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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항공모함같은 교회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1/08/24 [07:36]
주형식 목사의 성서이해

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항공모함같은 교회

주형식 목사의 성서이해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1/08/24 [07:36]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립보 2:5~8,13,3:20)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 속에서 사도 바울이 사용한 이미지 하나가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여러분은 이런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라고 권면합니다. 이어서 그는 외롭게 분투하는 교회에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염원하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2:13)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3:20)라고 강조합니다.

 

바울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여행길에 참여하라고 초청합니다. 그 여행길은 그리스도처럼 살고 죽으라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들 깊숙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기뻐하십시오”(3:1)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삶이 평탄하고 안정된 삶이 아니요 모험길을 떠나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모험길로 초대하는 근거가 바로 320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모펫이라는 신학자는 이 말씀의 헬라어 원문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더욱 이해하기 쉽게 이 말씀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식민지입니다

 

당시 빌립보 교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디아스포라, 즉 유대인으로서 외국에 이주하여 사는 교포들이 많았습니다. 이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으로 사는 일, 곧 다른 사람들의 세상에서 나그네로 산다는 것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식민지는 다른 문화 한 가운데 세워진 문화의 섬이며, 교두보이며, 전초기지입니다. 조국의 가치를 반복해서 들려주고 전수하는 장소이고, 나그네된 사람들에게 모국의 언어와 생활양식을 잊지 않도록 가르쳐주는 곳이었습니다.

 

빌립보서는 낯선 이민생활에 지친, 더욱이 기독교라는 낯선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중의 어려움을 겪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하여 기록된 편지이기 때문이지요. 식민지로 살아가는 일, 그것이 어느 시대이든, 어떤 상황에서든 교회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교회가 세상의 이방문화 한 가운데 낯선 섬처럼 살아가는 식민지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식민지이며, 타문화권의 한 가운데 위치한 하나님의 항공모함, 전초기지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되므로 우리의 시민권은 세상에서 하늘로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식민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한 곳에 정착해서 소유권을 주장하고 울타리를 치고 자기 영역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교회가 울타리를 치고 방어막을 사용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지나치게 울타리를 치고 숨어서 방어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교회에게 공격하라고 명령합니다. 최고로 공격적인 삶을 사셨던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 기간 동안 어떻게 사셨습니까?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4:23)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두루 다니셨습니다. 가르치셨고, 전파하시고, 고치셨습니다. 대단히 모험적이고 공격적인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또한 가르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8)

 

복음을 지키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두루 다니며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들과 제자들이 예수의 명령을 따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고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교회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모험적이고 실천적인 삶으로 말미암아 탄생된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요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식민지란 예수를 따라가려고 애쓰면서 이동하는 백성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식민지는 모험입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많은 일들을 만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런 일을 겪을 기회도, 뜻밖의 사람을 만날 일도 없습니다.

 

성경공부하고, 교회에 다니면서 새로운 뜻을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100%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는 대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이해라는 단계를 뛰어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삶으로 살아가도록 초청받은 사람입니다. 도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어린시절 성경학교에서 배웠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빵빵~차표 필요없어요 주님 선장되시니 나는 염려 없어요 빵빵~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구원에 대해 이 노래보다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은 단지 우리의 생각이 바뀌는 것, 새로운 이해의 차원이 아닙니다. 차장되시는 예수님이 올라타라고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해 올라타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맨날 타는 기차라면 어디서 빨라지고 어디서 느려지고 어디서 정차하고 얼마 지나면 도착할는지 미리 잘 알겠지요. 하지만 이 열차는 우리가 처음 타는 열차입니다. 그래서 모험입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체험하게 해주는 온갖 새로운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전에 알지 못했던 삶의 방향감각을 얻게 됩니다. 이 열차가 어디서 빨라지는지 어디서 느려지는지 알지 못합니다. 때로 고장이 나서 잠깐 설 수도 있겠죠? 창밖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불어도 안전하게 나가는 열차를 보며 감사할 수도 있겠죠? 어디서 잠시 정차해서 낯선 식구를 새롭게 태우고 갈지 모릅니다. 기차 안에는 여러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습니다. 조는 사람, 이야기하는 사람, 책보는 사람, 명상하는 사람, 욕하는 사람.....다 다른 사람들입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기차 안에서 만났습니다. 이제는 한 곳을 향해 함께 가야하는 사람들입니다. 좋든 싫든 함께 가야할 사람들입니다.

 

싫다고 기차를 갈아탈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한곳으로 함께 가는 동반자들입니다. 구원은 하늘가는 기차를 타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중간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낯선 여행길을 함께 가는 생활입니다. 이러한 모험을 즐겁게 여기면 하늘가는 길이 좋아집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 6:10-20)

 

또 다른 이방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바울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라고 편지합니다. 매우 강력한 군사적인 은유를 써서 강조합니다. “주님 안에서 굳세어라. 하나님이 주시는 장비로 완전무장하라.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들라.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칼을 가지라.”

 

초창기 교회는 너무 많은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이 성경절이 별로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잘 아는 찬송, “믿는 사람들아 군병같으니이 노래를 찬송가에 포함시킬지 말아야 할지를 가지고 아주 많은 다툼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의 이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낭만적인 취미생활이 아닙니다. 치열한 투쟁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초대교회 당시 많은 가정들은 예수 때문에 큰 슬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신앙을 지키려면 막대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녀들과 함께 죽음의 길, 박해의 길을 향해 걸어가기를 각오하는 일이었습니다. 자녀의 손을 잡고 함께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에게 잡아먹힌 부모들도 있습니다. 박해를 피해 지하 카타콤으로 어린 자녀를 이끌고 들어가 평생 햇빛을 못보고 산 부모들도 있습니다. 에베소는 죄악이 더욱 가증한 도시였습니다. 이런 동네에서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이런 배경에서 사도바울이 에베소 6:10~20에서 말씀하는 것은, 제자도는 값싸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만큼 가치있는 복음에는 때로 시련과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들은 교인들을 기복적인 신앙으로 이끄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축복을 강조하고, 사업에서의 성공과, 금전적인 축복과, 세상에서의 명예를 얻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교회는 언제부터인지 유람선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교인들 끼리끼리 재미있게 지내는 파티장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될 때에 교회의 생명력은 없어지게 됩니다. 에베소서의 저자가 편지를 썼을 때 그는 쇠사슬에 온몸이 매여 있었습니다. 감옥의 창살 안에 갖혀 있었습니다. 바울은 만일 당신이 예수를 따르고자 한다면 당신은 실제로 싸울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은 참으로 거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어도 늘 성도들에게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따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왜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길까? 왜 내 건강에 어려움이 생길까?” 이런 의문들이 많이 듭니다. 이런 세상에서 약하고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는 결코 사단과 맞설 수 없습니다. 홀로 동료도 없이 세상으로 나가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정기적으로 함께 모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서로 낯선 사람처럼 살아가라고 부추기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형제임을, 가족임을 이 자리에서 인정합니다. 너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라고 가르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서나 에베소서를 통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는 세상에서 따로 떨어진 호화판 크루즈에서 그들끼리 즐기며 보내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씨가 뿌려 졌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뚜렷하게 제시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가 가야할 궁극적인 목적지가 분명하게 또한 제시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약속에 의하여 하나님의 초대를 받고 기꺼이 응답을 하고 구원을 향한 이 항공모함에 승선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출격해야 합니다. 미션을 수행해야 합니다. 다시 교회로 돌아옵니다. 기름을 공급받습니다. 재충전을 합니다. 또 싸우러 나갑니다. 이렇게 하늘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교회는 크루즈여행을 위한 배가 아닙니다. 우리의 교회는 항공모함이 되어야 합니다. 이 항공모함의 선원으로서 끝까지 대장되시는 주님을 모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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