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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한국불교(증산신앙) 종단의 종교 혼합현상④김계주의 무을교
“인의예지신과 삼강오륜을 실현해 천지인 삼합으로 선불유 통합을 목적”
기사입력: 2018/11/28 [07:3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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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예지신과 삼강오륜을 실현해 천지인 삼합으로 선불유 통합을 목적”
    

<연재 순서>
①종교적 혼합의 의미와 역사
②김형렬의 미륵불교
③서백일의 용화교
④김계주의 무을교    

무을교의 창교자 김계주는 1896년 음력 9월26일 전남 나주군 번남면 신기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명은 순모, 原名은 재호인데, 창교하면서 이름을 계주라 하였다.

김계주에 관한 특별한 자료는 현재 발표된 것이 없으며 수도 행위에 대해서도 특기할 사항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계속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간략하게나마 들어난 것은 어려서부터 수도에 뜻을 두어 오랜 방랑생활을 하다가 ‘보천교’를 알게 되어 증산교의 신자가 되었다. ‘보천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수도하던중 증산의 계시를 받고 1942년 무을교라는 이름으로 전남 광산군에서 본교를 창립했다는 것과, 6.25사변때 인민군에 학살되었다는 정도의 내용만이 겨우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증산의 도를 받게 된 김계주는 ‘나의 도명을 무교로 하라’는 증산의 명을 받고, 이때부터 증산 대성을 무성상제로 받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1942년 9월 9일 도를 받아 무교를 세운 후에 1946년 1월 입교한 서울 태생인 김형섭에게 교를 설명하다가, 이 시대는 궁궁을을시대이니 무자 밑에 ‘을’자를 붙여도 좋다고 하여 이로부터 무을교라는 교명이 붙게 되었다.

종교총감에 기재된 무을교의 연혁을 보면 ‘기해(己亥1959)년 김홍현을 교주로 추대하고 갑진(甲辰1964)년 양력 10월 24일 무을교를 미륵종으로 개명하였다’고 기록하고 무을교의 목적은 인의예지신과 삼강오륜을 실현하여 천지인 삼합으로 선불유 통합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였다.

경전은 『유현전』, 『흠천대요』, 『미륵천륜경』, 『정역』, 『통세의감』, 『대순전경』, 『현무경』 등이 있다.

년중 행사로는 1월 21일(상감 생신기념일, 상감은 여처자), 3월 15일(선영제기념일), 6월 15일(영제신농씨제일), 6월 24일(미륵득도기념일), 9월 19일(미륵탄신일), 12월 23일(상감님 선화기념 치성일), 그외 미륵님 득도 기념치성(음 7.5) 등이 있다. 일체치제일에는 남자는 성화관 여자는 연화관을 쓴다.

독송경문은 신앙각오문, 수도문, 미륵존명축문, 현우경, 천운문 등이며 축원문은 천지진액주 등 233개의 주문과 치병주문 28개 도합 61개의 주문이 있다.

예배 정례예배는 있지 아니하고 연중행사로 치성기념 치제행사의 집회와 수련이 있다.

무을교의 소의경전으로는 미륵상하생경과 미륵하생성불경, 미륵대성불경, 미륵내시경을 비롯 무을교에서 펴낸 미륵천륜경을 기본 경전으로 하고 있다. 그 외 대순전경과 현우경이 있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 무을교는 대외적으로 밝히고 있는 내용과는 다르게 본교에서 사용하는 주경이 증산교의 대순전경이고 수련시에 주로 외우는 주문이 태을주이며, 치병을 위주로 하고 있다.

현재 김계주가 창교한 무을교에서 주송하고 있는 태을주의 경우 강증산의 독창적인 주문은 아니다.

신화 선경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은 어떤가, 그것은 주문을 읊는 것이다. 이 주문은 태을신주 또는 여의주라고도 하고 그것은     

흠치흠치 태을천상원군 
흠리치아도래
흠리함리사파하    

라는 것으로, 그 대의는 “태을천상원군이여, 원하옵건대 나의 뜻대로 성취시켜 주시옵소서”라는 것이다. 이 주문은 충남 비인 사람 김경소가 50년 간 연구한 결과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지만 김경소는 이 주문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단지 “태을신서”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김경소로부터 받자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을 구제하는 주문으로 읊어서 세상을 구제할 시기가 되었다고 하여 이것을 읊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일종의 주문에 대한 생각은 이 태을주만을 읊는 것이라고 한정한 것이 아니라, 동학교조 최제우가 고안한 시천주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를 읊어도 되며, 때에따라 칠성경(도통을 위해, 육십갑자), 서전서문(대운을 얻기위해), 팔괘(도통을 위해,여기에 도통이란 신통력을 얻는것) 등도 주문으로서 읊게 한 것이다.

증산을 신봉하며 독창적인 종교단체로 발전하던 무을교가 자신들의 종지와는 상관이 없는 불교계 종단으로 문화공보부에 등록을 하게 된 것은 계묘(癸卯1963)년에 교명을 무을교로 한 등록신청 서류를 제출하였으나 3번이나 반려 되었다. 진암은 심사숙고 끝에 교명을 시의에 맞게 대한불교 미륵종으로 하자는데 동의한 신청서류를 제출하여 갑진(甲辰1964)년 음력 9월18일 등록증이 나와 진사에 성인출이라는 비결에 맞는다 하여 교인들이 많이 모이게 되었다.

1964년 당시 문화공보부에 불교종단으로 등록하면서 기존의 증산교적인 요소는 배제하고 순수 불교종단으로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다만 초기 자료에 의하면     

이 교의 이름은 불교인데 부처를 모신 불단은 없다. 1967년 탐사시 이교의 성전 「무성전」에는 천신, 지신, 인신의 삼신을 모셨었는데 천신의 표식은 중앙에 원형으로 된 13층 탑이 있었고 지신은 우측에 방형으로 된 12층탑이 있었으며, 인신은 삼각형으로된 11층 석탑이 있었다.

이 가운데 천신이 증산 천사인데 증산 천사는 도솔천궁에서 삼계대법을 맡고 천하를 철환하는 ‘무성제’라고 한다.

탑층의 총수가 36층으로 된 것은 36궁 도솔천을 의미한 것이며 도솔천궁의 주재자가 미륵불이므로 증산 천사는 곧 미륵불이라고 보았다.

이 도솔천궁은 <주역>의 8괘와 하도낙서의 중궁인 ‘무방’에 해당하므로 증산 천사는 곧 ‘무성제’라는 것이다 「명부전」에는 관운장, 진묵대사, 단군성조, 신농씨의 신위를 봉안하였으며 「운령실」에는 강태공, 최수운, 김일부, 전명숙의 신위를 봉안하었다.    

이들이 신봉하는 신위 조차 증산과 관련깊음을 알 수 있다.

1970년 김홍현은 전남 광산군 서창면 운리동에 있던 본교의 본부를 그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성봉면 하고리에 이전하여 미륵전 등 대소건물을 짓고 교단을 운영하다가 1989년 사망했다. 하고리는 구황산 연맥으로 삼대봉이 솟아 있고 삼대봉 위에 증산봉 등 7봉이 있어 증산 앞에 미륵, 미륵앞에 증산이 있는 형국이다. 또 하고리에 미륵골이 있는데 여기에는 신라 무열왕 시대에 세운 미륵불이 있다. 신앙의 대상이 미륵세존이다. 광산군에 있을 때 본부 무을궁전에는 천탑, 지탑, 인탑을 모시고 기타 다양한 신앙의 형태는 교주 김홍현이 총본부를 전남 광산군에서 전북 고창군으로 옮기면서 미륵불 신앙의 대상을 모셨다. 현재의 신앙형태을 보면 미륵불을 주불로 하고 우측에 교주 김계주, 좌측 여처자상을 모시고 있다.

김진암은 증산대성의 화천 회갑이 되는 기유 1969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증산대성게서 미륵불상에 머물으셨던 금산사에 대종을 주조하여 걸기로 주조비 360만원 가운데 180만원을 맡아 신도들의 헌성으로 이루었다.

김진암이 임술 1982년 5월 10일 고창도장에 미륵후천통세비를 건립하여 비문에 쓰기를 “증산대성 단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로 만왕만래하셨다가 원시반본의 이치로 선불(仙佛)인 미륵으로 출세 하시고 해원상생의 일맥으로 세계만방의 통권을 장악하사 대도를 광포하셨도다. 무전무혈로 사해를 일가되게 하시고 복록과 수명을 무한년에 누리게 하셨도다” 하였다.    

본 정심요결은 미륵천존임 재세시에 편집하신 책으로 후세에 여러 수도자의 수행에 있어서 올바른 수행을 하여 대도창명의 길을 열기 위함입니다.

이 책을 보시고 교우 여러분의 큰 지혜가 열려서 미륵천존님의 참다운 인간교육 이념을 계승발전시켜 큰 지혜와 광명이 온 누리에 비춰지길 기대합니다.    

위 글에서 말하고 있는 미륵천존은 증산을 의미하며, 이 책은 중산 생전에 편집된 책임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증산과 금산사 미륵불간의 ‘종교적 동격화’가 증산교의 중요한 교리로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대한불교 조계종에 소속된 사찰인 금산사가 증산교인들의 필수적인 참배장소로 인정되고 있다. 또 금산사의 미륵불이 쇠로 만든 솥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은 甑(시루 증)산이 미륵불이라는 근거가 되며, 미륵입상의 재질과 높이가 바뀐 것은 세상의 변화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결론적으로 금산사의 미륵불은 증산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30년간 영적존재로 지냈던 곳이며, 증산의 생전의 모습이 금산사 미륵불과 흡사하였고, 증산이 죽은 다음에도 그 모습을 감춘 ‘증산의 영체’로 믿어진다. 이러한 사실은 증산교가 말세의 구원에 초점을 맞춘 후천개벽신앙이라는 교리적 특성 때문에 기성종교인 불교의 미래불 신앙인 미륵불신앙을 증산교의 입장에서 새롭게 창조적으로 해석하여 이를 증산교의 구원관에 흡수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미륵계 종단은 「불설미륵상하생경」 등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데, 「대한불교 미륵종」은 1942년 김계주의 포교에서 시작하였다가 1964년 김홍현을 교주로 종단등록을 하였다. 「대한불교 용화종」은 미륵불교를 포교하던 서백일을 종주로 하여 1932년 창종되었으며 1963년 불교 단체등록을 하였다. 대한불교 법상종은 증산의 수제자 김형렬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1970년 대한불교 법상종 포교원으로 단체등록한 후 1977년 현 명칭으로 개칭하였다.

일제시대부터 그 근원을 두고 있는 이들 증산계 종단들이 불교를 표방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교리적인 이유와 함께 일제하라는 시대적인 상황도 하나의 원인이었다고 본다.

대정4년(1915)에 조선총독부령 83호로 “포교규칙”이라 하여 선포되었다. 이 포교규칙 본문 끝에는 “종교 류사단체로 인정된 단체는 본영을 준용할 수 있다”라고 하여 겨우 신·불·기 이외의 종교 유사단체도 그 활동을 허용하는 듯이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동 15조 단항에서 “전항에 의하여 본영을 준용하는 단체는 고시한다.”라고 또한 억제하고 있으니 식민지정책에 어용하는 단체만을 인정한다는 뜻일 것이다.    
▲ 미륵불을 본존으로 하고 미륵신앙 도량임을 표방한 ‘김계주의 무을교’, ‘김형렬의 미륵불교’, ‘서백일의 용화교’들의 경우 실제로 불교신앙과 무관하다. 사진은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불교를 표방하며 태동한 원불교, 용화교, 미륵불교, 무을교 등 신흥불교의 공통점    

이런 외부적인 원인에 대해 불교를 표방하면서 태동하게 된 박중빈의 원불교, 서백일의 용화교, 김형렬의 미륵불교, 김계주의 무을교 등 이들 신흥불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공통되는 특징을 가진다. 첫째, 불교로 보기 힘들 정도의 종교혼합주의 둘째, 교단의 연원을 신라나 고려시대의 불교에 두고 그 재흥과 중흥임을 과시하는 점. 셋째.교주의 카리스마적 위치와 중앙집권적 교단구성, 그리고 끝으로 신앙의 결속과 교세확장을 위해 종교내용을 신비와 영험으로 극대화하는 점 등이다.

미륵불을 본존으로 하고 미륵신앙 도량임을 표방한 ‘김계주의 무을교’, ‘김형렬의 미륵불교’, ‘서백일의 용화교’들의 경우 실제로 불교신앙과 무관하다. 이와 별도로 재래불교의 부흥이라고 주장하며 창종하는 수개의 교단마저 재래불교의 교리나 신행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이 명칭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다른 종교계통에서 분파하여 불교의 명칭을 도용하고 재래불교의 부흥이라는 교단까지 있는데 이는 참으로 불교와 전혀 관계가 없는 불교 교단내의 사교라는 규정과 함께 종교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이들이 사실상 불교와는 상관없는 여러 미신적 신앙이 불교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는 것에 대해 일차적으로 불교자체의 반성과 정화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불교에 있어 미륵과 증산에 관한 교리적인 자기 정립이 필요하다. 미륵불은 석가의 일생보처의 보살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에 이어서 다음 대의 붓다가 되기로 정해져 있는 보살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불, 현재불에 대해서 당래불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륵은 현재에는 불이 되고자 수행하는 도중에 있는 보살이지만, 이상과 같이 다음 부처로서 확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미륵불이라고도 불리워지며, 미륵은 보살상 이외에 여래형으로 조상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부처님 세상에서는 모든 비구들의 성을 慈氏라고 하느니라. 오늘날 모든 성문들이 석가의 제자라 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것은 불교적 입장에서 바라본 미륵신앙이다. 이를 근거로 증산=미륵에 대한 논의의 단초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 석가, 공자는 다 내가 쓰기 위해 내보냈느니라’라고 명시되어 있는 증산교의 교전을 보더라도 ‘강증산=미륵불’ 이라는 등식은 성립될 수가 없다. 미륵은 성불을 못한 보살의 위상이므로 부처인 석가불을 시켜서 중생을 제도케 했다는 것부터가 모순이다.

이런 자기혼란의 모습에 대해 한국의 미륵신앙이 신흥종교에 와서 결실을 보았다는 견해는 증산과 미륵을 동일시하는 증산계 종단과 대순진리회의 교리적인 부분과 동의하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미륵계가 미륵신앙의 정통성이나 종교기능을 갖지 못하고, 총체의 부재현상을 보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륵계가 취하고 있는 종교성격에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증산을 미륵불로 신봉하는 증산계의 단체가 불교종단화하려는 데에서 빚어진 것이다. 증산신앙 또는 무속신앙과 불교신앙은 분명히 다르다. 증산사상에는 선교, 유교, 기독교 및 각종의 신명과 무속이 포함된다. 따라서 증산의 미륵불과 불교의 미륵불은 본질적인 차이를 갖는다. 그러므로 미륵불이라는 명칭 하나만으로는 증산과 불교를 혼합한다면 증산신앙도 불교신앙도 될 수 없는 기형종교가 될 뿐이다. (삼국유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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