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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지율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박길수 | 기사입력 2022/01/10 [14:21]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고귀한 생명수” 기억하길

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지율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고귀한 생명수” 기억하길

박길수 | 입력 : 2022/01/10 [14:21]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고귀한 생명수기억하길

 

오늘은 외할아버지가 지율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지 않아도 된다. 새해들어 셋째 날인 오늘은 지율이가 입학할 초등학교 예비 소집이 있는 날이다. 지율이는 앞으로 6년 동안 다닐 초등 학교에 엄마랑 손잡고 가서, 먼저 선생님에게 공손히 인사드리고 입학 서류를 받아든 후, 엄마가 다시 지율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깜찍하고 예쁜 지율이 단발머리는 딸 바보 지율이 아빠가 몇 일 전에 마음먹고, 한 가닥 한 가닥 찬찬히 짤라준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지율이 단발머리가 퍽 의젖하고 단정하게 보인다고 입술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가 왠지 짠해지고, 갑자기 어수선해지는 마음을 도대체 지우기 쉽지 않았다.

 

정확히 63년 전에도 지금 초등학교인 국민학교에 입학 소집일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식 입학식 날 외할아버지는 지율이처럼 어머니 손을 꼭 잡고, 깡충깡충 뛰면서 신나고 기뻐하며 학교 입학식에 갔었다. 외할아버지는 당시 유치원이 있었는지는 잘 몰랐지만, 단지 형들이 다니던 그 국민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이 너무너무 다니고 싶었었다. 입학식을 하던 날 외할아버지는 온 천지가 눈앞에 활짝 열린 듯했고, 이제 드디어 세상을 깡그리 독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 세상 만난' 기분이었다. 이상하게 지금까지도 그날의 벅찼던 기억만은 외할아버지 뇌리에 너무 생생히 남아있다.

 

어느날 외할아버지가 잠깐 졸았던 듯싶은데, 63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버린 것이다. 그 춥던 겨울, 지붕마다 고드름은 기다랗게 맺혔고, 낮 동안 지붕 양옆 처마에 매달려 두텁게 살찐 왕고드름에서 물 몇 방울 떨어지면 곧 새까만 밤이 되어버렸던 기억이 외할아버지는 아직 눈앞에 선하기만 하다. 그리고 63년이란 세월은 후다닥 날듯이 지나가버렸다. '인생은 낙숫물 떨어지는 시간'이라더니! 일이 년도 아니고, 세상에 원 70년 세월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리다니! 느긋이 방심만 할 일은 단연코 아닌 듯싶다. 까닥 잘못하다가는 '이대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황당한 꼬락서니를 보게될 지도 모르겠다.

 

"아주 먼 옛날 옛적에 사자에게 쫓기던 사람이 낭떨어지에 떨어졌다. 다행히 그는 삐져나온 나무뿌리를 붙잡을 수 있었다. 한숨 돌리고 밑을 보니, 커다란 악어가 큰 입을 쫙 벌리고 그가 추락하기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기겁을 하면서 붙들고 있던 나무뿌리를 살펴보았는데, 뿌리 밑둥을 흰쥐와 검은쥐가 번갈아 가며 갉아먹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어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그곳에는 향기로운 꿀이 한 방울 한 방울씩 머리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어 그 달콤한 꿀을 받아먹었다. 진한 야생의 꿀에 금방 취해, 그는 그동안 힘들었던 삶의 모든 고뇌가 다 사라져 버린 듯, 바로 행복감에 잠겼다."

 

지율아! 입학식 후, 그 다음날부터는 할아버지도 그놈의 경쟁이라는 사자와 시험이라는 악어의 공격에 쫓기고 쫓기다가 인생의 낭떨어지에 떨어져버리곤 했었단다. 간신히 붙든 생명줄을 귀신 같은 흰쥐 검은쥐라는 밤낮이 쉬지 않고, 중단도 없이 갉아대고 있었단다. 그러나 세월의 급변 속에서도 무던한 할아버지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생명의 꿀을 다른 사람들처럼 의연히 찾아낼 줄 알았고, 취해 환호도 했단다. 그 꿀을 받아먹으면서 그새 쌓였던 괴로움은 바로 잊어버렸고, 할아버지는 금세 행복으로 빠져들곤 했단다. 이렇게 비슷한 듯 다르게, 70년의 세월도 순식간에, 한편으로는 덧없이 흘러버린 듯싶구나.

 

지율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간신히 목숨만이라도 보전할 수 있다면 생명의 동아줄은 필사적으로 붙들게 된단다. 설령 무서워도 도무지 티 내지 않고, 힘이 들어도 그 자리에서 끝까지 참고 견디는 일을 맹세코 잊지 않는단다. 사람은 흰쥐 검은쥐가 자기 나무뿌리를 다 먹어치우기 전까지는, 달콤하고 향기로운 꿀에 취해 마음껏 기뻐해도 괜찮단다. 착하고 용감하고 근면 성실한 사람에게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 있는 기회는 꼭 온단다. 너도 행여나 잊지마! 바로 그 꿀은 우리 삶에서 결단코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고귀한 생명수라고 할아버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니!

 

필자 박길수는 이 시대를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인물이다. 43년 결혼생활 중 6년여 전 느닷없는 아내의 뇌출혈로 불행이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의식없는 아내를 편안한 집에서 보살피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땄다. 치료비와 생활비, 그리고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장애인 도우미 자격증도 따서 출퇴근한다. 항상 아내 곁을 지키는 아버지를 위해 딸과 사위, 그리고 누구보다 예쁜 손녀가 합류했다. 그는 불행한 생활일 듯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구원도 받는다. 그리고 개인 블로그 박길수의 일기’(https://m.blog.naver.com/gsp0513)에서 그러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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