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21세기 무속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上)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2/10/09 [06:57]
무당과 굿의 정의-성직자, 그것도 하늘의 위엄을 통해 신탁을 전하는 대리자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21세기 무속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上)

무당과 굿의 정의-성직자, 그것도 하늘의 위엄을 통해 신탁을 전하는 대리자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22/10/09 [06:57]

<연재순서>

() 무당과 굿의 정의-성직자, 그것도 하늘의 위엄을 통해 신탁을 전하는 대리자

()무당의 입무과정(入巫過程), 굿의 행태와 기능

()무속에서의 신과 의례. 그리고 기독교 불교에서의 무속적 요소

 

무속의 특징은 빙의라고 한다. 무속용어로 제적이 아니다’ ‘제 정신이 아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한다라고 하는데 그분이 오시면시간을 넘길 수도 있고 당장 그만둘 수 있다.

 

이런 빙의현상이 일어난 무속인들의 행동은 할아버지’ ‘장군님이라는 각자의 몸주신에게 핑계를 댄다.

 

무속인들은 각자 몸에 신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부모 형제 상을 당해도 문상을 가지않는 이유가 된다. 설령 간다해도 신위를 향해 절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신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고 깨끗한 몸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는 일조차 삼가고 있다.

 

그런데 천도재는 한다. 상호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이런 현상은 불교계 승려들이 신자들이 돌아가시면 문상가는 일을 꺼리면서 시달림은 열심히 하는 모습과 같은 이유로 보면 된다. 결론은 문상을 가면 돈을 쓰지만 천도재’ ‘시달림은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 황해도 철물이굿. 국립부산국악원   


무당과 굿의 정의-성직자, 그것도 하늘의 위엄을 통해 신탁을 전하는 대리자

 

무당의 무()긴 소매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 양옆에 두명의 사람(人人)이 있는 모습이다.

 

혹자는 두명을 말하는데 남녀를 상징하며, 춤을 추는 모습을 하는 것은 춤을 추는 행위를 하는 것이 무당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정의를 한다.

 

무당은 글자에서 알 수 있듯 하늘과 땅,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간자, 사제의 역활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다만 다른 종교 사제들과 다르게 춤이란 의례를 통해 사람들에게 접근한다는 차이가 있고, 미래에 대한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신의 대리자가 되어 들려준다는 것이다.

 

춤을 추는 독특한 무속만의 의례를 굿이라고 한다. 굿은 재가집(신도 집)에서 치뤄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몇 년 전부터 기도가 잘되는 영험한 곳, 인적이 드믄 곳에서 치뤄지고 있으며 그런 시설물을 흔히 굿당이라고 한다.

 

대다수 굿당은 사찰에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식으로 표기를 하고 일부는 정식종단에 사찰 등록이 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사암연합회등 지역내 불교행사에 당당하게 참석하기도 한다. 과거에도 일부 무속인들은 창건주 보살이란 이름으로 개인 사찰을 꾸며놓고 스님을 고용하고 운영했고 직접 승려 행세는 하지 않았다. 정식 서류상 사찰의 형식을 갖춘 경우 주인은 주지 스님이 되는 것이다. 유발승, 교림 여기서 조금 발전을 하면 독자적인 종단을 창종 종정스님이 되고 신년법어는 물론 봉축법어도 내리고 있어 외형적으로 완벽한 불교의 한 종파로 행세한다. 교학적으로는 불교와 전혀 인연 없는 분이 하루아침에 대종사에 법계를 받고 금란가사를 입는 경우도 있다.

 

굿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흔히 당주라고 부르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편하게 사장님이라고 한다. 이곳 사람을 무속인들은 삼촌, 조카, 이모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굿을 하는 무당 입장에서는 잠시 굿을 하는 동안 장소를 제공받는 형식을 취하는데 방마다 홋수가 있어 언뜻 보게 되면 숙박업소 같다. 사실 숙박업처럼 운영한다. 하루 방을 빌리는데 얼마 하는 식이다. 그리고 저녁에 굿을 시작하면 적어도 다음날 오전 중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원칙이다. 여관 운영 방식과 같다. 다만 다르다면 식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여인숙, 여관에서 아침에 떠나는 객을 위해 아침을 제공하기도 했으니 그런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굿을 하는 무당의 굿 판에 가면 한참 신명이 오른 무속인이라도 반갑게 인사를 한다. 식사 전후라면 식사를 했는지 손으로 밥 퍼먹는 시늉을 하고 먹고 왔다는 눈짓을 보내면 차라도 한잔 하라는 손짓을 한다. 그리고 바쁜 일로 미리 자리를 떠난다면 손으로 전화 거는 모습을 하며 다음에 만날 약속을 한다. 굿이 진행되는 시간에도 무속인들은 참으로 바쁘게 일을 한다 오고가는 사람 한사람 한사람 챙겨야 하니, 굿은 무속인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 중 악사가 있다. 격정적인 순간 망아적 상태로 인도하는 그들 역시 그렇다. 장구를 치고 피리를 불다.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고 차도 마시고, 과일도 먹는다. 그리고 옆 사람과 잡담을 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사람은 그런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장엄하고 성스러운 어딘가 모르게 상대를 위압하는 분위기를 인위적인 조작으로 연출하는 기존 종교에서는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는 분위기지만 무속에서는 가능하다. 아니 이상하게 보는 그들을 도리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그 곳 정서다.

 

굿을 하는 무당은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다. 불사거리에서는 목에 108염주를 걸고 홍가사를 걸치고 바라를 치며 승복을 입는다. 장군거리에서는 위엄을 갖춘 장군 복장을 한다. 굿 청에 처음 온 사람이라도 대충 무슨 거리(굿이 이루어 지는가) 하는지 눈 짐작으로 알 수 있다.

 

장군 복장을 한 무속인은 여무가 되었던 남무가 되던 그 순간 장군이 되어 호령을 하게 된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어림짐작 되는 현상이다. 사람들 역시 한복 가운데 노비의 복장을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자리를 찾아가고 몸을 낮추는 현상과 같다.

 

제도권 종교와 무속의 가장 큰 차이는 인위적인 조작을 통해 위엄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명등 하나 빛의 각도를 이용 연출을 하고, 신도들 보다 높은 단상을 통해 하염없이 내려보며 상대(신자)를 제압하려는 행위도 없다. 과거의 선배 성직자들의 무용담을 들려주며 자기 과시도 할 줄 모르는 것이 무속의 사제다. 그러나 뜻 글자인 한자를 통해 무속인은 오래 전부터 성직자, 그것도 하늘의 위엄을 통해 신탁을 전하는 대리자라는 뜻을 오래전부터 알리고 있는 것이다.

▲ 혜원 신윤복의 <쌍검대무>    

 

()의 뜻 풀이-양쪽 은 두 명의 남녀를 가리키며 춤을 추는 모습

 

무속은 무()를 중심으로 한 민간층의 전승적 종교현상을 말한다. 의 위 자는 천() 또는 신령을 뜻하고, 아래 은 땅 또는 인간을 가리킨다. 가운데 내려오는 “|"은 하늘과 땅, 신령과 인간의 중계자의 상징이다. 신목(神木) 또는 우주목(宇宙木)이 되는 것이다.

 

나무를 통해 천상에서 내려오는 현상은 우리의 건국신화에도 등장한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지금의 묘향산)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서 이곳을 신시라고 불렀다. 지금도 무속인들이 거주하는 신당을 알리는 수단으로 긴 대나무에 태극기를 비롯 다양한 물건을 걸어놓는다. ‘소도를 상징하는 신성지역의 영역표시 혹은 이것을 통해 신이 내려오는 강신의 길이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태극기를 거는 이유에 대해서는 해방 이후 무속이 정부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을 때 자신들이 애국자 집단이란 표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양쪽 은 두 명의 남녀를 가리키며 춤을 추는 모습으로 해석하고 있다. 무속의 특징은 사제자가 춤을 추며 신을 맞이하는 것이다. 송신영신이 춤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들이 무업에 종사하게 된 동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신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강신과 집안의 가업으로 무업을 이어가는 형태다. 그리고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굿청에 나오는 기능인으로써의 무속인이다.

 

한국에서 무속의 역사와 관련 단군신화에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무속은 전 세계에 분포를 보이는 종교행위로 공통적인 용어로 샤머니즘으로 부르고 있다. 샤먼은 탈혼망아의 전문가”,“택함을 받은 사람이며 인간의 영혼에 관한 한 위대한 전문가이다.

 

심진송이란 무녀가 신이 선택한 여자란 책을 내놓았다. 조자룡은 신을 선택한 남자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샤만만 혼이라는 것을 수 있다. 그 까닭은 그들만이 영혼의 모양과 영혼의 운명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샤만의 기능은 영혼과 교신을 통해 미래를 알아내는 것과 함께 굿이란 의례를 통해 신자들과 교감을 하는 것이다. 샤만의 형식과 우리 무당들의 굿을 비교하여 시베이야 샤만이라고 분류하는 시도가 한동안 있었다. 굿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굿이란 재앙을 풀고 행복을 초래하기 위한 무행신사(巫行神事)이다. 굿은 지역에 따라 거리와 형식을 달리하고 있으나 대부분 열두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무교(巫敎)-속되다는 인식과 함께 일제에 의해 우리 고유신앙이 폄하

 

일부 민속학자들에 의해 무교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속되다는 인식과 함께 일제에 의해 우리 고유신앙이 폄하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무속인들의 경우 자신이 거주하는 신당에서는 한명의 올 곧은 사제로 존재하지만 사찰에 들어서면 일반신도와 같은 자세를 보이기도 하는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어 단정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 이런 이중적 모습 때문에 최근 민족종교협의회에 종교단체로 등록 활동을 하고 있지만 대다수 무속인들은 전통적인 자신들의 신의 모습으로 살고 있으며 무속의 종교단체화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천주교 신부, 기독교 목사, 불교 승려와 같이 자신들도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존재로써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승려는 신부, 목사와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승려는 말 그대로 를 추구하는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을 구원해주거나 그들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성직자가 아니라 수행자, 구도자다. 과거 그들은 스스로를 가르켜 佛道, 貧道라고 했다. 빈도는 승려나 도사들이 자기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이며 貧僧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무속(巫俗)이란 -종교적 사제인 무당을 중심으로 한 신앙

 

무속(巫俗)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이 아닌 학술 용어다. 즉 종교적 사제인 무당을 중심으로 한 신앙을 말한다.

 

무속을 말하기 전 무당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무당이란 일반적으로 무업을 하는 사람과 무병에 의해 신이 내려서 신당을 지어 신을 모시고 굿을 하는 사람으로 나눈다.

 

무당이란 서울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무당(여자) 박수(남자), 경상도 전라도 지방에서는 신방(神房)이라 불리고 있다.

 

무당이라고 불리는 유형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신명에 의해 신이 내리고, 신을 신당에 모시고 굿을 하는 사람(강신무), 가계(家系)에 의해 사회적 신분으로 무업(巫業)을 이어 받아 굿을 하는(세습무) 사람이 있다. 세습무는 점사와 관계없이 오로지 기능적인 전통성을 말한다. 신당이 없는 특징을 가진다. 과거에는 특정한 지역 주민 전체를 상대로 길흉화복을 정기적으로 기도하며 주민들로부터 정기적인 사례를 받았다.

 

당골이 변해서 단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강신은 평범했던 사람이 어느 날 시름시름 앓기도 하고 기이한 행동을 하여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유명한 대학병원 의사, 전국 민간요법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는데 차도가 없다가 신을 받고 씻은 듯이 나았다는 류이다. 무당을 다중 인격으로 부르는데 그 다중 인격 진단을 받는 사람들이 주로 이 부류에 속한다.

 

주요무형문화재 서울 새남굿 104호 보유자 김유감 씨에게 신이 내린 것은 7세 때 음력 5월이다. 양자동 집에서 흙을 갖고 소꿉장난을 하다가 손뼉을 치면서 신이 내렸다. 그리고 인근의 무학봉으로 올라가 큰 바위 밑을 파서 빨간 부채, 방울, 엽전, 12개를 찾았다. 기분이 좋아서 내려오다가, 걱정이 되어서 뒤쫓아 온 수양아버지가 엉겁결에 빰을 때렸는데, 그대로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한 채 7개월을 보냈다. 그러다 동짓달에 손뼉을 치면서, “천하대신 지하대신 덕물산 최영장군 오방신장이다. 창부씨 광대씨.”라며 신령님을 부르면서 일어났다.

 

전통적인 신내림에서는 선배무당들이 사용하던 기물을 찾아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무속인이 죽으면 그가 사용하던 방울, 부채 등 물건을 산에 묶는 풍습이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으로 신내림을 증명하는 것이 후배 무속인들 신내림을 알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황해도 지방의 경우 묻은 것을 찾아내게 하는 방법으로 숨겨놓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을 보던 사람의 행동을 통해 신내림이 판정하는 방식으로 정확도가 떨어진다. 아울러 걸립이란 형식으로 집집을 찾아 다니며 양식, 놋쇠 등을 얻어와 굿을 하였다. 그것은 새로 무당의 탄생을 알리는 사전 광고일 수 있고 그때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점을 보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은 사체를 끌어다 신굿을 하기도 해 말썽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가계가 무업에 종사하지 않았으면서도 무업에 일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학습무라는 제도가 있다. 학습무는 세습무와 같이 가장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며 신적인 면은 전무하다.

 

강신무는 중부 이북지방, 세습무는 한반도 남부에서 지배적이란 주장이 있지만 최근에는 강신무가 전국적인 추세다. 그리고 세습무는 거의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다. 아무리 조상대대로 내려온 가업이지만 사회적으로 천시를 받는 무업을 자손들에게 내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의 입장과 어려서부터 무속은 미신이라고 교육받은 젊은 세대, 그리고 자신의 능력 여하에 따라 출세(?)가 보장된 사회에서 질시의 직업에 종사하기를 꺼리는 사회분위기 탓도 많이 있다. 다만 국가에서 보호해야 하는 문화유산이란 생각에 주요무형문화재지정하는 경우는 예외다. 사회적 인식이 다르고 안정적인 생활환경이 가업을 계승의 매력을 작용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지정은 단순히 기능적인 분야를 말하고 있는데 비해 최근에는 이들이 국가로부터 굿을 공인받았고 고액을 받는 수단으로 전락되는 역기능도 발생하고 있다. 몇 년 사이 극히 작은 예이지만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유입되는 추세다. 화류계와 무속계, 연예계는 비슷한 팔자소관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15세기 초 유교를 국시로 하는 정권이 탄생하면서 무속은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백정, 창기와 함께 천민으로 분류되었으며 일제하에는 한국의 민족문화는 무엇이든 탄압하던 식민지 정책에 의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에는 서구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미신시 당하며 기()를 펴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전국적으로 전개된 새마을 운동으로 전근대적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게 된다. 그 결과 무당이나 마을의 서낭당 신앙과 것은 차츰 비주류 문화로 전락하게 된다. 현재 무속을 종교로 보는가 하는 문제에서 종교로 보기보다. 하나의 전통적인 민간신앙,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행해오던 하나의 의식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 실례로 문화관광부 산하 종무실에는 불교를 비롯 기독교, 민족종교를 상대하는 종무실이 설치되어 있다. 그들의 주 업무는 불교, 기독교, 민족종교를 상대하는 일이다. 정부의 무관심은 서울 근교에 수십개의 굿당이 미신타파라는 미명 아래 강제철거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렇듯 어렵게 명맥을 이어오던 굿당들이 80년도 중반기부터 활발하게 들어서고 있다. 이들 굿당이 보존되어 영업을 지속적으로 가능한 것은 불교종단에 사찰로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무당들이 당주라고 부르는 사람은 주지 임명장을 소지한 엄연히 주지승이다.

 

무당의 슷자는 대한민국 어느 기관에서도 정확한 통계치를 가지고 있지않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얼마다고 말 할 수 없지만 대략 몇 만정도는 될 것이다는 것이 무속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무속인의 숫자와 관련 일부 단체와 언론들은 1백만 혹은 백오십만 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주장을 근거로 복채 추정액을 산출하기도 하는데 년간 복채로 전 국민이 사용하는 돈의 액수가 수조라고 한다. 무속인의 숫자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추정액은 사실 근거없는 이야기다. 그 몇만 속에도 무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과 무속행위를 하면서 방편으로 불교종단, 민족종교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는 숫자가 다수 정확하게 분류하고 통계 잡기 어렵다.

 

신굿을 하고 무속단체에 등록을 하고 활동하지 않는 숫자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굿당의 숫자가 늘 듯 무당의 수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 예로 여성잡지는 물론 스포츠 신문, 광고비가 중앙 메이저 신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매체에 광고하는 숫자도 날로 늘고 있다.

 

국민일보를 비롯 몇몇 언론매체를 제외하고 오늘의 운세가 연재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한모씨는 사망 후 상당한 시간 오늘의 운세를 연재했다.

 

이런 부도덕성이 한국 미래예측 사업의 현주소다. 여기서 참고로 말한다면 광고하는 무당, 언론에 노출된 무당을 찾지 않는 것이 좋다. 신문 연재하는 사람은 신문을 다량구매하는 조건으로 연재하는 경우도 있다. 아울러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인터넷을 통한 광고전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화상담, 사주카페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생존해 가고 있다. 고가의 광고를 언론에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품위유지를 위해 터무니 없는 굿값과 복비를 요구하는 일이 다반사다. 무당들 가운데 공중파는 물론 종편, 케이블 TV, 자체 제작이 가능한 유트브 등에 출현한 모습을 광고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방송사에서 죽이기로 작정하고 기획된 경우도 있고 아니면 순수하게 각자의 예언능력을 경연대회식으로 기획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무당의 입장에서 언론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더 정확하게 말해 방송을 통해 사기꾼으로 매도가 되어도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일부 주변사람을 제외하고는 없다. 결국 방송분을 화면 캡처를 통해 방송출연을 광고하면 된다. 사람들은 방송에 출현했다는 광고만 기억하지 다른 것은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류의 언론에 노출도 상관하지 않는다.

 

무속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들이 자신의 힘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무당의 중재로 신령의 힘을 끌어 들여 풀어가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타 종교에서도 중간(성직자)을 통해 신과 부처와 만나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결국 무속은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 무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 도배방지 이미지

많이 본 기사
1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