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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쓰는 한국문화론 1

매일종교신문 | 기사입력 2009/08/27 [15:37]

몸으로 쓰는 한국문화론 1

매일종교신문 | 입력 : 2009/08/27 [15:37]
 

몸으로 쓰는 한국문화론 1

역사는 청산되는 것이 아니다.

당대가 결정할 뿐이다


 우리에게는 언제부터인가 역사는 청산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참으로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발상이며 관념적이고, 무엇보다 국민을 기만하는 짓거리이다. 특정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결과이다. 국가의 정통성을 위해서나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도 위험한 것이다. ‘역사 청산론’과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망령은 원래 역사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그래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열등한 나라의 콤플렉스이며 유행병과 같은 것이다. 역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역사를 청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역사를 소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식과 만용의 소치이다. 역사소급은 소급입법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은 역사 자체나 법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당대의 것이다. 흔히 역사는 청산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역사는 청산되지 않는다. 지나간 역사가, 이미 과거에 기록된 역사가 어떻게 청산되는가. 만약 부끄러운 역사가 있었다면 단지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현재적 용기나 대안이 없는 자만이 과거에 매달려 청산한다고 떠들어대는 것이다. 역사는 해석할 수 있지만 청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해석을 마치 역사인 양 착각하는 정치가들이 더러 있다. 몇 해 전 ‘친일청산’의 에 깃발을 든 몇몇 독선적인 인사가 자신의 조상이 바로 청산의 대상이 되는 당혹감에 빠졌다. 시간을 소급하면 누구나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역사나 문화도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미 역사적 산물이다. 청산을 한다는 것은 실은 나를 청산하는 것이다. 자기를 어떻게 청산하겠다는 말인가.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역사청산은 얼른 보면 매우 정의로워 보이고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실은 그 속내를 보면 반드시 그러한 것도 아니다. 남한은 해방 후 왜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못했는가. 답은 간단하다. 독립군이 해방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 의해, 타의에 의해 해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고 청산운운 하는 것은 어떤 이데올로기의 마스터베이션에 불과하다. 분명히 다른 저의가 있다. 

역사를 청산한다고 하는 것은 얼른 보면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 같지만 실은 점점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다. 청산하지 않아도 벌써 과거는 흘러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돌려세워 무엇인가를 하고자 한다면 이는 현재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밖에 다름 아니다. 항상 지나간 정권은 나쁜 정권이고 현재의 정권은 부정을 해야 하는 정권이라면 자기긍정은 어디서 찾는다는 말인가. 시간은 청산되지 않는다. 단지 그 어딘가에 남을 뿐이다. 그럼에도 한 번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라나 국민은 계속해서 역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다람쥐 쳇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계속된 전 정권에 대한 후 정권의 정권적 단죄와 심판은 바로 그러한 것의 단적인 예이다. 이는 심각한 자기부정의 결과이다. 그래서 함부로 자신의 철학에 의해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나라를 정통성이 없는, 부정한 정부라고 매도하는 위정자는 결국 자기부정의 늪에 빠지게 된다. 자기부정을 하는 위정자가 올바로 정치를 할 수 없다. 자기부정의 말로는 결코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죽음도 자연의 일부이지만 그것을 찬양하며 자신의 죽음을 미화할 필요는 없다. 죽음은 미화하지 않아도 모두가 가야할 자연스런 길이고 누구나 맞이하는 평등한 것이다. 그것을 말한다고, 미리 당긴다고 무슨 특별한 선지자나 선각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지나간 역사는 지나간 죽음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두고 왈가불가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과거에 겪은 역사적 질곡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지금 가야할 길도 벅차다. 역사는 지금 잘 하면 저절로 청산되고 치유되는 것이다. 광복 후 일제에 협력한 친일분자를 처벌하기 위해 자유당시절에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1948년 9월)되었으나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 남한은 어쨌든 친일파를 정리할 기회를 놓쳤다. 이런 단죄야말로 현재적이고, 시기적절한 것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의 경우도 친일파를 청산하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덕택이다. 공산사회주의는 본래 계급투쟁을 실천적 목표로 삼기 때문에 친일파가 아니어도 기득권자를 청산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성 정권은 친일파 청산을 이유로 수많은 정적들을 청산하는 기회로 삼았을 뿐이다.

한 고매한 시인은 자신의 스승의 친일행각을 만천하에 고발하면서 청산을 주장하였다. 그는 평소에 은근히 그의 제자임을 자랑하고, 문단권력 형성에 그 사제관계를 이용하기도하였다. 그런데 왜 그가 갑자기 스승을 매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역사를 인민재판이나 여론몰이의 대상이 되게 선동하고 선전하는 것은 어디선가 본 듯한, 해방공간에 있었던 다반사였던 것 같다. 아직도 그러한 망령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비극의 연속이다. 아마도 그것은 선명성이나 대중적 인기나 지지도 등 문단정치의 목적을 노린 것일 것이다.

어쩌면 시인은 태생적으로 권력을 싫어하는, 무정부주의자인지도 모른다. 만약 시인이나 학자들이 본질적으로 무정부주의자 혹은 보편주의자들이라면 친일 혹은 애국 등 특수주의와 관련된 것으로 심하게 상찬하거나 단죄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때 대한민국 교과서에 나온 대표적인 시인, 예술가, 학자들을 모두 친일파로 몰아놓는다면 바로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심하게 교란되고 상처받는다. 이는 역설적으로 일본에게 정당성을 주는 것이다. 어떤 이데올로기의 맹신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지금도 새 정권은 전 정권을 으레 수사하고, 매도한다.

만약 전 정권을 압박하는 것이 연중행사처럼 돌아온다면 결국 한국의 정치판은 항상 사후약방문격이 되고, 앞에서는 정의롭다고 하지만 뒤에서는 위선적인 것을 면치 못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식민지로 있었던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국가의 선진대열에 진입한 성공사례이다. 해방 후 미국의 식량원조에 의해 겨우 목구멍에 풀칠을 하던 남한 사람들은 지금 유사 이래 처음으로 세계의 10위권 내의 국력을 자랑하고 미국이나 유럽, 일본, 중국, 인도 등과도 선제적으로 FTA(자유무역 협정)를 맺으려고 하고 있다. 이를 상대 국가들이 고무적으로, 우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남한은 수출입국의 국가이다. 남한은 수출을 하지 않으면 결코 잘 살 수 없는 나라이다. 남한은 도리어 북한보다 이데올로기에 비중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 국가인 북한은 현재 남한 경제력의 50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북한의 핵이라는 것은 참으로 종이호랑이도 못 된다. 살 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죽을 꾀를 쓰는 것에 비할 수 있다. 핵만이 살길이라고 믿고 전력투구하는 것 같은데 실은 그것이 바로 죽음의 길이라는 뒤늦게 알게 된다면 그 충격은 참으로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염려된다. 지금 한국을 이끌어가는 것은 정부가 아니다. 국가운영의 주도권이 기업에 넘어간 지 오래다. 정부는 기업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조성, 소득재분배 효과, 에콜로지에 노력을 기울이면 되는 것이다. 정부는 최소한의 일에 만족하여야 한다. 이 말을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기업이 기업을 제대로 잘 운영하지 못하면 나라는 망하게 된다. 이제는 기업국가의 시대이다.

문화라는 것은 그 순수성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교류와 섞임, 다시 말하면 잡종에서 생존력과 잡종강세의 힘을 얻는다. 문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일종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오리지널이 있고, 그것에서 변형을 시킨 새로운 버전이 있다는 뜻이다. 문화강대국이 된다는 것은 오리지널이 있거나, 아니면 새로운 버전을 잘 만들어내는 데에 있다. 흔히 오리지널은 중요한 것이고 때로는 로열티를 받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도 크다. 그러나 오리지널 못지않게 힘을 받는 것이 버전이다. 새로운 버전이라는 것은 시대와 장소에 맞게, 또는 다른 문화에 접촉하여 만들어지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문화는 항상 현재적으로 힘을 가져야 한다. 과거만 팔아먹거나 과거에 매달리면 손해다.

이제 한국문화도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여야 한다. 그렇다 보면 좋은 미래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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