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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조선왕릉 조영의 사상적 배경●백봉산 조성된 고종의 홍유릉
황제릉 모습과는 달리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지닌 홍유릉
기사입력: 2020/02/29 [11:56]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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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릉 모습과는 달리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지닌 홍유릉 

 

홍유릉이 황제릉으로 조성되었다. 조선총독부, 2권에 의하면 홍릉을 택지한 사람이 고영희(高永憙)라 하며 당시 친일파로 1910년에 매국 친일파의 한사람이다. 이들은 우리 산천 혈지에 쇠말뚝을 박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풍수적으로 분석하면 홍유릉의 혈지는 흠결이 많은 지역이다. 고종실록 40, 고종 37621일 양력 4번째 기사의 내용을 보면

 

  “폐하께서는 깊이 살피시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널리 듣고 물은 다음 확고하게 결단을 내시어 천릉(遷陵)의 예를 잘 거행함으로써 하늘의 마음을 어기지 마시고 신하와 백성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마소서”(고종실록 40, 고종 37621일 양력 4번 째 기사)

 

홍릉의 자리가 좋지 못하기 때문에 옮길 것을 이재순이 청한 내용이 있다. 홍릉은 묘적산 아래 을좌신향으로 고종과 명성왕후의 합장릉이다. 유릉은 유좌묘향으로 동봉 삼실릉으로(순종과 순명왕후, 순정왕후)조성된 릉이며 명당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5대 불가 장지 중의 하나인 과룡처로 보이기도 한다

 

풍수지리적 분석

 

포천시와 가평군 경계에 있는 한북정맥(漢北正脈. 223.6km)의 포천 동쪽 30리 지점의 가평군 하면에 있는 운악산(雲嶽山 935m)에서 포천 동쪽 10리 지점에 있는 수원산(水源山 710m)으로 한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천마지맥(天摩支脈)이 형성된다.

 

포천시 내촌면과 가평군 상면 경계의 주금산(鑄錦山 814m)에서 한줄기가 동남쪽으로 뻗어 시루봉(670m) 서리산 (832m), 가평군 상면과 남양주시 수동면 경계의 축령산(祝靈山 886m)으로 내려가고 다른 한 줄기는 남쪽으로 남양주시 수동면과 진접면 경계의 철마산(711m)으로 내려와서 동쪽으로 머리를 돌리어 괘다리 고개에서 다시 남쪽으로 뻗어 배랭이고개를 넘어 양주에서 동쪽 60리 지점에 있는 천마산(天摩山 810.2m)이 되어 왕릉의 종산(宗山)이 된다.

 

천마산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남쪽으로 화도면과 호평동 경계의 마치(馬峙)고개를 넘어 마석터널을 지나 백봉(柏峰 587m)에서 우뚝 솟아 뭉치니 왕릉의 주산(主山)이 된다.

 

1931년 무라야마지쥰이 편찬한 조선의 풍수에서는 홍릉의 주산은 묘적산(妙寂山)이라 하였고, 고종실록고종 광무 5(1901) 421일 조에도 홍릉의 주산(妙積山으로 표기, 묘적사(妙寂寺)의 고요할 적()자를 쌓을 적()자로 썼음)이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양주목 불우(佛宇)조에는 신라 때 학율대사가 창건한 묘적사(妙寂寺)가 양주 동쪽 70리 지점(여지도서사찰 조에는 80리라 하였음)에 있는 묘적산에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백봉(柏峰)의 원래 이름은 묘적산으로 추정된다. 또 한 줄기는 천마산에서 남서쪽으로 우선룡(右旋龍, 산줄기가 오른쪽으로 뻗음)하여 내려가서 간인방(艮寅方, 북쪽에서 동쪽으로 45~60도 방향)으로 뻗어 내려 봉인사(奉仁寺) 부도암 뒷산 430고지가 주산(主山)이 되어 갑묘방(甲卯方, 동쪽에서 북쪽으로 15도 방향)에서 입수(入首, 산줄기가 혈처로 들어옴)하는 갑좌경향(甲坐庚向, 서쪽에서 남쪽으로 15도 방향) 또는 묘좌유향(卯坐酉向, 정서향 방향)이다.

 

안산(案山, 바로 혈처 앞에 있는 작은산, 近而小者稱曰案)은 혈 처를 오른쪽으로 휘어 감싼 백호 안산이 되고 안산 너머에는 수락산(水落山 640m), 불암산(佛巖山 509m), 도봉산(道峰山 740m), 삼각산(三角山 836m) 등 나성(羅星)이 펼쳐있으며 안수(案水, 바로 혈 처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는 임방(壬方, 북쪽에서 서쪽으로 15도 방향)에서 득수(得水, 혈청에서 처음 보이는 개울물) 하여 혈 처 앞에서 활처럼 휘감아 돌아 흘러서 병방(丙方, 남쪽에서 동쪽으로 15도 방향)으로 파문(破門, 破水, 水口, 혈처에서 개울물이 흘러 나중에 보이는 물, 득수와 파문을 줄여 득파라 함)이 되는 형국이 되어 사릉천에 합수한다. 백봉에서 좌선대룡(左旋大龍)으로 내려와서 손진방(巽辰方, 동쪽에서 남쪽으로 30~45도 방향)으로 떨어진 산줄기가 을진방(乙辰方, 동쪽에서 남쪽으로 15~30도 방향)에서 약간 손방(巽方, 남동 방향)으로 비슬거려 뻗어내려 묘을방(卯乙方, 동쪽)으로 머리를 바꾸어 묘방(卯方, 동쪽)에서 입수(入首)하는 을좌신향(乙坐辛向, 서쪽에서 북쪽을 15도 방향)에 점혈(點穴)하였다.

 

조선의 풍수홍릉조에 의하면 산수형국<산형도라고도 함, 세조 3(1457) 98(己巳) >은 매화꽃이 땅에 떨어진다는 매화낙지형국(梅花落地形局)으로 고종황제가 생전에 풍수사 김광석(金光石), 참봉 전기응(全基應), 주운한(朱雲漢), 제갈형(諸葛炯), 고종의 비서승 구본순<具本淳, 黃玹지음매천야록광무5년 조>등에게 의뢰하여 왕릉 터를 선정하였다고 하나 고종실록고종 38(1901) 418일 상지관(相地官) 최헌규(崔獻圭), 김윤현(金潤鉉), 유정균(柳正均), 이영석(李榮錫), 강영조(康永祚), 박하준(朴河駿) 6명이 상지(相地)하였다고 하였다. 장서에 이르기를 매화낙지형국에 묘소를 쓰면 당대 또는 3대에 발복하고 만대에 영화를 누린다는 문구를 인용하여 위에 명기된 풍수사들이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이구동성으로 극찬한 것을 수용하여 광무 4(1900) 한양조씨, 능성구씨, 고령신씨, 나주박씨 등 문중산소 및 왕실 종친 묘 등 2만 여기의 민초들의 묘를 꽃잎 떨어지듯 파헤치고 (매천야록광무 4년 조) 왕릉을 선정하게 된 것으로 보이나 꽃이 피어 있는 동안만 천하를 호령하는 영화를 누렸지 지금 왕손들은 비실비실거린다.

 

오호(嗚呼)통재라. 안산(案山)은 군장마을 뒷산 100여 미터 야트막한 구릉으로 보이고 백호가 금곡중 고교 뒷산으로 뻗어 내리고 청룡은 한양 벌곡로 뻗어 내려와 왕릉을 감쌌다. 수국(水局)은 돌멩이 고개에서 발원한 물이 간방(艮方, 북동 방향)에서 득수(得水)한 물과 어룡 골에서 발원한 물이 홍유릉 주유소 근방에서 합수, 우 선수(右漩水) 하여 왯말아래 한양 절골에서 발원한 물이 병방(丙方, 남쪽에서 동쪽으로 15도 방향)에서 득수 좌 선수(左漩水) 하여 신방(辛方, 서쪽에서 북쪽으로 15도 방향)에서 합수하여 건방(乾方, 북서방향)으로 파문(破門)하여 경방(庚方, 서쪽에서 남쪽으로 15도 방향)으로 나가 곤방(坤方, 남서쪽)으로 돌아 앞들 연못을 거쳐 금곡천으로 흘러가는 지형이다. 홍유릉은 황제릉으로 그 모습과는 달리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릉이다.

▲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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