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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⑧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0/03/03 [11:08]
자이나교와 아힌사(비폭력) 사상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⑧

자이나교와 아힌사(비폭력) 사상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0/03/03 [11:08]

 

▲ 자이나교 사원에 걸려 있는 그림과 ‘아힌사 파라모 다르마(비폭력은 최고의 덕목이다)’라는 표어.  


자이나교와 아힌사
(비폭력) 사상

 

인도에서 생긴 큰 종교라면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이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동시대의 종교이다. 불교보다도 더 역사가 오랜 종교이기도 하다.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기원전 599기원전 527)는 붓다 석가모니와 동시대 인물이다. 마하비라는 '위대한 영웅'으로, 한역(漢譯)에서는 대웅(大雄)이란 뜻을 갖고 있다. 우리가 절에 가면 석가모니 부처님 상을 봉안해 놓은 곳이 대웅전이다. 부처님도 대웅(大雄)이기에 대웅전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처럼 자이나교와 불교는 가까운 이웃종교로서 인도 고대시대의 사상과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석가모니와 공통점은 브라만교에 만족하지 못하여 스스로 신종교를 창시한 점이 같다.

 

마하비라는 30세에 출가하고, 12년간 고행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 72세로 죽을 때까지 갠지스 강 유역 각 도시에서 교화 활동을 행하였다. 그의 교리는 물질을 영혼으로부터 멀리하고 살생을 금하였다. 철학적으로는 만유(萬有)를 생명과 비생명으로 분류해서 다원적 실재론을 전개한 데에 그 특색이 있고, 그 논증에는 일종의 상대론을 이용, 후에 7종의 원리를 세워서 세계의 경과를 설명하였다. 불교와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많다. 특히 아힌사(비폭력, 不害) 관념은 똑같다고나 해야 하겠다.

 

자이나교의 아힌사 사상은 자이나교의 윤리와 교리의 초석을 형성하는 기본 원칙이 되었다. 아힌사는 비폭력 비손상 즉 모든 생명체에 해를 끼치려는 의도가 없는 생명존중 사상이기도 하다. 자이나교가 채식을 하고 비폭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이 아힌사철학에 기인하는 것이다.   

▲ 인도 라자스탄의 한 자이나교 사원에 봉안된 가부좌(蓮花座연화좌)를 한 마하비라 상.    

 

자이나는 지나(승리자)에서 온 말이다. 타인을 해하여 어떤 목적을 얻기 위한 폭력의 행사가 아닌, 스스로를 이긴 자의 승리자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면의 승자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자이나교에서는 타인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손상시킴으로써 영혼에서 해방을 얻는 승자임을 지향한다.

 

아힌사 철학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 식물, 미생물 및 생명 또는 생명 잠재력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아힌()사의 개념을 확장한다. 모든 생명은 신성하며 모든 것이 최대의 잠재력에 두려움 없이 살 권리가 있는 것이다. 아힌사는 육체적 폭력이 없음을 나타낼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폭력에 빠지려는 욕구가 없음을 나타내는 생명인권존중사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이나교에서는 극단적인 고행이 수반되기도 한다. 이 점이 불교와 달라지는 점이다. 불교는 수행에 있어서도 중도주의를 택한다. 너무 극단적인 고행은 옳은 수행방법이 아니라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가르쳤다. 하지만 자이나교에서는 심지어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맨몸 수행을 하기도 한다. 하루에 한줌의 먹을 것과 한줌의 물만을 마시고 물도 철저히 걸러내서 어떤 미생물도 없는 정화된 물만을 마신다. 움직일 때도 발을 땅에 디디기 전에 빗자루로 먼저 쓸고 지나간다. 혹시라도 곤충이나 미물을 해치지 않기 위서이다. 그리고 마스크까지 착용하는데 이것은 혹시라도 벌레나 미물이 입안으로 들어와서 목숨을 잃을까봐서 미리 대비하여 입마개를 하고 다닌다.   

▲ 자이나교 승려들이 나신 상태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 아리카스라고 부르는 자이나교 여승들이 명상을 하고 있다.    

 

자이나교에서 사상이나 철학 교리체계보다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자이나교 승려들이 나신으로 다닌다는 점이다. 자이나교에는 두 개의 종파가 있는데, 디감바라파(空依派)와 스베탐바라파(白衣派)가 그것이다. 디감바라파는 일명 나체파로서 옷을 입지 않는다. 이 파의 여승들은 사리를 몸에 두르는데 바늘로 꿰매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흰 천을 사용한다. 한편 스베탐바라파의 승려들은 솔기가 없는 하얀 천을 몸에 두른다.

▲ 스베탐바라파의 승려.  

 

▲ 스베탐바라파의 여승.     © 매일종교신문

 

자이나교의 승려들이 언제부터 옷을 입지 않는 공의파(空依派)였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수행을 했던 것 같다. 공의파의 논리는 빈 몸으로 왔으니 빈 몸으로 살아야 하고 빈 몸으로 살다가 빈 몸으로 간다는 무소유 정신이 철저했던 것 같다. 아소카 왕의 할아버지이기도한 마우리아 왕조의 찬드라굽타 통치 시대에 자이나교의 한 스승이 12년 동안 기근이 올 것을 예견하고 그의 제자들과 함께 남인도로 옮겨 갔다가 12년 후에 다시 돌아왔는데, 마가다에 남아 있던 제자들이 흰옷을 입었음을 알게 되어서 옷을 입는 것은 자이나교 전통과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하여 분열하게 되어서 오늘날 공의파(나신)와 백의파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밖에도 백의파 내에서 두 개의 지파(支派)가 생겨나기도 했는데, 이 가운데 무르티푸자카 파는 자이나교 사원에 거주하는 승려들이다. 이 파에서는 자이나교의 티르탕카라(자이나교 법맥 계승자로서 성자)인 시만드라 상을 숭배한다.

▲ 자이나교의 성자(티르탕카라)인 시만드라 스와미 상.    


이에 반하여 일종의 개혁파인 스타나카바시(Sthanakavasi) 파는 수행주의의 개혁성향이다. 이 개혁파는 1653년 라바지라는 한 상인이 창종한 파인데, 자이나교에서의 어떤 상을 숭배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다. 고행이나 수행을 통해서 영혼의 정화에 의한 진리추구와 열반 성취를 더 높게 평가한데서 따른 개혁파이기도 하다. 이 파에서는 자이나교 경전(아가마) 가운데 32개의 경을 수용한다.

 

인도 종교전통에서 아가마(Agama)란 경전을 말한다. 불교 자이나교 힌두의 경전을 아가마라고 부른다. 한역에서는 아함(阿含)으로 음역되었는데, 법장(法藏) 또는 전교(傳敎)라고 번역(飜譯)된다. ‘아함이란 문자 그대로 전승(傳承)’ 또는 전승(傳承)한 가르침이며, 스승에서 제자로 계승한 것을 뜻한다.

 

자이나교에서 지금도 논쟁이 되고 있는 이슈는 다름 아닌 성차별 논란이다. 나체(공의)파인 디감바라파에서는 오직 남자만이 열반(해탈)을 성취할 수 있으며, 여자는 남자로 다시 태어나야 만이 열반(해탈자유)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스베탐바라파에서는 자이나교의 제19대 티르탕카라인 말리나타는 여성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수 원리주의파인 디감바라파는 말리나타를 남성 티르탕카라로 여겨서 숭배한다.

▲ 인도 라자스탄의 한 자이나교 사원에 봉안된 말리나타 성인 상.    
▲ 인도의 한 불자 가정에 초대되어 환영을 받고 있는 보검스님.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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