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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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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
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사랑
사랑이 있는 일상의 삶이 아름다운 행복의 참모습
기사입력: 2019/09/26 [22:0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박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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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녀 지율이는 지지난달부터 일주일에 두 차례씩 발레 레슨을 받기 시작했으니, 벌써 석 달째가 된다. 화요일과 목요일 유치원 수업이 끝나면, 지율이는 놀이터 모래밭에서 자기 엄마랑 잠깐 놀아보지도 못하고 집에 돌아와야 한다. 간식을 먹고 발레 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유치원 일 학년생 내 손녀가 참 많이 바빠졌다. 그래도 그사이에 지율이는 자기 책장 앞 특설 무대에 할아버지만 가만히 불러내 앉혀놓고, 금방 날아가 버릴 듯이 우아한 자세로, 그동안 맹연습한, 마법에 걸려 백조가 된 오데트 공주의 가련한 모습을 살짝 보여주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마치 용감한 정의의 지그프리드 왕자처럼 열광하며, 숨죽이면서 우리 지율이 공연을 감격스럽게 관람하기도 했다

 

유치원이 끝 날 시간이면 지율이 엄마는 정신없이 바쁘다. 숨도 쉬지 않고 몸을 놀려 집안일을 해놓고 나간 후, 얼마큼 지나면 귀에 익숙한 꾀꼬리 지저귀는 소리가 멀리서 아련히 밀려온다. 지율이가 신바람이 나 날갯짓하며 부르는 노랫소리일 것이다. 보일 듯 말 듯한 무지갯빛 아이 율동이 내 눈앞에 아른대는 듯싶을 때, 귀를 스치며 들릴 듯 말 듯 이어지는, 높고 맑은 천상의 찬연(燦然)한 울림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지율이는 유치원 수업이 끝나고 마중 나와 기다리는 엄마랑 발레 학원에 안 가는 날은, 근처 놀이터 모래밭으로 간다. 깔깔거리며 놀다가 엄마 팔을 꽉 붙들고 산골 옹달샘에서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소리처럼 재잘대며 껑충껑충 뛰면서 돌아온다. 꾀꼬리가 목청껏 노래하며 하늘 높이 치솟듯, 우리 지율이는 날아오를 듯한 발레 포즈를 선보이면서, 티 없이 맑고 고운 소리로 흥이 나 노래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도 평소처럼 탄성을 지르는 지율이의 들뜬 기분이 감지되는 듯싶었다. 모든 것이 신비롭기만 한 지율이에게 엄마는 늘 맞장구치며 추임새를 넣어주는 일에 정신이 없는 듯했다. 둘이 집안으로 막 들어서기 전까지는 언제나처럼 마찬가지였던 듯싶다. 그런데 다정하기만 하던 모녀 둘은 조금씩 목청을 높여가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할 말이 있어!"

"씻고~!"

 

둘 사이의 분위기가 점점 예사롭지 않았다. 사랑하는 내 손녀 목소리는 더 날카롭게 울부짖듯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아마 조금 더 놀다가 씻는다는 말인 듯싶었고, 엄마는 집에 들어왔으니 우선 씻고 놀자는 말인 듯싶었으나, 내 어두운 귀에 명확하지는 않았다.

 

"아빠한테 이를 거야!"

"일러!"

 

얼마 동안 공방이 이어지더니, '' 하고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는 괜히 '새우 등 터질까' 아무 소리 못 하고 할머니 옆에 있는 자기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은 책장만 속절없이 넘겨댔다. 한참 고요해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아무런 생각 없이 차분한 마음으로, 앉은뱅이책상에서 막 자세를 다잡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씻으려고 옷을 다 벗은 가여운 내 손녀 지율이가 훌쩍거리며, 손을 올려 마른 눈을 닦으면서 방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왔다.

 

"할아버지! 나 목욕하려고 옷 벗었는데요, 엄마가 나가버렸어!"

 

내 손녀 지율이는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겼다. 할아버지 볼을 자기 볼로 문지르며, 꼭 껴안고 한참 동안 흔들어대더니, 엄마 좀 불러 달라며, 낮고 느릿느릿, 은근하고 애처롭게, 부탁한다.

 

"할아버지! 나 목욕하려고 옷 벗었는데, 엄마 나가버렸어. 엄마한테 전!"

 

집에서는 그토록 냉랭하게, '아빠엄마는 귀중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할아버지는 귀중하지 않아 절대 사랑하지 않는다'던 우리 지율이가 별안간 할아버지 품 안으로 뛰어 들어와 푹 안겼다. 귀를 당기며 볼을 비벼대더니, 할아버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간절히 도움을 요청한다. 엄마에게 전화 한번 해 달라고. 마치 이 세상 구세주는 할아버지 한 분밖에 없다는 듯이. ! 감미로운 분홍빛 행복은 인내하며 기다리는 사람 편인 모양이다!

 

나는 우리 지율이를 꼭 껴안고 급히 딸에게 전화했다. 지율이가 잘 들을 수 있도록 외부 스피커를 가장 크게 틀어놓고, 지율이 엄마에게 전화했다.

 

"! 세상에! 우리 지율이는 깨끗이 씻으려고, 혼자 옷 다 벗었어!"

 

나는 목청껏 지율이의 대단함을 거듭 강조하며 딸과 통화했다. 그리고 나서 지율이와 할아버지는 여전히 서로서로 더 꼭 껴안은 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조금 지나 지율이 엄마는 하얀 장미보다 더 활짝 핀 미소를 커다랗게 지으며 들어섰다. 그리고 모녀는, 십여 분 떠나있던 일이, 흡사 십여 년 이별이었던 듯 떨어질 줄 모르고 오래오래 포옹했다. 모녀는 이제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는 듯 여러 차례 뽀뽀까지 하면서, 해후(邂逅)를 크게 기뻐하며 즐겼다.

 

사랑이 있는 일상의 삶이 아름다운 행복의 참모습   

 

사랑은 애달픈 석별(惜別)의 아픔을 겪어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고마운 만남의 기쁜 정감情感)인 듯싶다. 사랑은 자신의 고집을 먼저 내려놓고 양보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에게만 돌아오는 아름답고 감미로운 마음의 행복한 상태를 말하는 모양이다. 사랑은 소리 높이 내지 않고, 애처로운 마음 숨겨가며 인내(忍耐)하며 베풀 줄 아는 깊은 속마음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나는 사랑이 있는 일상의 삶이 아름다운 행복의 참모습처럼 느껴진다. 먼저 손을 내밀고, 오래오래 기다려주고, 일찍 양보하고, 더 많이 인내하고, 댓가 없이 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진정한 행복일 듯싶다. 스스로 양보할 줄 아는 이쁜 손녀와 인내로 모두를 품을 수 있다고 알고 있는 내 딸을 나는 무지무지하게 사랑한다. 사랑이 진정한 행복인 듯싶다.

 

필자 박길수는 이 시대를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인물이다. 41년 결혼생활 중 4년여 전 느닷없는 아내의 뇌출혈로 불행이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의식없는 아내를 편안한 집에서 보살피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땄다. 치료비와 생활비, 그리고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장애인 도우미 자격증도 따서 출퇴근한다. 항상 아내 곁을 지키는 아버지를 위해 딸과 사위, 그리고 누구보다 예쁜 손녀가 합류했다. 그는 불행한 생활일 듯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구원도 받는다. 그리고 개인 블로그 박길수의 일기’(https://m.blog.naver.com/gsp0513)에서 그러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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