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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죽어도 좋다”

신민형 | 기사입력 2022/03/31 [07:31]
하늘소풍길 단상

“이대로 죽어도 좋다”

하늘소풍길 단상

신민형 | 입력 : 2022/03/31 [07:31]

이대로 죽어도 여한없다며 행복을 만끽했던 광교산 2년 생활. 날마다 적절히 일하며 산과 호수 산책하고 때로 친구들 만나 술자리 즐겼다. 아내와는 함께 산 40년 동안 보다 더 많이 이야기와 술잔 나눌 수 있었으니 보람있고 만족스러웠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10~20년 더 산다고 할 때도 이 마음 유지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새벽 성경 필사하며 기도하는 성스럽고 평온한 정신과 같이 내가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평정심을 계속 갖게 될 것인지에 의문이 든 것이다. 구원, 윤회 등을 믿음으로써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처럼 내 나름의 사생관으로 그들과 같은 편안함을 가질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말이다.

 

너무 행복에 겨우면 이런 잡념이 생기는구나 했다. 그래서 새롭게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광교산 산티아고길이라 불리는 손골성지까지의 으슥한 숲길을 걷기도 했다.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 깊숙하고 험한 신내 1길로 들어선 교인들의 죽어도 좋다는 믿음이 과연 무엇이고 어떤 것일까를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18Km, 6시간 반 여 산책과 명상으로 얻은 것은 없었다.

 

다만 산책 도중 파스칼 도박이론을 떠올렸고 그것이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아내 같은 사람에겐 무관하지만 나같은 사람에겐 도움이 될 거라는 망상도 했다.

 

신이 존재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이세상 아무도 없다. 그래서 수학자, 노름꾼 답게 배팅을 한다. 신이 있다는 쪽에 배팅을 해 천국에 간다면 그 이득은 무한대이고 죽어서 신이 없다는것을 알게됐을 때는 약간의 손해를 보게 되니 하느님쪽에 배팅하라는 것이다. 손해는 최소화할 수 있는 쪽에 돈을 거는 것이 도박의 기본이다.

 

도박의 기본이라 해도 뭔가 허탈했다. ‘파스칼 도박이론에 대응하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싶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래서 느긋하게 주변 풍경과 꽃, 오솔길 등을 즐기며 이번 봄날이 가기 전 한국산티아고길을 다시 걸으며 생각을 정립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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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8년 전 올린 대모산 단상을 보게 되었다.

 

그 안에 바로 내가 찾고 있던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이 있지 않은가. 지금의 만족스런 광교산 생활과는 완전하게 대비되는 수난과 고통의 대모산 생활에서 내가 이번 봄날에 붙들고 늘어질 화두에 대한 각성을 이미 해놓았던 것이다. 행복에 겨울 때보다 고난 속에서 깨달음이 많은거 같다.

 

새로운 깨달음은 없다. 반복된다는 것을 잊고 살 뿐이다. 퇴보만 안하면 된다. 

 

그래서 다음 번 산티아고길 산책에선 이 단상을 다시 음미하는 것으로 명상을 대신하기로 했다. 이 단상 안에 파스칼 도박이론도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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