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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실 때 행복해진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6/30 [11:06]
진성회복연구3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실 때 행복해진다

진성회복연구3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6/30 [11:06]
▲ 결사적으로 회귀하는 연어.     © 매일종교신문

성현들은 우리들에게 사람으로서 살아야 할 올바른 길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마음 밭을 가꾸라’, ‘자신을 이기라’, ‘자아를 주관하라’고 권면하였다. 우리 마음속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밖으로 향한 눈을 안으로 돌려 마음속을 관찰하면 마음속에 ‘마(魔)’가 끼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마는 마음과 몸, 사람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가르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방향으로 내몰고 있다. 평화와 행복의 훼방꾼이다. 제거하지 않으면 한시도 마음이 편치 않고 늘 불안과 위기 속에 살 수밖에 없다.

선하고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이 지은 사람의 마음속에 왜 마가 끼어있는 것일까. 파고 들어가면 성경 속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연결된다. 흡사 전설 같은 이야기로 볼 수도 있으나 실상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람 마음속엔 ‘마(魔)’ 끼어있어
 

‘생명나무’는 성경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 무엇을 비유하고 상징한 것이다. 지혜를 총동원해 찾아보자. 모든 생명은 작은 것, 씨에서부터 시작된다. 씨에서 나무가 나오고, 나무에서 열매가 열린다. ‘생명나무’는 ‘생명의 나무’요, ‘생명을 나게 하는 나무’다. 곧 ‘만물의 씨’인 하나님을 비유한 것이다.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니 ‘하나님=생명나무’라는 말이 성립된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생명의 근본이다. 만물을 잉태시킨 씨, 신이다.

그러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무엇을 비유했을까. 글자 그대로 ‘처음에는 선(善)하게 도와주는 것처럼 속이고, 그 뒤에는 악(惡)으로 유도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존재(果)’다. 하나님의 대립자, ‘타락한 천사’ 곧 마귀를 비유한 것이다. 하나님이 첫 사람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한 말씀은 타락한 천사의 말을 듣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도와주는 것처럼 속이고 유혹하여 마음을 빼앗고 사람을 악으로 주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귀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비유한 까닭이다.
성경의 첫 사람은 ‘생명나무’인 하나님의 말씀은 버리고, ‘선악나무’인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마음을 빼앗기고 마귀의 주관을 받게 되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마음속에 ‘마귀’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역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이다.

동물은 생명만 있기 때문에 육체에 필요한 물질만 먹으면 산다. 생식 본능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람은 생명과 생령(生靈ㆍ하나님의 성령의 씨)으로 돼 있기 때문에 육체적 삶 외에 하나님의 생기(生氣)를 받아먹어야 산다. 그렇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마귀)가 주는 욕심을 받아먹으면 마귀를 닮아 하나님이 준 생령(生靈)은 죽고 만다. 금수와 다름없는 것이다.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되 죽은 자’다.

사람이 하나님의 생기를 받지 않고,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지 않으면, 마음에 마귀가 들어와 탐욕으로 채워진다. ‘사람이 타락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리인 마음을 마귀가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과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생겨났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인생 문제에 대한 해답은 결국 사람을 창조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찾아야 한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과 살고자 했다. 때문에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분신으로, 성전으로 지었다. 하나님은 사람과 동떨어진 세상에 사는 신으로 대접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안에서 사람과 같이 살고자 한 것이다. 자식들과 같이 살고 싶은 부모의 마음처럼 하나님은 사람의 어버이가 되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 뜻은 ‘사람과 사는 것’
 

무형의 신 하나님이 어떻게 유형의 사람과 같이 살 수 있을까. 그 답을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고 ‘하나님의 영(靈)’을 넣어 준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무형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무형으로만 이루어지면 허명무실(虛名無實)이 된다. 하지만 하나님과 같은 형상을 지닌 유형의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의 뜻이 유형사실(有形事實)이 된다.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사람을 통하여 유형의 사실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형인 하나님과 유형의 사람, 무와 유가 순환하여 천상과 지상이 일치된다. 마음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사람과 기쁘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나님의 몸 같이 쓰기 위해 사람을 자녀로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 누구에게나 갈 수 없다. 하나님은 곧 ‘빛의 마음’[陽心]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양심의 사람에게만 간다. 하나님은 ‘양심(陽心)이 마음의 주인’된 사람의 마음속에 살고, 마귀는 ‘욕심이 마음의 주인’이 된 사람의 마음속에서 산다. 유유상종이다. 양심은 빛의 마음이다. 그 안에는 사랑과 선, 생명, 지혜가 들어 있다. 양심이 살아 있으면 마음속에 빛이 있다. 성경에 선악과를 따먹은 첫 사람을 죽었다고 한 것은 마음에 양심의 불이 꺼졌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살기 위해 지어놓은 사람의 마음에 마귀가 들어가 살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사용하므로 사람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게 된다. 마귀는 곧 욕심이므로 하나님과 사람의 연결고리인 양심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자기 마음인 욕심으로 살라고 유혹하고 압박한다. 욕심으로 살아야 자기 종이 되기 때문에 사람을 돈과 권력과 육적쾌락의 길로 몰아댄다. 마귀가 사람을 자기 좋을 대로 사용하면 사람의 마음과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세상 역시 정상적인 세상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없게 하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성경은 타락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라 마귀가 우거하는 집이고, 이 세상의 임금은 마귀이며 사탄이라고 개탄하고 있다.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인 사람을 빼앗아 자기 종으로 부리는 것이 목적이므로 자기 성질대로 함부로 대한다.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차갑고 거칠게 한다. 신경질 나게 하며,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럽게 하여 불행을 심어준다. 또한 시기하고, 질투하여 남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좋은 것은 혼자 독차지 하고 싶은 마음을 준다. 높은 자리, 좋은 자리는 자기 것으로 만들게 하고, 자만․거만․교만심을 주며, 도둑심보를 준다. 마음에서 항상 불안과 초조, 근심, 걱정, 불평, 불만이 솟구치게 하고, 혈기를 내게 한다. 이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자꾸 나쁜 쪽으로만 쏠린다. 마귀의 주관을 받으며 사는 사람은 자아주관력이 떨어지거나 상실된다. 생각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되 행동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평화와 행복의 유일한 길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먹어야 행복한 사람이 된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나 양심으로 존재하고, 사람의 양심과 통한다. 하나님이 준 양심은 항상 선을 추구하며, 하나님에게 돌아가고자 한다. 양심은 자연과 일치한다. 무위자연의 도를 주창한 노자의 도덕경은 사람은 사람의 뿌리인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행복하게 된다고 역설한다.
“온갖 것 무성하게 뻗어가나 결국 모두 그 뿌리로 돌아가게 된다. 그 뿌리로 돌아감은 고요함을 찾음이다. 이를 일러 제 명을 찾아감이라 한다. 제 명을 찾아감이 영원한 것이다. 영원한 것을 아는 것이 밝아짐이다. 영원한 것을 알지 못하면 미망으로 재난을 당한다.”(16장)
선은 선과 통하고, 악은 악과 통한다. 선한 하나님과 악한 사람 사이에는 불행하게도 아무런 통로가 없다. 사람 스스로 가치 기준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마귀의 욕심에 의한 물질과 쾌락 위주의 삶을 버리고 양심을 푯대로 삼고 하나님을 간절히 생각해야 한다. 그 출발이 ‘하나님 아버지’를 독송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살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안에 사람이 살고, 사람의 마음 안에 하나님이 산다. 사람이 하나님을 닮게 되면 자신과 주변에 평화와 행복이 찾아온다.
사람의 마음은 그 어떤 금은보화나 육적쾌락으로도 채울 수 없다. 하나님이 마음에서 살아야 만족해진다. 하나님은 생명의 아버지로서 사람에게 생명과 사랑, 선과 지혜를 주므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지며, 행복해지고 만족해진다.
인류의 평화와 행복은 모든 인류가 선을 이룰 때 가능하다. 사람 모두가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길이 평화와 행복을 이루는 유일한 길이다.

<tip>
1. ‘하나님 아버지’를 독송한다(진성회복연구① 참조).
2. ‘진성회복의 행동법칙’을 준수하며 산다(진성회복연구②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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