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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마을신앙의 종류와 풍수적 의미(下)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2/09/02 [08:50]
솟대와 솟대제, 용왕과 용왕제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마을신앙의 종류와 풍수적 의미(下)

솟대와 솟대제, 용왕과 용왕제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22/09/02 [08:50]

<연재순서>

()산신과 산신제, 당산의 당신과 당제,장승과 장승제

()솟대와 솟대제, 용왕과 용왕제

 

솟대와 솟대제에 내재된 풍수적 의미 

 

솟대란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혀 마을 수호신으로 믿는 상징물을 말한다. 장대 위에 새가 앉아 있는 신간으로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양하다. 짐대·짐대서낭·오릿대·수살대·진또배기·진대하나씨 등으로도 불리지만 모습이나 기능은 일치한다. 솟대는 삼한시대의 소도에서 연유했다고도 하지나 현재는 장승과 함께 마을 입구에 서 있어 마을의 액을 막아주는 기능을 가진다. 강원도 강문의 진또배기는 장간 위에 3마리의 오리가 세워져 있는데 각각 화재·수재·풍재를 막아 준다고 믿는다. 그 외에 오리에서 연유한 수신의 성격으로 풍농을 보장하는 기능이 있다. 해마다 마을 제의에 즈음하여 제작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솟대가 부러져야 다시 만들거나 윤년이 들 때마다 새로 세우는 곳이 있다.

 

솟대는 세우는 목적에 따라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 마을의 액막이와 풍농·풍어 등을 기원하여 세우는 일반적인 솟대, 두 번째 풍수지리상으로 행주형인 마을에 비보로서 세운 솟대, 세 번째 급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솟대인데,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마을신앙과 긴밀하다. 솟대는 대체로 장승과 함께 마을 어귀인 동두에 세워지기도 한다. 장승과 함께 세워지는 경우는 장승보다 더 높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솟대의 기둥 굵기는 일정치 않다. 재질은 곧게 뻗은 소나무를 다듬어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새는 오리라고 호칭하는 마을이 대부분이지만 지역에 따라 기러기·갈매기·따오기·왜가리·까치·까마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새의 크기는 마을마다 다르며, 같은 마을이라도 제작할 때마다 크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솟대의 제작 시기도 마을마다 다르다. 마을 사람들은 솟대가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아 주는 액막이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솟대는 원래 긴 장대 끝에 오리 모양을 깎아 올려놓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간 역할을 하여 화재, 가뭄, 질병 등 재앙을 막아 주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다. 그러던 것이 풍수지리사상과 과거 급제에 의한 입신양명의 풍조가 널리 확산됨에 행주형 지세에 돛대로서 세우는 짐대와 급제를 기념하기 위한 화주대로 분화 발전되었다. 그리하여 오리는 물새가 갖는 다양한 종교적 상징성으로 인해 농사에 필요한 물을 가져와 주고, 화마로부터 지켜주며, 홍수를 막아주는 등 마을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는 마을지킴이로 존재한다. 행주형이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주위의 호신사인 4신사로 이루어진 형국이 마치 물에 떠 있는 배의 형국이란 의미이다. 배는 돛대의 돛이 바람을 만나야 순항하며 물은 오행론에서 불을 극한다는 수극화의 관계이다. 또한 배는 홍수가 났을 때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피난처의 역할도 한다. 미래의 홍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행주형 전설은 민중의 비보풍수 관념과 도참사상이 투영된 자료로서 의의를 지닌다.

 

솟대의 새는 한 기둥에 세 마리를 얹은 경우, 새의 머리 방향이 세 마리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는가 하면 각기 동쪽, 남쪽, 북쪽을 향하기도 한다. 새가 두 마리인 경우 서로마주보고 있는가 하면 같은 곳을 응시하기도 한다. 또 한 마리씩 여러 개의 솟대가 있는 경우 같은 곳을 보고 있는가 하면 한 마리는 마을 안, 다른 한 마리는 마을 밖을 각각 향하고 있기도 한다. 이렇듯 새의 모양이나 머리 방향, 마리 수에 따라서도 다양한 의미가 부연된다. 특히 풍수적의미로 세 마리를 얹은 솟대는 천지인라는 3재 사상에서 연유한 것이며, 두 마리의 솟대는 천지음양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마을의 안과 밖을 향하게 하는 것도 마을을 살피고 마을 외부에서 침범하는 살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솟대에서의 기둥은 천지를 연결하는 매개자로 3재에서의 사람에 해당한다. 이는 사람만이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우주적 존재임을 나타낸 것이다.

 

민속신앙에서 마을 제의가 대부분 유교식으로 진행되듯이 솟대제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솟대제만 지내는 곳이 있는가 하면 국사성황제솟대제(골맥이제) 순서로 제의를 진행하거나 산신제를 지낸 뒤 당산나무제·탑석제(조탑제짐대제(솟대제)를 함께 진행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산신제고사당제(골맥이할배·할매제)거릿대장군제(솟대제)장승제용왕제(우물제), 또는 골맥이할배·할매제용왕제거릿대장군제(솟대제) 순서로 제의가 진행되기도 한다. 마을 제의를 지내는 곳이라 하더라도 솟대를 신체로 삼는 마을은 흔치 않다. 솟대를 제의 때마다 장승과 함께 새로 만들어 세우더라도 장승의 부속물로 인식하여 솟대를 신체로 삼지 않는 경우도 있다.

▲ 강릉 솟대공원의 솟대    

 

솟대는 원래 나무로 만들었으나 쉽게 썩어 몇 년에 한 번씩 제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고자 했다. 새는 밤나무로 만든 기역() 자 모양으로 머리를 만들었으며 솟대의 머리는 동쪽을 바라보게 세워지는데 이 또한 동방위가 상징하는 양기가 태동하는 희망의 방위로 청룡신이 머무르는 방위이다.

 

새의 몸통에서 양옆으로 뻗은 가지 끝에 약 2m 길이의 왼새끼를 매달아 놓는다. 이는 기러기의 발을 의미한다. 솟대의 높이는 5m 정도이며 오리를 올릴 때는 머리가 남쪽을 향하게 한다. 솟대는 한국인이 민속신앙의 대상으로 세운 긴 장대 말한다. 솟대는 솔대, 홋대, 소줏대, 표줏대, 수살대, 수구막잇대, 거릿대, 서낭대, 별신대, 짐대, 짐대백이 등으로도 불린다.

 

제의는 정월대보름날과 오월단옷날에 행한다. 시간은 자정을 기해 국사성황제를 지낸 다음 솟대가 있는 두 곳에서 동시에 골맥이성황제를 지낸다. 정월대보름과 자정이라는 시간대는 풍수론적으로 음의 기가 가장 왕성한 때로 솟대신의 영험력 또한 가장 강하다고 보는데서 연유한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마티마을의 경우 탑신제를 정월대보름날에 지내는데, 조산탑, 솟대, 장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에서는 솟대를 짐대라고 부르며 장승과 함께 윤년이 드는 해 정월대보름 전날에 만들어 세운다. 장대에 황색과 흑색이 용틀임의 단청을 하는데 황색은 황룡을 흑색은 흑룡을 상징한다. 황색은 황토로 흑색은 진흙에 숯가루를 반죽하여 칠하는데 이 또한 풍수론에서의 오행방위 색과 관련이 깊다.

 

솟대제는 솟대를 마을 수호신으로 여겨 마을 주민들이 지내는 공동제의를 말한다. 원래 삼한시대 때부터 솟대를 세웠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나무를 세워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고 귀신을 섬겼다. 도망 온 자가 그곳에 오게 되면 잡아가지 못했다. 솟대는 몇 가지로 분류되는데 첫째, 개인이 가정에서 일시적으로 기도할 때 세우는 경우이다. 볏가리·화적·풍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둘째, 마을에서 세우는 목조솟대이다. 지역에 따라 솔대, 짐대, 소줏대·표줏대·갯대·수살이·수살잇대·액맥잇대라고도 한다. 셋째, 개인이 세우는 용두솟대라고 하는 것이 있다.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에 있는 짐대를 진또배기서낭또는 진떼배기서낭이라고 하며, 소나무로 만든 장대를 신체로 삼고 있다. ‘진또배기짐대박이의 방언이다. 이 짐대의 유래는 어느 날 대관령(일설에는 함경도 해안)에서 떠내려온 짐대가 강문에 닿자 마을 사람들이 이를 건져 세우고 제사를 올렸더니 동네가 번성하여 계속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강문 근처의 안목에도 이와 같은 진또배기가 있다. 오리의 앉아 있는 방향은 두 마을 똑같이 서북쪽 대관령(또는 서울)을 향하고 있다. 이 짐대는 풍수에서 말하는 마을의 삼재, 곧 수재·풍재·화재를 막아주는 구실을 한다. 이것을 잘 모시지 않으면 벼농사가 안 된다고 하여 신성시 한다.

 

솟대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마음의 푯대 구실을 해 왔다. 곧 한국인은 정서적인 솟대를 저마다 지니고 산다. 솟대는 하늘로 치솟고자 하는 한국인의 천신사상의 표징물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한국인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려 한 삶의 이상이었고 정신적 푯대, 곧 영표였던 것이다. 솟대와 함께 탑제의 대상 신은 다른 신앙물과 서로 혼효되어 나타나며, ·장승, ·선돌, ·솟대, ·장승·솟대 등이 서로 혼재되어 성역을 조성하고 있다. 강원도에는 돌탑신앙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선돌’, ‘탑장승이라고도 부른다.천지창조 때부터 돌과 나무는 원시종교나 민속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이성적존재였다. 이들 가운데 탑이나 선돌은 돌이 신성화된 신체, 장승과 솟대는 나무가 신성화된 신체였다. 솟대제는 석탑과 솟대가 서 있는 신성공간에서 지내는 제의였다.

 

용왕과 용왕제에 내재된 풍수적 의미 

 

민속적으로 용왕은 물을 주관하는 신이다. 물은 모든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물질 중 하나다.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은 자연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큰 은혜지만, 그만큼 제어하기도 쉽지 않다. 비가 많이 내리면 하천은 범람해서 대지를 뒤덮고, 또 부족하면 가뭄이 들어 사람들은 굶주리게 된다. 용은 비를 내리고, 물을 공급하며, 홍수를 일으키는 등 물과 관련된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신으로 바다와 호수, 하천, 연못, 우물을 비롯하여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살고 있다. 풍수지리의 오행설에서 용은 기린, 봉황, 현무와 함께 네 방위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사신사 중 하나로 동쪽을 지키는 신으로 상징 색이 청색이어서 '청룡'으로 불린다. 중국 북송의 휘종 시대에는 오방위에 용왕이 살았다고 믿었다. 원래는 사해 용왕이라고 해서, 용왕은 그 수가 모두 넷으로 동서남북 각 방향의 바다에 사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휘종(1082~1135)1110년에 청룡신을 광인왕으로, 적룡신을 가택왕, 황룡신을 부응왕, 백룡신을 의제왕, 흑룡신을 영택왕으로 봉하기도 했다. 용은 원래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구렁이[大蛇=산스크리트어로 나가(Naga)]였다. 그리고 불교 전설에서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구름과 천둥, 비를 부리는 동물로 석가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팔대용왕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네 다리를 가진 거대한 구렁이의 모습에 사슴 같은 뿔과 빛나는 눈, 촉수처럼 긴 혀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배를 바다에 띄어 어로·교통·무역을 통하여 인류의 문화 발전을 주도해 왔고 농업을 주업으로 삼아왔다. 바다는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위험한 곳이며, 그 뱃길은 인력을 초월한 외기의 영역이었으며 선박의 수호와 선원의 보호 그리고 풍어를 위하여 바다를 관장하는 배에서 허드렛일을 맡아 하는 뱃사람의 용신과 선신에게 기원하고 고사를 지냈다. 또한 가뭄과 같은 농업환경의 악조건에 물을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으므로 바다와 육지에서 모두 믿음은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용신과 관련된 제의는 오랜 전승으로 신앙성을 가진 용왕제로 정착되었다. 용왕제는 주로 어로의 안전과 풍어 및 풍농과 수재로부터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바다의 용왕신에게 올리는 마을공동제의라고 할 수 있다.

▲ 법성포 용왕제    

  

용왕제는 바닷가 마을에서 행하는 의례로 지역과 마을에 따라 갯제·용신제·해신제·풍어제 등으로 부르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연행 방식이나 시기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용왕제는 마을제사인 동제에 부수적으로 행해지는 경우도 있고, 당산제와는 별도로 행해지는 곳도 있다. 용왕제는 여러 양식으로 행해진다. 여자들만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해당 마을의 해산물에 대한 산업적 의존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대개 용왕제가 확대된 형식으로 나타난다.용왕제는 동제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만 풍농을 비는 농촌 지역의 줄다리기나 달집태우기같이 동제의 부대행사로 보기도 한다. 용왕제는 대체로 당제와 결합된 제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즉 상당에서 당할아버지·당할머니·산신 등에게 제를 지낸 뒤에 하당인 바닷가에서 용왕제를 올린다. 일부 지역에서는 허수아비 의례 같은 제의 양상이 보이지 않아 지역적 차별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물애밥같은 헌식의례를 대신 수행하기도 한다. 오늘날까지 용왕제를 지내는 마을들은 도서연안 지역에 위치하며, 바다에서의 생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마을 사람들의 바다에서의 삶이 절대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생태환경과 자연환경에 따라 하나의 문화양상으로 정착·전승된 것이며, 마을의 특성에 따라 도서해양적 생활이 의미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용왕제는 바다나 강, 우물, 샘 등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치성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대개 마을마다 정해진 몇 개의 장소가 있지만 점쟁이의 지시에 따라 샘이나 바위 등을 선택하기도 한다. 특히 자녀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용왕제를 지내는 경우에는 아이팔기를 한 장소에서 용왕제를 지내기도 하며, 아이의 점지를 기원하는 경우에는 우물이나 개울보다 샘,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골짜기의 깨끗한 샘에서 용왕을 위하는 경향이 강하다. 거리제와 습합된 경우에는 다리나 물 근처의 길목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용왕은 모시는 장소에 따라 명칭을 달리하기도 한다. 개울과 같이 물이 흐르는 곳에는 흐를 용왕이 있고, 샘과 같이 물이 솟아나는 곳에는 솟을 용왕이 있다고 여긴다. 이밖에 대보름에는 농사짓는 용왕을 위하고 이월에는 바람할매 용왕을 위하는 것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용왕제는 역사적으로 볼 때 신라시대에는 사해제, 고려시대에는 사해 사독제, 조선시대에는 용신제를 지냈다는 기록을 통해 바다와 물을 관장하는 신에게 비는 제의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에 사신으로 파견된 송나라 서긍이 한 달 남짓 개성에 머물면서 견문을 쓴 고려도경사우조를 보면 군산도 일봉산에 오룡묘가 있는데 그 입벽에 오신상을 그려 놓고 선원들이 용왕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영조 47년에 인행한 고사신서6의 국조축전을 보면 동해의 양양, 남해 나주, 서해 풍천, 북해 경성에서 중사인 해신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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