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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생명의 희망

박길수 | 기사입력 2022/10/27 [07:42]
노년 삶의 절절함이란 편안하기 그지없는 열반 상태의 전단계

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생명의 희망

노년 삶의 절절함이란 편안하기 그지없는 열반 상태의 전단계

박길수 | 입력 : 2022/10/27 [07:42]

가을이 깊어지던 날 오후 아내 침대를 내 침상 옆으로 나란히 붙여놓았다. 7년 반만에 우리 둘 마침내 같은 방향으로 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쩍 쌀쌀해진 올가을 기나긴 밤, 우리는 이제 그리운 얼굴 서로 맞주하며 꼭 붙어 두 손 단단히 잡고 동화보다 더 고운 꿈나라를 밤새도록 마음껏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이제서야 간신히 가련한 내 님을 양팔로 꿋꿋이 껴안고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구나! 오묘한 이승 생의 축복 속에서, 간곡한 사랑의 염원에, 바야흐로 감미로운 자비의 조화가 새로운 생명의 꽃을 또 피울 수 있도록 은혜의 단비를 뿌려주다니! 노년 삶의 절절함이란 눈물겹도록 애달픈 듯해도, 사실은 느긋하고 그윽하면서 편안하기 그지없는 열반 비슷한 상태의 전단계가 아닐까?

 

아내 팔베개 역할은 늘 내 오른쪽 팔 몫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저승 사자와 처절히 맞장뜨던 날부터 내 신체 모든 부분부분이 너무 무력해졌고, 어느 곳 하나 구차스럽지 않은 데가 없게 되어버렸다. 내 팔다리는 모두 허전하게 나약해졌고 어색하게 부실해졌다. 그러고 나서 한참의 세월이 흘렸고, 삐쭉빼쭉 멈칫대던 그 오른팔은 비로소 병약한 아내 목덜미를 스스로 받쳐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른쪽 팔이 다시 아내의 가장 충성스러운 주 팔베개가 된 것이다. 파리해진 그녀의 목 뒤로 어깨까지 깊숙히 팔을 밀어넣으면, 아내의 왼쪽 볼과 내 오른쪽 뺨이 가볍게 맞닿게 되고, 우리는 이내 익숙한 생명의 숨결을 가슴 떨릴 정도로 동시에 느낄 수 있게 된다. 오랜만에 생소한 듯 새로운 삶의 생기가 열기처럼 소록소록 솟아나는 미열이 되어 온방에 퍼진다.

 

사랑스러운 아내의 부드러운 가슴 위로 수줍은 듯 살짝 뻗은 내 왼쪽 팔에 온 우주의 따뜻한 전율이 짜릿하게 감전되듯 전해오는 느낌이 참으로 새롭다. ! 우리는 지금 서로 마주본 채 살포시 껴안고서, 눈을 질끈 감고 누워, 봄날 같은 따스한 행복을 뿜어볼 수 있게 되었다. 죽어가던 고목나무에 끈질긴 생명의 새 희망이 움트기 시작했다.

 

박길수

1952년 광주 출생, kt퇴직, 요양보호사, 부인이 뇌출혈로 쓰러져 7년 반 째 재택 간병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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