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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악(無善惡)의 대덕(大德)으로

원영진 | 기사입력 2019/03/22 [18:28]
“선악의 판단은 자연의 본성과 질서에 어긋난다”

무선악(無善惡)의 대덕(大德)으로

“선악의 판단은 자연의 본성과 질서에 어긋난다”

원영진 | 입력 : 2019/03/22 [18:28]

 

 

선악의 판단은 자연의 본성과 질서에 어긋난다

 

우리사회가 선악의 관념 이기적 개념으로 양극 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본다. 개인 스스로 이기적 선의 주체를 세워 양심을 흐리게 하고 국가도 집단적자국주의 이기적 국가관을 내세워 사회를 혼란시키고 분열과 대립을 국가적인 분쟁이 곳곳에 대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삼일신고의 말씀에 무선악(無善惡)을 교훈한다. 선과 악을 초월한 진리 관, 너와 나를 넘어 사상과 주의, 종교와 인종을 초월한 즉 선과 악을 극복한 대덕의 삶이 덕의 삶이요, 성통공완인(成通功完人)를 가르친다.

 

기독교의 선악의 기원을 보면 하느님이 창조한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한다는 선악과의 열매를 아담과 함께한 이브가 따먹고 그 남편인 아담에게 주어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면서부터 인간은 타락의 길로 추락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창세기 2:17)

 

하느님이 정한 법도를 어긴 죄()의 값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악한 사람들로 타락한 인간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은 관점에 따라 선악의 개념이 다르게 작용한다.

 

부처님의 법구경에는 마음의 번뇌에 물들지 않고 생각이 흔들리지 않으면 선악을 초월하여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다고 설()하신다. 마음의 번뇌를 깨치고 진리에 서있는 사람은 선악을 초월하여 사는 사람임을 가르치고 있다.

 

유가(儒家)에서는 이 세상의 올바른 도덕 질서를 위해서 분명히 선악기준을 세워야한다고 해서 인()의 정신을 바탕으로 예()를 강조하셨다.

 

맹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本性)을 기준으로 세우셨다. 순자는 사회규범으로서의 예를 선악 판단의 기준으로 내세웠다. 선과악의 차별 의식을 강조했다.

 

장자는 일찍이 선악판단을 부정했다. 선악의 판단은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것으로 자연의 본성과 질서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편협한 관점이라고 지적했다.

 

()의 입장에서 보면 선과 악, 유와 무, 삶과 죽음 등이 차이가 없다고 보며 그것은 한 하늘에 흐림과 개임이 있는 것과 같다고 장자는 사람들의 판단은 자기 편협한 입장이란 주장이므로 시비의 선악은 자연의 무위이화(無爲而化)로 기준을 세워 살기를 말하고 있다.

 

수세기의 역사 속에 벌어지는 종교적 분쟁 인종의 갈등 세계적인 전쟁의 시발점이 결국은 인간의 어리석은 이기적 관점에서 비롯됨이다.

 

남북의 반세기에 거쳐 처해진 분쟁도 결국 소수 어리석은 인간들의 이기적 악심에서 초래한 비극임을 부인할 수 없다.

 

윤리적 선악은 개념을 넘고 종교적 사상적 분쟁을 넘어 우리가 원초적 한얼의 본성(本性) 차원에서 모든 범죄를 극복하고 무선악의 경지에서 대덕의 지혜를 열어야한다.

 

내 마음의 무선악(無善惡)이 사회를 평안케 하고 홍익의 평안이 사랑으로 대덕으로 오늘의 자유와 남북의 평화로 이루어 감이다. (단군정신선양회장·전 대종교 총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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