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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5.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한 은사들

주형식 | 기사입력 2019/05/15 [21:32]
우리의 빛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그분께로 다시 반사되어야 한다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5.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한 은사들

우리의 빛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그분께로 다시 반사되어야 한다

주형식 | 입력 : 2019/05/15 [21:32]

여러분이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어떤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각종 물자들과 도구들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성막에서 예배 활동들을 책임지고 있는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조석으로 드리는 것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스라엘을 위하여 무엇이 제단 위에서 드려져야 하는가?(29:38-42). 어떻게 제사장들은 희생제물로부터 피를 취해야 하는가? 전제에 사용할 용기(容器)는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 이동식 성막을 옮길 필요가 있을 때, 무엇을 가지고 그것을 운반할 것인가? 민수기 7장은 성막이 성별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표하는 족장들이 제단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성소에 드린 예물들을 나열함으로써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

 

레위기 8장은 성별된 예식을 먼저 묘사하고 있다. 민수기 7장은 예물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필시 그것들이 제의적 행위보다는 성소를 위한 장비와 보급품과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소의 활동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장비들과 보급품들이 중요하였다.

 

족장들이 드린 첫 번 째 예물 세트는 덮개가 씌워진 수레 여섯과, 각 수레를 끌 소 두 마리씩이었다. 두 레위 지파의 두 분반(게르손과 고핫의 자손)들은 분해된 성막을 이곳저곳으로 수송하는 데 필요하였다. 하지만 레위 족 고핫 자손에게는 수레가 주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기구들과 기명들을 어깨에 메고 운반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7:2-9; 4장 참조)

▲ 언약궤를 메고 가는 레위인들(예루살렘 마밀라 거리 조각상)  

 

성물들을 어깨에 메고 옮기면 수레 위에서 거칠게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게 보호할 것이었다. 고대의 차량에는 고무 타이어나 부드러운 완충장치가 없었고, 도로 또한 매끄럽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라. 다윗이 처음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 제사장의 어깨에 놓인 긴 장대 위에 얹어 바르게 운반하는 대신, 수레 위에 놓고 끌고 가게 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31:9; 3:3,6,8 참조). 수레를 끌던 소들이 뜀으로써 언약궤가 휘청거리자, 웃사는 그것을 제 위치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 언약궤를 붙잡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치셔서 죽었다(삼하 6:3-7).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언약궤를 만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명하셨다. 그러므로 충분한 보호 장구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고압전류나 방사능에 접근 금지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언약궤의 지극히 거룩함은 그에게는 접근 금지였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대표하는 족장들이 드린 두번째 예물 세트는 제단 봉헌을 위한 것이었다. 제단과 연관된 거룩한 활동들을 위한 보급품들은 온 백성의 희생제물을 위한 은금 그릇과 대야(전제와 피를 모으는데 쓰는 것들을 포함하여), 소제를 위한 재료들, , 그리고 국가 전체를 위하여 드리는 공중 희생을 위한 동물들이었다(28,29장 참조). 분명 각 지파로부터 드려진 예물들에 대한 인정을 표현하고, 그 경축 기간을 연장하기 위하여, 각 족장은 12일 기간 동안 하루 한 지파씩 헌물을 드렸다(7:10-88).

 

12지파가 드린 봉헌 예물들은 값비싸고 인상 깊은 것들이었다(84~88). 그들은 성막 건축을 위한 재료들(35) 뿐 아니라 이런 것들 중 다수를 애굽이 착취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제 노역에 대한 부분적 보상으로서(1, 2, 5) 애굽인들로부터(12:25, 36) 받았음에 틀림없다.

 

어째서 여호와께서는 노예들의 땀으로 얻어진 이런 재물이 그분의 성막과 제단에 아낌없이 사용되기를 원하신 것일까? 이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예수께서는 한 여인이 매우 값비싼 향유를 가져와 그분의 머리에 부을 때에 제기된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하여 답하셨다.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26:8-13).

 

여호와께 직접 드리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무를 대신하지 않는다(25:35). 그러나 그분은 그분의 백성들이 드릴 수 있는 특별한 영예, 최고의 것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시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저 작은 한 징표로서, 그분께서 그들에게 허여하신 모든 것 가운데서 아주 작은 부분을 되돌려 드리는 것을 표현한다. 그분을 영예롭게 함으로써,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그분의 위대하심에 이끌리게 만든다. 그 여인은 그분의 희생을 예표한 그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영예롭게 했다. 이스라엘의 성소와 제단에 드리는 희생 제물들도 그러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생 제사와 기타 의식들이 거행되는 단일 성소, 혹은 성전에 그들의 예배 자원들을 집중시켰다. 오늘날 기도, 찬양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교수와 설교를 위해 지어진 많은 교회들이 있다. 우리의 교회들 또한 예배 장소이긴 하지만, 고대 성소나 성전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비싼 교회를 건축할 수도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합리적으로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시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분의 희생을 성취하셨으므로, 그분은 더욱 더 영예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네 빛을 비추라-바른 방향으로

 

빛은 단지 사치품이 아니라 인간의 많은 활동들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바로의 군대가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을 독안에 든 쥐로 만들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온 빛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왔다. 반면에 그분께로부터 온 어두움은 애굽 군대가 그분의 백성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 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 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14:19,20).

 

여호와의 영광의 구름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빛과 보호의 확신을 제공한 것은 이 때가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매일 밤 그분의 구름은 불 모양으로 바뀌어 그분의 성막 위에 머물렀다(13:21; 9:15,16,21). 어떠한 적들도 야음을 틈타 접근할 수 없었고, 공중에 맴돌고 있는 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려는 생각을 하는 어떤 사람도 겁을 먹게 만들 것이었다. 현대의 보안등과 달리 하나님의 빛은 결코 그 전력이 나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100퍼센트 신뢰 할만 했다.

 

또 다른 빛이 성막의 바깥 거실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인간이 그 불을 붙인 것이었다. 제사장은 매일 아침마다 등대의 등잔들을 손질하고, 밤새 꺼지지 않고 타도록 매일 저녁 그것들에 불을 붙였다(27:21; 30:8). 주님의 빛은 항상 타오르고 있었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기 때문이었다(121:4).

 

빛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유용한 조명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바른 방향으로 빛을 비추도록 해야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셨다. “등을 켤 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대 앞으로 비취게 할지니라”(8:2; 25:37 참조). 다시 말해서 등잔은 전 지역을 환하게 비출 수 있도록 성막의 바깥방의 중심부를 향하여 놓여져야 했다.

 

예수님 또한 우리의 삶으로부터 나오는 빛이 그 직임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4-16).

 

우리의 빛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그분께로 다시 반사되어야 한다. 요점은 관심을 우리 스스로에게가 아니라 모든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께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그들의 빛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면 실족하거나 어둠 속에서 허공을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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