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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우리를 위한 사랑의 법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1/10/11 [19:23]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우리를 위한 사랑의 법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1/10/11 [19:23]

어느 아름답고 화창한 날, 높은 절벽 아래 수백 미터의 거센 물살을 내며 웅장하게 물줄기가 떨어지는 아름다운 폭포 밑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다가 절대로 믿을 수 없고 불가능해 보이는 무언가를 주목하게 됩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대신에 호수에서 절벽 꼭대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제 옆에 있던 사람이 깜짝 놀라서 제 팔을 붙잡고 소리칩니다. “저것 좀 보세요. 폭포의 물이 아래서 위로 올라가고 있어요!” 제가 태연스럽게 대답합니다. “아직도 모르세요? 중력의 법칙이 없어졌어요. 이제 물은 아무데로나 원하는 대로 흐를 수 있어요.”

 

어느 날, 아침식사를 하는데 아내가 커다란 접시에 가득한 쥐약을 아침밥으로 먹으려 합니다. 깜짝 놀라서 이야기합니다. “당신, 지금 뭘 먹는지 알아?” “당신, 못들었어요? 독약을 먹을 수 없다는 건강법칙은 이제 폐지됐잖아요. 그래서 이젠 아무거나 먹을 수 있어요. 좀 드셔보세요.”

 

이런 일들은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자연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법칙은 결코 취소된 적이 없습니다. 물은 아래로 떨어지고 독약은 먹으면 죽는게 자연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법 중에 가장 위대한 법, 하나님께서 그분의 손가락으로 직접 쓰신 십계명은 결코 폐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십계명이 폐지되었다면 이제 살인하거나, 도적질하거나, 간음하거나, 자기 기호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고 가르치는 것과 오늘날 만연한 폭력,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부도덕성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세상에 범죄가 점점 만연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 번져가는 폭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폭력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오늘날 이러한 사회문제의 원인은 우리가 도덕적 나침반을 상실한데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도덕적 나침반을 잃어버렸고, 우리 자신의 생각을 넘어선 모든 권위를 거절합니다.

 

잠언 2826절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었습니다. 본성이 의로움에서 불의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만물이 거짓되고 심히 악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호세아 87절에 모든 문제의 근원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희가 바람을 싣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게임, 영화 등을 통해서 수많은 폭력장면을 봅니다. 보통 청소년들은 텔레비전에서 20,000번 이상의 폭력장면을 본다고 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이런 좋지 못한 것들이 계속 쌓여져 갑니다. 성경은 오늘날 세상이 이토록 폭력과 범죄가 만연할 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 무궁히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111:7,8)

 

하나님의 계명은 영원합니다. 그것은 옛날 사람들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19:7)

 

세상은 하나님의 법을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의견을 최고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모든 도덕적 규제를 거절합니다. 세상에는 인간의 행동을 단속하기 위한 법이 대략 3,500만개 정도 있다고 추정합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단 10개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덕적 규범이 되는 계명들을 그분 자신의 손가락으로 돌판에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늘 정부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을 싫어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귄위를 거절했고, 자기 의견을 최종 권위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 반역의 중심입니다.

 

사단은 하늘에서 반역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할 필요가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천사의 1/3이 사단의 의견에 동조하여 하늘에서 쫓겨났습니다. 사단은 지구에서 또한 반역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 네가 네 자신의 하나님이 될 수 있다. 네 의견이 너의 최종적인 권위이다라고 꼬드겼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 위에 두었고, 반역으로 인해 동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기 전까지 하나님의 법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돌판에 새기신 것은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시내산 이전에도 도적질, 간음, 살인은 잘못된 범죄였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이 성경에 나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죄입니까? 시내산에서 돌비를 주시기 이전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성경 로마서 415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범죄란 무엇입니까? 사전은 범죄란 민법, 또는 도덕법, 어느 법이던지 그것을 어기거나 깨뜨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범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4절은 죄는 불법이라고 말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독일의 아우토반에는 제한속도가 없습니다. 차들은 시속 250km의 속도로도 달릴 수 있습니다. 속도제한의 법이 없기 때문에 속도위반도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법이 시내산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언제나 존재해 왔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26:5)

 

아브라함은 계명을 잘 준수했을까요? 그는 모세 이전에, 시내산 이전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계명을 잘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계명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시대에 유대인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율법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었습니다. 계명은 도덕질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도적질은 어떤 상황에서든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도 그릇된 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한 듯이 그렇게 한다고들 해도 간음하는 것은 여전히 잘못입니다.

 

신약성경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폐지했을까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삶에서 율법이 주장하는 바를 지지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5:17,18)

 

예수님은 그의 삶에서 율법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16:17)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율법은 영원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늘정부의 기초로서, 우리에게 옳고 그른 것을 말해 줍니다. 사람이 창작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계명이 폐지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후에는 간음해도 괜찮을까요? 도적질해도 괜찮습니까? 하나님의 율법이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폐지되었다고 하는 것은 완전히 비논리적인 생각입니다. 간혹 사람들은 에베소 215절 말씀을 잘못 이해합니다.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2:15)

 

율법을 폐했다는 말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 다음에 어떤 말씀이 나옵니까?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무엇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십계명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에서 의식적인 희생제사는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직접 돌아가셨습니다.

 

예수께서 간음하는 여인의 죄를 용서하신 후에 여인아, 율법이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가서 다시 간음을 해도 괜찮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내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여러분은 혹시 죄와 씨름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 오시기 바랍니다. 죄를 용서받으실 것입니다. 죄책감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용서하시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순종으로 인도하십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4:15)

 

내가 그분을 충분히 사랑한다면 순종할 필요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항상 우리를 순종으로 이끕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5:10)

 

유명한 전도설교가 빌리 그레함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십계명 중 어떤 계명이 오늘날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습니까?” “십계명의 모든 계명은 오늘날 그대로 유효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알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어떤 계명이 가장 큰 것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22:37,38)

 

예수님은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2:39,40)

 

요약하면 율법은 한 단어로 사랑입니다. 두 마디로 하면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입니다.

 

처음 네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해 주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도적질하지 않고, 이웃의 재산이나 아내를 존중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순종으로 인도합니다. 사랑은 항상 행동이 뒤따릅니다.

 

어떤 사람은 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그분은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제공하셨습니다. 그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8,9)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약시대에는 율법으로 구원받고, 신약시대에는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6:8)

 

바울은 디도서 211절에서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언젠가 우리가 하늘에 가서 모세와 다니엘과 바울을 만나서 어떻게 여기 오셨나요?”라고 물어보면 모세와 다니엘은 율법을 잘 지켜서 왔습니다이렇게 대답하고, 바울은 아니요. 전 저 사람들하고 달라요. 은혜로 왔습니다.” 이렇게 대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은 없습니다. 구원받는 사람은 오직 은혜로만 구원받습니다. 구약의 모세와 다니엘도 오실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는 돌이켜 그분의 은혜를 바라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아무도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저는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분이 먼저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저는 율법을 지킵니다. 은혜는 항상 순종으로 인도합니다. 은혜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도록 우리를 인도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을 사랑할수록 더욱 그분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사님, 성경은 우리가 율법 아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율법 아래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과연 율법 아래 있을까요?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 (6:14,15)

 

성경은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우리가 율법을 범해도 된다는 말일까요?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 아래 있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율법 아래 있다는 말은 구원의 방식으로써 율법 아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당신의 은혜는 필요없습니다. 제 행위로 충분합니다. 제가 제 자신을 구원할 것입니다이런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 아래 있는 것은 정반대의 의미입니다. 예수께로 온전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19,20)

 

성경은 율법은 우리가 의롭게 하거나 구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이것이 죄다, 옳다, 그르다를 말해 줍니다.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제 얼굴이 지저분해서 거울을 봅니다. 그러나 거울은 저를 깨끗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단지 거울은 저에게 너는 지금 비누와 물이 필요하다라고 말해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제 얼굴이 더렵다고 해서 거울을 없애 버릴까요? 아닙니다. 제게는 그 거울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필요를 보여주고, 가서 씻고 싶게 만듭니다. 율법으로는 무엇을 깨닫습니까? 바로 죄입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나를 예수께로 가게 합니다. 그분의 은혜는 나를 사해줍니다. 그분의 은혜는 나를 용서합니다. 나를 깨끗게 합니다.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구원의 수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의 죄를 대신한 것임을 받아들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33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성경은 마지막 때 많은 거짓 가르침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 2:4)

 

그리스도를 아노라 하면서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않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만일 진리를 알기 원하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율법은 십자가에 못박히고 폐지되었다는 가르침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때 종말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12:17)

 

성경 예언에서 여자는 그리스도의 신부-교회를 상징합니다.

 

“...그 여자의 남은 자손과 더불어 싸우려고...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12:17)

 

여기 마지막 때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순종하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지 않으며, 하나님의 법을 신실하게 지키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며, 그분을 섬깁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요한계시록 1412절은 말씀하시기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다고 말합니까?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 믿음을 가지고,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며,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 말합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이런 무리를 찾으실 것입니다.

 

킴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백만달러가 훨씬 넘는 돈을 받았습니다. 그 부부는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킴에게 남편이 아닌 남자친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보다도 돈을 더 원했습니다. 그녀는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해서 남편을 살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가 청부업자와 전화로 남편의 살해를 의뢰할 때 대학생 아들이 우연히 부엌에서 그 음모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으며, 아버지를 죽이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경찰에게 신고해서 함정을 만들고, 아내가 비용을 지불하려고 나왔을 때 경찰은 그 돈을 압수하고 아내를 체포했습니다.

 

그녀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잡힌 것에 대해 화가 나고 비통했습니다. 6개월이 넘는 동안 남편은 나의 21년간의 결혼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아내를 계속 방문했습니다. 그는 감옥으로 꽃과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아내에 대한 모든 고소를 다 취하했습니다. 복권 당첨금으로 어마어마한 액수의 보석금을 내고 아내가 풀려나도록 하였습니다.

 

킴은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남편을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당신은 감옥에 평생 있어야 할 나를 석방시켜 주었어요. 나는 거기서 내 생애를 마감해야 하는데 당신이 나를 풀려나게 해 주었어요.. 저는 용서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당신이 기회를 주었으니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면서 살겠어요.”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실화인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영원히 죽어야 마땅한 사람인데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죽기로 고소당했습니다. 예수님은 갈바리 십자가로 우리를 석방시켜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분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전액이 다 지불되었습니다.

 

십자가에는 자비와 용서가 있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그분의 사랑의 눈을 바라봅니다. 저는 제 자신을 그분의 발아래 던집니다. 사랑이 저로 하여금 그분을 섬기게 합니다. 사랑은 저로 하여금 이렇게 고백하게 합니다. “주님, 당신의 법을 제 마음에 기록해 주시어 제가 그것을 사랑하고 제 마음으로 순종하길 원케 하옵소서

 

용서하시는 하나님께서 순종하라고 여러분을 초청하십니다. 우리를 순종하도록 초청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그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그분을 친구, 구세주, 전 생애의 주님으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에 여러분에 대한 그분의 생각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온 우주에 그분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십자가에서 멀어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그분의 삶과 여러분의 구원이 있습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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