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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무 목사의 ‘일상 속 묵상’
예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➂
3. 기독교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기사입력: 2018/05/03 [07:0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하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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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한 장면       

오늘날 ‘혼합종교화’의 현상이 두드러진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 구원에 있어서 더욱 분명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진술하는 구원론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적 권한으로서의 영역과 구원을 받은 인간의 측면입니다. 우리는 이를 잘 이해하고 바르게 인식해야만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른 신앙에서 이탈하거나 극단적인 오류에 빠지지 않습니다. 현대교회는 지난 세기를 거치는 동안 괄목할만한 이론 신학의 발전을 통하여 성경 본문과 성경 본문에 근거한 교리들이 더욱 체계화되어 기독교 이단이나 자유주의 신학을 대항하고 교회가 세속의 흐름을 잘 분별할 수 있도록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성경 본문을 분석하고 해석함에 있어서 너무나 인간 ‘이성’에 의존하여 성경 본문이 의미론적으로나 명시적으로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지 않는 부분까지 해석을 시도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적 사고의 영역까지 침범하여 계시의 고유 의미를 왜곡되게 판단하여 성경에서 진술하는 구원론의 본질을 극단적으로 주장해 왔습니다. ‘완전주의 구원관’을 주장하는가 하면, 반면에 ‘상대화된 구원론’을 넘어 ‘혼합종교의 구원론’을 극명하게 드러내었습니다. 이 양극단은 성경의 반한 흐름입니다.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 시대 이후, 역사적 정통 그리스도교회인 개혁교회는 17세기 고백주의(告白主義)의 반동으로 경건주의(敬虔主義) 운동이 일어나면서 기본 교리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은 교리가 아니라 생활이다’라는 경건주의의 영향으로 교리를 경시하는 일시적인 시대 흐름은 19세기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역사주의(歷史主義)와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의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이 만개하도록 토양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조는 헤겔과는 논리적 방법론으로 직관과 감정을 중시한 슐라이어마허의 신학방법론으로 오늘날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초자연적인 계시성이 해체되고 분해되는 것 같았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 말은 인간을 구원함에 있어서 실제성과 유일성 그리고 절대적 가치가 아무런 효용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정통 기독교회는 이론 신학의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통하여 모든 인본주의적 방법론에 대한 객관적인 변증은 물론, 오히려 역사적으로 성경신학적으로 문헌적(성경텍스트 본문에 대한 문법적 방법론 중심이 포함된 개념)으로 연구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계시성이 더욱 명증한 진리로 객관적으로 드러나게 했습니다.     

인간의 구원과 직결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초자연적 계시는 사실 인간의 부패와 타락의 결과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외에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근본적으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예수에 대한 ‘계시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그 어떠한 사상과 사조 그리고 철학적, 자유 신학적인 논쟁은 결과론적으로 인간 ‘이성주의’에 근거한 사변적인 활동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날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논쟁은 불필요합니다. 각자의 길을 가면 되는 것입니다. 패러다임이 다른데 비교, 분석, 해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필자는 가끔 기독교 신앙과 다른 신앙, 다른 견해를 가진 분들에게 이 시대의 기독교적 현상을 보지 말고 모든 편견과 자신의 견해와 관점을 한번쯤 내려놓고 성경에서 진술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성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귀 기우려 볼 것을 권하곤 합니다.     

성경 창세기에서 진술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 다음으로 그 존재성이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창 3:5)되려는 욕심으로 인하여 온전했던 하나님의 형상은 파괴되고 돌이킬 수 없는 타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함으로서 ‘타락한 상태로 영생의 길을 가는 것’을 그 즉시 차단했습니다.(창 3:22~24) 이는 타락한 상태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생하면 타락 이전의 상태로 회복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고통 중에 살아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안고 사는 영생은 죽음보다도, 단 1초의 행복을 맛보는 것보다도 못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 스스로는 타락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기에 독자적인 방법을 시행한 것이 하나님의 품에서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요 1:18)를 희생 제물(고전 5:7)로 삼아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꺼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모든 인간이 영원한 구원의 길로 나아올 수 있도록 화목 제물(로마서 3:25, 요한1서 2:2)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롬 3:23)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확고한 신적 의지를 통한 결단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구원의 희생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요 3:16)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 되었습니다.(엡 2: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보통 이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 사랑, 독생자, 믿는 자, 영생이라는 단어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믿는 자마다’에서 ‘자마다’입니다. 성경원어 헬라어로 파스(πâς)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한글 성경에는 ‘자마다’로 번역되어 있지만 ‘모든’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마다’라는 단어에 ‘모든’이라는 의미가 배제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필자가 의미적으로 번역하자면 ‘모든 믿는 자마다’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 단어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하나님의 신적 영역과 인간의 측면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대상을 삼으신 것은 특정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온 인류가 포함된 세상(헬, κόσμον)을 대상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무 조건 없이 구원을 선물로 받은 인간의 측면입니다. ‘선물’이라는 충분조건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선물은 바로 사람이 ‘영벌의 심판 대상’에서 ‘영생의 심판 대상’(마 25:46, 롬 14:10, 고후 5:10)으로 전환되는 의미가 이미 전제(前提)된 조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은행을 턴 강도가 그 돈으로 시드니 가는 비행기 표를 구입했다고 해서 그 ‘비행기표’가 시드니로 갈 수 없는 표라고 거부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표가 시드니 가는 ‘비행기표’인지만을 확인합니다.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선물’이라는 구원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만’이라는 충분조건이 전제된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조건 없는 선물을 받았다는 것은 그 ‘선물’의 충분조건에 전적으로 ‘동의되었음’을 뜻합니다. 수납적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선물’이 가진 ‘완전성과 충족성’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장 48절에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근거로 교리만으로 하나님의 신적 사고의 영역과 구원받은 인간의 측면을 이분법적으로 정교화 하여 교리적 의미만을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에 따른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의 교리를 마치 구원의 조건으로 오용하여 극단적인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믿음은 교리적으로 완전히 규명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지실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제한된’ 의미를 ‘소수’ ‘특정’이라는 의미로 곡해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태어날 모든 사람의 99.99%의 사람을 구원하시는 몫은 하나님의 고유한 신적 영역입니다. 산술적으로 아무리 나누고 나누어도 나누어지지 않는 단순한 사실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 ‘칭의 유보론(예정 또는 예약론)’을 주장하는 김세윤 교수         

또한 모든 사람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100%의 보편 구원을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 반한 위험한 발상입니다. 교묘하게 인간의 논리로 하나님의 구원의 의미를 ‘유보’(留保)또는 예약(豫約)하는 논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파괴하는 성경에 완전히 반한 사상입니다. 이 또한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결되어 있는 자유주의 신학의 결과입니다.    

오직 하나님 자신의 신적 영역을 인간이 판단하여 구원의 충분 조건에 의한 결과론적 의미로 변질시키는 신학사상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지 않아도, 인간의 선택에 의해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사상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대속(代贖)하신 구속의 완전한 효용성(效用性)과 유효성(有效性) 그리고 충족성(充足性)과 유일성(唯一性)을 파괴합니다. 그들의 논리라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굳이 죽으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여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그 숭고한 희생에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희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고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든지 주님을 영접하게 되어 있는 것이 성경에서 진술하는 구원의 원리입니다. 성경은 그를 향하여 ‘구원받은 자’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만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더 이상,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인하여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한 자는 자신 스스로 나의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한 ‘믿음의 결과’가 말이 아니라 전인(全人)으로 깨달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혔던 벽을 허무는 유일한 구원의 통로(요한복음 14:6)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3일 만에 부활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혔던 벽을 허무는 그 이상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의 길’(딛 1:2;3:7, 요 3:36)을 ‘보장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끝.    

기도합니다.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거룩하신 하나님!

타락한 우리의 인간 ‘이성’에 의존하여 교만과 구원의 길을 거부하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성자 하나님의 자리를 떨쳐 일어나 성육신하여 성부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여 ‘구원’을 이루어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나이다.     

사상과 이념 그리고 극단적인 종교 논리로 반목하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가 함께하게 하여 주시고 모든 백성들이 주의 자녀가 되어 구원의 길을 함께 가는 형제자매가 되기를 소망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승무 목사는 한국예수교장로회(OPCK) 기관 목사이자, 시인이다. 현재 한국장로회신학교 역사신학 교수로 봉사하고 있다.<kpts@kp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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