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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무아론의 문제점과 불교의 우주론’

정영부 | 기사입력 2023/03/30 [07:03]

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무아론의 문제점과 불교의 우주론’

정영부 | 입력 : 2023/03/30 [07:03]

이번 회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8주요 인간론(人間論)’ 무아론의 문제점과 불교의 우주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아론의 문제점

 

불설(佛說)에서 아()는 지, , , (地水火風)의 물질적 요소인 색()과 정신적 요소인 수상행식(受想行識)의 명()이 합해진 명색(名色)(1) 즉 오온(五蘊)이 임시로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 육체의 죽음과 함께 명()은 흩어져 버리니 이에 기초한 는 당연히 무아(無我).

 

이러한 불설의 무아론이 가진 문제점은 여러 이유로 이미 언급하였지만 여기에서 다시 종합해보자.

 

1) 유식론(唯識論)은 불퇴전(不退轉)無我論을 추종하려다 보니 업의 장식(藏識)으로서 8만이 윤회한다고 할 수밖에 없어 이드(6)와 에고(7) 없는 윤회가 되고 말았다. 윤회가 아니라 업륜(業輪)이나 업회(業迴)가 된 꼴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이 입던 옷을 장사지내는 모양이다.

2) 윤회전생하며 해업(解業)한다면 해업의 주체는 누구인가. 또 업덩어리인 장식(藏識)이 해업되면 흩어져 소멸되어야 마땅하지 주체도 없는 것이 보살이 된다는 하니 이는 허깨비가 부처 된다는 말이 아닌가.

3) 무아윤회는 제자들이 결집(結集)하면서 부처님이 설하신 무아(無我)無字에 매달려 그 본뜻을 잘못 전한 것일 수 있다. 부처님의 무아는 恒常하지 않는 로서 無我無常我인 것을 문자에 집착하다 보니 없을 없을 로 전한 것이다. 그 결과 아는 없어지고 없는 아의 윤회만 남았다. 실시간 기록이 없던 시대에 생성된 종교에서 흔히 있는 일이니 불교만의 흠결은 아니겠으나 그 흠결의 폐해는 유난하였다. 無字를 구태여 전하려면 업은 眞如에 묻은 때로서 쉽게 닦아 낼 수 없는 악습이자 성격이니 세세로 윤회까지 해 가면서 가 될 만큼 닦아내야 한다라고 전했어야 마땅하다.

4) 6식과 7식은 보존성이 없으니 변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그 존재가 이어져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수많은 환생사례는 개인의 욕망과 성격, 그리고 재능, 나아가 인격과 깨달음의 수준까지 보존됨을 증명하고 있다.(2) 한 윤회체가 6, 7, 8식 이 세 가지 식을 모두 가지고 轉生한다는 의미다. 불교 또한 한편으로 말하길 열반에 이르면 삼명(三明)과 육신통(六神通)(3)이 드러나 누진(漏盡)의 지혜를 누리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또한 불교는 아뢰야식에 업()뿐 아니라 기억(記憶)도 저장된다고 하는데 이는 아인 자의식이 무아의 벽을 넘지 못하니 스스로 불안하여 기억만이라도 8식에 남긴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기억은 의식이 아니기 때문에(4) 기억을 장한다고 하여 자의식의 편린이 아뢰야식에 남는 것이 아니다. 명종 후 좋은 천()에 가서 전생기억이 재생되거나 천안통으로 전생을 알아낸다고 하여 가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 기억이 의식인 것도 아니지만 의식(6)이 자의식(7)인 것도 아니며 나아가 자의식이 아닌 것도 아니다. 자의식은 2단계 자아의 수준일 뿐이다. 자의식의 자아는 윤회를 통해 초자아로 참자아로 진화한다.

5) 불설은 부처님의 장작불의 비유(5)에서 윤회론(輪廻論)을 열기론(熱氣論)으로 전락시켰다. , , , 식에 연()6식과 7식은 육체인 장작이 타면서 생겨나는 불과 같은 것으로 장작이 다 타면 불은 사그라지는 것처럼 따라서 없어지는데 다만 불이 타면서 발생된 열기(熱氣)인 업력은 없어지지 않고 8식을 형성하여 이것이 내생을 불러일으켜 윤회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변은 연료에 따라 불도 달라지듯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발생하는 연기(緣起)의 법 아래에 있다는 부처님의 참뜻을 몰각(沒覺)한 주장이다.(6)

6)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에 기대어 식()이 발생하였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가 어찌하여 감각기관이며 나아가 감각은 왜 의식하는 기능을 당연히 수반한다는 말인가?

7) 유식학에서는 제8식을 발견(發見)하였다고 하는데 아뢰야식이 무슨 수학공식이나 물질원소인가? 그리고 발견하였다 하더라도 6식과 7식에서 발생한 업을 장한 8식이 생유와 결합하면서는 어떻게 거꾸로 자의식인 7식의 원인이 되는가?(7) 그런 무리한 논리보다 차라리 현대 신경의학처럼 자의식을 두뇌의 전기작용으로 설명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8) 식이 먼저 있어 육근이 만들어졌다거나 아가 먼저 있어 색을 인식하기 위하여 명을 만든 것은 아닌가?(8) 또는 정신인 육식과 신체장기인 육근이(또는 명과 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화하면서 지금처럼 복잡한 생물체가 발생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표준이론처럼 6, 7, 8식을 모두 품은 아뢰야식은 계속 진화할 것이고 진화의 끝은 부처님이라고 면도날처럼 단순명쾌하게 설명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9)

 

불교의 우주론(10)

 

불교에서 한 부처님의 교화세계인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1) 풍륜, 수륜, 금륜이 공중에 떠 있고, 금륜 표면에 높이 8만 유순(64만 킬로미터)(11)의 수미산(須彌山)이 있는데 그 바깥에 네 개의 대륙이 있고 그중 남쪽의 섬부주에 인간이 살고 있으며 대륙 외곽 대철위산 뒤쪽에 흑암지옥이 있다.

2) 수미산의 중턱에는 욕계 6천 중 첫 번째 천인 사천왕천이 있고,

3) 정상에는 제석천을 비롯한 33의 천신이 사는 도리천이 있고

4) 수미산 상공에는 욕계6천 중 나머지 4천이 있으며

5) 그 위에 초선·이선·삼선·사선의 색계 이 있는데, 그 초선에 대범천(大梵天)이 살고 있다.

6) 삼계육도의 마지막에는 무색계가 있다. 여기까지가 1세계(世界).

7) 1세계가 1,000개 모인 것이 소천세계(小千世界)이고

8) 소천세계가 1,000개 모인 것이 중천세계

9) 중천세계가 다시 1,000개 모인 것이 대천세계(大千世界).

 

이러한 진술에 의하면 대천세계는 총 10003, 1,000,000,000(십억 개)의 삼계육도(수미세계, 일세계)로 구성된다.(12) 그런데 은하계를 수미세계로 본다면(13) 우주에는 은하계가 2,000억 개(14)가 있다 하니 이를 대천세계의 수미세계 수인 10억 개로 나누면 부처님의 수는 200명이 된다.(15) 그리고 이 3천대천세계가 한 명의 부처, 우리세계의 경우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교화(敎化) 영역으로 1불찰(불국토, 경토, 사바세계)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유정이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때 그 지혜는 우주의 전 영역을 포괄한다. 화엄의 세계다.

 

10억 수미세계로 구성된 사바세계(불국토)에 대한 이러한 서술들은 우주가 그만큼 크고 부처님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주장으로 이는 겁()이나 유순(由旬)의 설명에서와 같은 표현상의 과장과는 다르다. 자연과학의 발전으로 실제 우주의 크기가 우리 인간들이 생각해 왔던 것과는 달리 어마무시하게 크다는 것이 밝혀진 오늘날 새삼스럽게 불교의 우주관이 조명되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 우연만은 아닌 것이다. 

 

 

<註釋>

1) 불교에서 명()은 이름만 있고 형상이 없는 마음’, ()은 형상이 있는 물질로서 육신을 뜻한다. 사전적으로 名色실속 없이 그럴듯하게 불리는 허울만 좋은 이름이란 뜻인데 ()’은 형체는 없고 이름만 있는 것이고, ‘()’은 형체는 있으나 아직 육근(六根)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단지 몸만 있는 것을 말하므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뜻하여 실제와 이름의 내용이 합치하지 않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최기호 교수와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 문화여행참조).

 

2) 佛說은 윤회의 사례에서 성격과 재능 그리고 인격이 보존되는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無記하거나 무아윤회에 대한 나가세나의 등잔불四有論을 섞어서 논변할 것이다. ‘8식이 윤회하여 새로운 육체에 들면 그 몸의 18계를 활용하여 1식부터 7식을 정비하는데 이때 7식은 8식에 근거하므로 7식의 성격과 재능 그리고 인격과 그 수준까지 전생의 그것으로 고스란히 재생한다라는 신지학적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4유론은 오온의 무아론과 모순되어 무아론을 부정하는 이론이고 신지학의 인간모나드 영혼론은 무아와 거리가 멀다. 또 등잔불(11.3.1.2. ‘윤회의 주체참조)은 고장 난 전구를 바꿔 끼우고 다시 전기를 넣으면 환한 불이 다시 켜진다는 唯物의식의 전기작용론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이 부분의 불설은 앞뒤가 안 맞는 여러 불설의 충돌현장을 보여줄 뿐이다.

 

3) 삼명과 육신통 그리고 저승에서의 혼과 영의 능력

 

1. 삼명(三明)이란 붓다나 아라한이 열반하여 깨우침을 얻게 되면 얻을 수 있는 3가지 지혜를 가리키는 불교용어로 숙명지명(宿命智明천안지명(天眼智明누진지명(漏盡智明)을 말한다. 숙명통(宿命通천안통(天眼通누진통(漏盡通)의 삼통(三通)이라고도 하며 이 중 숙명통은 자기나 다른 사람의 지난 생의 일생이 어떠한 것인가를 모두 다 아는 지혜로 부처는 이를 성도일(成道日)의 초야(初夜)에 이루었다. 천안통은 자기나 다른 사람의 미래에 대한 일을 분명하게 아는 지혜이고 누진통은 아라한이 번뇌와 생사의 속박을 벗고 열반의 이치를 증득하는 지혜이다. 삼명에 다시 신족통(神足通천이통(天耳通타심통(他心通) 3가지 신통을 더하여 육신통(六神通)이라고 한다.

 

2. 삼명이나 육신통은 모두 최고급혼과 영의 능력 그리고 준영계의 상위층(불교의 무색계)과 영계에 대한 진술들이다. 살아서 자아가 극히 수승하게 되면 영과 혼은 몸과 생기체의 구속이나 몸뇌와 혼뇌 간의 질서를 넘어서게 된다. 이때 영과 혼이 보이는 능력이 이러한 신통이다. 다만 전하는 이야기에는 불교답게 과장과 신화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3. 또 명종하였다고 모든 영이 동일한 수준의 삼명을 얻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천안통은 예언이 아닌 예측능력으로 그마저도 일부 고급영의 능력이니 혼은 물론 영에게 모두 부여되는 능력은 아니다. 또한 열반의 이치를 중득하는 정도의 누진통은 이미 열반한 영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으나 하느님의 攝理를 중득하는 경지에 이르러서는 영마다 큰 수준의 차이를 보인다.

 

4. 표준이론에서는 혼의 지식이나 지혜의 수준이 몸에 속박되어 있었던 이승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다만 되살아난 전생의 기억과 선명하고 생생한 인식(각성) 때문에 정신적으로 그 활동이 이승보다 훨씬 활발할 것이고, 보다 정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환경 때문에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구애가 크게 줄어들 것임은 분명하다. 영의 경우 이미 열반에 든 존재이고 몸이 물질이 아닌 사념체이며 사는 세상도 물질세계가 아니니 더욱 이승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겠으나 천안통을 가졌다거나 우주의 섭리를 꿰뚫는다든가 하는 능력의 기대는 감히 할 수 없다.

 

5. 천계에 다녀온 것으로 알려진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1서에서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3:9~12)라고 하여 삼명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가 추가로 언급한 내용이 있었다면 이런 것일 것이다. “다만 살아서 아이였을 때와 어른이 되어서가 그렇듯 그때에도 온전함에는 또 차이가 있습니다.”

 

6, 육신통에 포함되는 神足通, 天耳通, 他心通은 영과 혼의 능력이라기보다 時空의 차원이 다른 심령계 이상 저승의 물리적 환경 차원의 현상이다.

 

7. 혼 또한 명종 후 전생의 기억을 회복하는 외에 저승의 환경에서 기인하는 神足通, 天耳通, 他心通을 얻게 된다. 그러나 역시 혼마다 그 차이는 매우 매우 크다.

 

8. 그러나 살아서 열반에 든다고 하여도 불설에서처럼 삼명을 얻는 것은 불가하고 다만 전술한 바와 같이 혼이 혼뇌의 기억을 현재화 하거나 또는 생기체를 통하지 않고 몸을 직접 제어함으로써 생기는 능력을 초상(超常)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9.5.3. ‘변성의식 상태와 영혼육참조).

 

4) 유식(唯識)이 극에 달하면 자의식이 기억으로 유물화(唯物化) 되는 것은 지금이나 예나 같다(12.7. ‘의식과 기억참조).

 

5) 11.3.1.2. ‘윤회의 주체참조

 

6) 아가 없다고 하면서 윤회를 설명하려니 윤회의 주체가 없어서 6식의 소이(所以)7식인 자의식을 상정하고 다시 그 소이로 8식인 아뢰야식을 상정하여 그 8식이 업을 장()하여 윤회한다고 한다. 그러니 윤회의 주체는 실체가 아니고, 업력(業力)이라는 힘()에 불과하다. 이는 물질 없이 중력만 있다거나 등잔기름 없이 불만 타오른다는 말이 아닌가?

 

7) 오온의 무아론은 6식은 아래로부터 발생한다. 그러나 4유론과 윤회론에 이르러서는 위 8식으로부터 근원한 것으로 바뀐다(5.5.6. ‘이슬람교의 저승중 주석 참조).

 

8) 1. 이는 불교형성 초기에 불교와 육사외도의 하나인 마하비라의 자이나교 간의 영혼에 관한 논쟁에서 이미 자이나교가 불교를 공박한 논리로 사용되었다. “5온 중의 수((()이란 영혼이 지닌 기능적 특징일 따름이다. ··식 등은 영혼이 각각 외계의 상황 내지 변수와 작용하여 파생되는 결과일 뿐 요소적 구성물이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불교에서 5온 중의 하나로서 수··식을 꼽고 있는 것은 실재 내지 존재의 본질과 그 기능을 혼동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 또한 존재 현상을 요약하는 특성을 표현하는 것일 뿐, 그 자체가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적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다.” (김미숙, ‘영혼에 관한 불교와 자이나교의 논쟁중에서)

2. 불교와 기원을 같이하는 인도 상키아 학파의 창조론을 보면 총 25가지의 우주전개 원리들을 설명하면서 우주적 지성인 붓디(Buddhi)가 출현하여, 여기서 라는 자의식, 즉 아함카라(Ahamkara)가 생기고 여기에서 다시 안(), (), (), (), ()의 다섯 감각기관이 발생한다.”고 하여 자이나교와 같은 맥락의 사상을 전개한다(8.6.3. ‘힌두철학 삼키아학파의 인간론참조). 이를 보면 아트만()과 아함카라()를 부인하다 보니 역순의 창조를 억지로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부처님과 유식학의 곤란한 처지가 엿보인다.

 

9) 오온과 무아

 

공과 무아의 윤회

 

은 만물이 함이 아니라

前五識은 여실하되 그 열매인 第六識함이니

하물며 자의식인 七識八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리되면 윤회의 주인공이 空我無我라는 것인데

그럴 리가 없는 것이

 

참나가 五根을 입어 에 접하면 진리를 벗어나 無明케 되어

受想行識을 일으켜 緣起에 들게 되고

이윽고 참나에 업의 때가 묻어 六道를 벗어나지 못하고 윤회케 되나니

八識은 참나를 윤회케 한 그 업의 때를 이르는 말이고

諸法無我 또한 연기에 걸려들어 미혹된 참나가

그 업때를 탓하여 스스로를 가르치는 말일 뿐

그 본색인 참나는 항상 여여한 이니 이는

부처가 法身과 일체되어 眞法할 때

拈花示衆하여 알려 준 이 그 아니겠는가

 

10) 불교리의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 불교의 우주론도 베다(vedas)에 기원한다. 힌두교와 자이나교 또한 베다의 트레일로키아(三界, Trailokya)를 우주론의 기반으로 한다.

 

11) 유순은 고대 인도에서 거리를 재는 단위인데 대유순(8032km), 중유순(60), 소유순(40) 등이 있다고 하고 혹은 소달구지로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인 11~15km1유순이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다른 데를 보면 1유순이 8km 또는 일백 리(40km)라고도 한다. 천차만별이다. 어찌 됐든 지구의 인력범위가 10,000km이고 달까지의 거리가 383,000km이며 태양까지는 15천만km이니 8만 유순이 640,000km(1유순은 8km)라면 달까지 거리를 훨씬 넘는다. 유순의 길이가 다양하니 수미산은 그냥 달까지의 솟아있다고 보자. 그렇다면 옛날에는 수미산을 너무 높게 친 것 같으니 이를 대폭 깎거나 사천왕이 사는 수미산의 중턱부터를 하늘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태양까지 거리를 감안하면 8만 유순 위 어마어마하게 높은 곳에 천상도(육욕천)와 색천 무색천이 끝없이 펼쳐 있는 것이다.

 

12)

1. 이것은 단지 불토가 그만큼 크고 넓다는 표현상의 기교만은 아니다. 다른 경()에서는 대천세계가 1세계(수미세계)가 천백억(千百億=1000×100) 개 즉 10조 개 모인 것이라는 말도 하는데 이는 기왕의 설이 직관의 혜안에서 구축된 것임을 모르는 허풍에서 나온 소치라고 본다.

2. 불토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고대 인도인들은 어떻게 알아냈을까? 천년 후 서양의 영지주의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기껏 신(Monad)의 빛의 세계인 플레로마로부터의 빛이 새어 들어오는 바늘구멍 정도로 알았는데 그들은 같은 것을 보고 광대한 브라만의 우주와 무수한 유정들이 사는 곳을 생각하였으니 그 직관의 대단함은 정말 특별하였다.

 

13)

1. 5.6.3. ‘이승은 지구만인가?’ 참조

2. 은하계를 1수미세계로 볼 것인가 아니면 소천세계로 볼 것인가 또는 1불국토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여기서는 유란시아서 등 여러 사상과 표준이론적 고려에 의하여 은하계를 1수미세계로 본다.

 

14) 오늘날 천문학에서 말하는 실재의 우주는 얼마나 클까. 여러 주장이 있고 그 어느 주장도 실제와 같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사 소속 과학자 루이스 햄린은 우주에는 은하가 2천억 개 있고, 각각의 은하마다 2천억 개의 항성이 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우주의 크기를 계산해 보면 우주에는 2천억×2천억=200,000,000,000×200,000,000,000=40,000,000,000,000,000,000,000=400() 개의 항성이 있다.

 

15) 불국토와 은하계 그리고 부처님의 수

 

1. 불교의 삼천대천세계(불국토, 사바세계)1수미세계가 은하계에 해당된다면(5.6.3. ‘이승은 지구만인가?’ 참조) 불국토의 수는 은하계의 수(2,000억 개)10억 개(1부처님이 교화하시는 1불국토의 수미세계 수)로 나눈 200개가 되니 부처님 수도 200분이 된다.

 

2. 한편 이 우주에 지적생물체가 사는 행성의 숫자를 예측한 페르미와 드레이크는 수미세계가 각각 100만 개와 5천만 개라고 계산하였다(5.6.3. ‘이승은 지구만인가?’ 참조). 한 불국토의 크기가 10억 수미세계임을 고려하면 불국토 하나도 안 되는 숫자를 부른 그들은 배짱을 좀 더 키워야 했다. 그래도 우선 페르미 말이 맞는다면 4(400/100) 개의 항성중 수미세계가 하나씩 있어야 하고 드레이크 말이 맞는다면 항성 800(400/5천만) 개 중 하나의 수미세계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2,000억 개의 항성(은하계)마다 1수미세계가 있는 불교보다 지적생물체가 사는 항성 수가 훨씬 적다. 페르미가 불교를 공부하였어야 했는가 아니면 불교의 과학성이 떨어지는가?

 

3. 은하계는 엷은 볼록렌즈 같은 형태로 그 크기는 원반부의 유효 지름이 약 100,000광년, 중심핵부의 두께는 15,000광년, 그 밖의 부분의 두께는 수천 광년이라고 한다. 이 안에 2,000억 개의 항성이 있다. 불설을 표준이론으로 해석하여 은하계를 1 수미세계로 본다면 이곳에 33개의 이승이 있어야 하니 항성 60억 개마다 이승 하나다. 그렇다면 이승간의 평균거리는 얼마나 될까? 어려운 계산이지만 무지하게 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지구와 가장 가까운 항성인 켄타우루스자리 알파C 별 프록시마는 지구로부터 4.24광년 거리다. 이런 것이 60억 개 모여야 다른 이승을 만날 수 있다면 최소 수천 광년을 가야 지적생물체가 사는 이승을 만난다. 그러니 물질세계의 통신수단인 전파를 사용하여 외계의 지적생물체와 교신을 시도하는 SETI(외계 지적생명체 탐사계획)의 허망함을 알 수 있다(미주 140 ‘드레이크 방정식(Drake equation)’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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