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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18. 자비의 힘
친절로 적들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접근 방식
기사입력: 2019/10/02 [14:54]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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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9장이 사체 부정 처리에 관한 지시 사항들을 제공한 후, 20장은 더 많은 사체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죽는 사람이 공동체의 많은 사람이 아니라 미리암과 아론이었다. 모세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그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 전에 죽으리라는 선고를 받았다. 애굽을 떠난 성인들 중 오로지 갈렙과 여호수아만 끝까지 살아남아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었다(14:30; 26:65).

 

미리암이 먼저 죽었다(20:1). 성경은 그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받지 못한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과거 하세롯에서의 그녀의 불충성 때문이었으리라(12).

 

미리암이 죽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없다고 모세와 아론, 특히 모세를 비난하였다(20:2). 이것은 그들이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 르비딤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의심을 품었지만, 그분께서는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친 후에 즉시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게 하심으로써 그분의 임재를 보여주셨다(17:1-7).

 

이번에 백성들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그들의 언쟁에 또 다른 추한 모습을 추가하였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20:3-5).

 

그들은 믿음에 대해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었고, 그저 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여타 반역자들과 운명을 같이 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16,17). 그들의 말들 가운데서 다시 한 번 다단과 아비람의 증오 섞인 태도가 메아리친 것이다(16:13,14).

▲ 제라드 호에(Gerard Hoet, 1648-1733)가 동판화로 그린 성경삽화 연작 ‘성막을 세워 봉헌하다’. 백성들은 모세의 명령에 따라 성막을 세우고,물두멍과 제단을 제 위치에 놓았다. 모세와 아론은 주님의 명령대로 확인하기 위해 계약 궤를 살펴본다.    


심란한 가운데 어찌할 바를 몰랐던 모세와 아론은 성막으로 가서 엎드렸다. 그러자 이전 반역의 경우들에서처럼(14:10; 16:19,42)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다(20:6). 이전에 국가적인 반역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형벌로 말미암아 거의 절멸할 뻔한 위기를 맞았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도 매우 불길해 보였다. 이번에 일어난 것은 우리가 백번이고 마땅하다고 기대할 어떤 것, 즉 많은 사람 혹은 백성들 모두의 죽음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나타나셔서 지팡이를 취하고, 백성들을 모으고 바위를 향하여 명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결과 바위는 모든 백성과 그들의 가축들에게 줄 물을 기적적으로 낼 것이었다.

 

그게 다인가? 백성들에게 아무런 형벌도 내리지 않는? 그저 르비딤에서 있었던 기적의 반복인가? 악을 선으로 갚는 순수한 자비인가? 정확하다. 맥스 루케이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결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놀란 적이 없지만, 그분의 은혜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신이 멍하다. 하나님의 심판은 내게 문제된 적이 결코 없다. 사실 그것은 언제나 옳아 보였다. 소돔에 내린 벼락들. 고모라에 내린 불. 하나님, 잘 하셨습니다! 홍해가 애굽인들을 삼켜 버렸다. 자업자득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뻣뻣해진 목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40년 동안의 방황을? 나 같아도 그렇게 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징계는 받아들이기가 쉽다. 이해하기에 매우 논리적이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고, 적절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 자비로운 주 하나님)란 찬미를 부르기를 좋아하지만, 그것을 당연시 하고 있지는 않는가? 은혜를 감탄스럽도록 놀랍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과분하고, 그러므로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 하나님이 그것을 주시는가? 한 가지를 말하자면, 자비는 그분의 사랑의 품성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34:6,7). 또 다른 것을 말하자면, 자비는 완고한 마음의 저항을 깨뜨릴 엄한 사랑의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19-21).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복수를 수행할 권리와 힘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분히 보여주셨다. 백성들이 이것을 깨달았으므로 그분께서는 백성들의 적대적인 태도를 예상치 못한 친절로 대하심으로써 되갚으시는, 시내산 이전의 접근 방식으로 돌아가셨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지금 그분의 은혜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젊은 세대들을 가르치시는데 초점을 맞추고 계셨다.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불쾌한 행동을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 친절로 적들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접근 방식은 오늘날도 여전히 효력을 나타낸다. 필자는 예전에 읽었던 한 기사가 문득 떠오른다. 네브라스카 주 링컨에 살고 있는 유대인 찬양지도자와 그의 아내가 음란하고 반유대적인 전화 공세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 전화는 인종차별단체인 쿠 클럭스 클란’(KKK: Ku Klux Klan)의 한 지도자로부터 온 것이었다. 부부는 그들을 향해 이런 식으로 증오를 퍼부은 범인을 찾기 위하여 조사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전화를 건 못된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들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 사람은 장애를 갖고 있었고 식료품을 사기 위해 쉽게 외출할 수도 없었다.

 

이 유대인 부부는 그 KKK 지도자를 위하여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문을 연 그 사람은 너무 놀라서 그들을 집안으로 초청하였다. 부부는 계속 방문했고, 그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의 우정을 받아들였다. 그를 파멸시키기 위하여 찾는 대신에, 그들은 그의 유해한 태도를 뿌리 뽑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앨라바마 주 주지사인 조지 월러스(George Wallace)는 미국의 흑인평등권 요구 운동을 방해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를 암살하려고 했던 사람의 총에 맞아 그는 정상적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서 정치가로서의 그의 경력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의 생애의 말년에 그가 자신을 돌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를 간병했던 그 흑인이 너무도 부드러운 친절로 그를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그는 인종차별주의를 포기했다. 편견은 이 같은 사랑의 분위기에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모두 사람은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은혜를 모르고 터무니없이 우리의 원수가 되기를 고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편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라고 기도하고 나서, 우리는 그들을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께 의탁할 수 있다. 우리는 인과응보의 복수가 수행되도록 하는 일의 책임을 스스로 떠맡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일을 완벽하게 하실 수 있으시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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