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종합범종교가톨릭개신교불교민족종교해외종교이슬람생활 종교인의 성경 분석탐방 기획
전체기사 Trend & View 마음을 비춰보는 포토에세이 종교지도자 칼럼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편집  2021.02.26 [21:03]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안내데스크
신문사소개
광고안내
저작권문의
구독신청
불편신고
독자투고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 보호정책
기사제보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서양문화와 불교-② 그리스 회의주의 철학자 피론, 인도에서 고행자들과 조우
대승불교 중관사상의 이론가 나가르주나, 그리스철학에 영향 받아
기사입력: 2021/01/04 [09:13]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보검 이치란 스님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 판도와 그리스 회의주의 철학자 피론이 인도 까지 종군했던 루트의 지도.  

 

대승불교 중관사상의 이론가 나가르주나, 그리스철학에 영향 받아

    

전쟁은 정치적 군사적 목적의 정복뿐만이 아니라, 경제, 지리, 문화, 기술 등 광범위한 인간 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그 역사적 영향력이 크다. 2300여 년 전이라고 해서 전쟁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나자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전쟁에 참가했다. 이미 알렉산더 대왕이 유년 시절에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사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對比列傳)의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에 의하면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교육을 받았다. 플루타르코스(46~119)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저자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정치가 겸 작가이다. 그는 중기 플라톤주의 철학자들 중의 한 명이었으며, 영웅전 외에도 유명한 도덕론이 있다.

▲ 알렉산더 대왕을 교습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더는 16세 때 까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동문수학한 마케도니아의 귀족 자제들은 프톨레마이오스, 헤파이스티온, 카산드로스와 같은 친구들이었다. 이들은 헤타이로이(왕의 친구들)’라는 정예기병대 소속이 되었고, 이 기병대는 고대 세계에서 최고의 기병대로 여겨졌으며, 최초의 충격 기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충격 전술은 빠르고 강력한 공격을 통해 적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줌으로서 퇴각, 혹은 패전을 유도하는 공격적인 기동 전술을 말한다. 충격 전술은 전황을 결정짓는데 매우 높은 기여를 하는 만큼, 특유의 높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대군을 격파한 것은 바로 이 전술이었다. ‘왕의 친구들(헤타이로이)’은 동방원정에 참가한 장군들이었고, 후계자들이었다. 이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 그리스 철학과 인도사상(불교)이 만나게 되는 배경이 설명된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그리스 북부 할키디키 반도에 위치한 트라키아 지방에서 출생하였고, 부친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 왕 아민타스 2세의 시의(侍醫)였다. 알렉산더 아버지인 왕자 필리포스 2세의 소꿉동무로 궁정에서 자랐으며, 어려서 양친을 여의어 유력자의 도움을 받고 성장하게 된다. 17세 때(기원전 367)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입문하였다. 이후 플라톤의 사망 시까지 약 20년 동안 그곳에서 연구에 정진,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이오니아 문화를 배경으로 의가(醫家)의 실증정신(實證精神) 아래 성장한 그에게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은 큰 영향을 주었다.

▲ 형이상학 제 7권 : '존재'에 대한 서로 다른 의미들이 기록되어 있다. William of Moerbeke의 판본.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학, 형이상학, , 생물학, 동물학, 논리학, 수사학, 정치, 윤리학, 도덕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저술하였다.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였으며, 그리스 철학이 현재의 서양 철학의 근본을 이루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이런 대석학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와 친구들에게 여러 과목을 가르쳤고, 그의 지도 아래에 알렉산더는 철학은 물론 호메로스의 작품도 배웠는데, 일리아스에 관심을 가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에게 주석이 달린 일리아스 복사본을 주었고 알렉산더는 전쟁까지 그 사본을 들고 다녔다.

▲ 다리우스 3세(기원전 380년~기원전 330년)는 페르시아 제국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기원전 336년부터 기원전 330년까지 재위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으로 폐위되었고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했다. 딸은 나중에 알렉산더의 왕비가 된 스타테이라 2세와 헤파이스티온의 아내가 된 드리페티스가 있다. 다리우스 3세의 화상으로 유명한 이 참고 사진은 화산 폭발로 매몰된 폼페이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면, 그리스 사상과 인도의 사상인 불교가 만나게 되는 배경을 탐구하고 있다. 그리스의 헬레니즘이 인도의 불교사상과 접합하여 대승불교 탄생에 촉매가 된 것을 밝혀보고자 하는 것이 숨은 의도이며, 오늘날의 서양사회에서 불교가 연구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라는 것을 역사적 맥락에서 천착해 보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침공을 계기로 내친 김에 인도의 갠지스까지 진격했으며, 갠지스 강을 건너서 동부 갠지스 계곡 평원까지 가는 데에는 주저하고 만다. 여기서 그리스의 지식인 병사들은 인도의 사상과 접촉하게 된다. 알렉산더 자신이 학문적 배경이 전무한 항우 같은 장군이 아니었다. 그는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학통에서 배움을 닦았던 장군이었다.

 

여기서부터 다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데, 알렉산더 동방 원정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그리스 철학자인 피론(기원전 360~기원전 270)도 그 중 한명이었다. 피론은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엘리스 출신으로 아낙사르코스에게 사사하였다. 30세 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정(東征)에 참가하여 인도에 갔다. 거기서 고대 인도의 나체 수도자를 만나게 됐다.

▲ 피론이 동방원정에 참가하여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그림.  

 

▲ 그리스 회의주의 철학자 피론.    

 

피론은 그리스철학자로서 인도의 종교 수행자들과 접촉했는데, 쉬라마나(遊行僧)인 불교, 자이나교 아지비카교 고행수도자들과 접촉하면서 흥미를 넘어 인도 종교사상을 배우게 되었고, 불교의 삼법인(三法印)이 그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피론의 회의주의에 불교사상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만, 그리스 철학에는 이미 철학적 회의주의가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80)에 뿌리를 두고 존재하고 있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전소크라테스 철학자 가운데 마지막 큰 인물로서 소크라테스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철학 사상은 물질주의에 바탕을 둔 이른바 원자론을 먼저 손꼽을 수 있으며, 윤리학, 인식론 등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 개념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기원후 3세기 그리스 전기 작가)의 기록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의 저서들은 <대우주론>, <소우주론>, <우주지>, <행성에 관하여>, <자연에 관하여> 등 수많은 저서가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이 소실되었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원본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재구성한 것들이다. 일신교가 지배하던 시대에 데모크리토스의 이성적이고 유물론적인 자연주의는 허락되지 않았다. AD 390~39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의무로 칙령한 이래로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모든 학교가 폐쇄되고 기독교 교리에 맞지 않는 모든 문서가 방대하게 조직적으로 파괴되었다. 영혼의 불멸을 믿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용인되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삶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매우 적다. 다만 그가 저술한 철학자 전기인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만이 현재까지 전해지는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삶에 관한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다시 피론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리스 철학자로서 인도 원정에서 불교 자이나교 아지비카교의 고행 수행자들과 접촉하여 인도사상 특히 불교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은 현대 서양 불교학자들의 연구에서 주장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적극적인 학자는 크리스토퍼 벡위스(Christopher I. Beckwith, 1945~ )로서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의 중앙유라시아학과 교수이다. 그는 피론의 회의주의 철학은 불교의 삼법인 교리와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에 부정적인 학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 로마 철학의 한 학파인 스토아주의 학파의 아디아포라(adiaphora, 무관심한 것)는 불교사상과 비슷하다고 한다.

▲ 로마제국과 인도의 무역 루트 기원후 1세기.    

 

피론이 인도에서 접한 경험은 육체적 쾌락을 피하고 자연의 관상(觀想)을 주로 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비술(秘術금욕·현자의 도()를 배웠다고 한다. 인도에서 돌아와 철학자로서의 생애를 시작하고 신()과 같이 혼의 안정(安靜)을 얻은 사람으로 유명하였다. 저서는 남아 있지 않았으나 데모크리토스의 설을 공부한 것이 동기가 되어 회의론의 기초를 만든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고대 회의론이 그의 이름에서 연유하여 피론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제자인 티몬(기원전 320년경~기원전 230년경)이 그의 학설을 전하고 있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기원전 2세기)는 알렉산드리아, 로마, 아테네 등에서 살았던 의학자, 철학자로서 그의 저술인 피론주의 철학의 개요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현존하고 있다. 그런데 몇몇 서양불교 학자들은 인도 대승불교의 대가인 나가르주나(龍樹:150년경~250년경)의 중관(中觀·Madhyamaka)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알렉산더 인도 침공은 그리스철학과 불교가 만나는 계기가 됐고, 불교사상이 그리스에서 회의주의와 융합하면서 회의주의는 다시 인도로 와서 중관철학의 태두인 나가르주나에게 영향을 미쳐서 대승불교 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리스사상과 인도와의 만남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소개하겠다.

 

사실, 그리스-로마 문명도 페르시아(인도)-이스라엘과 유다-앗시리아-이집트-바빌론-수메르 문명의 관문을 넘어야 전모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입구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연재소개 전체목록
서양문화와 불교-⑨ 헬레니즘과 불교, 상생과 확장
서양문화와 불교-⑧ 인도-그리스 왕국 메난드로스 불교도 왕
서양문화와 불교-⑦ 아소카 대왕의 국제관계와 불교전도
서양문화와 불교-⑥ 그리스 출신 불교승려들, 헬레니즘 국가에 불교전파
서양문화와 불교-⑤ 인도 아소카 대왕, 그리스까지 불교전도
서양문화와 불교-④ 그리스-인도 왕국과 불교
서양문화와 불교-③ 문화적 혼합주의, 헬레니즘과 불교
서양문화와 불교-② 그리스 회의주의 철학자 피론, 인도에서 고행자들과 조우
서양문화와 불교-① 알렉산더 대왕 헬레니즘문화와 불교를 만나게 하다
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50(마지막 회): 인도의 무예
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49 인도의 축제문화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48 인도의 의류문화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47 인도의 음식문화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46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45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44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43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42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41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40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광고
광고
  안내데스크신문사소개광고안내저작권문의구독신청불편신고독자투고제휴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 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범 종교의 진정성을 두루 살펴 보고 이해함으로써 각 종교와 사회의 화평과 상생, 조화를 이룬다.
회장 이옥용 /발행-편집인 신민형 / 양형모 상임고문 / 편집국장 이부평 / 청소년보호책임자 강은나
우) 140-846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70번지 (83길 21)
대표 전화: 02-703-8267 | 팩스: 02-3211-4419 인터넷 매일종교신문
등록번호:서울 (아)01319(범종교신문 등록 2009년 9월 1일,2013년 6월 15일 제호변경)
기사제보 : minhyung-s@hanmail.net
Copyright ⓒ 2009-2013 매일종교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