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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무 목사의 ‘일상 속 묵상’
성탄의 계절
크리스마스의 유래와 의미
기사입력: 2017/12/23 [10:02]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하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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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은 성탄의 계절입니다. ‘크리스마스’는 라틴어로 "그리스도"(Christus)와 "미사"(massa)의 두 단어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교회는 매년 12월 25일을 교회의 절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동방정교회와 일부 교회는 1월 6일(율리우스력으로 12월 25일임)에, 한국교회는 대부분이 25일을 절기로 지킵니다. 실제로 교회가 교회력으로 지키고 있는 ‘크리스마스’는 성경 어디에도 용어와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해서 언급조차 없습니다.     

초대교회 시기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재림을 고대하여 기념하기도 했으나 절기로서 행하지 않았습니다. 2세기 말경에 이르자, 알렉산드리아의 교부인 ‘클레멘트’(Alexandrian Clement)가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의 탄생일에 관하여 상이한 이견들이 있었음을 전한 정도입니다. 2세기 후반이 지나자 유대력으로 니산월 14일(당시 로마의 율리우스력 3월25일)을 그리스도의 수난일과 수태일로 동일시하는 시각이 점차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4세기경, 히포의 감독인 교부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과 도나투스주의자들간의 논쟁 중에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부터 예수님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지켰다는 언급이 나타납니다. 또한 어거스틴은 본인의 저서인 ‘삼위일체론(De Trinitate)’ 4권 5장에 “예수께서는 3월 25일에 수태되셨다.”, “전통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12월 25일에 탄생하셨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렇듯 12월 25일이 수난일이자 동시에 수태일인 3월 25일로 시작해서 9개월 이후인 12월 25일을 성탄일로 보았다는 기록이 교회의 전통 안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만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이라는 성경적 근거가 있다는 내용을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교회 전통 안에서 12월 25일이 오늘날 성탄절의 역사적 근거가 될 수는 있어도 성경적인 근거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또한 당시 교부들도 이 날을 특정한 절기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부, 기독교 이단 집단에서 ‘성탄절’을 로마의 태양신 숭배와 관련시켜 농신제(Saturnalia)’ 축제일을 크리스마스로 대체했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서방교회가 크리스마스를 지킨 시기는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로마연감에 따르면 336년경 율리우스력으로 12월 25일을 지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절기로 지키게 된 것은 350년 로마 감독인 율리오 1세(Julius I)가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개최한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내려 왔기 때문입니다. 이마저도 교회가 공적 절기로 확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서방교회가 교회력으로 지키기 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16세기 종교 개혁가들은 미신화된 ‘크리스마스’와 ‘축제‘를 혁파하고자 했다. 사진은 태양신으로서 그리스도를 표현한 중세의 모자이크 작품.    
   
그러나 16세기 유럽 전역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난 종교개혁 운동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크리스마스’를 절기로 지키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울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 존 칼빈(John Calvin)을 비롯한 종교 개혁가들은 미신화된 ‘크리스마스’와 ‘축제‘를 혁파하고자 했습니다. 하여 개혁된 교회로서의 정통 기독교회는 종교개혁 이후, 역사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절기로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현대교회는 교파를 초월하여 크리스마스를 ‘거룩한 절기’로, 기독교를 위한 ‘호교(護敎)적인 수단’ 또는 ‘전교([傳敎) 수단’으로 관습화되어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949년에 12월 25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였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다종교, 다종파 시대에 기독교를 비롯한 특정 종교의 기념일에 대한 법정 공휴일 지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특정 종교의 기념일이 법정공휴일이 되어 윤리 의식이나 보편적인 공동체 의식에 도움이 되어 오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각종 범죄와 퇴폐 향락의 축제로 변질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가 매년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는 어느 종파보다도 먼저 성경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6장 5절에 누가는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교 전통 안에서 상상할 수 없는 행보를 열어 가셨습니다. 안식일에 먹고 마시고, 가르치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행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줄곧 감시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사두개인뿐만 아니라 바리새인들은 일거수 일투족 예수님을 힐난하고 비판하고 트집을 잡고자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들을 잠재웠습니다.     

마태복음 22장 2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하여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고 답해 갑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심을 신적선언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사회를 향하여 ‘안식일의 정신’을 파괴한 행위들을 일일이 지적하시면서 안식일을 신앙적 행위가 아닌 종교적 행위의 날로 전락(轉落)시킨 유대인들을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안식일마저도 그 정신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안식일’ 그 자제는 그 어떠한 의미도, 정당성도 없음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몸소 행동으로 가르치고 실천하셨습니다. 하물며, 성경에 기반을 두지 않은 현대교회의 ‘크리스마스’의 형태를 예수님께서 지금 재림하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실지 자못 궁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인간의 유전이나 가르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여 ‘성경의 정신’으로,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 올 것을 가르쳤습니다.(마가복음 7장)    

기도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시어 ‘주의 날’을 안식일로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영원한 안식과 평안이 오직 주님께 있사옵나이다. 주님! 주의 자녀들이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안식일의 정신’으로, 순결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게 하소서! 성탄의 계절이 아니라, 365일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날로 여기게 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십자가 위에서 구원을 완성하신 그 정신으로 날마다 이웃과 함께하는 저희들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 하승무 목사는 한국예수교장로회(OPCK) 목사이자, 시인이다. 현재 한국장로회신학교 역사신학 교수로 봉사하고 있으며, 한국예수교장로회 총회 초대 교단장을 역임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계간 부산국제포럼 공동편집인 겸 편집주간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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