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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수영의 간증

김정호 기자 녹취정리 | 기사입력 2015/01/11 [06:44]
하나님주신 목소리 하나님노래 불러야지

가수 이수영의 간증

하나님주신 목소리 하나님노래 불러야지

김정호 기자 녹취정리 | 입력 : 2015/01/11 [06:44]


하나님 손잡고 가는 것이 제 인생에 가장 큰 행복

 
어릴 적부터 가수가 꿈이었어요. 중3 때 라디오프로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주 장원을 했어요. 제가 가수의 꿈을 꾸면서 계획했던 절차 중의 첫 번째 관문이었어요. 거기서 상 받고 대학가요제 가서 그런 꿈을 꿨는데, 그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계셨던 거예요. 그때는 제가 크리스천이 아니었고, 고3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된 거거든요.
 
고3 때 공부 시작하다가 앞으로 음악 할 거니까 가스펠이라는 장르가 있다는데 그건 뭘까, 흑인음악 같은 느낌이어서. 제가 사는 곳이 분당이었는데 그 지역 청소년사역 단체에서 가스펠 콘서트한다고 해서 그것도 모르고 그냥 갔어요. 처음에는 가수들이 나오는 걸로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막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가슴은 뜨겁고 눈물은 쏟아지고…. 친구 손잡고 그냥 간 건데. 친구가 나를 전도하기 위해 애를 쓴 것도 아닌데 그냥 가서 울게 되고, 그 다음날부터 제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그리고 호기심이 끝도 없이 시작됐어요.
 
고3을 온전히 전도하는 데 다 썼어요. 처음 다락방이 생겨서 말씀을 전하는 그런 시기였는데 강력한 그 말씀이 제 성격에 딱 맞았거든요. ‘복음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이런 슬로건이었어요. 제가 좀 성격이 불같은 면이 있어서 모가 아니면 도입니다. 그 말에 너무 힘이 났어요. 고 3이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몇 달 전에 가수되기로 기획사와 계획되어 있어서 가수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 가스펠을 들어봐야지 했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 날부터 인생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가수의 꿈을 접게 되더군요.
 
‘하나님이 주신 목소리로 하나님의 노래를 불러야지 왜 세상 노래를 불러.’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기획사에 전화했어요. 저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였고, 최고의 기회였는데 ‘저, 가수 안 해요’라고 했어요. 제가 가수하겠다고 기획사 분들에게 매달려야 하는데 오히려 가수 만들어 주겠다는데 거절한 것이 됐어요. 그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외에는 내 목소리를 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신앙하는 거니까. 그래서 담담하게 거절한 거지요. 기획사에서 화를 내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수하고 싶으면 전화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가수의 꿈을 잊어버리고 그때부터 하루 종일 말씀 읽고 기도하고…. 24시간 중에 다른 친구들은 4시간 자고 20시간 공부할 때 저는 4시간 자고 20시간 전도하는 데에 시간을 다 썼어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런 믿음의 시작이었어요. 계획을 하는 거예요. 오늘은 애랑 애랑 몇 명을 찍어요. 그 애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 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나 문제 등을 사전조사하고 계속 말씀공부를 한 후에 무작정 만나서 고민을 들어주는 척하며 말씀을 전하면 그게 하나씩 하나씩 낚였어요. 저는 처음 믿음생활 시작할 때 전도가 어려운건 줄 몰랐어요. ‘하면 된다’ 라고 생각했거든요.
 
악몽 같은 장례식 두 번이나 겪어
 
고3 때 학교에 여자 반 6반이 있었어요. 제가 전도하기 좋게. 참, 하나님의 계획이 놀라운 것이, 저는 고1 때부터 유명한 학교 가수였고, 연극을 해서 아주 유명한 아이였어요. 저는 그 아이를 몰라도 그 아이는 저를 알기 때문에 너무 쉽게 찾아갈 수 있었어요. ‘야, 너 나 알지.’ 상대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성격대로 웃겨주거나 노래도 불러주고 그렇게 해서 전체에게 다 전하고, 300명 정도 전도했어요. 결신한 친구들이 거의 다였어요. 그때는 너무 신기했어요. 저희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애들도 다 전하고 열 명에 7~8명은 결신했어요.
 
저는 그때는 정말 몰랐어요. 그냥 당연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애들이 힘들어서 잘 먹혔어요. 너무 기뻤고. 원래는 그러면 안 되는데 복도에서 통성기도 하다가 선생님에게 맞기도 하고. 2~30명이 삥 둘러서서 손잡고 울면서 기도하니까, 고3 반 앞에서 그러니까 혼나죠. 연극할 때도 혼났어요. 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연극을 하냐고 혼냈더니 이제 기도하고 있다고 야단쳤어요. 한 2년간은 연극하는 아이로 유명하다가 1년간은 기도하는 아이로 유명해져서 교주라고도 불렸어요.
 
저의 집안은 불교집안이었어요. 아버지는 워낙 일찍 돌아가고요. 제가 초등학교 때. 엄마가 원래는 하나님을 믿던 분인데 결혼하고 나서 시댁의 종교가 불교여서 그렇게 됐어요.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믿음을 가지셨던 분이셨으니까 뭐라도 붙잡아야 할 마음이 그쪽으로 돌아선 거지요. 엄마는 결국 불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제가 개신교 믿는 것을 아셨던 것 같았어요. 그때 제가 새 아버지랑 살던 때였어요. 집안이 살얼음판 같아서 집에 있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더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밖에서 더 활발한 아이일 수밖에 없었죠.
 
고3 때 엄마가 교회 다시는 것을 아셨는데 모른 척 해주셨어요. 제가 21살 때 가수로 데뷔하기 전 20살 때 10월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제가 여동생과 남동생의 가장이 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을 등졌어요. 하나님께서 엄마를 데려가셔서…. 사람은 그런 상황이 오면 한 번에 다 무너져요. 너무 어렵고…. 제 나름으로는 고스란히 고3을 드려서 앞으로는 당연히 더 해주셨을 줄 알았는데. 가수도 내려놓고 고3도 내려놓았는데…. 저는 대학입학 시험도 못 봤죠. 다 안 되어지는 상황이었는데 엄마마저 돌아가시니 너무나 큰 원망이 들더라고요.
 
그 때는 그냥 계속 독만 남은 시기였어요. 20살의 저는. ‘그래, 하나님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세상에는 나밖에 없는 거고. 동생들 돌봐야 하고.’ 저에게는 악몽 같은 장례식장의 풍경이 두 번이나 똑같은 일로 벌어졌어요. 아빠도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똑같은 악몽이 또 되살아나서…. 장례식장에서 처음 하루는 정신 나간 듯이 울고, 그 다음날부터는 웃었어요. 울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그만큼 독했었어요.
 
나와 함께 고난의 길 걸으신 하나님
 
새아버지랑 살아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무일푼에 집도 없는 상황이 됐어요. 동생들 데리고. 다행히 작은 삼촌 댁에서 받아주셔서 몇 달 동안 삼촌 댁에서 생활했어요. 사고사였기 때문에 보험금이 나와 그걸로 생활하면서 다시 기획사에 전화했어요. 할 게 없었으니까. 관심이라고는 노래 외에는 없었으니까요. 다행히 받아주시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장례식장까지 와주셨어요. 그때는 몰랐어요. 당연히 생각했어요. 내가 힘들고 어려우니까 무조건 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냥…. 기획사 사장님이 구세주였던 거죠. 이를 악물고 연습하고 가수가 되기 위한 노력만을 기울였어요.
 
가수 데뷔하고 나서도 2년 넘게 지하셋방에서 살았거든요. 동생들이랑. 처음에 히트 쳤지만 신인들은 계약관계로 제 몫이 거의 없었죠. 제일 힘들었던 게 반지하방에서 사는 것이었어요. 저의 집은 길가에서 창문을 열면 방안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엄마 돌아가실 때 여동생은 고 1이고, 남동생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어요.
 
그런데 유명해지고 그러면 좋을 줄 알았는데 더 힘들었어요. 바쁘기는 한데 돌아오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고, 자꾸 뭔가 제 안의 것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허무하고 허망한 마음만 들었어요. ‘이렇게 해서 내가 무엇이 되고자 했던가’ 하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깨닫지 못하고 살았어요. 계속 그런 바보 같은 생활을 한 것은 남은 건 악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저의 생활이 최고를 이룬 어느 때였어요. 가수 이지훈 씨가 같은 또랜데, 같은 회사에 소속돼 있다가 다른 회사로 옮겨가서 제가 어렵고 힘든 걸 잘 알고 있었어요. 어쨌든 제가 하나님을 등졌더라도 종교는 기독교인이라고 되어져 있어서 이 친구 보기에는 너무 안타까웠던 거예요.
 
이지훈 씨가 ‘왜 그러고 다니느냐’고 힐책했어요. 제가 처음 가수 되려고 찾아갔던 회사에서 이지훈 씨는 이미 고등학생 가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어서 유명했었고, 저는 그 회사에 나중에 들어가서 오다가다 몇 번 마주친 사이였어요. 그런데 자기가 처음 봤던 저는 밝고 명랑하고 강한 아이였는데 지금은 신앙생활도 하지 않고 기도라도 하고 살고 있느냐. 뭐 하고 사느냐고. 그런데 이지훈 씨 말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저에게 하신 말씀으로 뎅~ 하고 들렸어요. 그 날부터 또 다른 제가 찾아왔어요. 지훈이 손을 잡고 지훈이가 다니는 교회 새벽기도회를 한참을 쫓아다녔어요.
 
제가 영적으로나 마음적으로 전혀 기댈 데가 없어서 마음은 너무나 차가워져서 하루에도 백 번씩 ‘차에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만큼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 하나님은 저도 모르게 지었던 죄들, 저도 모르게 받았던 상처들을 하나님이 다 끄집어내어 씻겨주셔서 너무 부끄러웠어요. 하나님도 저와 함께 고난의 길 걸으신 것을 느끼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어요.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시는 그 사랑에 너무너무 감사하고, 주만 바라고 주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제 인생에 가장 큰 행복이고 감사예요.(녹취 및 정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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