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陽心이 ‘마음주인’ 돼야 풀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5/20 [06:22]
‘종교없이 종교적으로 살기’ 이승주의 진성회복연구②

陽心이 ‘마음주인’ 돼야 풀려

‘종교없이 종교적으로 살기’ 이승주의 진성회복연구②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5/20 [06:22]
▲ 존 윌리엄스 워터하우스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1891년     ©


사람에게는 무서운 적이 있다. 밖의 적이 아니라, 안의 적이다. 철학자 왕양명은 “산 속의 적을 물리치기는 쉽지만, 내 마음속의 적은 물리치기 어렵다(破山中賊易 破心中賊難).”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은 자기 마음속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도 있지만, 이 적은 우리가 대적할 상대가 아니다. 형체가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이다. 이 존재는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부리려고 한다.     

‘형체 없는 敵’     

사람은 실수(?)를 저질러 놓고는 고통을 당하며 후회와 뼈아픈 반성을 한다. 그러나 그 때 뿐이다.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다. 시간이 흐르면 골수에 새겼던 반성마저 헌신짝처럼 버리고 또다시 그 실수를 반복한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것이 우리네 사람이다.

왜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일까. 사람의 넋을 빼앗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전설 속 ‘세이렌’의 노래 소리보다 더 감미로운 마음속 적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매번 속고 후회하지만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다. 마약중독자가 다시 마약을 찾는 것처럼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자꾸 끌려간다. 그리고는 불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이성을 잃고 행동한다.

마음속 적의 유혹에 마음이 동하면 정신이 흐려지면서 마음이 약해지게 되고, 그러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힘이 들어와 ‘부정적인 행동’을 하게 압박한다. 우리를 파멸로 이끌어가려는 마음속의 적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의 심리를 꿰뚫고 있으며, 통제하는 기술이 탁월하다. 사람의 정신은 두뇌에 있어야 하고, 마음은 가슴의 심장 안에 있어야 정상인데, 이 적이 침입하면 정신이 두뇌에 있지 않으니,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언어와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게 된다. 제정신이 나가고 다른 정신이 들어온다. 제정신이 아니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망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 적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자아 주관력이 약해서라기보다는 마음 안에 뭔가 거역할 수 없는 제3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종교에서는 그 힘을 마귀, 사탄, 악마라고 부른다. 그 힘의 주인공이 제3의 세력이든, 자기감정의 발로이든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에게 악영향을 주는 세력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마음속에서 은밀하고 달콤하게 우리를 유혹하는 이 적은 우리의 수호천사도 아니요, 후원자도 아니다. 우리를 함정에 빠뜨려 고통당하는 꼴을 보고 즐기려는 악당임에 틀림없다. 그의 올가미에 걸리면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기생물(寄生物)에게 영양을 공급하면 자연히 숙주(宿主)가 된다. 기생물은 어떻게든 숙주에 들러붙으려고 한다. 기생물은 멀쩡한 숙주에 달라붙어서 숙주의 의지를 빼앗고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면서 숙주의 양분을 빼앗아 생존하고 성장한다. 반면 숙주는 날로 쇠약해져가고 심한 경우 죽기도 한다. 넝쿨이 나무를 뒤덮어 고사시키는 것이 그 한 예다. 마귀와 사람은 기생물과 숙주 관계이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우리 마음속의 적 마귀는 우리의 육욕에 깊이 뿌리를 박고 생명력을 공급받고 있으므로 이를 깨닫고 스스로 기생관계(寄生關係)를 끊어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하여 마귀의 숙주가 되는 것일까. 양심을 버릴 정도의 강한 자극으로 유혹하기 때문이다. 바로 ‘욕심’이다. 권력욕과 물욕, 쾌락과 안락함 등이 미끼다. ‘욕심이 깊은 사람은 그 깊이에 반비례해서 양심이 얕다(耆欲深者 其天機淺).’고 한다. 욕심 속에 마귀가 들어있다. 마귀가 곧 욕심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양심을 받아먹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마귀가 주는 욕심을 받아먹으면 마귀의 숙주가 된다. 욕심은 사람의 생명을 갉아먹는 악의 요소다.    

‘마귀 宿主’      

성경은 ‘마귀가 사람을 욕심으로 유혹하여 종으로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경의 핵심사건, 태초사람의 타락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의 마음속에서 재현되고 있다. 하나님이 태초사람에게 ‘선악과(마귀)를 따먹지 말라(말 듣지 말라) 따먹으면(말 들으면) 죽는다’는 계명을 주셨다. 그러나 마귀는 ‘선악과(마귀)를 따먹으면(말 들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욕심으로 유혹하여 타락시켰다. 마귀는 이 방법을 오늘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써먹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서 욕심으로 유혹하고 압박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자고 하는 양심의 소리를 묵살하고 욕심대로 끌고 가는 것이다.

사람은 마귀로 인해 ‘욕심병’에 걸려 있다. 때문에 구원과 해탈이 필요한 존재이다. 욕심 때문에 마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정적인 행동을 하며 고통 받고 산다. 욕심이 대대손손 유전된다. 마귀의 유혹에 끄달리는 욕심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욕심’은 마귀의 마음이다. 자기만 많이 가지려 하고, 자기만 좋으려 하며, 자기만 높아지려는 사악한 기운이다. 순간적인 쾌락과 이익만을 추구한다. 사람이 욕심을 쓰면 하나님이 떠나가신다. 사람도 피해 외톨이가 된다. 결국 자신을 망하게 한다. 악의 시초요, 불행의 시작이다. 사람의 길에서 벗어난다. 욕심은 사람의 영(靈)을 흑색으로 만들어 쭉정이가 되게 한다.

‘비워야 충만해진다’는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은 ‘욕심을 버리면 양심이 충만해진다’는 말과 맞닿아 있다. 욕심을 버리는 것은 곧 악과 죄를 버리는 것으로 양심이 살아나고, 사랑과 선과 진리가 살아나 참된 사람이 된다.

기생물은 조건이 맞아야 기생한다. 마귀의 기생조건은 욕심이다. 사람이 욕심을 버리면 마귀는 고립되고 자멸한다.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남을 이겨야겠다, 남보다 편안하게 살겠다는 망상을 버리고 자연처럼 사는 것이다. 남을 내 몸처럼, 만물을 내 몸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악의 근원은 욕심이다. 욕심이 강해지면 악이 생기고, 죄를 짓게 된다. 욕심은 악의 바이러스다. 악이 먼저가 아니라 욕심이 먼저다. 욕심은 스스로 버리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고 자꾸 커진다. 질병보다 끈질기다. 욕심만 없으면 본래의 깨끗한 마음(선)이다. 세상이 평화와 행복의 세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양심은 버리고 욕심만 써먹고 살기 때문이다. 욕심으로는 세상에 평화와 행복이 올 수 없다. 서로 자기만 좋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평화와 행복이 정착되겠는가.

양심은 사람의 진성이다. 상대를 위해 준다. 사람의 영(靈)을 빛나게 하고, 성령(聖靈)으로 여물게 한다. 양심으로 살면 모두 잘 살 수 있다. 사람과 세상의 문제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있다. 욕심과 반대로 살면 그 해결이 가능하다. 양심은 욕심을 죽이는 빛의 기운이다. 양심대로 살아서 양심이 마음의 주인이 되면 욕심이 약화되고, 녹아 없어지고, 마귀도 없어진다. 삶을 욕심에서 양심으로 방향 전환해야 한다. 즉, 역리를 버리고 순리를 취하는 것이다.

  
진성회복의 행동법칙

1. 3욕(먹고, 자고, 즐기고)을 절제한다(욕심은 3욕대로 살라고 한다).
2. 실력대로,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산다(욕심은 노력하지 말고 편히 살라고 한다).
3. 작은 것도 귀히 여긴다(욕심은 큰 것만 바란다).
4. 남을 먼저 생각한다(욕심은 너만 생각하라고 한다).
5.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다(욕심은 나타내라고 한다).
6. 낮아지고 겸손 한다(욕심은 높이라고 한다).
7. 나눠먹고 산다(욕심은 너만 잘 먹고 잘 살라고 한다).

하나님과 마귀, 양심과 욕심의 상대는 사람이다. 선택은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사람은 자유다. 마음을 양심으로 사수(死守)해야 한다. 마음이 마귀의 수중에 들어가면 마음이 지옥 되고, 세상이 지옥 된다. 마음속의 욕심을 없애야 마귀의 숙주가 되지 않는다. 마음이 욕심에서 양심으로 바꿔지지 않는 한 그 어떠한 신앙생활도, 수도생활도 무용지물이다.

양심을 써먹으면 골(骨) 속에서 졸아있던 양심이 마음자리로 돌아와 중심을 잡게 되고, 그러면 제정신이 돌아온다. 마음의 눈이 떠진다. 육욕에 의한 지난 삶이 추악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나의 고통처럼 느껴진다. 무엇이든 주고 싶어진다.

양심이 살면 사람이 된다. 양심으로 마음을 바로세우면 평화와 행복이 찾아온다. 각자 자기 마음 먼저 구원해야 한다. 자기만 책임지면 세상은 자연히 평화와 행복의 세상이 된다. 자기 마음 안의 양심이 자기를 구원한다.

<tip>
1. ‘하나님 아버지’를 독송한다(진성회복연구① 참조).

<이승주 진성회복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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