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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팥죽

박길수 | 기사입력 2020/01/06 [09:53]
다 잘 살 수는 없다해도,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라면…

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팥죽

다 잘 살 수는 없다해도,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라면…

박길수 | 입력 : 2020/01/06 [09:53]

새해부터 출퇴근 시간이 두어 시간가량 늦어졌다. 여유롭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추운 날씨에 하루 생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시내 보행로는 활기를 띠는 듯싶다. 귤과 사과 한 움큼씩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바닥에 언제나처럼 진열하고 있는 나이 든 아주머니 모습도 여전하다. 반 포대도 채 안 되는 땅콩을 들고나와, 복잡한 버스 정류장 옆쪽 바닥에 색바랜 회색 보자기를 깔아놓고, 그 위에 나무 되째로 담아놓은 채 손님을 기다리는 장년 남자 얼굴이 더 수척해진 듯싶다. 한 번이라도 팔기는 했는지 괜히 궁금해진다.

 

조금 올라오니, 대로 8차선 네거리 바로 앞쪽과 좌측 횡단보도가 시작되는 번잡한 차도 쪽 귀퉁이에, 오늘 아침 커다란 솥 두 개와 간이 조리대가 놓여있다. 가스 불판 위에 놓인 솥 하나에서는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팥죽을 끓여 팔려고 한다고 했다. 도대체 시내 중심 대로변 보행로를 시골 장터처럼 생각했을까 은근히 심란했다. 지난 동짓날 못 팔고 남은 재료를 들고나왔단다. 한 그릇에 오천 원씩이고, 국산 팥이라 맛있을 거라고 했다. 우리 국산 쌀과 팥으로 만든 팥죽은 먹어본 사람이 또 찾는다고 그는 열변을 토했다. 한겨울 반소매 티 차림의 초라한 모습에 그만 나는 할 말을 잊어버린 채 걱정스럽기만 했다.

 

오후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서, 내 마음은 괜히 조급해졌다. 솥에 가득 끓고 있던 팥죽이 얼마나 팔렸을까. 팔렸으면 좋겠는데. 사람들이 놀라면서, 의아한 눈초리를 하며 비켜나던데. 아주머니들은 그래도 관심을 보였다. 불쌍하다고 생각했을까. 국산 쌀과 팥으로 만든 진짜 팥죽이 한 그릇에 오천 원이면 저렴할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 인도에서 대낮에 팥죽을 사 먹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있을 수도 있겠지. 온종일 마음만 어수선하고, 나는 아침에 본 팥죽 장사 생각을 도저히 떨칠 수가 없었다. 동짓날 팔려고 희망에 부풀었는데, 팔지 못하고 남은 것 어떡하던 처리 하고 싶었을 것 같다.

 

퇴근길을 나는 정신없이 내달았다. 혹시 다 팔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짐을 싸 집으로 돌아가고 안 보인다면 좋겠다. 집에 자기를 기다리는 아내가 없다니 참 안됐다. 그래도 다 팔고 만족해 집에 돌아가고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 사거리 교차로 앞까지 언제 도착한 지 모르게 달려온 듯싶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앉아있는 모습을 멀리서 보았다. 순간 내 가슴이 철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절반 정도는 팔았겠지. 그래도 쫓기지는 않았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그 사람 앞에 갈 때까지 온갖 생각으로 오락가락 정신없었다. 마치 오랜 구면처럼 "사장님! 팥죽 다 팔았어요?" 하며 스스럼없이 큰 소리로 외치며 그에게 다가갔다.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한 그릇도 못 팔았단다. 솥 안에는 다 식은 팥죽이 그대로 있었다. 국산 팥으로 만든 맛있는 팥죽도 정월달 영하의 도로변 보도에서는 안 팔리는 모양이다. 조리대 한쪽에 힘없이 앉아있는 남자는 마치 병자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에 뇌 시술도 받았단다. 일회용 용기에 담아 아침부터 놓아둔 식은 팥죽 한 그릇을 내가 오천 원 주고 여덟 시간만에 처음으로 개시한 것이다. 그 자리에 서서 그를 마주 보면서 나는 팥죽을 맛있게 먹었다. 마치 처음 먹어본 별미처럼 감탄하면서. 사람들이 이방인이라도 보는 듯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간다. 남은 팥죽이 걱정됐으나,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 된다니 별문제 아닌 듯싶었다. 이제 패딩 잠바는 걸쳤으나 그의 젖은 행주를 든 맨 손이 참 시려 보였다.

 

집에 들어서니 지율이 엄마가 묻는다. "아빠! 밥 빨리 줄까?" "아니야, 오다가 배가 고파 팥죽 한 그릇 먹었어." "그래! 잘했네. 그럼 지율이 재우고 밥 줄게." 싹싹한 내 딸은 꼭 자기 엄마 닮았다. 행여 아빠가 굶고 다닐까 무척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나는 살갑고 이쁜 내 딸네 식구와 나만 기다리는 내 아내가 집에 있다. 돌아올 집이 있고, 걱정하며 기다리는 아내와 딸이 있는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이다. 분홍빛 행복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정말 아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에 팔지도 못하고 다 식어버린 팥죽 한 솥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갈 그 사람 모습이 아른댄다. 참 안 됐다. 내일 그 사람이 안 나오면 좋겠다. 당장 병원에 가 보도록 그렇게 신신당부 했는데. 나이들어 차거운 길거리에 장사 나오는 사람이 없다면 좋겠다. 다 잘 살 수는 없다해도,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필자 박길수는 이 시대를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인물이다. 41년 결혼생활 중 4년여 전 느닷없는 아내의 뇌출혈로 불행이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의식없는 아내를 편안한 집에서 보살피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땄다. 치료비와 생활비, 그리고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장애인 도우미 자격증도 따서 출퇴근한다. 항상 아내 곁을 지키는 아버지를 위해 딸과 사위, 그리고 누구보다 예쁜 손녀가 합류했다. 그는 불행한 생활일 듯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구원도 받는다. 그리고 개인 블로그 박길수의 일기’(https://m.blog.naver.com/gsp0513)에서 그러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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