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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한국민속종교에 나타난 죽음인식(下)
죽음은 ‘천수를 다한 최종점’에서 발생한다는 무속에서의 믿음
기사입력: 2020/04/24 [07:1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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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천수를 다한 최종점에서 발생한다는 무속에서의 믿음 

 

무속에서는 죽음은 천수를 다한 최종점에서 발생한다고 믿는다. 천수를 누리는 것을 염원하되 여기서 천수가 반드시 장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길이다. ‘천수(天壽)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운명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삶의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룰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인공적으로 연장할 수는 없다. 도교에서는 이 천수조차 연장하려고 불로장생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한다. 대부분 종교는 죽음의 무턱에서도 기도라는 형식을 통해 생명 연장을 바란다. 무속에서는 천수는 정해져 있어 이를 연장할 수 없으므로 연장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천수는 이상적이기 때문에 천수를 누리기란 매우 어렵다고 믿는다. 이를 누리고 죽는 사람이란 예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병마에 의해서, 아니면 불행한 사건에 의해서 천수 전에 죽고 만다는 것이다.

 

천수를 누리고자 하는 염원은 무가에 자주 등장한다.

 

동해안 무가에 나오는 축원 무가에 보면

 

백발을 휘날리고

오래오래 사시더라도

긴병 잔병 없고

노망길 없고요

시들지 말구

똥싸 벽에다 붙이지 말구

고뿔할 일 없어요

방방곡곡에 구경 다니도록

다리에 원력을 주소

망자씨여 나(나이)가 백발을 휘날리더라도

눈도 어둡지 말고

허리도 꼬부라지지 말고

그저 귀도 어둡지 말구

이도 험시 빠지지 말구

 

즉 오래 명을 누리며 오래 살기를 축원하되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 주요한 내용으로 되어있다.

 

무속에서 이상적 죽음은 인생의 모든 통과의례를 다 거치고 자식을 낳아두고 나이 들어 자식들 앞에서 죽는 것이다. 미혼자의 죽음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농후한 아주 위험한 죽음이다. 그래서 죽어서나마 혼인을 시켜주어야 한다. 사후 결혼식을 저승혼사굿 또는 허재비 굿이라고 한다. 밖에서 죽음을 객사라하며 병원에 입원, 치료 중에도 임종이 가까우면 집에서 옮긴다. 집 밖에서 죽음이 일어나면 시신을 집안으로 옮길 수 없었다.  

 

무속은 사후세계보다 불행한 죽음에 대한 원한을 풀어 주는 데에 집중  

 

무속은 사후세계에 관심보다. 우선 불행한 죽음에 대한 원한을 풀어 주는 데에 집중된다. 천수를 누리지 못한 원한 자체가 무속신앙의 대상이 된다. 특히 불행한 죽음이 무속과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서 천수와는 거리가 먼 어린이의 죽음, 청춘의 죽음, 불행한 죽음-객사. 수사, 요사-따위의 죽음과 무속은 밀접하다. 물에 빠져 죽은 물귀신은 원한이 강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불어서 탈 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위험성을 면하고자 이러한 귀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물에서 혼을 건져서 매장하여 주고 위안하는 굿을 한다. 이러한 굿을 넋 건지기 굿이라고 한다. 교통사고로 죽은 귀신도 원한이 강하기 때문에 죽은 자리에 다른 사람을 불러들이게 되어 사고가 잇따라 일어난다(사고 반발 지점)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혼을 달래는 굿을 한다. 남에게 타살당한 귀신도 원한이 강하기 때문에 원혼을 풀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고 자살은 더욱 그렇다.

 

자살이란 자기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원한이 적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죽음이지만, 한국 무속에서는 자살이 타살보다 원한이 큰 것으로 생각한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죽음에 의한 원한이나 불행을 벗어나지 않으면 사자 자신은 물론이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에 이를 소멸시킬 필요가 있다고 한다. 전라도의 씻김굿’, 경상도의 오구굿’, 서울지방의 지노귀굿은 죽은 이의 영혼의 한을 풀어 저승으로 보내는 굿이다. 전라도 지방의 씻김굿은 씻기는 의식이 있으므로 그렇게 부른다.

 

씻김굿은 전라도 지방에 지금까지 널리 잔존하고 있는 세골장(洗骨葬)이 있다. 세골장은 사람이 죽으면 일단 매장이나 구토(봉분 없이 임시매장)하여 두었다가 뼈만 골라서 씻어 매장 또는 처분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체를 두 번 처리하는 장례이다. 씻김굿이나 세골장은 를 깨끗이 하는 데에 기본 신앙이 있다.

 

뼈에 대한 기본 사상은 첫째 뼈는 사람의 신체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는 것이고 여기에 사람의 영혼이 최후까지 깃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부계제를 의미한다. 셋째는 뼈가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동기감응 의식이다.

 

무속에서는 죽음이라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죽음 자체는 불행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산 자의 노력으로 죽은 자는 신격을 받을 수 있다. 즉 신격의 변화를 위해서 산 사람이 결정적인 행위를 하여야 한다는 구조이다. 다시 말해서 죽은 자가 일방적으로 사람에게 의존한다. 그러므로 죽은 자는 신이 된다고 하여도 전지전능한 신이 되는 게 아니라 항상 산 사람에게 의존하는 도가 높다. 이 점이 무속에서의 죽은 자와 산 자가 협동하는 구조이다. 죽은 자를 산 사람처럼 대화에 잘 올리고, 조상을 자랑하는 기반이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고는 있어도, 적극적으로 인생관에 관련시키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죽음 자체를 자기의 인생관으로 끌어들이기를 꺼리고, 자기 자식으로 생명이 계속될 수 있다는 데에 중점을 둔다. 죽음에 대한 사상이 약하고, 자식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 한국인의 혈연적 의식 과잉을 이러한 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무속인의 몸을 빌려 나오는 것은 이승에 남겨진 자식을 만남일 뿐이다.

 

죽으면 응당 <저승>으로 가는 것이고, 거기서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라 상정하는 한편, <저승>이 천상이나 지상이나 지하라는 한계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태곤의 연구는 지상(현세)의 인연은 현세에서 인연으로 사후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죽음을 내세에 대한 결혼으로 상정하고 임관할 때 시신에 화장하는 이유를 새로운 출발로 본다. 이와 같은 사후 세계인식은 우리 주변에 흔히 만나는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오래 산 부부에게 뜬금없이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배우자와 다시 살겠냐는 질문을 한다. 부부 가운데 한쪽은 고개를 흔든다. 결코, 살아보니.....사후 지금의 부부인연은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매어 주던 때 어렴풋이/생각나오/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막내아들 대학시험 뜬 눈으로/지내던 밤들/어렴풋이 생각나오/여보 그 때를/기억하오 세월은/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황혼에 기우는데/큰 딸아이 결혼식날/흘리던 눈물 방울이/이제는 모두/말라 여보 그 눈물을/기억하오/세월이 흘러가네/흰 머리가 늘어가네/모두 다 떠난다고/여보 내 손을/꼭 잡았소 세월은/그렇게 흘러/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황혼에 기우는데/다시 못 올/그 먼길을 어찌/혼자 가려하오/여기 날 홀로 두고/여보 왜 한마디/말이 없소/여보 왜 한마디/말이 없소 여보/안녕히 잘 가시게/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김광석 노래,‘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지금까지 함께 살면서 추억 그리고 보내는 사람의 안타까움만 있지 이 가사 어디에도 다시 만나자는 약속, 기대는 없다. 이것이 한국인의 정서이며 무속에서 이곳이 아닌 사후 다시 만날 것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이다.

 

무속의 가장 큰 특징은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없다는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사는 것인 죽는 것보다 최상이란 의식 하고 있다. 죽음에 관한 규정은 누구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누구도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혹 의사로부터 의학적 사망 선언을 받은 사람이 수 시간 후 잠을 자듯 깨어나 자신은 죽음의 문턱에서 사후세계를 보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엄밀하게 말해 사후 임사체험이다. 잠시 호흡이 정지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종교의 세계에서 말하는 극락, 지옥, 천당도 하나의 설정이며 가정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허상>,<허구>의 세계다. 이와 같은 미혹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붓다는 이미 돋아난 번뇌의 싹을 잘라버리고, 새로 심지 않고 지금 생긴 번뇌를 기르지 않는다면 이 홀로 가는 사람을 성인이라 부른다. 저 위대한 선인(仙人)은 평안의 경지를 본 것이다. 번뇌를 일어나는 근본을 살피어 그 씨를 헤아려 알고 그곳에 집착하는 마음을 기르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생()을 멸해 구경을 본 성인이고, 망상을 버려 미궁에 빠진 자의 무리 속에 끼지 않는다.

 

무속에서 말하는 극락, 칼산지옥, 화탕지옥은 불교와 습합 된 문화의 결과다. 무속은 특정한 개인, 집단에 의해 창교된 신앙공동체가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지만, 단일화된 교리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여러 종교, 사상이 적당하게 습합되어 있다. 굿의 종류, 지역, 구술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이론이 등장한다. 이번 논문에서 죽음의 주제는 포괄적 개론적 성격이 강하다. 향후 연구에서는 각종의 굿에 따라 지역에 따른 연구가 필요하다. 

▲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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