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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식의 문화산책●엘 그레코의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주문자 톨레도 대성당 사제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기사입력: 2019/03/05 [22:3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정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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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자 톨레도 대성당 사제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낭만주의 번성한 19세기에 재평가, 영적인 세계의 초월성과 신비 발견

 

스페인의 '톨레도' 하면 생각나는 화가는 단연 <엘 그레코, 1541 ~ 1614>이다. 톨레도는 엘 그레코가 반평생을 보낸 곳으로, <엘 그레코 미술관>이 있고, 주요 작품들이 톨레도 여러 성당에 흩어져 보관되어 있다.

 

엘 그레코 미술관은 실제로 살던 집 근처에다 생전과 같은 상태로 복원을 해 놓은 곳이지만, 우리가 알 만한 대표작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엘 그레코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엘 그레코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술가 중 한 명이지만, 스페인 사람이 아닌 그리스(크레타) 사람이다. 원래 이름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인데, <엘 그레코, 그리스 사람이란 뜻>로 불리는 것은 주변에서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그는 20대에 고국 그리스를 떠나 이탈리아로 가서 그림 공부를 했다. 하지만 활동이 여의치 않자 1577년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거쳐 톨레도에 정착한다. 그리고 톨레도 대성당의 사제에게서 작품을 의뢰받았다.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이다.

 

그가 톨레도에 와서 처음 의뢰받은 그림으로, 사제는 성물실 주제단을 장식할 그림을 주문했고, 엘 그레코는 2년 뒤 그림을 완성하여 대성당에 납품했다.

 

그러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주문자는 엘 그레코가 청구한 그림값인 '950 두카츠'를 다 지불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엘 그레코는 상환청구 소송을 걸었지만 실제로 손에 쥔 금액은 '350 두카츠'였다. 심지어 주문자는 그림 속의 몇몇 인물을 지워 달라고 요구했지만 엘 그레코는 그 요구를 거절했다.

 

 

무엇이 주문자의 마음을 그토록 거슬리게 했는지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자.(그림은 현재 톨레도 대성당의 성물실에 걸려 있고, 사진은 2017년 스페인 여행시 서투른 수준으로 촬영한 것으로 우측쪽의 액자도 잘려진 상태임, 사진 좌측의 일자는 사진기 조작을 잘못한 사례이니 양해 바람)

 

화면 중앙은 붉은 옷을 입은 그리스도가 차지하고 있다. 강렬한 원색은 엘 그레코가 그림의 표현력을 높이기 위해 자주 사용하던 것이다.  

주위 공간은 그리스도를 괴롭히는 사람들로 빈틈이 없다. 먼저 그리스도 뒤편에서 그리스도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붉은 모자를 쓰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보자. 그는 마치 감상자에게 그리스도의 잘못을 고자질이라도 하듯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스도 뒤쪽에 있는 두 남자는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고 있다. 이 장면은 그리스도의 옷을 누가 가질 것인지를 상의하는 군인들이 등장하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갓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한복음 19)"

 

그림을 주문했던 톨레도 대성당 측은 그리스도보다 위에 그려진 핍박자들의 위치를 문제 삼았다. 대성당으로서는 신이 자신을 핍박하는 인간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은 그림 하단으로 가 보자. 그리스도 오른쪽에 있는 녹색 옷 남자는 포승줄을 붙잡고 있다. 그 아래의 노란 옷 남자는 곧 그리스도를 매달 십자가에다 못이 들어갈 구멍을 뚫고 있다. 그리스도 왼쪽에는 갑옷 차림의 남자가 있는데, 대성당 측은 이 인물도 못마땅해했다. 이 남자는 엘 그레코 당대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갑옷 역시 당시 톨레도에서 유행하던 것이다. 성화 속에 특별한 이유 없이 현실 속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은 주문자에게 불편함을 안겨 주었다.

 

그리스도 왼쪽 하단에는 여인들이 있는데, 그들은 마리아들이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한복음 19)"

 

세 명 중 중간에 감청색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성모 마리아>. 그녀의 시선은 곧 아들이 매달릴 십자가에 가닿아 있다. 어둠 속에 드러난 처연한 표정이 어떤 심정일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 그림은 주문자를 만족시키지 못했지만, 당대에 꽤 많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당시 스페인에서 주류 권력이었던 교회와 왕궁으로부터 외면 당한 엘 그레코는 출세길이 막힌 셈이지만, 나름 톨레도에서 잘 정착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엘 그레코가 주류 미술계에서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엘 그레코의 인물들은 몸을 위아래로 늘린 듯이 기괴하게 길었고, 엘 그레코의 공간은 원근법이 사라진 비현실적인 공간이었으며, 기묘한 빛과 지나친 원색들도 문제시되었다. 후대에 가면 그의 작품은 '마니에리스모(영어로 매너리즘)'라 불리며 평가절하되었다.

 

엘 그레코의 그림이 재평가받기 시작한 때는 낭만주의가 번성한 19세기였다. 낭만주의자들은 엘 그레코의 그림에서 개인의 감정과 정서, 영적인 세계의 초월성과 신비를 발견했다. 예술가의 표현력과 독창성이 중시되는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엘 그레코는 중요한 화가로 격상된 것이다.

 

* 필자 운촌 정광식은 부산 태생. 육사(37) 졸업, 대령 만기전역 후 부산시 안보특보 및 동의대 안보학 초빙교수 역임을 하는 등 평생 군과 연관된 일을 하면서도 깊은 감수성으로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갖고 관련 글을 써왔다. 독서(史學), 여행, 산행, 영화 등이 취미인 그는 그의 블로그 내 마음을 담고픈'( https://blog.naver.com/jgs0207 )을 통해 취미를 바탕으로 한 문화산책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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