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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6장 ‘혼(魂)에 대하여’-양심에 대한 여러철학과 사상

정영부 | 기사입력 2023/02/02 [10:05]
‘양심에 대한 여러 철학과 사상 그리고 일체유심조와 혼’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6장 ‘혼(魂)에 대하여’-양심에 대한 여러철학과 사상

‘양심에 대한 여러 철학과 사상 그리고 일체유심조와 혼’

정영부 | 입력 : 2023/02/02 [10:05]

  © 매일종교신문


이번 회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6()에 대하여

양심에 대한 여러 철학과 사상 그리고 일체유심조와 혼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양심에 대한 여러 철학과 사상

 

사전에는 양심(良心, Conscience)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그 뜻이 풀이되어 있다. 종교적으로는 여기에 신의 뜻을 통찰하고 죄를 책망하며 선을 추구하려는 선한 능력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철학적으로는 양심과 관련하여

1) 인간에게 고유한 불변적인 것인지

2) 또는 진화의 결과에 의해 생겨난 것인지

3)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 그가 받은 교육 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

 

자연과학에 경도된 현대철학에서 볼 때는 당연히 3)번이 답이겠지만 표준이론으로 이에 답하면, 먼저 양심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혼의 속성이므로 당연히 생득(生得)적이며 고유불변의 것이다.

 

혼이 생명력인 기에서 진화한 것인 만큼 그 일부분인 양심 또한 기의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화 정도에 따라 양심은 사람마다 그 크기가 다르다. 따라서 양심은 사회적 지위나 그가 받은 교육 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때 형성되는 것은 양심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성향(性向)으로 업이나 덕의 일종이다. 다만 사회적 지위나 교육으로 인해 혼이 일찍 깨어나거나 이승에 적응하는 요령을 일찍 터득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양심이 그처럼 쉽게 자란다면 십 년 공부가 어찌 나무아미타불이 되겠는가.

 

정신의 활동이 생각이라면 그럼 양심의 활동은 뭘까? 지혜다, 선행이다. 사랑(1)이다. 자비다. 희생이다. 덕행이다.

 

칸트는 양심을 선악을 판단하는 생득적인 능력이라고 하고 그것을 인간의 내면에서의 법정(法廷)의식에 비유한다. 칸트도 양심은 인간의 본질과 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인간은 감성계와 예지계의 양쪽에 걸쳐 존재하기 때문에 양심도 동일한 존재양식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하는데, 이 논리로 예지인(homo noumenon)과 감성인(Sinnenmensch) 두 인격을 전제하여 양심(良心)법정이 성립된다. 칸트는 또 경고하는 양심, 원고와 변호사가 등장하는 양심, 즉 가책을 깨닫고 변명을 하는 양심, 재판관의 판결로서 나타나는 양심이 있다 한다.

 

칸트처럼 양심 내부에서 양심법정이 성립되는 것도 좋겠으나 양심의 사단(四端)은 검사역할을 하고 양심의 지혜는 판사역할 그리고 하위자아는 피고, 상위자아는 변호사로 하는 프로이트적인 마음법정은 어떤가. 검사인 사단(四端)이 기소(起訴)하면 재판이 시작된다.

 

양명학은 명나라 때 왕수인(王守仁, 陽明 1472~1528)이 육상산(1139~1192) 등의 영향을 받아 주창한 학문으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심즉리(心卽理)’라는 절대적 유심론(唯心論)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간의 마음에 갖추어진 양심의 절대성과 자율성을 강조한다.

 

예컨대 효()는 배우고 익혀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마음의 원리라는 것이다. 즉 리()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생득적인 것이며 마음의 속성으로 파악한다. 마음은 옳고 그름을 바르게 깨닫는 선천적인 앎의 능력인 양지(良知)를 가지며 양지로 마음은 理致를 파악하는 주체가 된다.

 

그는 양지를 설명하면서 양지가 신묘히 작용하는 측면을 신()이라 하고 흘러 운행하는 측면을 기()라 하며 엉겨 뭉치면 정()이 된다고 주장하였다.(2) 그의 양지는 곧 표준이론의 양심이니 양심을 만물의 근본으로 대단하게 여긴 것이다. 기에서 나온 것이 기의 주인이 되었으니 양심론으로서는 최고봉이며(3) 맹자의 선천적인 도덕심에서 한 걸음 더 나간 생각이다. 왕수인은 표준이론의 혼의 양심이론을 정치(精致)하게 논파하였을 뿐 아니라 혼을 리의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혼의 영화(靈化) 가능성을 일찌감치 엿본 게 분명하다.

 

서경(書經)(4)에서는 육체적 욕구와 관련된 마음을 인심(人心)이라 하고, 선하고 도덕적인 마음 부분을 도심(道心)이라 하여 마음을 둘로 구분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도심은 양심이나 다름없다.

 

또한 성리학에서는 리()가 인간에 이르러 발현된 마음을 ()’이라 하고, 사람에 있어 기()가 온전히 지배하는 부분을 ()’이라 하였다. 인심(人心)은 성리학의 정에 통하고 도심(道心)은 성과 통한다.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하는 이황은 사단은 이()가 발현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현한 것이다(四端理之發, 七靑氣之發).”고 하여, 선악이 섞이지 않은 마음의 작용인 사단은 이()가 발현한 것이고, 인간감정의 총체인 칠정은 기()가 발현한 것으로 구분하였는데 그의 주장을 표준이론으로 해석하면 이()의 발현은 사단의 양심이요, ()의 발현은 감정의 정신이다.

 

그런데 리와 기가 이원(二元)이라 함은 양심과 정신이 이원(二元)이라 함이니 표준이론의 도리에 맞지 않는다. 양심과 정신은 모두 마음에 속하고 마음은 혼에 속하며 혼의 기원은 기()이니 기일원(氣一元)이 너무 당연하다. 다만 가 영의 다른 표현이라면 영과 혼의 이원을 말하는 것이니 오히려 틀린 말이 아니다. 과연 는 영일까? 영을 말하지 못한 성리학이 영 대신 를 내세운 것은 아닐까? 표준이론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말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허비(虛費)한 세월과 허송(虛送)한 뭇 생들이 너무 많았다.

 

퇴행최면 전문가인 마이클 뉴턴은 만약 육체에 영혼이 깃들지 않으면 사람은 감각과 감정에 지배된다.”고 하였다.(5) 이 말은 만약 육체에 영이 깃들지 않으면 사람은 감각과 감정의 혼에 지배된다.”로 들린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영이 없이 혼만 있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감각과 감정에만 지배된다고 볼 수는 없다.

 

뉴턴이 영혼육의 구성을 몰랐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한 언급일 수 있으나, 하여간 혼은 생기체의 감각과 정신체의 감정뿐 아니라 정신체에는 감성, 욕망, 욕구, 지성이 더 있고 양심에는 四端, 지혜, 예지가 더 있어 아주 복잡한 구성을 가진 인격의 주체이다.

 

중언(重言)하지만 사람에게 혼만 있고 영이 없어도 양심은 있다. 하느님의 불씨 때문이다. 이제 막 각혼에서 진화하여 중음에서 바로 인간도에 나온 지혼이라면 불씨는 아직 불티수준이라서 양심이 발달할 시간적 여유가 없겠으나 불교에서 다행히 아귀도(6)나 아수라도(7)를 상정하니 초생인(初生人)은 그런 교육기관을 거쳐 올 것으로 보아 인간도에 출현한 사람은 모두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

 

성리학도 양심의 기원으로 기의 법칙 내지는 존재의 원리인 조리(條理)를 말한다.(8) 그러나 어쨌든 양심을 혼만의 힘으로 크게 키우기 어려우니 영이 없는 사람은 양심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혼

 

마음은 혼이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9)는 일체유혼조(一切唯魂造). 유심론(唯心論)의 불교적 교학인 유식론(唯識論)(10)에 의하면 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 마음의 관념 작용(mental ideation)에 불과하다고 한다. 따라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유일하다.(11) 유식론(唯識論)의 영문(英文)‘School of Consciousness Only’이니 단어만 보아도 ‘Mentalism(12)’인 유심론에서 한 걸음 더 나간 사상이다.

 

표준이론에서 이승은 혼들의 세상이다. 혼만 가진 사람들이 인구의 구할(九割)이요 나머지 일할도 영이 혼에 끌려다니는 수준의 사람들이 태반이다. 또 이 세상은 혼이 진화하여 영이 되고 다시 해탈하여 윤회를 벗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러모로 이 세상은 혼들의 세상’(13)이라서, 원뜻에서 약간 변질된 말이긴 하나 이 세상의 일체는 유혼조(唯魂造).(14)

 

불교는 을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불교에서는 윤회의 주체를 혼()이라고 하지도 않고 기껏해야 아뢰야식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힌두의 아트만을 인정하지 않으니 아뢰야식이 영()일 리는 없고 또 윤회한다 하니 육일 리는 더욱 없다. 그러나 이름이 뭐든 윤회하는 그것은 혼이다. 등잔불의 불꽃이 옮겨 가듯 해도, 스승의 가 제자에게 물려지듯 해도 윤회하는 존재는 불멸의 혼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혼이 진화하여 영이 되는 교리가 없다. 그러나 삼계육도와 윤회를 벗어나 영생하는 존재를 아라한이나 보살이라고 한다면 아라한이나 보살이 영() 아니겠는가. 표준이론에서는 혼이 열반하면 영이 되고 다시 그 영이 고급영으로 발전하면 윤회를 벗어난다. 그렇다면 윤회를 벗어난 불교의 보살은 표준이론으로 보면 틀림없이 고급영이다. 보살은 자청하여 환생한다고 하니 이마저 표준이론과 같다. 혼을 혼이라 부르지 못하고 영을 영이라 부르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혼은 환생하고 영은 영생한다.

 

엄밀히 말하면 세상은 一切唯魂造가 아니다. 혼이 진화하여 된 魂靈외에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神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유심조(一部唯心造). 또한 모든 혼은 결국 영이 되어야 하니 세상은 어느 때인가 일체유영조(一切唯靈造)(15)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땅이 된다.

 

<註釋>

 

1) 7의 하나인 와는 다르다. 양심이 하는 사랑은 여러 사랑 중에서도 플라토닉하고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신과의 합일로 이끄는 영의 활동인데 혼의 양심은 이러한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

 

2) 정기신(精氣神)은 도교에서 유래한 개념이나 기를 이야기하는 모든 교학에 스며 각()이 다르고 개()가 다르게 발전하였다.(8.7. ‘정기신(精氣神)의 인간론참조).

 

3) 이종란, 기란 무엇인가, 136~137쪽 참조

 

4) 書經四書三經의 하나로 중국 고대의 정치 문서를 편집한 것이다. 한문 문화권에서는 오랫동안 국가통치의 거울이 되어 왔다.

 

5) 인체에 깃든 영혼은 그 인간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약 육체에 영혼이 깃들지 않으면 혼은 감각과 감정에 지배되어 산다. 영혼은 항상 인간 속에 전부가 깃들어 있지는 못하여 어떤 육체적 감정은 견디기 어렵고 그럴 때는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영혼은 인간의 마음을 조종하지 않는다.(마이클 뉴턴, 영혼들의 여행, 405)

 

6) 아귀(餓鬼)는 불교에서 늘 굶주리는 귀신이다. 몸은 태산만 하고, (또는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하다. 식탐을 쌓아온 사람이 죽어서 아귀도로 윤회전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7) 불교에서 아수라도는 보통 인간과 축생의 중간에 위치한 세계로, 수미산과 지쌍산 사이의 바다 밑에 있으며 늘 싸움만을 일삼는 아수라들의 세계라고 한다.

 

아수라의 개념은 다양한데 첫째 아수라도에서 고통받는 아수라들이 있고, 둘째 욕계 선처의 세상에 태어나는 저열한 아수라들이 있으며, 셋째 욕계 천상과 같이 감각적 쾌락을 누리고 삼십삼천과 세력을 다투는 위세가 큰 아수라가 있다. 도대체 어떤 思惟의 결과 이런 SF소설이 에 수록되었는지 알 수 없다.

 

8) 性理學은 만물의 본질적 존재인 이()와 만물의 현상적 존재인 기()의 관계에 대한 이론으로 이와 기는 서로 뒤섞이지 않는다(理氣不相雜)는 이기이원론과 이와 기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理氣不相離)는 이기일원론으로 구분된다.

 

존재의 본질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수양철학에서는 리를 중시해야 하므로 전자의 입장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고, 현실의 개혁에 치중하는 실천철학에서는 기를 중시해야 하므로 후자의 입장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청나라 때의 학자 대진(戴震)리는 기의 조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여 리의 초월성과 불변성을 부정하였다.

 

표준이론은 당연히 일원론을 따른다. ()는 기가 움직이는 이치일 뿐이다. 주자에서 는 영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다.

 

9)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라는 뜻의 불교 교리로 불교 유식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모든 것은 우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외계를 우리의 마음이 직접 만들었다는 뜻이다.

 

10)1. 유식사상은 무착(無着, Asanga AD 310~390)과 세친(世親, Vasubandhu AD 320~400)에 의해 개척되었는데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여섯 개 마음(六識),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며 여기에서 이 세상 모든 현상(現像)이 나타난다고 하는 대승의 이론이다.

 

2. () 중에 제일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으로 전5(前五識)이라고 한다. 이 전5식을 총괄하는 분대장격인 식이 의식(意識)인데, 이것이 6번째에 있으므로 제6(第六識)이라고 한다.

 

이 제6식을 근간으로 하는 식이 자의식으로 제7(第七識)이다. 이것은 산스크리트어로 마나스이며 한문으로 말나식(末那識)이라고 표기한다. 그리고 제8식은 나타나 있지 않고 밑바닥에 숨겨져 있는 하나의 잠재의식인데 윤회의 주체로 주장된다. 진제(眞諦 499~569) 는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서 여기에 제9(第九識)인 아말라식(阿末羅識)을 더하였다. 이는 말라식이 없는 식 즉 자의식이 없는 식이니 자의식을 로 본다면 無我識으로서 수행의 궁극적 경지인 진여(眞如)를 인식대상으로 하는 번뇌에 물들지 않은 청정한 마음이다.

 

3. 6식의 근간이 말나식이 아니라 6식을 근간으로 하는 식이 말나식이라고 한다. 육식은 육근의 감각기관에서 나온 것이니 자의식이 감각기관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유식론이라면 오로지 의식(Consciousness Only)이니 의식에서 모든 것이 나와야 하는데 반대다. 따라서 무착의 유식은 유식론이 아니라 유물론이다. 유식론이라면 6식의 근간이 말나식 즉 자의식이어야 한다.

 

4. 또한 현대적 佛說, 아뢰야식이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이라고 하며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서투르게 가져다 쓰는 해석이 있는데 틀린 해석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윤회하다니 어처구니없다. 그래서 프로이트 무의식의 정체는 표준이론에서 혼뇌의식이다.(6.12.2. ‘표준이론의 의식구분참조) 명종하면 혼뇌의식이 혼의식이니 비로소 무의식이 윤회한다. 유식(唯識)하기 전에 유식(有識)하여야 할듯하다,

 

11) 유식론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유일하다고 하나 한편으로 부처님은 그 식이 외계의 헛것으로부터 만들어지니 무아라 한다. 불교는 어느 한편만 주로 주장하거나 이런 모순들은 정비를 함이 어떨까 하는 바람이 크다.

 

12) 唯心論spiritualism이라고도 하는데 spiritualism은 심령주의, 심령론 등의 뜻으로만 쓰는 것이 좋다.

 

13) 혼들의 세상

1. 이승이 혼들의 세상임은 새삼 거론하지 않아도 이제 훤히 알 일이지만 하도 심하여 다시 蛇足한다.

 

 

차를 끌고 시내를 10분만 돌아보면 그 어디에도 영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영은커녕 양심의 아랫부분인 사단(四端)도 찾아볼 수가 없다. 보자.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운전 못 하는 사람을 배려해 주는 사람은 이제 없다. 사양지심(辭讓之心)으로 끼어드는 차에게 양보하지도 않는다. 도로는 실력과 뻔뻔함만이 지배할 뿐이다. 시비지심(是非之心)도 없다. 양보를 않으니 실력으로 끼어들면 경적을 울리고 라이트를 켜 댄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니 끼어드는 자나 욕을 해 대는 자나 스스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면벽(面壁)하다 10년 만에 속세에 들어와 운전대 10분 잡으면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다. 신부님도 스님도 운전대만 잡으면 개가 된다. 이것은 혼들의 세상의 법칙이니 나도 예외가 아니라고 모두들 스스로 자위한다.

 

2. 哀歌

 

인생은 일장의 춘몽이라 하더라

오래 산 사람일수록 이 말에

異意가 없더라

 

살아 보니 진짜로 인생은 일장춘몽이어서 그렇더라

자칫하면 인생이

태어나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잠자다 죽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누워 있다 떠나는,

눈 한번 못 뜨고 님의 얼굴도 못 본 채 되돌아가는,

한여름 밤의 꿈이라서 그렇더라

 

大家집 맏아들로 태어나

주인 노릇 한번 못 하고 하인 놈 손에 놀아나다

품고 온 청운의 뜻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인생의 맛도 멋도 모르는 채

죽 쒀서 개 주고 허망하게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런 인생이어서 그렇더라

 

보통이 아니다 쉽지 않다 센 놈들이다 하길래

전생에도 당했다 나도 당했다 이구동성으로 그러길래

구슬리고 달래고 약점 잡아 혼내야지 하며

다짐하고 벼르고 준비하고 왔건만

다 소용 없더라

그래도 그렇지

어쩌다 하나같이 그런 꼴이 되었나

 

이다. 저 망할 놈의 때문이다

세상에 와 보니 레알 들의 세상이더라

배워 볼까 도움을 청해 볼까 아무리 찾아봐도

그 똑똑하고 용맹한 영들은 하나도 안 보이고

선생님도 스승님도 랍비도 구루도 다 어디 가고 없더라

 

그래서 인생이

일장춘몽이요 남가일몽임에

어느 누구 한 異意가 없더라

 

3. 잠자기 전 만트라

 

나는 외칠테다

나는 몸도 아니고 혼도 아니다라고

난 영이다 깨어있는 나는 영이다라고

사랑방의 주인은 나다라고

항상 나였고 항상 거기에 있었다라고

 

맞다

내가 참자아 영이 되기 위해서는

참자아 영이 자아의 방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나는 깨어나야 한다. 알아채야 한다

3자가 되어야 한다

관조자가 되어야 한다

명령자가 되어야 한다

 

아무 문제도 없다 아무 노력도 필요 없다

그저 다 놓아 버리면 된다

화내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걱정하고 욕심내고 게으르고 욕하고

착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참고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졸립고

다 혼이 하는 짓이다

영부가 하는 일이다

 

나는 외칠테다

나는 영부가 아니다라고

이제 나는 영부라는 혼을

내 사랑방에서 단연코 내보내겠노라고

나는 영부라는 혼의 주인이다아~

내가 이 몸의 주인이다아~

 

14)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一切唯心造는 그 해석하는 방법에 3가지가 있으니

1. 마음수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

1) 불교에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여기는 사상.

2)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으므로 올바른 마음가짐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한다는 말.

 

2. 唯心論(唯識思想)적 입장

1) 일체 사물은 마음의 표현이므로 그 본체인 마음이 소중하다는 대승(大乘) 불교의 사고방식.

2) 오직 주관적 心識작용만 있을 뿐 객관적 대상은 없다는 유식무경(唯識無境)의 사고방식.

 

3. 표준이론의 一切唯魂造

표준이론적 해석으로 볼 때 불교는 신영(神靈)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승은 혼의 세상이요 혼이 열반하여 영이 되는 곳이니 혼영(魂靈)만을 인정한다. 사람은 중생윤회하는 기덩어리 혼이고 혼은 윤회의 수레바퀴(bhavachakra)에서 업과 덕을 쌓다가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깨달아 8정도를 걸으면 소멸하지 않는 영이 된다. 그 영이 혼영이다. 혼이 진화하여 깨달으면 높은 수준의 저승으로 극락왕생하고 진화를 거듭하다 마침내 열반하면 영(아라한)이 되고 더욱 발전하여 보살도 되고 부처도 된다.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아니 일체유혼조(一切唯魂造).

 

15) 과거와 현재 미래의 부처를 모두 알려고 한다면 당연히 법계(세상)의 성품을 보아 이 모든 것이 혼(=마음)이 만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표준이론으로는 이 세상이 혼들의 세상임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혼은 자기들의 세상이라고 자부할 일이 아니라 그만큼 벗어나기 힘든 곳이라는 각성을 가져야 하며 영은 그런 세상에서 스스로 공을 성취하고 맡겨진 혼을 영으로 키워야 하니 분발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일체유기조(一切唯氣造)며 일체유혼조(一切唯魂造).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일부유심조(一部唯心造)를 거쳐 일체유영조(一切唯靈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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