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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당신의 재판일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2/01/11 [10:10]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주형식 목사의 지상 설교●당신의 재판일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2/01/11 [10:10]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되는 문제 중 하나로 사형제도를 유지할 것인가? 폐지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는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국가가 점점 늘어나서 현재는 사형제도를 폐지한 국가가 133개국이 넘어서고 있는 형편입니다. 한국은 어떠할까요? 한국은 아직도 사형제도가 법정형으로서는 존재하나, 20년 이상 집행을 하지 않고 있어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는데, 미국, 중국, 베트남,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정도의 국가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사형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형제도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이 무죄한 사람이 억울하게 죽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죄지은 사람이 처벌없이 풀려나는 것, 아니면 무죄한 사람이 억울하게 잘못 처벌받는 것, 2가지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누구도 죄지은 범인이 풀려나서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고 위험하게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라도 무죄한 사람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대해 처벌받기를 또한 원치 않습니다.

 

수년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미식축구 영웅인 O. J. 심슨이라는 사람이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몇 년간을 끌어온 재판 끝에 배심원들은 무죄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판결이 정당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이들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 무죄로 풀려났다고 분개하였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이 검거되는 뉴스를 보면서 경악을 합니다. 유영철, 강호순같이 수많은 생명을 죽인 범인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사형도 당하지 않고 교도소에서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내 금같은 세금이 왜 저런 인간들 먹고 사는데 들어가나?”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다른 질문을 한번 드려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하지도 않은 말로 인해 비난, 질책, 혹은 고소같은 것을 당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나 행동이 입에서 입을 거쳐 가면서 거짓 소문이 되어 나에게 다시 돌아온 경험이 있으십니까? 이렇게 부당하게 오해를 받고 비난을 당한다면 무척이나 억울한 일입니다. 더욱 억울한 것은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처벌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세상의 일들을 바라보면서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나쁜 소식과 한 가지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보통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으면 무엇을 먼저 듣기를 원하십니까? 나쁜 소식을 먼저 듣기 원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나쁜 소식은 우리 모두는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더 나쁜 소식은 잘잘못을 가릴 것도 없이 우리 모두는 유죄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재판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말씀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4:6,7)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성경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지상의 재판정이 아닙니다. 하늘의 재판정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은 온 시대의 재판입니다. 세상 역사의 마지막 드라마입니다. 모든 인류의 운명이 정해지는 장면입니다. 다니엘은 이 재판정의 광경을 보았습니다.

(

7: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다니엘은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온 우주의 최고법정입니다.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그곳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재판정에 앉아 계십니다. 다니엘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앉아있고, 우주의 최고 법정이 소집되었습니다.

 

(7:9:10)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이것은 우주의 최고 법정이 열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성경은 책들이 펼쳐졌다고 말합니다. 이 심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지구라고 불리는 이 행성에 어떤 운명의 드라마가 펼쳐질까요?

 

(8:14)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성경에서 예언상의 하루는 문자적으로 1년입니다. 다니엘 시대로부터 예언상 2300일은 2300년을 상징합니다. 성경은 모형을 본 딴 이 땅 위의 것 하나와 하늘의 위대한 원형 성소, 2개의 성소의 정결에 대하여 말합니다.

 

다니엘 시대로부터 2,300년 후에는 명백하게 이 땅에 성소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지상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더 이상 양들의 희생제물을 성소에 가져올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지상성소의 모든 것들은 하늘의 사역을 나타냅니다. 지상성소에서 양이 죽임을 당한 것처럼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셔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지상성소에서 어린양을 죽인 후 제사장은 피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분은 하늘성소로 올라가셨습니다.

 

지상성소에서 유대인의 종교적 주기의 끝은 대속죄일, 즉 심판의 날이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그와 같이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다니엘의 예언에 의하면 다니엘의 때로부터 2300년은 세상이 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직전에 있을 하늘의 심판에 이르게 합니다.

 

2300년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려진 기원전 457년에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490년은 유대인들에게 적용되었는데, 그분이 기름부음을 받으신 주후 27년까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후 31년까지 펼쳐지고, 34년에 스데반이 돌아 맞아 죽임을 당하면서 유대인들에게 정해진 기간이 마쳐지게 되었습니다. 이 이후에는 복음이 온 세상 만민들에게 적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2,300년은 기원전 457년부터 기원후 1844년까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1844년 이후로는 그래서 마지막 때라고 부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라 부르는 기간입니다. 하늘 재판정이 열리기 시작한 때입니다. 인류의 운명이 결정되는 때입니다.

 

사도행전 1731절에 하나님께서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 심판의 시간에 들어갔습니다. 이 세상의 운명은 지금 결정되고 있습니다. 이 심판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심판이 있어야 합니까? 이것은 선과 악 사이의 대쟁투의 일부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루스벨을 창조하셨습니다. 눈부시도록 빛나는 존재였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반역하여 우주를 불순종으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타락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14:12-13)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루스벨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위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 위에 자신의 의견을 두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루스벨은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천사의 삼분의 일을 반역으로 이끌었습니다. 루스벨은 이 지구로 와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사랑과 권위를 거절하는 똑같은 죄를 짓게 하였습니다.

 

우주 앞에서 루스벨은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고 고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의롭지 않으시다’, ‘하나님의 방법은 최선이 아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지켜질 수 없다하나님께서는 단숨에 사단을 없애버릴 수도 있으시지만 그전에 그분의 사랑과 공평하심이 온 우주에 보여져야 합니다. 온 우주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심판 때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내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누구라도 잃어버린 바 된다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 때문에 그들이 잃어버린 바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은 이성적이고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는 자유의지가 있지만 우리의 선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14: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성경은 각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의 일을 직고한다는 심판의 실제를 가르칩니다.

 

(11: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우리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과 결정에 대한 자유의지도 주어졌지만 책임도 주어졌습니다.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하나님께는 비밀이 없습니다. 이중적인 생활과 이중적인 표준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 드러납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 남편이던지 아내에게라도 비밀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숨겨질 수 없습니다. 성경은 심판은 모든 비밀 속까지 파고 들어온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시간에 무엇을 읽고 보았습니까?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진정으로 사랑합니까?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심판에는 위장이나 속임수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훌륭하게 보일 수 있지만 우리는 가장한 모습이 아닌 모두가 볼 수 있는 진실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한번은 사람들로 꽉 찬 극장에서 영화가 멈췄습니다. 갑자기 불이 켜지고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여러분, 큰 일 났습니다. 이중에 어떤 분이 다른 남자의 부인과 함께 계시다면 빨리 자리를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남편이 지금 총을 들고 극장으로 뛰어들어 왔습니다안내방송이 나오자 수십명의 남녀커플들이 우당탕탕 놀래서 도망을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139:1,3,16)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나를 감찰하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심판대 앞에 서실 것입니까?

 

(12:36,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성경은 우리의 말들이 심판대 앞에 제시된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성난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분노의 말과 함께 고집 센 백성들을 향하여 반석을 쳤습니다. 결국 그는 이스라엘과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셨으나 성난 말은 비싼 값을 치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그를 가장 필요로 하실 때 저주의 말로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빌라도는 증거에 의해 행동하기를 거절하고 그의 결정적인 말로 그분을 죽음에 처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유다의 비극적인 배반의 말은 어떻습니까? 심판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말들을 드러냅니다.

 

어떻게 우리는 그 심판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심판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면 우리는 피할 길 없이 대가대로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죄로 선고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심판의 책들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아까 나쁜 소식만 알려드리고 좋은 소식을 안 알려드렸죠? 심판의 좋은 소식은 모든 것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쁜 행위뿐만 아니라 사랑과 친절의 언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훌륭한 선택들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말해진 격려의 말도 기록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말해진 희망의 말도 기록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용기의 말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말들, 누군가와 함께 기도한 것, 누군가 예수님을 알도록 인도한 것 등이 하늘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눈물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나의 실패로 인한 모든 눈물, 자녀들 위에 흘려진 모든 눈물, 외로움과 낙심과 우울함의 눈물...모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의 어려운 상황들을 아십니다. 여러분의 슬픔과 눈물을 알고 계십니다. 투쟁과 갈등과 기쁨과 슬픔과 좋고 나쁜 행실들, 모든 외관을 벗어버리고 모든 가면이 치워진 채로 참된 나만이 남겨져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됩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심판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기록의 책을 봅시다. 이 책에는 우리의 좋은 행실과 나쁜 행실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성경의 모든 것 중 가장 중요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당신의 이름이 적혀 있다면 당신은 영원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나의 이름이 그 안에 업다면 나는 영원히 잃어버린바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계시록 2127절에 어린양의 생명책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영원히 살게 될 사람들을 기록한 예수님의 책입니다. 성경은 오직 두 부류의 사람들, 즉 구원받은 사람들과 잃어버린바 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주님 쪽이던지, 혹은 사단의 편이던지 갈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마지막 추수라고 말합니다.

 

(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올바른 자와 부정한 자,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가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던지, 사단의 편에 서던지 결정을 합니다.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예수님의 주장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들이고, 성경은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계시록 3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내가 나의 죄들을 보여주는 정욕과 자만심과 탐심과 함께 하나님 앞에 서면 나는 하나님의 책에서 영원히 지워지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예수님과 함께 서면, 주님은 내 앞으로 나오셔서 이 사람은 나의 자녀입니다. 그는 실패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그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나의 피를 흘렸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그는 믿음으로 내 안에 있었습니다이렇게 우리를 변호하실 것입니다.

 

모든 죄 뒤에 사면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심판을 통과할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나의 이름이 하나님 앞에 불려질 때 용서받음이라는 판결이 떨어질 것을 알 수 있을까요?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나의 모든 선한 행실은 심판을 통과하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아무도 홀로 심판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위해 서지 않는 한 아무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로 나아가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우리 힘으로 심판을 통과할 길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영국 런던에는 왕립조폐국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영국의 돈을 찍어냅니다. 이 영국조폐국 안에는 유명한 저울이 있습니다. 화폐의 무게를 재는 표준저울입니다. 가이드가 저울에다가 두 개의 지폐를 올려 놓습니다. 저울은 너무나 균형을 잘 이루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이드가 한쪽 지폐를 집어서 지폐 위에 자기 이름을 적고 다시 올려 놓습니다. 그러면 서명된 지폐 쪽이 밑으로 쑥 내려갑니다.

 

심판에서는 우리의 이름이 적힌 곳에 안내인이신 예수님의 서명이 적혀집니다. 그러면 심판의 저울이 쑥 내려갑니다.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주님은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자들 뿐일 것입니다. 나의 이름이 하나님 앞에 불려질 때 나의 죄의 목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당신께서 당신의 성령을 그의 마음에 보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셨고, 저도 그를 위해 죽었습니다. 제가 중보합니다. 그는 율법을 범했지만 제가 지켰습니다. 그는 죽어 마땅하지만 저는 생명을 받아 마땅합니다. 아버지 저의 모든 공로를 이 사람에게 다 돌려주세요.” 성경은 말합니다.

 

(요일 2:1)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습니다. 우리를 대표하시는 분으로 한번도 재판에서 진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나갈 때에 내가 집을 몇 채 가지고 있고, 은행에 잔고가 얼마가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만 중요합니다. 내 삶이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는가?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입니다. 성경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주리라

 

지금 우리의 결정들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마음에 깊은 기도와 더불어 결정의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주님, 저는 손을 올려 당신의 손을 잡고 싶습니다. 주님, 저는 금이나 은보다 당신을 갖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과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시간, 예수께서 심판에서 나를 대신하실 수 있도록 그분을 초청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시간, 예수님의 의의 예복이 나의 죄를 덮어 주시기를 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를 위해 변호하시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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