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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17. 미래의 정결을 위한 대비책
그리스도의 피는 영생을 위한 도덕적 정결을 제공
기사입력: 2019/09/26 [22:2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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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을 때에는 대규모 공급이 필요하다. 한번 만들어 놓고 오래 쓰려고 한다면 만들 때 많이 만들어야 한다. 사체와 접촉한 오염으로 인한 신체의 부정을 다뤄야 할 필요가 있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이렇게 하였다. 제사장의 지시 하에 그들은 오랫동안 쓸 수 있도록 희생제물의 재를 한꺼번에 많이 만들었다. 나중에 그들은 얼마의 재를 취하여 거기 물을 붓고 그 혼합물을 사체와의 접촉이나 근접으로 인해 오염된 사람들과 물건들에 뿌렸다(19).

 

앞서 민수기 8장에서 이미 사체의 오염으로부터 레위인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한 속죄의 물”, 정결의 물을 다룬바 바 있다(7). 하지만 재와 물의 혼합물을 만드는 것에 대한 명령이 민수기 19장에 나타난다. 이런 조치는 최근에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해 수많은 시체들이 생겨난 민수기 이야기의 전개를 볼 때에 충분히 이해가 된다(14;16;17).

 

재를 얻는 절차는 신체의 제의적 부정으로부터 사람과 사물을 정결케 할 특별한 목적을 가진 붉은 암송아지 제사(19:9)를 필요로 하였다. 새 개역 표준성경(NRSV: Th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은 이를 정결 제물”(purification offering)이라고 바로 번역하였다. 하지만 제임스왕 역(KJV), 신 제임스 왕 역(NKJV), 뉴아메리칸 스탠다드 성경(NASB), 그리고 새 국제역 성경(NIV)은 이를 죄로부터의/죄를 위한 정결로 부정확하게 변경하였다. 이러한 오역은 시체로 인한 오염 발생 그 자체가 일종의 죄의 행동,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위반이라고 가리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체에 의한 오염, 비늘 모양의 피부병, 생식기로부터의 유출 등과 같은 신체의 제의적 부정은 자주 인간의 선택과는 상관없는 물리적 과정들을 통하여 발생하였다(12-15장 참조). 그러므로 죄를 신체의 제의적 부정과 동일시하려는 이같은 혼동된 구분은 죄는 그저 항상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에 관하여 어쩔 도리가 없다는 그릇된 암시를 주게 된다. 위대한 설교가 찰스 스펄전도 이러한 붉은 암송아지 예식을 잘못 해석하였다.

 

우리가 내내 그저 죄를 짓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성경의 균형진 관점을 잃고 말 것이다. 한편으로는 마틴 루터가 복음을 이해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절망에 빠져서 우리의 모든 시간을 죄를 자백하는데 보낼 수 있다. 아니면 반대로 우리의 행동들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고 진정한 회개없이 값싼 은혜로 우리는 언제나 의롭다고 자기 위안을 삼으며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양쪽 극단 모두 필요치 않다. 죄를 짓는 것은 습관이 될 수 있지만, 죄는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는 신체적 과정들과 같이 자동적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는 것과 같은 그런 류의 실수를 저지를 경우, 우리의 선택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다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한다 (4:27,28; 4:17 참조). 그 시점에서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한 용서를 얻도록 우리에게 자백할 기회를 주신다(요일 1:9-2:2).

 

붉은 암송아지를 도살하고 불사르는 일은 그 기능에 부합되었다(19:1-10). 정결 제사였지만 불결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진영 밖에서 행해졌다. 그것은 희생 제물이었기 때문에 제사장이 집전을 해야 했다. 그는 평소 희생 제사 드리는 곳과의 연결을 확립하기 위하여 성소를 향하여 피를 뿌렸다.

▲ 미켈란젤로의 ‘노아의 희생제물’    


희생제물은 암소였는데, 희생제물로 드려질 수 있는 가장 큰 동물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공동체 전체의 개인들에게 소량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많은 양의 재를 공급할 큰 동물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가장 큰 동물인 암소가 선택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백향목을 추가함으로써 재의 양을 증가시킬 것을 명령받았다(19:6).

 

향기로운 백향목은 정결을 위하여 적절하였는데, 특별히 그것은 붉은 색이 될 수 있었다. 붉은 색은 피의 색을 상징한다. 암송아지의 붉은 색과, 불에 함께 넣어진 홍색 실(6) 또한 피와의 연관성을 높여주었다. 재는 탈수(脫水)된 피의 기능을 할 것이었으며, 피처럼 뿌려질 수 있는 액체로써 복원하기 위하여 나중에 물이 첨가될 것이었다(12,13,17-20).

 

이 유일무이한 붉은 암송아지 예식의 또다른 한 측면이 이 본문을 해석하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즉 나중에 이 잿물을 뿌린 정결한 사람 뿐 아니라 그 암송아지를 사르고 그 재를 저장하는데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그들의 역할로 인해 부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7,8,10,21). 역으로 잿물은 부정한 사람들을 정결케 했다(12,19). 왜 같은 물질이 사람들에게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가?

 

재는 부정한 사람과 물건들로부터 불결을 흡수하였고, 그리하여 순결한 사람이 그 재를 만졌을 때, 혹은 그 재를 생산하는데 참여했을 때 그 사람은 재로부터 오염을 흡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지저분한 사람이 목욕을 하고 깨끗해진 다음에 깨끗한 사람이 그 욕조에 들어간다면 그 깨끗한 사람은 더러워지게 될 것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붉은 암송아지 예식에서는 깨끗한 사람은 정결케 하는 물질이 불결한 사람과 접촉하기 전에도 이미 불결하여 졌다. 그것은 지저분한 사람이 목욕할 물을 만짐으로써 정결한 사람이 불결해 지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것은 매우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상징적인 예식의 세계는 물리적인 원인과 결과의 제한성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것은 더 큰 실재를 가리키며, 그것이 희생제물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희생을 가리킨다.

 

암송아지 예식만이 그리스도의 희생이 십자가 사건 이후에 정결을 필요로 할 많은 사람을 위한 그 정결 수단을 제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거기에는 우리도 포함된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으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이 땅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분께서 하신 일을 통하여 영생을 받을 수 있는가?

 

그 답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한 충분한 준비를 하셨고, 그러고 나서 그분은 하늘에서의 그분의 대제사장 봉사를 통하여 그 유익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신다는 것이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가 그저 현세에서 우리의 신체의 제의적 부정을 해결해준데 반하여, 그리스도의 피는 영생을 위한 도덕적 정결을 제공한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9:13,14).

 

재를 준비하고 그것을 뿌리는 행위의 결과로 부정해진 사람들의 봉사를 통하여 부정한 사람들을 정결케한 이 붉은 암송아지 예식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또 다른 심오한 측면을 드러낸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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