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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7/10/16 [07:25]
경제적 문제로 습합현상이 더해가는 종교간 習合

한국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

경제적 문제로 습합현상이 더해가는 종교간 習合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17/10/16 [07:25]

불교와 민간신앙을 설명하고 다음에 습합을 설명해야겠다. 민간신앙을 만난 오늘날 한국불교의 모습을 습합의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불교는 자신들의 생활 가운데 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비단 불교신도들만의 생각이 아니다.     

개신교, 천주교 그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자신이 알고 있는 정도는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알고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천주교 신도들은 언론에 용어선택, 설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면 직접 전화를 걸어 ‘기자님 기사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라고 쓴 것은 저의 교회와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한다.     

이와같이 모두가 알 것이란 생각만큼 오류는 없다. 실례로 목사 친구가 있는데 그 사람도 할아버지대를 시작으로 3대 목회를 하는 집안이다. 그에게 제사, 차례를 설명하면 그 용어자체가 낮설다. 그런데 사람들은 용어 자체를 모르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이와같은 경험을 통해 불교의 기본적 교리를 설명하고 민간신앙을 설명하겠다.     

1천6백년 역사, 문화재 80% 차지한 불교-민족종교인가 외래종교인가    

불교는 한반도에 들어온 종교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민족종교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단군신앙하는 대종교, 최초의 신종교로 분류되는 동학(천도교) 등을 민족종교라고 주장한다. 1천6백년 한국사회에서 한국인과 함께 생활했고 우리 문화재 80%이상 보유하기 때문에 민족종교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외래종교라고 분류하고 있다.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고 수학여행으로 많이 찾는 경주 불국사를 통해 우리국민 대다수 사찰은 구경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신심이 깊은 내 친구 목사는 절에 간 기억이 없다고 한다. 그 만큼 가깝고도 먼 것이 불교다. 아니 자신이 믿는 종교외 다른 종교에 대한 우리들 이해의 폭이다. 알려고 하는 노력보다 멀어지고 싶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신앙심이 깊은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상대가 나와같 은 믿음의 형제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의 기도를 하며 산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들과 역사적 관찰을 통해 우리는 불교가 대체로 전파지역의 재래·전통종교나 신앙들을 부분적으로 수용·흡수하거나 그들에 동화되면서 교세를 확장하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음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이는 동아시아의 불교사 속에서 잘 드러나는데, 그 중에서 도 한국과 일본의 경우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먼저 한국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시기를 살펴보면

⓵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 6월 진나라의 수도와 아도가 불경과 불상을 들여와 초문사, 이불란사 등을 창건하고 설법을 시작한 것이 그 시초다.

⓶백제는 침류왕 1년(384년)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을 경유하여 입국 이듬해 남한산에 절을 짓고 포교를 시작하였다.

⓷신라는 법흥왕 14년(527년) 이차돈의 순교후 공인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공인된 날과 전래 시기를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공인과 전래는 시간적 차이가 어느정도 있었다. 공인은 암암리에 신앙되던 종교를 공식적으로 신앙하도록 허락해준 날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관심으로 촉발된 가야불교의 관심은 연구자들의 동향에 따라서는 지금보다 전래시기가 상당히 앞당겨질 수 있다. 그리고 기존의 대륙전래설이 해양과 동시에 전래되었다는 주장까지 성립될 수 있다.    

한반도에 전래된 불교는 기존의 독신 수행자가 주류를 이루었다. 본격적으로 결혼한 승려집단이 탄생한 것이 18-9세기 일제의 침략 이후였으며 해방이후 왜색불교로 규정한 일부 수행자들에 의해 조계종이 탄생하고 기존의 결혼한 승려 집단은 태고종이라는 별도의 종단을 구성하였다.     

이들 두 집단을 각각 종단을 창종하면서 그들만의 독자적 수행공간을 형성하였다. 그러면서 비구와 대처가 한 사찰에서 공존하는 타협적 모습, 선암사를 비롯 수개 전통 사찰의 경우 서류상 조계종 소유와 실질적 운영을 하는 태고종단으로 이원화된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독신 수행승과 결혼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있는 승려들이 각각의 공간에서 수행을 하기도 하고 같이 모여 사는 모습도 한국불교의 독특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 소유 사찰이 허용되면서 기업형 사찰, 개인의 다양한 취향에 의해 설립,운영되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모습도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한국불교의 구성원은 비구,비구니,은처,대처,남녀신도 등 6부 대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 성직을 인정하지 않는 근본 불교권과 대처를 공인하는 일본불교와 다른 비공식적이지만 은처가 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처음부터 다른 종교를 포용하고 습합하면서 시작하게 된다. 절에 가면 제일 먼저 만난 것이 일주문이다. 그 다음에 만나는 것이 천왕문 혹은 사천왕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천왕은 인도 신화시대로부터 호세신 또는 방위신으로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의 중복에 살며, 그 정상의 도리천에 사는 제석천의 권속으로 사방사주(四方四洲)를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많은 경전에 설해지고 있다. 사천왕 신앙은 사악한 것으로부터 신성한 것을 보호하고 침략자로부터 수호하는 역할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호국사상과 연결되었고 종교적으로는 사찰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천왕상은 그 형상 때문에 무서운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찰 초입의 천왕문에 모셔진 사천왕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한다. 사천왕상이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식을 불러 일으켜 깨우치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축물로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은 붓다가 중심이 되는 전각으로 그곳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용 조각들이 많이 있다. 용은 붓다의 성도후 3주가 되던 7일 동안은 무챠린다 나무 밑에서 보냈는데 날씨가 매우 나빠 찬 바람이 불고 난폭한 비가 몰아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마침 비와 바람을 주관하는 신 챠린다란 용왕이 나와서 몸으로 부처를 보호했다. 일곱 또래를 사루어 붓다의 머리 위에 일산같이 큰 삿갓을 씌워드리고 한서, 기갈,쐐기,벌레와 모기 같은 것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였다. 경전에는 날씨가 개이자 이 용왕은 몸을 풀고 동자로 변하여 붓다 앞에 예를 갖추니 붓다는 그에게 중생을 사랑하는 자가 깨달음을 얻는 일곱가지 즐거움을 설해주었다. 이로써 미물로 붓다의 첫 제자가 되었다.  

중국을 거쳐 전개되면서 도교를 만나 선불교가 형성되어 한국에 전래되면서 한국불교의 대표적 수행모습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인도불교+중국화된 불교+한국의 민간신앙으로 한국만의 독특한 불교를 형성하고 있다.     

習合;
익힐 습(習)=羽+白 羽 깃 우, (짐승의)날개,새,조류,    

익힐 ‘습(習)’은 어린 새들이 깃털 짓을 할 때 그 안에 작은 하얀색이 보이기도 하고 숨겨지기도 하는 모습을 말한다. 현재 한국불교의 모습이 이와 같다. 멀리 밖에서 보면 하나의 큰 불교라는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는 듯 하지만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다양한 신앙들이 모여 있기도 하다.    

비단 불교만에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가 ‘입시’기도를 하고 있다. 고등종교인 불교,천주교,개신교,민족종교,민속종교 점치는 철학관 마저 ‘입시’기도를 한다. 기복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교단체가 행하고 있는 종교통일이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새벽기도는 한국 전통적 조앙신앙에서 유래되었다. 부흥회의 망아(忘我)적 현상은 민속종교에서 접신된 모습과 유사하다. 개신교에서 믿음의 척도로 주로 사용되는 은사 받음이 있다. 여기서 방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 방언을 하는 사람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구분된다. 민속종교에서 무당이 신탁에 의해 신의 말을 전하는 접신한 무당과 그것을 재가집에 전하는 중간자의 무당으로 구분된다. 이와같은 구조는 완전히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목사의 직분에 있는 교직자들이 산을 찾아 기도를 하고 기도원,수양원등의 주로 산에 위치한 것이 산이 많은 지형적 특징도 있지만 우리의 전통적 산악 숭배신앙의 흔적이다. 산악신앙은 우리민족에게 있어 가장 오래된 신앙이다. 고조선의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신화가 그 출발점이다.     

이웃나라 우리나라의 습합과 같은 신불습합 현상을 가지고 있다. 6세기 중후반 불교가 도입된 이래 19세기 메이지 정부의 정책하에 강제로 분리되기 전까지, 불교와 일본 고유의 토속신앙 흔히 신도(神道)라고 일컫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밀착된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 밀착관계는 흔히 학술적으로나 종교·문화적으로 신불습합이라고 하는 용어로 표현되곤 하는데, 말 그대로 신과 부처나 보살 등의 붓다가 하나로 융합됨을 말한다. 이 신불습합의 정교한 이론을 만들고 이를 일종의 ‘패러다임’으로 발전시킨 주체는 중세일본의 불교학승들이다. 그 중에서도 중세시기를 통틀어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본사회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천태계 불교 승려들이다.    

일본에서 신불습합이라면 한국에서는 민속종교와 불교의 습합 형태로 발전되어 민속불교,불교민속으로 구분되고 있다.    

칠성각은 도교의 북두칠성을 신앙이며 조왕은 중국에서 연유되었다는 주장과 우리 고유 민간신앙이란 연구가 있다. 조왕은 불교계와 민간신앙 공히 신앙되고 있다. 명부전은 지방보살을 모시고 죽은 사람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가진 전각이다.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을 봉안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지옥의 왕이라고 하는 옥황상제는 책을 머리에 모자처럼 쓰고있다. 이것은 불교경전으로 금강경을 말한다. 이와같은 모습은 다른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형태의 불교 모습이다. 여기에서 옥황상제는 중국에서 형성된 불교의 모습이라며 그분의 머리에 경전을 얹히는 것은 한국불교의 모습이다.     

불교와 도교 민간신앙이 만나 하나의 불교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그것을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개별적 신앙을 하고 있다.     

일제시대 그들은 신도,불교,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를 유사종교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 제도권 종교에 속하지 못한 종교에 대한 유사종교 규정은 민간신앙에게는 미신이란 굴레를 씌우게 된다. 미신,유사종교로 분류된 종교단체들은 기존의 신도, 불교, 기독교에 형식적 순응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민속종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불교 속에 편입함으로 승려라는 신분 세탁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 가사를 걸치고 목에 염주를 걸고 바라를 추는 천왕제석굿. 이때 사용하는 경전으로는 주로 불교의 천수경이다.    
 
무속인들의 굿거리는 대략 12거리로 구분된다. 그 가운데 ‘제석굿 거리’에는 가사를 걸치고 목에 염주를 걸고 바라를 춘다. 이때 사용하는 경전으로는 주로 불교의 천수경이다. 천수경은 관음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성립된 경으로, 현재 우리나라 사찰에서 반야심경과 함께 많이 독송되는 친근한 경전이다. 《천수경(千手經)》은 1900년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여러 경전에서 발췌하여 하나의 경으로 엮은 것이다. 즉, 순수 국산경전이라 할 수 있다. 주 내용은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찬탄하고, 그에게 귀의하여 예배하고 참회하며 발원하는 구절과 진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원도 청평사 댓돌에는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문양이 있다. 도교의 문양을 연꽃이 감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 절을 창건한 고려시대 이의와 그의 이자현의 구도가 반영되었겠지만 도교와 불교가 만나 대웅전이란 전각에 모셔진 부처님을 참배하는 길목에 있는 것이다.     

많은 민족주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대웅전의 대웅은 한인,환웅,단군을 모셔오던 우리 고유신앙의 전각을 불교가 전래되면서 민족의 성소를 불교가 빼앗고 그 자리에 부처를 모셨다는 주장을 한다. 현재 사찰에 남아있는 삼성각,산신각으로 부르는 연유가 그 증거라고 한다. 삼성각은 환인,환웅,단군 보다 산신,독성,칠성이 모셔져 있다. 그들의 주장처럼 내몰려 초라하기 그지없는 현재의 모습이다. 그런데 대웅은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불이 사마(四魔)에게 항복을 받아낸 위대한 영웅에서 유래된 것으로 부처님을 가리키는 것이다. 민족주의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주장대로라면 중국에서 사용하는 대웅전,대웅보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국수적 민족주의자들이 우리의 습합이론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주장하는 많은 왜곡된 역사관에서 벗어 날 것이다.    

참고로 대웅전은 본존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대웅보전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모신다.    

과거에 종교간 습합현상은 신앙적이었다면 현대에서 습합현상은 경제적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정조가 수원 화성 사도세자의 묘 참배시 자주 들렸다는 남대문 밖 관왕묘가 현재 사당동에 이전되어 있다. 이곳은 엄밀히 말해 불교와 관련이 없다. 그런데 ‘부처님 오신날’ 축원 연등이 달려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일반인들보다 민속종교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종을 이룬다. 자신들의 전안,신당에서 봉축 등을 팔고 자신들은 관운장 사당에 등 밝히는 모습이다. (삼국유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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