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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③고대인도 해상무역, 인더스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가 중개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1/17 [07:58]
마우리아 왕조 해군부서 설치, 아라비아 해와 벵골 만 통제, 스리랑카 섬 해역 관할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③고대인도 해상무역, 인더스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가 중개

마우리아 왕조 해군부서 설치, 아라비아 해와 벵골 만 통제, 스리랑카 섬 해역 관할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1/17 [07:58]

마우리아 왕조 해군부서 설치, 아라비아 해와 벵골 만 통제, 스리랑카 섬 해역 관할

 

인도의 해양 역사는 기원전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더스 강을 중심으로 한 인더스 계곡에 살던 주민들은 메소포타미아와 해상 무역을 했다. 또한 이집트와의 교역은 메소포타미아가 중개무역을 할 정도였다. 인더스 강은 파키스탄 중앙을 관통하는 강이다. 상류인 인더스 계곡에는 인더스 문명이 발생하였고, 이 지역에서 문화적, 상업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했다. 인더스 강은 티베트에서 발원해서 히말라야와 카슈미르를 거쳐 파키스탄에 이르러서는 남쪽으로 흘러 아라비아 해로 흘러들어 간다. 강의 총 길이는 2,900km~3,200km정도이다. 인도의 명칭도 인더스 강에서 유래한 것이다.

 

베다기록에 따르면 인도의 무역인과 상인들은 극동과 아라비아와도 교역했다. 마우리아 시대(기원전 3세기)에는 선박과 무역을 감독하는 확실한 해군 부서가 있었다.

▲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사이의 교역로는 기원전 3000년경에는 해수면이 낮아져 거리가 훨씬 더 짧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더스-메소포타미아 관계는 기원전 3000년 후반기에 발전한 것으로 생각되며, 기원전 1900년경 이후 인더스 계곡 문명의 쇠퇴로 중단될 때까지로 보고 있다. 메소포타미아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 관계의 맥락에서 적어도 기원전 3200년 이후로 남아시아와 이집트 간의 청금석 무역에서 이미 중개자 역할을 한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청금석(靑金石)은 감청색의 불투명한 보석이다. 보석으로 여겨진 역사가 가장 오래된 돌 가운데 하나로 인류가 사용한 역사는 기원전 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귀하게 여겼다. 청금석은 하나의 광물이 아니라 여러 광물이 혼합되어 있다. 생산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바다흐샨 주가 최고급 청금석의 산지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의 청금석 광산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청금석을 공급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청금석을 공급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계속 채취가 행해진 광산이다.

 

적어도 15천년이 흐르는 동안 인더스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는 해수면이 백 미터 정도가 상승함에 따라서 기존의 1km 정도의 거리가 2km로 늘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수메르인의 선조들은 인더스와의 거리가 지금보다도 훨씬 짧았던 시대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더스 도시와 아라비아 반도 그리고 페르시아 만은 오늘날처럼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수메르 문명이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바빌로니아가 수메르 문명을 계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2000년쯤에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인 아라비아에서 온 셈족(노아 후손) 계통의 아모리인이 수메르 지방을 점령하고 고대 바빌로니아를 세움으로써 수메르 문명은 국가 형태로서는 완전히 사멸되었으나, 수메르 종교와 문화의 흔적이 바빌로니아인·아시리아인을 비롯한 다른 민족 및 문화 집단들의 신화와 종교 그리고 문화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 수메르 북부 아카드 제국(기원전 2334년〜2154년) 시대 원통형 인장에 묘사된 뿔이 긴 물소. 이것은 수메르의 아카드 제국과 인더스 계곡 문명인 멜루하와의 교류를 증언한다는 고고학자들의 설명이다.(루브르 박물관 소장)  

 

인더스 문명과 메소포타미아와의 무역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있어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알렉산더 대왕도 인도 원정을 마치고 페르시아로 귀환할 때, 인더스 강을 따라서 내려오다가 게드로시아 사막을 통과해서 페르시아로 이동했다고 하는데, 역사가들은 알렉산더가 그의 군대 4분지 3을 여기서 잃었다고도 한다. 게드로시아는 현재 발루치스탄에 해당하는 영토의 고대 이름이며, 동 발루치스탄은 파키스탄의 북서 지방과 남부 중앙 아프가니스탄이며 서 발로치스탄은 이란의 호르모즈간 주와 시스탄 바 발루치스탄 주 사이로 나뉘는데 게드로시아는 인더스 강부터 호르무즈 해협의 남쪽 끝까지 뻗어있다고 한다. 기원전 325, 알렉산더 대왕은 동쪽으로 원정한 후에 귀환 길에 이 지역을 통과하였다.

 

이처럼 인도 아 대륙은 인더스 문명시대에 메소포타미아와 무역을 했으며, 아라비아 반도와도 무역을 했다. 인더스 문명(인더스 계곡 문명)은 기원전 약 33001700년에 있었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26001900년경에 가장 흥했던 문명으로 연구되고 있다. 처음 발굴된 유적지가 하라파에 있었기 때문에, 가장 부흥했던 시기는 하라파 문명이라고도 부른다.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굴은 계속되고 있다. 인더스 문명의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더스 문명과 쌍벽을 이루는 메소포타미아는 중동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주변 지역(현재의 이라크)에서 발생하였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이 자연적으로 가져 다 주는 비옥한 토지로 인하여 기원전 약 6000년 구석기 시대에 인간이 정착 주거하기 시작한 이래 점차 인류 고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서 '메소'(Μεσο)는 중간이라는 뜻을, '포타'(ποτα)는 강이라는 뜻을 '미아'(μια)는 도시를 의미하는 뜻을 가지고 있어 '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의미를 보여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개방적인 지리적 요건 때문에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하여 정치·문화적 색채가 복잡하였다. 폐쇄적인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두 강 유역은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전개된 문화는 개방적, 능동적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주위의 문화적 파급과 후세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세계사적 의의가 크다.

▲ 인더스계곡 문명에서 발견된 스와스티카(만자문). (브리티시 박물관 소장)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종교는 현세적 다신교였으며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불규칙한 자연 환경은 메소포타미아 인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끼쳤다. 수메르 인들은 삶도 지극히 현세적이었으며 사후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았다. 그들이 갖고 있는 신에 대한 생각과 현세적인 가치관은 길가메쉬서사시 등에 잘 나타나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로 수메르 남부의 도시 국가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Gilgaméš)를 노래한 것이다. 19세기 서남아시아 지방을 탐사하던 고고학자들이 수메르의 고대 도시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보다 1500년가량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수메르인은 꽤 발달한 신전·제사(祭司) 계급을 갖고 있었으며, 분화한 예술·학문과 같은 문화 활동뿐만 아니라 세제(稅制금융 등의 사회·경제활동도 신전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불교전파와 관련하여 인도 아대륙의 해상무역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헬레니즘 시대의 고대 그리스 역사가요 외교관 및 인도 민족지학자이자 탐험가였던 메가스테네스(기원전 350290)는 자신의 저서인 인디카에서 인도에 대해 설명했는데, 지금은 소실되었지만 후기 작가들에게서 발견된 문학적 단편에서 부분적으로 재구성되었다. 메가스테네스는 인도에 대한 서면 설명을 남긴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에 따르면 마우리아 왕조는 해군, 군사 수송, 보병, 투석기가 있는 기병, 전차 사단 및 코끼리와 같이 각각 5명으로 구성된 6개의 보드로 구성된 군사 명령을 언급함으로써, 군사조직에 있어서 해군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다.

 

불교 발생지인 인도 대륙은 문자 그대로 대륙에 버금가는 광활한 영토이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세계의 지붕격인 히말라야가 버티고 있다. 인도양이라는 대양과 좌우에는 벵골 만과 아라비아 해가 있으며 남쪽은 스리랑카 섬이 물방울처럼 놓여 있다. 인도 아대륙에서 생겨난 불교가 힌두쿠시 산맥과 히말라야를 넘어서 중앙아시아 서역(사막 오아시스) 동아시아로 전파되었다면, 남쪽으로는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로 전파되었다. 

보검<세계불교 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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