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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성소의 뜰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②
물두멍이 표상하는 생수는 하나님의 말씀
기사입력: 2018/11/21 [06:44]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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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두멍이 표상하는 생수는 하나님의 말씀
  

물두멍은 번제단 성소의 뜰, 번제단과 성소 휘장 사이에 놓여져 있었다(출 30:18, 38:8, 40:30). 크기는 대략 직경이 3규빗(1.35m) 정도로 짐작되며 회막문에서 시중드는 여인들이 사용하던 놋 거울로 만들어졌다(출 38:8). 바울은 거울을 율법에 비유하였다(약 1:23~25; 고후3:17, 18).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약 1:23)은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과 같다. 이처럼 물두멍은 죄를 자세히 보여주는 율법의 한 기능을 상징한다. 새 언약 시대의 우리들은 더욱 완전한 거울을 가지고 있으니 즉 “율법의 완성”(롬 13:10; 마5:17)자이신 그리스도의 생애와 품성을 가지고 있다.

제사장은 화제를 드릴 때에나 성소로 들어가기 전에 항상 손과 발을 씻는(출 30:17~21, 40:32) 의식을 행하여 먼저 자신을 정결하게 유지해야 했다. 오늘날 주님을 따르는 자들도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고전 6:11)한다. 손은 봉사를 의미하고, 발은 행동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든 행실에 있어서 흠이 없는 제사장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자신의 영적 경험을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시 26:6)라고 고백하였다.

물두멍은 매일의 생애의 정결을 유지하는 것이 칭의임을 말해주고 있다. 거룩한 제사장도 항상 물로 손발을 깨끗하게 씻었던 것처럼 번제단에서 회심과 용서를 경험한 사람도 매일 자신의 마음과 행실을 돌아보아 의의 두루마기를 정결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심령의 정결을 유지하는 방법이며 온전한 새 생명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물두멍을 들여다보는 제사장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여인의 놋거울을 녹여 만든 놋대야에 물빛이 반사되어 마치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이를 비춰줬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유적으로 거울을 상징하는 율법과 그 안에 생명수 되신 그리스도를 본다. 이것은 예수님의 생애가 율법에 비추어서 흠 없는 생애였음을 나타낸다. 이 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심장이 상할 때 흘러나오고 부활하심으로 생명력이 부여되었음을 의미한다.

요한은 예수님을 “생명수 샘”(계 7:17)으로 인도하시는 분으로 소개한다. 예수님은 마르지 않는 “생명의 원천”(시36:9)이시다. 이런 이유로 누구든지 율법과 일치된 그리스도의 흠 없는 생애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죄인은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렘 4:14)는 보증의 말씀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죄된 옛 생애를 씻어버리고 예수님의 율법과 일치한 흠 없는 새 생애 즉 생명수를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는 침례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물두멍은 침례를 예표하였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1).

침례는 그리스도교 예식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그리고 이미 침례를 받은 자는 제사장이 회막을 출입할 때나 거룩한 전에 들어갈 때 손발을 항상 씻었던 것처럼 “중생의 씻음”(딛 3:5)을 통해 얻은 칭의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매 순간 수족을 씻어서 정결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성만찬과 함께 세족 예식으로 기념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요 13:10).

놋그릇에 반사된 정결한 물은 율법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신 흠 없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잘 표상해 준다. 그분은 율법을 준수하심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난 “첫 열매”(고전 15:20)가 되셨고 “인류의 장자”(골 1:15)가 되셨다. 인류는 예수님의 생애와 부활을 통해서 죄 없는 완전한 첫번째 사람을 본다. 그리스도의 의와 삶은 신자에게 끝없는 거울이 된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요 1:14)시는 분, 율법과 일치한 생애를 사시는 분으로 소개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의 생애에 나타난 그 의가 모든 신자에게 미침을 설명한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에 기초되어 있는가? 그것은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계셔서 행하신 일과 품성을 믿는 것에 기초되어 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11).

거룩한 성도, 거룩한 교회는 물두멍에 투영된 그리스도, 즉 율법과 일치하신 그리스도의 삶을 거울로 삼는 백성이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6~27).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전 13:12).

이스라엘이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에 마실 물이 없었다. 이때 백성들은 모세와 다투고 “과연 여호와가 계시는가?” 여호와의 실존을 “시험하여 이르기를”(출 17:7) 우리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이때 여호와께서는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를 돌아 보셨다.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출 17:6)고 하셨다. 모세에게 침을 당하신 분은 반석이시며 반석 위에 계신 그리스도셨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 내리친 것이다. 이때에 물이 갈라진 반석에서 물이 나와 갈하여 죽게 된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로 목마르지 않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로 솟아나게 하셨느니라”(사 48:21).

‘쪼개다’의 히브리어 동사 ‘바카’는 ‘가르다’는 의미 외에 ‘뚫고 지나가다’, ‘관통하다’의 뜻도 있다. 이것은 반석이 침을 당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것과 심장이 관통되고 찢어져 “구원의 생수”를 쏟아 내심으로 목말라 죽게 된 인류에게 풍성한 생명수를 제공할 것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생명수의 근원이심을 말해준다.
▲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 손과 발을 씻고 몸을 정결하게 하는 데 사용된 청동제 놋대야 물두멍. 성막 뜰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 위치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물두멍의 물은 반석이신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온 물로 예표되었고 그 원형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제공된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7:39)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리시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사 53:4, 5) 상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목마르셨다”(요 19:28). 그러므로 물두멍은 “구원의 우물”(사 12:3), “영혼을 소성케 하는 은혜”인 것이다.

물두멍이 표상하는 생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가진 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실 때 성령의 가르치심과 조명함을 받은 자들은 생명수와 같이 소성케 하는 힘과 능력을 드러낼 것이다. 요엘은 그날(마지막 때)에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욜3:18)고 예언하였다. “싯딤 골짜기”(“the valley of acacias” NKJV, NIV, NLT)는 요단 동편의 아카시아가 많이 나는 골짜기로 척박한 땅을 의미한다. 마지막 때에는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로 이스라엘의 척박한 땅까지 모두 비옥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인 것이다.

에스겔은 이상 가운데서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겔 47:2)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 것을 보았다. 일천 척(약 500m)을 척량하니 그 물이 발목에 이르고, 일천 척을 척량하니 발목에 이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니 허리에 이르고, 일천 척을 척량하니 헤엄치지 않고는 건널 수 없는 물이 되었다. 이 강줄기가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겔47:8) 바다를 소성케 하는 것을 보았다. 이 강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고 바닷물이 소성하며, 바다의 고기가 심히 많고 어부가 선 것을 보았다. 특별히 그 물이 흐르는 강 좌우에 달마다 새로운 실과를 맺는 나무를 보았다. 또한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슥 13:1) 열린 다음에 스가랴는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염해)로, “절반은 서해”(지중해)로 흐르는 것을 보았다(슥 14:8). 위의 말씀들을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구원의 우물(말씀)을 가진 백성들,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령이 강림할 때 복음이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 세상을 소성케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주형식(서울 묵동교회 담임목사·목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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