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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 '생활의 발견'
박현선의 ‘생활의 발견’●청자 두 갑
잃어버린 나를 찾아준 역무원 아저씨에게 보인 어머니 마음
기사입력: 2020/06/25 [08:0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박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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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때의 일이다. 경춘선 남춘천역 기차 안 출구에는 내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몸 가누기조차 힘들고, 앞이 안 보인다. “언니! 여기서 내려야지요?” 이모 목소리가 들린다. 빨리 내려야지 생각하고 한 계단씩 발을 옮기고는 폴짝 뛰어내렸다. 사방을 둘러봐도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출발하는 기차 안을 쳐다보았다. 엄마 얼굴이 보이더니 기차와 함께 사라졌다. 놀란 나는 얼굴이 빨갛다 못해 까매지도록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도 없는 기찻길 옆에 혼자 동그마니 남아 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표현할 수 없는 무서움에 온몸이 떨려왔다. 자지러지게 울고 있을 때 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뛰어오며 물었다.

 

얘야! 엄마는 어디 간 거니?”

엄마랑 엉엉같이 기차를 타고 왔는데, 엄마는 안 내리고 가버렸어요.”

엉엉.”

울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올 거야.” “아저씨랑 역전 안에 가서 기다리고 있자.”

으윽.”

 

엄마가 진짜 오는 것인지, 영영 안 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긴 기다림의 시간이 흘렀을 때, 엄마가 허겁지겁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엄마를 부르면서 뛰어갔고, 엄마는 달려들어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때 엄마의 가슴이 왜 그렇게 뛰었는지, 팔이 왜 그렇게 떨렸는지 나는 몰랐었다. “너를 잃어버린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역무원 아저씨는 봐라! 아저씨 말이 맞지? 엄마가 데리러 왔잖아.” 엄마 얼굴은 핼쑥해져 있었고, 손에는 청자담배 두 갑이 들려 있었다. 딸을 보호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청자 두 갑을 준비하신 것이다.

 

친척 결혼식에 가는 길이었다. 춘천역에서 내렸어야 했는데, 이모 말을 듣고 내가 성급하게 뛰어내린 것이다. 내가 안 보여 찾다가 창밖을 보니 놀란 토끼처럼 멍하니 서서 엄마를 쳐다보고 있더란다. 그때는 이미 기차가 출발해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춘천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오신 것이다. 이때부터 엄마 바라기가 되어버렸다. 일 보시고 늦기라도 하면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안 오시면 어떡하지.’라는 조바심이 생겼다.

 

친정어머니는 올해 팔십으로 그때는 북한 땅이었던 사창리에서 태어나셨다. 외할아버지는 6·25 한국전쟁 때 의용군이 총으로 위협하며 짐을 옮겨달라고 요구했었단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이었다. 삼십 리 길을 광목으로 만든 홉 겹옷들을 겹쳐 입으시고, 고무신을 신고 지게로 짐을 옮겼다. 발이 얼어 퉁퉁 붓다 짓물러버렸다. 약 쓸 형편도 못 되어 고생하시다 세상을 뜨셨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쓰린 아픔을 겪은 그해 급체로 시름시름 앓으시다 5남매를 남겨두고 세상을 뜨셨다. 그때 열 살이었던 친정어머니는 작은할아버지댁에서 살림을 돕다가 스무 살에 아버지를 만나 가족을 이루었다.

 

어머니는 자주 시집살이하던 때의 고충을 말씀하신다. 친할머니는 6·25 한국전쟁 때 친할아버지가 이북으로 끌려가신 후 화전 밭을 일구며 아버지를 키우셨다. 아버지 중학 시절 재가하신 친할머니는 그 밑에 6남매 자식을 두었다. 결혼과 동시에 어머니는 시댁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종갓집 며느리 노릇을 해야 했다. 친할머니는 새벽이면 밭에 나가 일하시니 올망졸망한 삼 촌, 고모를 위해 할 일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따로 살림을 나기 위해 시댁 부근에 초가집을 짓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나를 잉태한 만삭의 몸으로 인부들 밥을 해주다 입안이 헐어 맨밥에 간장을 찍어 드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유교식 제사를 일 년에 여러 번 지내신다.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고, 수호신처럼 가족이 잘 되게 지켜준다고 생각하셨다. 음식을 정성스럽게 장만하신다. 하지만 그릇이 없어 꽉대기에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친할머니에 대해 섭섭함을 지금도 말씀하신다. 안 좋았던 기억은 잊으시라고 말씀드려도 멍에처럼 기억 속에서 떠나질 않나 보다.

 

어머니의 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시다. 어릴 적 방안에는 크리스마스트리에 다는 반짝이는 꽃 장식 재료가 바구니에 가득 담겨있었다. 어머니는 한 땀씩 꿰어 예쁜 꽃

송이를 밤늦도록 만드셨다. 만든 개수를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가 15일에 한 번씩 정산을 받는다. 그날엔 큰 장닭을 사서 솥에 물을 붓고 한 솥 끓여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던 기억이 있다.

 

오래전, 장롱에서 첫 월급을 받아 사드렸던 연분홍색 내의를 발견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입지 않고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었다. 그건 어머니가 절약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딸이 열심히 일하여 사서 보낸 거라 아껴두고 싶은 마음에 그랬을 것으로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었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분이라 돈이고 물건이고 무섭게 아끼신다.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에는 못 미치지만 낭비와는 거리가 멀다. 요즘도 내 가방에는 주유소에서 준 물티슈가 들어있 다. 쓰고, 다시 헹궈 신발이라도 닦고 버린다. 될 수 있으면 음식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때 먹을 것만 만드는 것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습관 때문이다.

박현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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