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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운용 경험' 삭제…국민연금 CIO공고 논란

양형모 | 기사입력 2018/10/03 [20:25]
643兆 국민 노후자금 운용…비전문가에게 맡겨도 되나

'자산운용 경험' 삭제…국민연금 CIO공고 논란

643兆 국민 노후자금 운용…비전문가에게 맡겨도 되나

양형모 | 입력 : 2018/10/03 [20:25]

643兆 국민 노후자금 운용…
비전문가에게 맡겨도 되나     

우리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기금 운용사령탑에 자산운용 경험이 없는 사람이 앉아도 괜찮을까. 요즘 금융권에서 회자되는 핫이슈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CIO) ‘자격요건’ 문구에서 ‘자산운용 경험’이 삭제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10월1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15년 11월 공고된 국민연금공단 기금이사(기금운용본부장) 초빙 공고문까지는 ‘자산운용 경험’이 명시(明示)되어 있었다. 자격요건이 ‘금융기관의 단위부서장 이상의 경력이 있는 분으로서, 자산관리 또는 투자업무 분야에서 3년 이상 자산운용 경험이 있는 분’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2018년 2월부터 달라졌다. ‘1000조원 기금시대를 열어갈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최고의 CIO(투자책임자)를 모십니다’라는 제목의 기금이사 초빙 공고문엔 자격요건 문구가 ‘∼자산관리 또는 투자업무 분야에서 3년 이상 경험이 있는 분’으로 바뀌었다. ‘자산운용 경험’이 빠진 것이다.

기금 규모가 1000조원을 향해 급증하면서 CIO의 전문성과 능력의 중요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자격요건은 거꾸로 후퇴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지 않이도 국민연금의 낮은 기금운용 수익률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7월말 기준 643조원이며 2018년 들어 7월까지 수익률은 1.86%로, 2017년 연간수익률 7.26%의 4분의 1토막 수준이다. 이런 연유로 금융권에선 특정인을 앉히기 위해 자격요건을 완화한 것 아니냐는 뒷말들이 무성하다. 공교롭게도 국민연금공단이 최종 선정한 후보 5명 가운데 일부 인사들은 자산운용 경험이 없거나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그 연장선에서 자산운용 경험이 부족한 인사가 기금운용 사령탑에 오를 경우 발생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쏟아진다.

한 금융투자업계의 고위관계자 A씨는 “자산운용 경험이 부족하면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 단언했다. “수익률을 내기도, 리스크 관리도 어렵고 리더십과 대외 협상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후보 5명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안효준 BNK금융지주 글로벌 총괄부문장(사장), 이승철 전 산림조합중앙회 신용부문 상무, 장부연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경영관리부문 대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국민연금공단 측은 “‘자산운용 경험’이란 단어를 뺀 것은 맞지만 그건 앞부분의 ‘자산관리 또는 투자업무 분야’와 중복되는 것이어서 뺀 것일 뿐 달라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심의할 때는 자격요건을 과거와 똑같이 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후보 5명은 모두 3년 이상의 자산운용 경험 조건에서 미달하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 B씨는 “일부 후보의 이력을 볼 때 과거와 똑같은 기준을 적용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편, 국민연금공단은 2일 일부 언론의 ‘국민연금 CIO 공모자격 완화 논란’ 보도에 대해 공식 반박했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장 자격요건과 심사기준은 2015년(직전 공모)과 동일하고 일체 변경된 사실이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해당 보도에는“누구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고 싶은 거냐. 언론과 금융적폐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고 싶다는 소리로 들린다”는 등의 댓글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643조 국민 노후자금, 비전문가에게 맡겨선 안돼                 

국민연금은 7월말 기준 643조원에 달한 세계 3위 규모의 초대형 연기금이다. 어설픈 역량과 시스템으론 그 천문학적 자금을 제대로 굴릴 수 없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5월 ‘2018 기금평가결과’를 내놓으면서 국민연금의 2017년 실적을 ‘양호’로 평가했다. 2017년 7.28%의 운용수익률을 낸 것을 긍정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속빈 강정과 같은 평가였다. 같은 해 사학연금은 9.19%, 공무원연금은 8.8%의 수익률을 냈다. 반면 2018년 7월까지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1.86%이다. 국내주식 투자 성적은 더 형편없다. 7월까지 누적 수익률이 -6.11%라고 한다.감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익률이 1%만 올라도 연금고갈 시점은 8년 늦춰진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역주행을 하고 있다. 국민연금 CIO는 2017년 7월 전임자 퇴임 이후 장기간 공석이다. 실망스러운 수익률은 CIO 장기 부재와 무관치 않은 현상일 것이다. 그간의 공모 과정에서 청와대 개입 물의까지 일어 국민의 걱정은 더 커졌다.

국민연금이 이처럼 불신의 대상이 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2015년 여름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의 중심에 섰다. 덩치가 커 ‘캐스팅보트’를 쥔 처지였는데 결정이 쉽지 않았다. 제일모직 1주와 삼성물산 3주를 바꾸는 합병 비율이 문제였다.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산정된 비율이라서 세계 최고 의결권자문기관 ISS도,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결국 찬성표를 던졌다. 왜 그랬는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정유라의 승마,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을 압박하면서 반대급부로 삼성에 제공한 게 ‘국민연금 찬성표’였다. 행동대장 역할을 한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의 수첩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국민연금에 찬성을 압박한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500여일 동안 옥살이를 했다. 최고권력과 재벌의 거래에 굴복해 국민노후자산을 재벌을 돕는 데 갖다 바친 흑(黑)역사. 국민연금이 불신의 대상이 된 것은 자업자득이다. 국민연금 CIO에게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강직함, 국민노후자산을 지키는 책임감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다. 그러나 정의감만으로 될까. “정의감으로 600조 국민노후자산을 굴려 돈을 번다? 돈벌기가 그렇게 쉬운가요.” 자산운용업계 고위 관계자 A씨는 실소를 터뜨렸다.

이런 판국에 또 다른 의혹이 불거졌다. 국만연금 기금운용사령탑인 기금운용본부장(CIO) 공모(公募)에 자산운용 경험이 없는 사람도 지원할 수 있도록 자격조건을 완화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공단 측은 손사래를 친다. CIO 자격요건이 중복돼 문안(文案)을 손봤을 뿐이란 것이다. 실제론 달라진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 입맛에 맞는 특정 인사를 밀기 위한 정지작업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의 목소리가 높다. 기금이사추천위가 추린 후보 5명 중 3명은 3년 이상 자산운용 경험이 없거나 부족하고, 그 3명 안에 유력 후보가 있다는 풍설도 파다하다.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국민 노후를 좌우할 국민연금이 비전문가에게 맡겨질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닌가.

누가 CIO가 돼야 하나. 답은 뻔하다. 전문적 자산운용으로 국민 노후자금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불릴 수 있는 적격자다. 그래서 금융권에선 국민연금 CIO의 자격요건에서 자산운용 경험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5∼6년 뒤 국민연금기금은 1000조원 시대를 맞는다.

국민이 엉터리 인선(人選)을 참을 까닭이 없다. 관련 부처와 공단은 능력을 최우선시하는 공평무사한 인선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643兆 굴릴 국민연금 CIO에 ‘정권코드’ 주진형    

이런 와중에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가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를 이끌 CIO로 결정됐다. 그러나 주 전 대표가 정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가까운 대표적인 친정부 인사이고 운용 전문가는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10월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주 전 대표는 4일부터 신임 국민연금 CIO로 출근한다. 국민연금 CIO는 국민 노후자금 643조원의 운용을 총괄하는 책임자다. 국민연금 이사장이 공모 과정을 거쳐 최종 후보 1인을 뽑은 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임명 제청하면 장관이 승인하는 방식으로 선임된다. 임기는 2년이며 성과에 따라 1년 연임할 수 있다.

본부장 자리는 7대 CIO인 강면욱 전 본부장이 2017년 7월 돌연 사표를 낸 뒤 1년3개월째 공석이었다. 주 전 대표는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한화투자증권을 이끌면서 매도 리포트 확대, 고위험주식 선정 발표, 수수료 기준의 개인성과급제 폐지 등 파격 행보를 보여 ‘증권업계의 돈키호테’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특히 2015년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사임 압력을 받았고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 출석해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결정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증언했다. 2016년에는 민주당에 합류해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과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을 지냈다. 국민연금 CIO 인선에서는 주 전 대표를 비롯해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안효준 BK금융지주 글로벌 부문 사장이 삼파전을 벌여왔다. 인선 과정에서 류 대표가 유력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으나 결국 주 전 대표로 결정되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고 “노동자를 정리해고한 주 전 사장은 스튜어드십코드를 이행할 기금운용본부장이 될 자격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정치 논리에 휘둘려 표류하는 ‘국민노후’
정권 안가리고 CIO 인선 때마다 靑·여당 입김 작용


“대형 투자에 대해 책임있게 고민해본 인물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이 돼야죠.”(전직 국민연금 CIO) 국민의 노후자금 운용을 책임지는 국민연금 CIO 인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전직 CIO 선배가 남긴 고언이다. 그는 “아무리 훌륭한 경력이 있어도 실제로 냉혹한 투자 결정을 해보지 않았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일부 후보는 국민연금이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동안 시장 논리대로 가지 못하고 외부 개입에 휘둘리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미국의 글로벌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월12일(현지시간) 국민연금이 전북 전주에 있다는 이유로 ‘분뇨 냄새가 난다’며 조롱에 가까운 보도를 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으로 인해 정보 교류가 어렵고 인력이 빠져나간다고 꼬집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이전에서 드러나듯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상황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CIO 인선 과정에서도 청와대와 여당의 의중(意中)이 가장 큰 잣대가 되고 있다. 2017년 7월 강면욱 전 CIO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이유로 자진 사임한 후 2018년 2월이 돼서야 국민연금 공단은 신임 CIO 공모를 개시했다. 공모를 통해 최종 후보에 올랐던 곽태선 전 베어링 자산운용 대표는 탈락 후 공모 한 달 전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참여하라는 전화를 걸었다고 폭로했다.

재공모를 시작하자 이번에는 현 정권과 연(緣)을 맺고 있는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는 한화투자증권 시절 직원들과 각을 세운 점 때문에 국민연금 이사회의 일원인 양대 노총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그가 투자 운용 경험이 적다는 사실은 투자업계에서만 문제 삼을 뿐, 여권 내에서는 깊이 있게 논의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CIO는 “인사권을 쥔 쪽에서는 자신들의 철학과 맞는지를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최근 또 다른 유력 후보로 거론된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역시 투자 경험이 적다. 서스틴베스트는 국민연금 등 대규모 기관투자가에 사회적 책임투자를 위한 자문을 하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서 그의 경력은 장점으로 평가되지만 투자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게 국민연금 안팎의 중론이다.  국민연금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고 ‘잘해야 본전’인 근무여건으로 인해 인력 엑소더스(유출)는 계속되고 있다. 1년째 공석인 CIO 외에도 중간 관리자급인 실장 9명 가운데 네 자리가 공석이다. 실무인력 이탈도 문제다. 지난 7월말 기준 기금운용본부 운용직 278명 중 32명의 자리가 비어 있다. 국민연금은 643조원의 막대한 자금을 운용한다는 자부심에 운용 업계 인재들이 이력서에 꼭 한 줄 넣고 싶은 매력적인 자리였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을 하다가 잘 안 되면 국민연금으로 가면 된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국민연금의 위상이 많이 추락했다”고 설명했다.반면 교직원공제회의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경쟁률은 63대1을 기록했다. 사학연금과 군인공제회도 상반기 채용경쟁률이 50대1과 20대1에 달했다. 교직원공제회는 서울 여의도역 5번 출구 바로 앞이라는 탁월한 입지에 신축 건물의 쾌적한 환경, 높은 처우 등이 강점으로 평가받았다. 한국투자공사(KIC)의 경력직 채용에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인력들이 대거 지원했다.
양형모(경영학 박사·애원복지재단이사 ·본지 고문·hm18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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