아무리 막강했던 종교도 대중과 멀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합리적 결과를 잘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왜 그럴까? 자신의 종교가 영원무궁하다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 지형을 보면, 주류 종교는 기독교가 이미 되어 있다. 불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잘 믿어지지 않는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오리라고 불교의 선각자들은 예견했다. 아직도 완고한 불교인들은 이런 현상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고 사회현상은 어김없이 있는 그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불교는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법륜(法輪)’ 이야기를 더 전개 해 보자.

▲ 이란의 초가 잔빌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12 바퀴살의 수레.

 

불교의 법륜은 바퀴살이 8, 12, 24개로 디자인되어 있다. 대체로 8개의 바퀴살로 된 것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불교 전통에 따라서 법륜 바퀴살의 수효는 차이가 있다. 8개의 바퀴살은 8정도(八正道)를 의미하고, 수레의 중심축, 가장자리와 살을 통틀어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상징하기도 한다. 불교에서 삼학은 불교의 핵심을 구성하는 강요(綱要)이다.

 

(,sila)는 승단을 구성하는 승려와 재가 불자들의 윤리적 규범이다. ()은 삼매(三昧)를 말한다. 산스크리트어 사마디(Samādhi)는 요가나 명상과 같은 말이다. 인도의 요가(yoga)는 불교로 말하면 고요함·적멸(寂滅적정(寂靜)의 명상 상태 또는 정신집중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수행이 된다. 고도의 정신집중을 의미한다. (,prajña)는 지혜(智慧)를 뜻하는데,

이것은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인 진리를 말한다. 부처님의 말씀 그 자체는 바로 진리이면서 지혜를 뜻한다. 불교 공동체의 구성원은 당연히 지혜를 향하여 수행하고 학습해야 한다.

 

법륜이 의미하는 것은 팔정도, 삼학, 연기(緣起)의 통찰이다. 말하자면 법륜이 상징하는 것은 고타마 가르침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티베트 불교에서 말하는 ‘바와 차크라’. 유륜(有輪) 또는 육도회(六道繪)라고도 하여 육도를 윤회하는 생사윤회를 상징하는 삼사라(윤회)의 수레.

 

법륜은 이런 불교의 우주관을 상징하며 생사윤회를 반복하는 삼사라의 표상이기도 하다. 법륜은 또 연기(緣起)를 상징하기도 하다. 연기이론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깊은 명상과 통찰이 요청된다. 인도에서는 빨리어로는 빠띠까삼무빠다(paṭiccasamuppāda)라고 하며, 산스크리트어로는 쁘럇띠야사무빠다(Pratītyasamutpāda)라고 하는데, 일찍이 중국에서는 연기(緣起)로 한역했다. 일체유위법도시인각종인연화합이성(一切有為法都是因各種因緣和合而成) 차리즉위연기(此理即為緣起)’라 했다. 일체 유위법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법계의 일체 현상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로 분류되는데, 유위라 하는 것은 위작(爲作조작(造作: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이런 결과로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유위법(有爲法)은 여러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생성과 소멸의 현상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를 통칭한다.

 

무위(無爲)는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대()가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즉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그러므로 무위법(無爲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를 가리킨다.

 

따라서 연기법은 유위의 현상에 의한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인(: 직접적 원인)과 연(: 간접적 원인)에 의지하여 생겨남 또는 인연(因緣: 통칭하여, 원인)따라 생겨남의 준말로, '(: 인과 연의 통칭으로서의 원인)해서 생겨나 있다' 혹은 '타와의 관계에서 생겨나 있다'는 현상계(現象界)의 존재 형태와 그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에 있어서의 존재는 반드시 그것이 생겨날 원인[]과 조건[]하에서 연기의 법칙에 따라서 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

 

연기의 법칙, 즉 연기법(緣起法)을 원인과 결과의 법칙 또는 줄여서 인과법칙(因果法則) 혹은 인과법(因果法) 또는 인연법(因緣法)이라고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고대 인도에서는 인과법에 대해 여러 이론들이 있었으므로, 연기법은 고타마 붓다가 설한 인과법, 또는 불교에서 주장하는 인과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고타마 붓다는 잡아함경12권 제299연기법경(緣起法經)에서 연기법은 자신이나 다른 깨달은 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고 출현하지 않음에 관계없이 우주(법계)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보편 법칙, 즉 우주적인 법칙이며, 자신은 단지 이 우주적인 법칙을 완전히 깨달은[등정각(等正覺)] 후에 그것을 세상 사람들을 위해 12연기설의 형태로 세상에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 자이나교의 상징인 담마차크라(法輪)와 아힘사(비폭력) 상징. 인도에서의 법륜 마크의 바퀴살은 대개 24개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 본대로 불교의 상징은 담마차크라(法輪) 마크이다. 물론 만()자도 있다. ( 스와스티카)에 대해서는 다음에 소개하겠다. 법륜 마크는 부처님 가르침의 상징이면서 불교의 대표적인 상징임에 틀림없다. 중국과 한국불교에서는 만()자가 더 애용되지만, 남방 불교나 티베트 불교에서는 법륜 마크가 더 우세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은 한국불교가 불교의 원류에서 너무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만자나 원이삼점(圓伊三點)이 불교의 상징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법륜이 더 불교의 상징으로서 더 적합도가 근본적이라는 뜻이 되겠다. 나중에 만자와 원이삼정에 대해서 논할 기회가 있겠지만, 일단은 불교의 상징은 법륜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법륜이 불교의 상징으로서 항상 굴러야 한다는 당위성이다. 상징(象徵, symbol)은 연상, 닮음, 관례에 의해 다른 것을 표현하는 개체, 그림, 쓰인 말, 소리, 마크와 같은 것이다. 모든 언어는 상징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상(佛像)이 제작되어서 붓다의 상징이 표상화 되기 전에는 법륜마크가 불교를 상징했으며, 보리수와 족문(足紋) 또한 상징이었다.

 

나중에 주제별로 탐구해 볼 과제이지만, 법륜은 불교의 상징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사찰에서는 법륜 마크보다는 만자나 원이삼점이 더 보편화되어 있다. 사실은 법륜 마크가 불교의 상징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법륜 마크가 상징하는 것은 사제, 팔정도, 중도, 연기 사상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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