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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와 불교-㊽ 초기 유럽 불교사원 독일 뮌헨, 베를린에 세워져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1/11/22 [07:43]
프랑스 빠리에 불교우의회 창립, 불교저널 발간... 러시아도 사원 건립

서양문화와 불교-㊽ 초기 유럽 불교사원 독일 뮌헨, 베를린에 세워져

프랑스 빠리에 불교우의회 창립, 불교저널 발간... 러시아도 사원 건립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1/11/22 [07:43]

프랑스 빠리에 불교우의회 창립, 불교저널 발간... 러시아도 사원 건립

 

유럽에서 독일은 인도학 연구가 일찍이 시작된 곳이다. 현대 불교학 연구가 미국으로 옮겨간 느낌이지만, 독일에서의 불교 연구는 인도학(印度學) 연구와 함께 현대에 들어와서도 매우 탄탄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1921년에는 독일 뮌헨에 불교교구가 설립되었다. 독일에서는 인도학의 대가인 카를 자이덴슈투커(Karl Seidenstücker18761936) 박사가 1903년 불교협회를 창설했으며 1921년에는 불교사원을 세웠다. 1924년 베를린에서는 상좌부 사원에 베를린 불교사원이 창건되었다.

▲ 독일 최초의 테라와다(상좌부) 사원인, ‘베를린 불교사원’ 

 

파울 달케 (18651928)는 의사로서 1차 대전 이전에 아시아를 여행하다가 실론(스리랑카)에서 불교를 만났다. 그는 여행하기 전에 이미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불교에 심취했었는데, 실제 스리랑카 현장에 가서 불교를 만나자 감동하게 된다. 2년 후에 다시 와서는 빨리어와 불교철학을 배우고 현지 비구들과 깊은 유대와 교유관계를 형성하여 불교 연구를 심화시켰다.

 

주로 실론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중국, 인도, 버마,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를 여행하면서 불교 연구를 계속했다. 그런데 그가 독일에 있던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에서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실론에서 불교활동을 하려고 했었는데, 여의치 않자 그만 베를린에서 스리랑카에 기반을 둔, 스리랑카 풍, 상좌부 사원을 세우게 되었고 매일 불교 집회를 열고, 수시로 출판물을 발행하였다. 이런 인연으로 독일출신들이 실론 불교 승가에 출가하여 비구가 된 씨앗이 되었다.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건립된 티베트 겔룩빠 부랴트 닷산 군제쵸이내 사원.  

 

한편 프랑스에서는 1929년 미국의 작가 시인 극작가인 그레이스 콘스탕 라운스베리(18761964)가 불교협회를 창립하고 불교 저널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불교로 개종한 유럽인 혹은 미국인에 의해서 불교 사원이 건립됐다면, 러시아에서는 라마에 의해서 티베트-몽골 풍 사원이 세워졌다. 와왕 롭상 도르지브 라마(18531938)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닷산 군제쵸이네 사원을 1909년에서 1915년 사이에 건립했다. 이 사원은 러시아 혁명기간에 훼손되었으나 2차 대전 기간에도 살아남았다가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와왕 롭상 도르지브 라마는 티베트 겔룩빠 전통의 라마로서 러시아 부랴트에서 출생했으며, 부랴트와 칼미크에 사원을 세웠다.

▲ 러시아 부랴트 공화국 출신 와왕 롭상 도르지브 라마.  

 

▲ 와왕 롬상 도르지브 라마가 1901년 페테르고프 궁에서 차르 황제를 만나고 나오는 장면.    

 

와왕 롭상 도르지브 라마는 13대 달라이 라마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티베트 정부와 러시아 제국과의 링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영제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티베트를 두고 그레이트 게임을 벌인 틈바구니에서 티베트와 러시아 제국을 위하여 역할을 했고, 1913년 티베트-몽골 조약(蒙藏條約)에도 관여했다.

 

몽장조약은 티베트-몽골 상호 승인 조약으로 191322일 티베트와 몽골 양측이 몽골 우르가(현재의 울란바토르)에서 체결한 조약으로 티베트와 몽골 양측이 독립 국가로 국제적인 승인을 받기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조약에 서명한 티베트인의 인적이 불분명하여 조약의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조약의 존재성 자체에도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1982년 몽골어로 된 조약 원문이 몽골과학원에 의해 출판되었고, 2007년 몽골 기록 보관소에서 티베트어로 된 조약문서의 진품 사본이 발견되었다. 티베트와 몽골은 1911년 신해 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자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했지만, 중화민국은 이들의 독립 선언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후 티베트와 몽골은 1913년 양측의 독립 선언을 상호 승인하는 내용을 담은 조약을 체결했다.

 

그는 187319세에 티베트 라사에서 가장 큰 수도원인 겔룩빠 드레풍 사원대학에서 공부했다. 인도 날란다 사원 대학의 학풍을 계승한 드레풍 사원대학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는 이 사원대학에서 15년간 연구를 지속하고 게쉬(불교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러시아 제국 니콜라이 2세는 그에게 라사에서 러시아 에이전트로 활약하는 권한을 부여하기도 했다.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폴란드의 차르, 핀란드의 대공이었다.

▲ 칼미크 공화국 수도 옐리스타의 황금사원.    

  

현재 러시아에도 불교가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초기에 러시아인들은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구소련은 마르크스주의의 무신론에 입각한 국가로서 종교를 비과학적인 것으로 보고, 반종교적인 선전이나 학교교육을 실시하였으나 국민의 종교 신앙을 금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러 종교가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종교 활동이 허용되고 있다.

 

러시아 최대의 종교단체는 기독교의 러시아 정교회로 제정 러시아 시대 이래로 러시아 국민의 사상·문화·풍속 등에 깊은 영향을 끼쳐 왔다. 이슬람교는 소수민족이 다수 신봉하고 있다. 그 밖에 소수종교로 칼미크족과 부랴트족의 불교와 여러 그리스도교 분파들이 있다. 사회주의 시대의 영향으로 무종교자도 많이 있다.

▲ 러시아 모스크바 소재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보수적인 러시아인과 기독교인들은 불교를 시베리아의 기독교화와 러시아화의 장애물로 여겨서 불교를 폄하했다. 반면 러시아 사상가들은 불교를 미신적이라기보다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을 지닌 선진 종교로 보았다. 러시아인에 대한 불교의 관점은 학계보다는 기독교 선교사의 논쟁과 왜곡된 견해에 영향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에 소재하는 정교회 교단이다. 정교회 중에서 최초로 설립된 국가 정교회이며, 오늘날 정교회 내 최대 교단이다.

 

15세기 후반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모스크바 대공국은 스스로 자신들이 로마 제국의 정당한 후계자이므로 모스크바 대공 역시 로마 황제의 후계자를 자처하여 정교회의 유일한 군주로 등극하였다. 이어 1472년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는 동로마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 소피아 팔래올로기나와 결혼하고, 동로마 제국의 문장인 쌍두 독수리를 문장으로 삼아 그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차르(카이사르, 즉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당시 루스인들은 동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구심점을 잃은 정교회를 사수하라는 하느님의 거룩한 소명을 받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모스크바가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이어 제3의 로마라는 신념의 기원이 되었다. 표도르 1세 재위기간 섭정이었던 보리스 고두노프는 모스크바 관구장주교의 지위를 총대주교로 격상시켰다. 1589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이에레미아스 2세의 동의 아래 러시아에 총대주교좌가 신설되어 모스크바 관구장주교는 전 루스 총대주교로 승격되었다. 1593년에는 4대 고대교회 총대주교들(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회합하여 모스크바 총대주교구에 교회 서열상 5번째 총대주교좌를 부여함으로써 승인 절차는 마무리되었다.

▲ 러시아의 인도학(불교)의 대가인 체르바스키.   

 

공산주의 시절 박해를 받던 러시아 정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199010월의 소련 최고회의가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이후부터이다. 소련 붕괴 후, 현재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인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재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스탈린이 폭파한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의 복구를 기점으로 러시아 각지에서 소련 시대에 파괴된 성당과 교회조직의 재건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도 러시아에서 정교회는 러시아인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어서, 출근길에 성당과 공소 등 기도할 수 있는 장소에서 기도를 드리고 직장에 가는 시민들도 있다.

 

러시아 연방 내에서의 불교교세는 미미하지만 현재 러시아 권에 있는 투바는 국민의 60%, 칼미크는 53%, 부랴트는 20%, 자바이칼 변경 주는 15%, 러시아연방은 1%의 불교도들이 있다. 러시아 권내에 있는 사원은 비 러시아인들이 지배적이지만, 순수 러시아 불교도들도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순수 러시아인으로서 유명한 불교학자는 체르바스키(18661942)이다. 체르바스키는 러시아 제국의 폴란드 키엘체 태생으로 푸시킨이 졸업했다는 차르스코예 셀로학습원에서 공부했고,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유명한 인도학 교수였던 이반 미나예프와 세르게이 올덴베르그에게서 인도학과 불교학을 공부하고 비엔나에서는 인도시학을, 베를린에서는 불교철학을 연마했다. 1897년 올덴베르그와 체르바스키는 희귀 불교텍스트 도서관을 출범시켰다. 그는 인도와 몽골을 여행한 다음, 많은 불서를 발간했다. 유럽의 3대 불교학파의 하나로서 레닌그라드 학파의 주요 일원이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부랴트 공화국 수도 울란우데 이볼긴스크 닷산 사원 러시아불교대학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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