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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History is His Story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1/10/04 [21:13]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History is His Story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1/10/04 [21:13]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우나 탤런트는 다른 사람으로 가장합니다. 그들은 대표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배우나 탤런트 말고 다른 사람으로 가장하는 일을 하는 또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그들은 범죄자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속이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어렵게 번 돈을 갈취합니다. 배우나 탤런트는 노력한 대가를 돈으로 받지만 이들은 감옥에서 세월을 보내는 것으로 대가를 치릅니다. 스파이나 간첩도 다른 사람으로 가장합니다.

 

세상에는 배우들, 학자들, 정치적 지도자들과 같은 대중들이 사랑하고 흠모하는 유명인들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에바 페론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페론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에바 페론은 “Don't Cry Me Argentina"라는 노래로 유명한 사람인데, 젊은 나이에 사망을 해서 전 국민이 애도를 하였습니다. 그녀를 기억하며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그녀가 했던 머리 모양을 하고 그녀처럼 옷을 입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는 너무나 유명해서 그가 죽고 난 후 지금까지 매년 그를 얼마나 잘 모방하는가 하는 대회를 치르고 있습니다. 진짜 엘비스 프레슬리는 한 명이지만 수많은 가짜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와 비슷하게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방하는 다른 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오신 참된 메시야이셨던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 역사를 보면 자신이 진짜라고 주장한 수많은 가짜 메시야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여기저기서 내가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때가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르 코케바라는 한 유대인 용병이 자신이 진짜 메시야라며 유대인들을 현혹시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해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를 따르는 군대를 이끌고 3년 반 동안 로마에 맞서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당시에도 거짓 메시야가 존재했고, 각 시대마다 거짓 메시야가 등장했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곤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거짓 메시야들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24절은 마지막 때를 예언합니다.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주후 2세기에는 바르 코케바가 미혹했습니다. 말세에도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 사람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들까지 미혹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은 두 지도자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입니다. 둘째는 계시록 13장에 묘사된 짐승의 세력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짐승의 세력을 적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들이 그리스도를 가장하여 올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기 위한 옳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짜에 주목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법일까요? 진짜에 주목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법일까요? 가짜를 제대로 분별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방법은 진짜를 아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전문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참된 메시야이신 예수께 초점을 맞춰 보겠습니다.

 

(6:38,39)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영원부터 아버지와 함께 사신 분이시라 말씀합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그분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분이 제공하시는 영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만일 그분께서 단지 선한 사람, 훌륭한 선생님, 깊은 사상을 가진 철학자 정도라면 그분을 따르는 것이 도움은 될지 모르지만 더 큰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을 거절하는 것은 영생을 잃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한 분의 메시야 밖에는 없습니다.

 

(5:39)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예수님 당시에는 구약 성경만이 존재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가 진정한 메시야이심을 입증하는 예언들을 제자들과 살펴보셨습니다. 몇몇 예언들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은 이미 사전에 기록되었습니다. 보통 어떤 사람들의 생애를 담은 자서전들은 그들의 일생이 다한 후에 기록됩니다. 하지만 주님의 생애의 이야기들은 그분께서 이 땅에 오시기 훨씬 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모든 인류의 역사를 나누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분이 오시기 전의 시간을 B.C.라고 부릅니다. B.C.‘Before Christ’의 약자로서 그리스도의 탄생 전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후를 A.D.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라틴어 ‘Anno Domini’의 약자로서 우리 주님의 해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B.C.주전’, ‘기원전’, A.D.주후’, ‘기원후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역사(History)는 정말로 그분의 이야기(His Story)인 것입니다. 그분의 탄생은 미리 계시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자서전은 출생지에서 시작됩니다. 미가는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700년 전에 살았습니다.

 

(5:2) “베들레헴아...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성경은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은 원래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사렛입니다. 그렇다면 왜 출산이 임박한 여인이 나귀를 타고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144km나 되는 길을 여행하였을까요? 베들레헴에 가는 것은 요셉과 마리아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명령이 이 가족들을 베들레헴으로 가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던 바로 그 날 밤에 말입니다.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집들도 별로 없고 여관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메시야가 탄생하시던 날 밤, 여관방은 이미 다 차 있었습니다. 미가는 어떻게 700년 전에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알았을까요? 성경은 또한 그리스도의 족보를 묘사합니다.

 

(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베들레헴에서의 탄생은 기적적인 탄생입니다. 동정녀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은 그가 메시야임을 알려주는 또다른 증거입니다. 인간에 의한 생물학적 잉태가 아니고 성령으로 잉태된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의 증거입니다. 누가복음 128-31절에서 가브리엘은 당황해하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28-31)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를 떠나지 말라. 그녀가 잉태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이다라고 안심시켰습니다. 미가는 700년 전에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고, 이사야는 700년 전에 메시야가 처녀에게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때 먼 길을 여행해 찾아온 목자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선한 사람, 의로운 선생 이상의 분이셨습니다. 메시야를 지칭하는 모든 거짓 메시야 위에 계신 신성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모세는 민수기에서 박사들을 그분이 탄생하신 곳으로 인도한 별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24:17)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1,500년 전에 성경은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계시록도 예수님을 광명한 새벽별로 불렀습니다. 한 별이 탄생하시는 예수께로 박사들을 인도하였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예언은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그분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이사야는 수백년전에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하였습니다.

 

(61:1,2)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셨고, 죄를 용서하시며, 죄의식의 짐을 대신 져주셨습니다. 마음의 아픔과 슬픔을 가져가셨으며, 마음상한 자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죄와 고통, 질병에 사로잡힌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선포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귀신들린 자들의 속박을 풀어 주셨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들을 성취하셨습니다.

 

주님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분께서 가시는 곳마다 생명과 건강과 치유함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구세주로서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셨습니다.

 

나사로는 죽어서 나흘간 무덤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무덤에 가시어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메시야가 아니라면 어떻게 죽은 자들을 살리실 수 있을까요? 그분은 고치시고, 용서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언들은 마치 퍼즐조각들이 들어맞듯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 마지막에 관한 예언들을 포함하여 40개 이상의 예언들이 성취되었습니다. 여러 예언들이 그리스도의 마지막 24시간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 예언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에 대해 묘사합니다.

 

주님의 탄생 1,000년전에 다윗이 쓴 시편 419절에는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나의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라고 기록합니다. 다윗은 어떻게 천년이나 앞서 원수가 아닌 친구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알았을까요? 유다는 동산에서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미가는 출생지 베들레헴을, 이사야는 동정녀 탄생을, 모세는 한 별의 출현을, 이사야는 그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병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고 죄를 용서하실 것을, 그리고 다윗은 친구가 그분을 배반할 것을 말했습니다.

 

(11:12,13)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예언은 금이 아니라 은이며 정확히 30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얼마에 팔리셨습니까? 정확하게 은 30개에 팔리셨습니다. 스가랴 1113절에 내가 곧 그 은 삼십을....던지고...” 던졌다고 말했습니다.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라고 말합니다. 유다는 주님을 헐값에 팔아 남겼습니다. 예언된 정확한 금액, 30에 말입니다. 유다는 무죄한 피를 흘린 돈임을 깨닫고 절망 속에서 성전으로 가서 피의 값인 은 30을 성전 바닥에 던져 버렸습니다. 제사장은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묘지로 삼았습니다. 예언의 3가지 정확한 요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액, 결과, 장소

 

마태복음 276,7절은 스가랴의 예언에 대한 성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7:5,7)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스가랴는 500년 전에 이미 이것을 기록했고, 마태는 정확하고 상세하게 예언의 성취를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선하신 분 이상입니다. 단지 위대한 사상가나 철학자가 아닙니다. 신성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마지막 날에는 모두가 예수님, 아니면 짐승에게 충성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편, 아니면 저 편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은 짐승을 권세에 충성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또 다른 놀라운 예언을 합니다.

 

(50: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사야는 예수께서 채찍에 맞아 등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악한 병사들이 예수님의 수염을 뽑고 얼굴에 침뱉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로마병사들은 쇠조각과 뼈가 박힌 가죽채찍을 들고 하나님의 아들에게 다가가 그의 상체를 허리까지 벗기고 채찍으로 등을 후려칠 떼 채찍의 쇠조각은 그분의 살을 찢었습니다. 이렇게 고통당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여러분과 저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선지자들은 예수께서 제 시간에 정확한 장소에서 동정녀로 태어나실 것과 치유의 사랑. 용서와 능력의 삶을 사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분은 또한 예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십자가형은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기 약 150년 전에 로마인들에 의해 고안되었습니다. 다윗 시대에는 십자가형이라는 사형방법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손이 찔릴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성령께서 계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12:10)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손과 그 옆구리는 여러분과 저를 위하여 찔리신 것입니다. 그분은 마땅히 내가 받을 죽음을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무엇입니까?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순교자의 죽음이나 무언가를 위해 죽는 투사의 죽음 이상의 것입니다. 그분은 저를 대신하여, 여러분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았나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그분께서 가지신 것은 걸치신 옷 밖에 없었습니다. 병사들은 그것을 차지하고자 제비를 뽑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고난의 길, 이 길을 비아 돌로로사라고 합니다. 이 길가에서 로마 군인들이 제비뽑기를 한 고고학적 증거가 있습니다. ‘비아 돌로로사의 길 바닥에 새겨져 있는 이 기록은 주사위로 십자가죄수의 옷을 차지하는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34:20)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기 아니하도다

 

원래 십자가형은 죄수를 질식시켜 죽이는 형벌이기 때문에 죄수가 힘으로 버티면 오랫동안 버티지 못하기 위해 군인들은 망치로 무릎을 쳐서 뼈를 부숴뜨려 버렸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뼈가 부러졌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기록합니다. 세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양편에는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두 강도가 죽지 않고 버텼기 때문에 그들의 무릎을 망치로 쳐서 꺾어 버렸습니다.

 

(19:32,33) “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다윗은 1,000년 전에 그리스도의 뼈가 부러지지 않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미가는 700년 전에 베들레헴의 탄생을, 모세는 1,600년 전에 한 별이 일어날 것을, 다윗은 십자가형이 알려지기도 전에 예수님의 손이 찔림당할 것을 예언하였고, 이사야는 예수님이 처녀에게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성경은 성령에 의해 감동받은 책입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이 아닌 메시야이심이 분명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십자가 앞에 나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간음한 여인이 그랬고, 막달라 마리아도 그 십자가에서 용서받았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아프리카에서 왔습니다. 모든 나라 사람들이 옵니다. 십자가에서는 편견이 없습니다. 로마군인이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농부나 어부나 소작농이나, 교육받은 사람이나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나, 장님이나 절뚝발이나 병자가, 그들은 이론을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용서와 영생과 속죄를 위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찾았습니다.

 

모든 자서전은 영웅의 죽음으로 마쳐집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시신이 내려지고 무덤에 장사되셨을 때, 그분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안식 후 첫날 부활하셨습니다.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 역시 영원토록 살 수 있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분께서 다시 사셨고, 살아계시고, 신이시기 때문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분은 어떤 정신적 지도자나 철학가나 신비한 존재 이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다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록 320절에 말씀하십니다.

 

(3:20)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예수님께서 이 시간, 당신의 삶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용서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여러분의 죄가 용서함 받고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그분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무덤의 결박을 푸시고 사망의 문을 여셨습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여러분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속사람과 마음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고 갈망하는 것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역사하시므로 지난 과거는 뒤로 하고 주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의 삶의 이야기를 미리 기록하셨던 바로 그 동일한 하나님이,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여러분의 삶의 이야기도 미리 아시고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늘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셔서 여러분에게 그 계획을 나타내주시기 원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방황하는 삶을 살아갈지라도 갈바리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 여러분의 모든 모습을 희생의 제단에 내려놓고 당신께 오라고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여러분의 전 생애를 남김없이 드림으로, 그분께서 여러분 안에서 기적을 행하셔서 여러분의 삶을 온전히 변화시키실 수 있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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