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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불교와 습합된 민속종교의 죽음인식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4/30 [18:57]
병들고 몸이 성치않으면 넘기 힘든 그 작은 문턱 너머가 저승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불교와 습합된 민속종교의 죽음인식

병들고 몸이 성치않으면 넘기 힘든 그 작은 문턱 너머가 저승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20/04/30 [18:57]

병들고 몸이 성치않으면 넘기 힘든 그 작은 문턱 너머가 저승  

 

한국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로 그중에도 중국과 가장 가까운 고구려가 처음 불교를 도입하였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임신(신라 내물왕 17, 백제 근초고왕 27, 불기 1399, 서기 372) 여름에 진왕 부견이 사신을 보내 순도와 함께 불상, 불경을 고구려에 가져왔다. 왕은 사신을 보내서 이를 사례하고 그 글을 자제들에게 가르쳤다. 고구려의 불법이 이로써 시작되었다.

 

백제 침류왕 원년 갑신(신라 내물왕 29, 고구려 소수림왕 14, 불기 1411, 서기 384) 9월에 호승 마라난타 진나라에서 와 백제의 불법이 이로써 시작되었다. 신라 법흥왕 15년 무신(고구려 안장왕 10, 백제 성왕 6, 불기 1555, 서기 528)에 신라에 비로소 불법이 일어났다.

 

19세기 말 조선에서 활동한 선교사 헐버트(Homer B Hulbert)는 한국에 불교, 유교, 도교 등의 외래종교가 있지만 그들은 상층구조에 불과하고 한국인의 원래의 기본적인 종교는 신령숭배라 보고 여기에는 정령신앙, 샤머니즘, 배물 신앙 그리고 자연숭배가 포함되고 있으며, 불교와 유교의 신앙체계도 결국 이 신령숭배와 혼합해서 하나의 혼성적 불교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한국사회는 단일종교를 가져보지 않은 다종교 국가이며 다원주의적 씬크레티즘 사회로 보았다.

 

한국인의 기본적 종교는 신령숭배-불교유교의 신앙체계도 신령숭배와 혼합

 

한국의 전통적 종교문화는 종교들이 서로 겹쳐 있고,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이에 대하여 1887년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이 땅에서 최초로 기독교 신학을 시작했던 존스(G. H. Jones, 조원시)는 이런 현상을 갈파한다.

 

이론적으로 한국인들은 유교, 불교, 무교의 세 형식으로 구분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혼합된 가르침을 마음에 지니고, 결국 이들 셋을 모두 믿고 있다. 한국인은 유교적 교육을 받고, 자손이 잘되라고 빌러 불교에 부인을 보내는가 하면, 병이 나면 무당이나 판수를 찾아서 이 세 종교의 연합된 도움으로 행복에 이른다.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이라 할 수 있는 무속은 대단히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어서 모든 종교와 사상을 변질시켜 버린다. 한국의 무속은 외래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저항없이 받아들인다. 그 후에는 외래의 것을 표면에 내 세우고 자신은 내면으로 숨어버리는 특징을 기니고 있다. 현재 한국 무속의 경우 외형적으로는 불교를 드러내기도 한다. 불교사찰, 종단을 표방하면서 내면에서는 무속을 신앙하는 형태로 변질도 그 한 모습이다.

 

높은 봉에 절당을 짓고 얕은 산에다 법당을 지을 때

절당 속에선 목탁소리 법당 속에선 염불공부

아침 시주 돌아다가 낮에 시주 바치시고

낮에 시주 돌아다가 저녁 불공을 올리실 제

칠성님은 나비가 되고 신에 제자는 증상이 될 때

세모시 고깔을 숙여 쓰고 팔대장삼을 떨쳐입고

바른 어깨는 홍가사요 왼 어깨는 청가사요

백팔 염주를 목에 걸고 백학 띠를 둘러 띠고

자주바랑 짊어지고 육환 장을 내려 짚고

바라갱정 높이 들고 서발염주를 손에 걸고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6호 김정숙의 황해도 대동굿, ‘만수받이’” 가운데 일부 내용)

*종단 명 없이 ‘××를 사용한다.

▲ 병들고 몸이 성치않으면 넘기 힘든 그 작은 문턱 너머가 저승이며 망자가 평소 노닐고 생계를 의지하던 산이 북망이다. 사진은 진천 농다리축제의 하이라이트중 하나인 ‘농다리 상여건너기’.  


대문밖이 저승이며 북망산은 앞 산이다

 

무속에서 부처님으로 통칭되는 석가모니와 삼불제석은 천신과 함께 최상의 신으로 신앙된다. 이와 같이 무속에서 불교의 신격을 신앙하는 것은 무속인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며 무신과 경계가 사라졌다. 그러면서 무속인(만신) 스스로 불교의 신격들을 전통적인 무속으로 영입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무속에서는 지옥이란 관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사람이 죽어서 저승에 가지 못하고 떠도는 신세가 되면 뜬 귀나 잡귀가 되는 것이다. 지옥에 떨어진다는 관념은 불교와 혼합되면서 생긴 후대 사생관이다.

 

무속인들이 구송하는 무가에의 내세관을 살펴보면

나는 오구 받는 영혼을 들어

내게 앞에 길을 치어서

오구 받는 영혼들을

양금첨 꽃밭에 시왕세계로 인도하여

불설문에 보내 주시고

나무애 허어-나무아미타불

밝은 길은 시왕 길이오.

넓고 어두운 길은 칼산지옥이오.

꽃가지 꺾지 말고 시왕세계 극락세계

상상구품 연화대요

지연으로 왕생극락하소서.

나무아미타불…….

 

무가에서 말하는 어두운 칼산지옥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의 일종으로 불교가 들어와 무속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칠 공주 말미 받아 극락세계 연하대로 산 하시는 날이시니

안당 불고 분향 하직 상산설문

맨발 벗고 신을 클러 천지옥경 문을 열어 산하실 제

마포구 용강동 분향에 하직찌게 벗으시고

여의도 성모병원 객사찌게 벗으시고

극락세계 연하대로 선하시는 날이로서니라

산신은 산을 섬겨 물신은 물을 섬겨

길신은 길을 섬겨 극락세계 연하대로 왕생극락 산하시고

창영 조 씨 열두 혼전 남망제님 청주 한 씨 아홉 혼전 뒤를 따라

극락세계 연화대로 산하시고

 

위 무가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 망자의 영혼은 극락세계, 연화대로 가길 원하고 있다. 이렇듯 무가의 일부는 불경과 혼합되어 불교의 극락과 지옥의 내세형태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열세왕천을 받아가요 이승 떠나 저승갈 때

저승길 멀다 해두 대문밖이 저승이라

북망산천 멀다 해두 앞남산이 북망이라

 

저승은 그리 먼곳이 아니라 바로 문 앞이다. 매일 넘나들었지만, 병들고 몸이 성치않으면 넘기 힘든 그 작은 문턱 너머가 저승이라는 의식이다. 그리고 망자가 평소 노닐고 생계를 의지하던 바로 그 산이 북망이다. 멀리 있지 않은 곳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주변이 바로 우리가 사후에 갈 곳이다. 여기서 문은 세상과 통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아이에게 밖은 미지의 세상을 향한 첫 몸짓의 시작이며 전쟁같은 삶의 현장을 떠나 의지할 수 있는 편안한 위안처가 대문 안 공간이다. 그 문밖을 나서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긴 길을 떠나는 것이다.

 

지노귀 굿의 핵심은 무녀가 사자가 되어 망자를 데려와 가족과 대면시키고 대화를 나누고 저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죽음으로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고,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확인이고 최후의 이별을 위한 송별잔치라고 할 수 있다. 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의 무대이며 이별을 확인하는 장이다. 이로써 망자는 가족과 함께 자신의 죽음을 확인한 후에 마음 놓고 저승으로 갈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결국 불교적 세계관은 죽음을 확인하는 내용이고 죽음 자체에 대한 설명으로서 무속의 세계관을 보완하고 있다.

▲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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