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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와 불교-⑪ 그리스 철학과 불교사상간 대논쟁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1/03/08 [08:11]
자아와 영혼 문제

서양문화와 불교-⑪ 그리스 철학과 불교사상간 대논쟁

자아와 영혼 문제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1/03/08 [08:11]

 

▲ 헬레니즘 시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열람실  

 

자아와 영혼 문제  

 

고대 그리스 교육은 폴리스(도시국가) 형성기에 시작됐다. 그리스의 교육은 사실상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호메로스와 기원전 5세기경에 대두한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결부되면서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소피스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체육학교(김나시온)의 교육은 시민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 헬레니즘 시대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전경

  

고대 그리스의 교육은 정규교육과 비정규교육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정규교육은 고용된 교사(tutor)나 파이다고고스(paidagogos)라는 교육을 전담하는 노예에 의해 개인적인 교습의 형태로 이루어지거나 공공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었다. 고대 그리스 세계는 문학, 철학, 예술, 과학을 처음으로 만들어 탁월한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그리스 문화는 고대정신의 핵심을 이룸으로써 서양문화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서양교육의 역사적 전형을 고대 그리스 교육에서 찾을 수 있으며, 고대 그리스의 교육적 정신과 가치들이 서양 교육정신의 주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교육사상과 이론이나 교육실제는 서양 모든 나라의 교육이론과 교육실천을 형성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런 그리스의 교육 전통은 헬레니즘 국가들에 그대로 계승되었고, 그리스-박트리아, 그리스-인도 왕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 인도 왕국의 경우에는 그리스 헬레니즘과 인도사상이 상호작용하는 말 그대로 국제교육이 전개됐다.

 

인도에는 매우 오래된 고대교육제도가 있었다. 인도의 고대시대 교육은 종교교육이면서 철학교육이었다. 교육방식은 이전에는 구송(口誦)에 의한 종교행위나 철학 그 자체가 교육이었으나, 기원전 3세기부터 구송전통도 유지했지만, 문자화한 텍스트에 의해서 교육이 시행됐고, 종려나무 잎이나 자작나무 표피에 문자를 새긴 교재에 의해서 사원과 공동체 센터에서 집단교육이 이루어졌다. 스승과 제자라는 가족적인 안방 교육 시스템에서 학교의 역할을 하는 공동체에서 교육이 행해진 것이다. 특히 경전들이 문자화함으로써 인도의 고대 교육활동은 인도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 그레코-불교 간다라 조각 2〜3세기. 젊은 붓다가 친구들과 학교 가는 장면. 영국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 소장.  

 

특히 기원전 3세기부터 불교는 인도사회에 새로운 교육혁신을 가져온다.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계급만이 받던 교육에서 누구나 교육을 받는 시스템이 서민까지 확대되었다. 민주주적인 교육 시스템이 인도 전역에 퍼진 것이다. 불타 자신은 인도 고대의 브라만이나 지배계급인 크샤트리아의 구루-시샤(guru-shishya)식 교육을 받았을 것이지만, 최근 서양불교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붓다는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제국 시절, 탁실라대학에서 교육받은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그루(guru)는 스승(teacher)이며, 시샤(śiṣya)는 제자(disciple)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지식전달은 인도나 중국이나 다 비슷한 양상이었을 것이다.

 

인도에서는 교육의 역사가 기원전 2천 년부터 존재해 왔다. 그것은 우파니샤드(the Upanishads)에서 드러난다. 우파(upa)는 가까운(near)이고, (ni)는 아래로(down)이며, 사드(şad)는 앉는다(to sit)이다. 가까이 앉아서(sitting down near)’라는 의미다. 불타는 기원전 5세기에 생존했던 분이다. 이런 교육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베다를 배웠고, 기타 여러 분야의 지식을 배웠음이 분명하다.

 

불타 입멸 후에 바로 구송전통에 의한 결집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런 식의 교육제도가 인도 고대사회에서 존재했었기에 바로 결집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미 불타 시대에 구루쿨(Gurukul)이라는 교육제도가 확립됐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제도는 구루와 시샤에 의한 교육시스템이 보다 진일보한 고대교육제도로서 영국이 18세기 신교육제도를 도입할 때 까지 인도의 전통교육 시스템이었다. 브리티시 정부의 기록에 의하면, 이런 교육은 18세기까지 모든 사원 모스크 인도전역의 거의 모든 마을에서 행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교과과목은 읽기 쓰기를 비롯해서 종교, 경전, 철학, 문학, 군사학, 외교, 수학, 의학, 점성학과 역사 등을 교수했다고 한다. 간디(Gandhi)는 이런 전통교육방식과 제도를 아름다운 나무라고 표현했으며, 이 전통교육제도는 브리티시가 파괴했다고 안타까워 했던 것이다. 이 구루쿨 교육제도는 중국의 우 나라 순임금 시절의 상상(上床)이라는 교육제도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 제도이다.  

▲ 탁실라 대학의 아유르베다(대체의학) 스승인 차라카(기원전 100년경).

 

▲ 기원전 5세기 탁실라 대학의 문법학자 파니니의 문법서로서 카슈미르에서 발견된 자작나무 껍질원고.  

 

▲ 차나키야(카우틸랴 기원전 4세기)는 탁실라 대학 교수였으며, 마우리아 왕조의 창시자인 찬드라굽타의 스승이면서 그를 도운 재상. 《아르타샤스트라》의 저자. 이 책은 공공 행정과 경제 정책, 군사 전략에 관한 보고서.    

 

이제 인도-그리스 왕국의 밀린다 왕과 불교승려인 나가세나 비구 사이에 전개된 대논쟁의 쟁점을 이야기해보자. 밀린다왕문경은 기원전 2세기경, 서북인도를 지배하던 그리스인 왕 밀린다(메난드로스)와 불교승려인 나가세나의 대화체형 불경(佛經)이다. 이 경의 내용은 인도사상과 헬레니즘 문화가 녹아 있고, 각자의 세계관과 인생관에 입각하여 명석한 토론이 전개되고 있다. 붓다에 의해서 발단된 불교는 서북인도에까지 이미 확장되어 있었고, 많은 신자가 있었으며 불교사상도 복잡한 교리적 체계를 갖추었다.

 

밀린다 왕은 그리스의 헬레니즘의 문화 토양에서 교육을 받았고, 나가세나는 바라문 출신으로 탁실라에서 베다교육을 받았으며, 나중에는 불교승려로 출가한 지식 승려였다. 나가세나는 당대의 대선지식(고승)이었으며, 메난드로스(밀린다) 왕은 나가세나가 머무는 사원으로 일부러 찾아가서 토론을 벌인 것이다.

 

메난드로스 왕은 어찌하여, 당신은 존사(尊師)로서 세상에 알려지셨습니까? 존사여,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 나가세나는 저는 나가세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저와 수도(修道)를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은 저를 나가세나라고 부릅니다. 또 제 부모도 나가세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대왕이시여, 이 나가세나라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는 명칭이며 속칭이요 가짜 이름이요 통칭이어서 단순한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이름에서 실체적 개아(個我)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런 자아에 대한 문답은 계속되면서 나가세나는 무아(無我)의 논리를 전개하게 되는데, 오온(五蘊:색수상행식)을 설명하면서 자아의 존재를 부정하고 무아에 대한 진리를 설파한다. 그렇지만 메난드로스 왕은 이해를 못하자, 나가세나 비구는 왕이 타고 온 수레를 비유로 들면서 수레(마차)를 해체하면 수레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수레의 실체를 설명해달라는 설득에 메난드로스 왕은 무아를 이해하게 된다. 이들은 이어서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한다. 가장 극적인 대화는 무영혼설(無靈魂說)이다. 메난드로스 왕은 그리스적 사유로는 무영혼설을 믿기가 어려웠지만, 나가세나는 개인의 존재는 모두 연(:조건)으로부터 생긴 것이므로 영원.유일한 실체는 없는 것이라는 것을 설명했고, 메난드로스는 마침내 동의하기에 이른다.

▲ 메난드로스 1세(밀린다 왕)와 문답을 주고 받는 고승 나가세나.  

 

현대에 이르러서도 서양철학과 불교사상 간의 논의의 쟁점이 무아(無我). 영혼의 유무. ().윤회(輪廻) 등의 주제이다. 기원전 2세기 경, 그리스인 왕과 불교 승려 간의 철학적 논쟁은 불교사에서 매우 특이한 일이다. 22백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 주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담론의 주제이다. 메난드로스 왕이 무아사상과 무영혼설에 동의했다고 해서 사양철학이 인도의 불교사상에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서양철학은 부단하게 불교사상에 대항해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지만 21세기 벽두에서 보는 서양에서의 불교는 점점 확장되어 가고 있으며 다수의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고 실제로 신행(信行) 생활을 하고 있으며, 학술적 경지가 매우 심화되어 가고 있으며, 동양의 불교학자들은 이제 서양불교 학문 연구 방법론에 의한 영어로 논문을 써야할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동양에서 아무리 훌륭한 불교관련 논문이라고 할지라도 서양 (영어) 학술지에 게재되어야하고 인정을 받아야 할 정도로 서양불교학문 수준은 높아져 있다. 서양불교학자들의 논문을 읽어야 하고 영어로 논문을 써야 소외되지 않는다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인도불교 아잔타 법회에 참석, 인도승려들과 인도불교 부흥을 위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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