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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창세기 산책⑦가인과 그의 유산 (1)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2/08/23 [07:23]
지상설교

주형식 목사의 창세기 산책⑦가인과 그의 유산 (1)

지상설교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2/08/23 [07:23]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천연계의 거대한 환경이 변했습니다. 힘든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도록 환경이 변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환경 가운데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같은 환경 가운데 성장하였지만, 가인과 아벨의 생애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이었습니다.

 

(4:1,2)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가인이라는 이름은 얻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아이를 낳은 후 이름을 짓고 그 뜻을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첫 아이를 하나님의 선물로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원문을 보시면 카니티(내가 얻었다) 이쉬(남자를) 에트 여호와(여호와로 인하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직역하면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남자를 얻었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여호와로 인하여라고 번역하지만, “여호와 자신이라고도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창세기 41절에 등장하는 여호와”(YHWH)라는 단어는 남자라는 단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문장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은데, “내가 득남하였도다. 이는 여호와시라.” 국제 표준 번역(International Standard Version)내가 남자 아이를 낳았으니 이는 여호와라라고 기록합니다. 다시 말해서 히브리어를 문자적으로 읽으면 내가 남자, 곧 여호와를 얻었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굉장히 흥미로운 기사입니다. 하와는 분명 자신의 첫 아기를 안았을 때 창세기 315절의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이 아이가 여자의 후손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얻음”, “얻었다라는 뜻의 카인(Qayin)으로 지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약속을 처음으로 듣고 이 약속이 속히 성취되기를 고대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맏아들이 구주이기를 바라면서 그 아들을 기쁨으로 환영하였습니다.”

 

이제 창세기 42절은 아담과 하와의 둘째 아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직업이 무엇인지를 소개합니다. ‘아벨의 탄생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1절에서 맏아들 가인을 낳았을 때는 그 이름의 뜻을 설명하였는데, 아벨은 이름의 뜻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벨은 히브리어로 헤벨”(Hebel)이라고 하는데 공허”, “헛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하와는 첫 아들을 낳고 그 아들에 대해 상당한 기대와 희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아들에 대한 기쁨은 곧 슬픔으로 변했을 것이기에, 둘째 아들은 헛됨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리라 추측이 됩니다. 결국 이것은 그의 생애 갑자기 허무하게 끝을 맺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42절을 보시면 두 아들들의 직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농업과 목축업이라는 두 직업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형태의 직업으로 고대세계의 모든 생활양식을 대표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땅을 정복하는 자”, “경작하는 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가인의 농사하는 일, 즉 땅을 경작하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과 조금도 충돌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뒤에 벌어지는 제사의 제물문제를 가지고 이들의 직업과 관련을 지어 어떤 직업은 좋고, 어떤 직업은 나쁘다라는 의식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농사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창세기 323절에서 주신 명령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선택한 직업들에서 도덕적 품성의 차이점을 나타내는 암시를 찾아낼 이유가 없으며, 다만 이들의 선택은 아마 그들의 재능과 취미에 따라 결정되었을 것이었습니다.

 

(4:3-5)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이 말씀은 가인과 아벨의 제물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가인이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그랬는데, 여기서 제물은 히브리어로 민하”(minhah)라고 불렀습니다. 민하는 고운 밀가루와 감람유, 유향을 제물로 삼아서 드리는 소제를 의미하는 말인데, 이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충성을 상징하는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민하가 꼭 소제만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3절에서 가인이 드린 제물민하였지만, 4절에서 아벨과 그의 제물에서 제물민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왜 가납하지 않으셨을까요?

 

가인은 약속된 희생과 희생 제물의 필요성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불평과 불신을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의 봉헌물에는 죄에 대한 참회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 그대로 따르는 것은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되며 자기 구원을, 약속된 구세주의 속죄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륜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것은 연약함을 시인하는 것이 된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자기 의존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공로를 가지고 나오려고 하였습니다. 가인은 제단을 쌓고 희생을 가져오는 점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분적인 순종만을 드렸습니다. 가장 요긴한 부분 즉, 구속주의 필요성에 대한 인정을 빼어버렸던 것입니다.

 

결국 가인은 자기 생각대로 부분적인 순종만을 하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인은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그 자신을 정당화시키려고, 곧 자신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자신은 구주가 필요한 죄인임을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는 죄에 대해 아무런 회개도 표현되지 않는 선물, 곧 피가 없는 예물을 드렸습니다.

 

결국 가인의 제사에는 피가 없었습니다. 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희생을 의미하고, 구약의 제사제도가 가리키는 원형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피가 없는 제사는 십자가 희생이 없는 예배와 같은 것입니다.

 

출생과 종교적 교훈에 관한 한 이 형제는 같았습니다. 둘 다 죄인이었으며, 둘 다 존경과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시인하였습니다. 외관적으로 볼 때 그들의 신앙은 어떤 점까지는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넘어서서는 둘 사이의 차이는 매우 컸습니다. 외관상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동기와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가인이 드린 제물의 문제점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4절에 보시면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단락을 히브리어 원어로 그대로 직역하면 그의 양의 첫 새끼들과 그것들의 기름진 부분을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으로 볼 때 아벨은 새끼 양 한 마리만으로 제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 여러 마리를 바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양의 첫 새끼는 가장 좋은 최상품의 양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아벨이 최상품의 양들과 기름을 바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벨은 첫 것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드렸지만, 가인은 여기에 무관심했습니다. 만약에 가인도 처음 곡식을 드렸다면 분명히 성경은 그것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3:9)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것입니다. 아벨은 몸과 마음을 다하여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드렸다면, 가인은 단지 기본적인 의미를 수행하는 것에 만족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사도 바울이 114절을 통해 말씀하고자 한 것도 무엇입니까? 여기 증거를 얻었으니라는 말씀은 문자적으로 증거가 되었나니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아벨의 믿음이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증거 자체가 된 것입니다. 차이점은 단순히 예물 자체의 특성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져온 예물에 반영된 드리는 자들의 성품과 태도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믿음 때문에 그의 희생 제물을 그의 형의 것보다 더 나은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가인에게는 희생 제물이 물질적 예물,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 어떤 것이었으나, 아벨에게는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희미하게나마 아벨은 물질적인 것 너머의 구체적인 것을 보았고, 하나님은 그것으로 인하여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그가 죽었을지라도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나라- 그는 여전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벨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현재의 것을 넘어서서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봄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부모가 범한 최초의 범죄의 성격이 어떠한 것입니까? “네가 네 자신의 하나님이 되라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의 제사는 그러한 죄를 그대로 답습하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공로에 의지하고, 자기의 행위에 의하여 정당화시키고, 결국 자신은 구주의 희생이 필요 없다는 성격의 제물을 드리는 것을 보시며 하나님께서는 그 부모가 죄가 계속 이어져가는 것을 보고 가슴아파하셨을 것입니다. 반면에 아벨의 제물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순종, 즉 나는 죄인이고, 따라서 약속된 구세주를 온전히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의 선포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의 제물은 기뻐 가납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과 하나님을 위해 하는 우리의 봉사와 헌신, 이러한 모든 것의 근본에 어떠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점검하며, 나는 철저한 죄인임을 고백하며, 그렇기에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 의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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