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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무 목사의 ‘일상 속 묵상’
잊을 수 없는 악연, 그러나 감사하자 ➀
용서를 통해 ’천국복음‘을 깨닫케 하소서!
기사입력: 2017/12/31 [19:54]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하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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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합니다.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저마다 세시풍속을 쫓아서 정동진이나 동해 바다로 달려갑니다. 보통 우리네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인 저는 특정한 날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루하루가 언제나 새해 첫날처럼 기도와 묵상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새맘을 다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연말이 되면, 깜깜히 잊었던 죄와 부끄러운 일들이 생각납니다. 한편으로는 이 같은 사실들이 드러나는 것은 회개할 기회가 있기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올해에는 예년과는 달리,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까지 애써 묻어두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용서했다고는 하나 용서하지 못한 사람’, ‘연로해서 소천하시기 전에 꼭 감사해야할 분’ 그리고 ‘친구에게 용서를 구해야하는 일’ 등입니다.     

저는 24년 전, 부산의 모대학교에 수년간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대학이 국책대학으로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홍보전문가를 모집한 공채에 합격한 저는 언론사에 활동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학의 전반적인 대내외 홍보업무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다른 학사업무와는 달리,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업무특성 때문에 저녁 9시 뉴스 데스크 앞에 앉은 앵커처럼, 다른 여유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덧, 몇 년이 지나고 안정기에 접어 들쯤에 전임 총장이 퇴임하고 신임 총장이 오게 되었습니다. 학내는 교육부 차관을 지낸 인사가 새 총장으로 선임되었다는 전언을 듣고 관심과 기대가 한껏 증폭되어 있었습니다. 신임 총장이 취임하고 나서 두서너 달이 지나자, 고위관료 출신의 총장은 전통적인 관료 방식으로 교수, 직원들을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문교부 토박이 관료 출신이라, 이 대학과 교육부간의 관계는 매우 원활하였지만 학내 구성원간의 관계는 전혀 달랐습니다.    

문제는 대학 홍보를 전담한 저와 신임 총장의 관계였습니다. 업무 특성상, 총장과의 관계가 나빠질 수 없는 직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제 인생에서 ‘악연 중에 악연’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새 총장의 졸업식사 초안을 처음으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총장실에서 호출하여 급히 올라가보니, 새 총장이 대놓고 하는 말이 “기자 출신이 이 따위밖에 글을 못 쓰냐? 는 매우 비인격적인 언사였습니다.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어한이 벙벙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전, 전임 두 분 총장의 각종 인사말과 보도 자료를 작성해 왔었지만 이 같은 일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임 두 분은 한국외대 총장과 서울대 총장을 역임한 정통 학자 출신의 총장으로 한 분은 영문학자이고 또 한 분은 정치학자였습니다. 만약, 이 분들이 제가 작성한 문장 하나하나를 문제 삼았다면 저는 할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글과 문장의 학문적 표현에 있어서는 저보다 더 전문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분은 제가 작성한 초안을 보고할 때마다 약간의 표현만 수정했을 뿐, 95%이상을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물론, 글의 취향은 상대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상대방의 평가를 무시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렇지만, 출신을 운운하며 비인격적으로 글쓴이를 모욕하는 것은 상사가 부하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이후, 초안을 재수정하여 총장실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총장은 원고를 한번 훑어보더니, 탁상에 냅다 던지면서 벌레 씹은 표정으로 한마디 던지는 것이 “그만 나가시요”였습니다. 그나마 반말로 ‘나가!’가 아니어서 다행이었습니다만 문제는 다음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후 5시 퇴근할 때쯤이었습니다. 총장비서를 통해 업무가 전달되었습니다. 중앙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중앙지와 지방지 전체를 열람하여 ‘수년간의 특정내용’을 스크랩한 후, 다음날에 보고하라는 지시였습니다. 이와 다른 비슷한 업무 지시는 반복해서 퇴근할 시간에 전달되었습니다.     

또 다른 사건은 마침 그 시기에 저는 진급대상자였습니다. 봉사에 열심이고 합리적이었던 노조위원장인 임용 동기와 저는 결국 진급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근무 성과와 대학에 많은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탈락이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지면에 언급할 수 없는 상황을 많이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대학 재직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긍지를 가집니다. 자화자찬(自畵自讚)이 아니라, 이 당시 저는 국내 최초로 공중파 전국 TV 대학광고를 기획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 이 대학이 전국적인 인지도가 급상승하였습니다. 또한 공격적인 TV 광고로 16대 1 이상이라는 당해 연도 전국대학 중에서 최고의 대학입시 지원율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 대학이 이러한 기록을 내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입시원서 판매대와 전형료 금액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익이었습니다. 입시업무에 고생한 전체 교직원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기존보다 조금 더 많은 상여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결국 총장의 부당한 갑질로 이 대학을 퇴직하고 생각치도 못한 머나먼 이국땅인 호주를 향하여 부모 형제를 뒤로한 채,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호주 교민사회에서 발간하는 잡지사 편집장으로 이직하여 이국땅에 정착했으나, 이민생활은 그렇게 녹녹치 안했습니다. 생활이 여의치 않자, 빌딩청소, 운송배달, 일본어 과외선생 등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투, 쓰리 잡’입니다. 또한 가족 몰래 등록한 호주 대학의 일본학 박사 예비과정마저도 시작하자마자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기도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기도 가운데 불현듯 고등학교 3학년 때 ‘목회자’로 헌신하겠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서원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하나님과의 전인적인 교감은 그 동안 잠자고 있었던 소명이 제 머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호주 이민을 통해서 갖은 어려움을 겪고 난 나머지, 하나님께 드린 서원과 잊었던 소명에 귀 기우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안정된 교직원 생활에 안착해 있었다면 목회자의 길은 아예 잊었을 것입니다.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役事)하심이 계셨지만, 그 과정에서 호주로 이민을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만든 그 분을 지금까지도 용서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목사로 임직된 이후, 수년 전의 악연을 풀고자 수소문 끝에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했지만, 제가 누구인지를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자신의 잘못을 기억했을 리는 만무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분노했습니다. 이 새벽에 생각해보면 설령 자신의 잘못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 몫은 그 분 자신의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인 저의 몫은 용서하며, 오히려 목사의 길로 출발할 수 있도록 여정의 원인을 제공한 그 분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18장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 가운데 베드로는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21절)라고 예수님께 여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관하여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22절)고 답하시면서 ‘천국과 천국 가는 자에 대한 한 가지 비유를 예화로 들려줍니다.    

비유는 이렇습니다.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 대/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23~34절)    

저는 마태복음 18장을 묵상하는 가운데 과거에 묻어 두었던 ’악연 중에 악연‘으로 생각한 그 분을 드디어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비유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35절에 덧붙이시기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35절)는 말씀을 통하여 용서는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맘’으로 하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달케 되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매너가 많이 발달했습니다. 지난 과거와는 달리, 사회 조직이나 단체에 가보면 현대인의 매너에 대해서 매우 강조합니다. 심지어 전문 강사를 초빙하여 교육을 통해 훈련까지 시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입니다. 사적인 관계나 해당 조직의 이익에 거슬리면 정반대의 태도로 돌변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건네는 말은 ‘입안의 혀’처럼 매끄럽지만 태도의 진정성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종교인의 숫자도 증가하고 각종 사회공동체 프로그램이 발달하였지만, 정작 우리 사회의 내면은 지난 과거보다도 악화일로에 있습니다. 오히려 밖으로 드러난 심각한 사회 병리현상은 수십 배나 증가했습니다.     

우리 대만민국은 모든 분야에서 서구의 선진화된 제도를 도입하는 데는 어느 국가보다도 앞서 있습니다. 형식을 갖추는 데는 매우 탁월하지만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면에서는 참으로 엉성합니다. 세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악을 끼칠 정도입니다. 요즘 국내외 사회 뉴스를 보면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현실과 현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제도일지라도 바른 제도로 정착할 수 없습니다. 의사가 진단을 잘못하면 바른 처방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병증은 더 악화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한 당시 유대사회의 현실적인 면면을 정확하게 간파했습니다. 창세 이래,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피조세계에 실제적으로 어떻게 적용되고 가르치셨는지를 정확히 아셨기에 그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위선과 죄악을 예수님께 항변할 수 없었습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빌라도 총독조차도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만한 그 어떠한 명분도 찾지 못하여 유대인들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말씀은 단순히 ’용서‘에 관한 문제를 넘어, 그 이상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하여 당시 신정국가 체제인 유대사회가 처해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회 구조의 핵심적인 실천적 실체가 괴리되어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구원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메시아로서 신약 시대를 여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오용한 형식, 그 이상의 본질적인 태도 변화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시대의 연장선에 서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난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이 시대를 더욱 민감하게 분별해야할 시점입니다. 보다 더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가르치고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현대사회가 악화일로에 있지만 그리스도인들 각자가 자기중심의 신앙태도에서 탈피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혁되어 간다면 악화일로의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오늘 새벽 말씀을 통해서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케 해주신 주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용서를 통하여 우리 모두가 ’천국복음‘을 깨달케 하소서! 주후 2018년 한 해는 이 땅의 모든 피조 세계가 신음하지 않게 하시고 주의 백성들이 진정한 용서를 통하여 복음의 실천자가 되게 하소서! 불의와 부패, 다툼으로 물든 이 세계를 변화시켜 주실 것을 간청하나이다. 진정한 사랑과 평화는 오직 주님께 있사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 하승무 목사는 한국예수교장로회(OPCK) 기관 목사이자, 시인이다. 현재 한국장로회신학교 역사신학 교수로 봉사하고 있다.kpts@kp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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