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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는 욕심많은 인간 앞세워 하나님 섭리 방해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6/07 [09:03]
“섭리는 인간의 용어가 아니다”

마귀는 욕심많은 인간 앞세워 하나님 섭리 방해

“섭리는 인간의 용어가 아니다”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6/07 [09:03]

현대를 무개념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슬픈 일이다. 민중을 이끄는 참다운 가치를 발견하기 어렵고, 거대 종교인 기독교마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과연 세속화된 기독교윤리를 회복하여 시대를 이끌고, 지친 우리 영혼에 감동을 주는 구원의 메시지가 나올는지.     

이 와중에 새 시대의 주역이라고 목청을 돋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성경해석을 다르게 하며, 사람의 행위임에도 버젓이 ‘섭리적 의미’를 부여한다. 기독교인은 물론, 여느 종교인들조차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린다느니, 지상에 천국을 건설한다느니, 자신이 메시아라느니 사람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낸다. 어찌 보면 과대망상자 같고, 정신이상자 같기도 하다. 이들은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부르짖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기성 교단에 식상한 사람들에게는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의 독단적인 성경해석은 차치하고 ‘섭리’란 말이 귀에 거슬린다. 이 말은 인간이 사용하는 용어가 아닌 것이다. 섭리란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의지’를 말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한다. 아브라함에게 그것은 자기 목숨을 끊는 것보다도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전에도 하나님의 분부를 거역한 일이 있어 더 이상 거역할 수 없었다. 드디어 아브라함이 칼을 빼들어 이삭을 내리치려는 순간,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외친 뒤 준비해 둔 양으로 번제를 드리게 한다. 여기서 ‘ 여호와-이레(Jehovah-Jireh)’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이 준비한다’는 뜻으로 곧, ‘섭리’를 의미한다. 섭리란,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뜻이다. 
    

‘섭리’는 하나님의 고유영역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잘 나타나 있다. 천지만물과 사람의 창조, 타락으로 인한 구원 등이 모두 섭리에 해당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때론 자신의 행위를 후회해 우리를 당혹케 한다. 하나님은 인간 지으심을 후회했고,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했다. 또 이스라엘에게 가혹한 심판을 내린 것에 대해서도 한탄했다(렘 42:10).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창 18:14)의 이미지가 흐려지는 대목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절대적이다. 이는 믿었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을 의미한다. 자식의 빗나감을 안타까워하는 부모의 심정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목적을 세우면 끝까지 달성하는 분이다(사 46:11). 따라서 하나님에게 연장은 있으나 실패란 없다. 하나님은 계획한 대로의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 구원이라는 새로운 섭리를 모색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섭리에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한 선지자들에게 직접 지시(창 17:1, 26:24, 출 3:4)하거나, 힘을 주었으며(삿 14:19, 15:14, 삼상 10:6), 사자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삿 2:1, 13:16, 마 2:13), 역사했다(사 37:36). 또한 천사를 통해 말씀하고(눅 1:26), 사사와 함께 하였다(삿 2:16). 사무엘을 중심한 섭리에서 그 예를 살펴보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다. 하나님은 그것은 선한 것이 아니었으나 허락하였으며, 합당한 인물까지 준비해 놓았다. 하나님은 전날 사무엘에게 사울이 올 것을 미리 알려 주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게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비뽑기로 사울을 왕으로 뽑았다(왕상 9:1~21). 하나님은 섭리의 주재자이고 사람은 메신저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의도대로만 진행된다.     

하나님은 당신이 세운 메신저들에게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게 하였다. 모세에게 신발을 벗게 하였고, 노아에게는 의인 칭호를 부여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다. 예수는 이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여러 이적기사를 행했으며, 자신을 하나님 위치에 올려놓는 말을 많이 했다. 예수는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고,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어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느냐’(요 14:9)고 질책하기도 했다. ‘너희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는 말(마 26:61)도 했다. 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니다. 예수 자신이 독단적으로 섭리를 이끌고 있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종교지도자들 섭리 운운은 ‘죄악’ 
    

하나님은 예수를 탄생시키기 위해 마리아를 택했고,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케 했다. 하나님은 이어 예수를 독생자라고 증거하고 보호하였으며 마귀에게 시험 받게 했다. 그런데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나님이 예수에게 바란 게 무엇이었을까. 성경은 예수의 사명을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사람’(마 1:21)으로 적시하고 있다. 그것은 곧 ‘마귀를 처단하는 일’(요일 3:8)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는 마귀 처단에 전심전력하기 보다는 왕국 건설에 힘을 소비했다. 작가나 연출가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외골수 연기자를 연상케 한다.     

마귀는 간교한 존재다. 사람을 위하는 척 속이고(고후 2:11), 가장하며(고후 11:14), 사람의 마음속을 들락날락 한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 생각을 넣은 것도, 원죄 없는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킨 것도, 성령으로 탄생한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것도 마귀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섭리를 알려주고, 대신 맡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귀는 세상의 신, 세상의 임금이 되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 주요 방법이 욕심 많은 인간들을 내세워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하는 것이다(슥 3:1, 계 13:6). 마귀는 거짓 선지자를 내세워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수법을 즐겨 쓴다. 세상에는 진짜가 있으면 꼭 가짜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 그래서 속는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구세주나 선지자라고 칭하는 소위 ‘짝퉁 예수’들의 마지막을 보면 된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꼭 고집을 부려서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리를 만들지 말라고 했는데, 이들은 꼭 무리를 만들어 자기를 드높이려 한다. 종교나 유사단체가 만들어지면 힘이 생기고, 힘에서 욕심이 생기므로 처음과 나중이 다르게 된다. 사람들은 속아 넘어간 뒤에야 가짜임을 알게 된다. 가짜의 원조는 마귀다. 아담과 하와를 속인 것도 마귀다. 마귀의 강렬한 유혹은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이며,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사탕발림이다.     

하나님은 계시록에 마귀의 사주를 받은 자들에 대해 명시하였다. 이들은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고 했고,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다고 했다. 하나님과 선한 사람은 조용하다. 마귀의 권세를 받고 안하무인이 된 이들에게 경배하거나 우상으로 떠받들어서는 안 된다(계 13:1~5). 그들에게 경배하고 따르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계 14:9~10).     

▲ 니콜라 푸생 작 ‘솔로몬의 재판’     © 매일종교신문

성경의 예언처럼 ‘짝퉁 예수’는 천하의 왕이 되려고 안달한다.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섭리를 하면서 따르는 자들에게 끝없는 희생을 요구하고, 끝내는 제물로 삼는다. 이들의 섭리는 ‘화려한 수사(修辭)요, 과언(過言)’일 뿐이다. 이들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다. 어디 자기가 한 말을 이루고 간 자가 있던가. 
    

예수는 마귀 처단에 주력했어야… 
    

하나님은 자기를 주장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는 불경죄로 엄하게 다스린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그대로 예언한데 반해, 하나냐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다른 예언을 했다. 하나님은 하나냐에게 “너를 보내지도 않았는데 너는 이 백성에게 거짓말을 해 믿게 하였다.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겠다”고 꾸짖었다. 그는 두 달 후 죽고 만다(렘 28:1~17). 예레미야 말마따나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들은 그 예언이 응한 후에야 그가 참으로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임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각자가 선하게 살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이 메신저로 쓰는 사람은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선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는 법이 필요 없고, 조직이 필요 없으며, 권력이 필요 없다. 하나님은 당신을 닮은 사람들이 되게 하여 선한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지, 단순히 하나님을 믿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선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였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만이 안다(마 24:36).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선이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요, 곧 마귀를 돕는 자다. 자기 욕심을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둘러대면 사람은 속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속지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을 좋아하지 제사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그를 버릴 수밖에 없다(삼상 1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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