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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① 우리 안에 있는 붓다와 영산회상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3/01/02 [09:00]
불교 발생지 인도를 향한 한국 불자들의 관심 고조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① 우리 안에 있는 붓다와 영산회상

불교 발생지 인도를 향한 한국 불자들의 관심 고조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3/01/02 [09:00]

석가 부처님이 법륜(法輪)을 굴리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성상이 경과하고 있다. 석가세존은 일체 만법(萬法)을 꿰뚫은 분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붓다는 인도라는 대륙의 갠지스 평원의 중동부 지역인 마가다에서 주로 활동하셨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루고 45년간 자신의 법(진리)을 펴고 많은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남겼다. 제자들은 붓다의 말씀과 행적을 일일이 구송(口誦)으로 전해오다가 문자로 기록하여 삼장(三藏:경율론)으로 결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붓다 시대의 고대인도의 16대국 시기의 지도.

 

붓다는 조그마한 공국(公國) 정도의 부족공동체인 가나상가 공화국의 수도인 카필라와스투에서 왕자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슛도다나(정반왕)이며, 어머니는 마야 왕비였다. 싯다르타 고타마는 29세 때 출가하여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하고 고타마 붓다가 되었다. 당시 고타마 붓다가 활약하던 시기의 고대인도는 16대국이 천하를 분점하여 지배하고 있었다. 이것을 마하자나빠다(16대국)라고 하는데, 붓다는 바로 이 시기에 태어나서 활동했다. 고타마 붓다는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였고, 특히 코살라, 마가다, 밧지 등의 나라에서 진리를 설파하셨다.

 

어떻게 보면 춘추전국 시대와 다름없다. 중국의 역사와 비교한다면 전국시대와 같은 상황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론해 본다. 고타마 붓다는 마가다의 라자그리하(왕사성)의 베누와나(죽림정사)에서 기거하셨다. 지금도 인도 성지 순례를 가보면 라즈기리(라자그리하)에 죽림공원과 연못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곳을 찾는 세계 여러 나라의 불자들은 감격어린 표정과 종교적 신심으로 감동해 마지않는다.

 

고타마 붓다는 당시 마가다의 통치자였던 빔비사라 왕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서로 의지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빔비사라 왕은 세속의 통치자로서 권력투쟁에 몰두해야 했고 아들한테 패배하여 왕좌를 친 아들에게 물려주면서 수모까지 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고타마 붓다는 이런 현실을 직접 목격하면서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비정한 권력투쟁의 현장을 체험해야만 했다. 고타마 붓다 자신도 제자인 데바닷타의 도전을 받는 처지가 되기도 하였고, 빔비사라 왕의 아들인 아자타사투르는 데바닷타와 연계하여 음모를 꾸미기도 하였다.

 

세속의 권력과 출세간의 권력이 충돌하는 과정을 겪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러서 마음 고생을 하였다. 고타마 붓다는 자신에게 매우 호의적이고 후원자였던 빔비사라 왕의 몰락과 최후를 지켜보면서 권력무상과 인생무상을 절감하였을 것이다. 고타마 붓다는 석가족의 붓다이기 때문에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 존숭받았다. 석가세존을 줄여서 석존(釋尊)으로 호칭하는데, 석존이 살았던 시기는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기원전 563년에 태어나서 붓다(깨달은 자)로서 살면서 진리를 설파하다가 기원전 483년에 열반(돌아가심)에 드셨다.

▲ 고타마 붓다가 탁발을 갔다 와서 발을 씻었던 연못 라자그리하(라즈기리) 죽림정사 경내, 

 

한국불교가 인도불교와 직접 접촉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물론 백제의 겸익 법사나 신라 시대의 현태 혜업 등 몇 명의 승려가 인도 날란다 불교대학까지 가서 유학을 한 바 있다. 유학을 하고 돌아온 분들도 있었지만, 현지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8세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란 구법 여행기를 남긴 혜초스님이 인도를 직접 여행하고 불적지를 순례하면서 기록을 남긴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며 한국불교의 자랑이다.

 

인도불교가 12세기 터키계 이슬람의 무자비한 공격과 파괴로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인도불교가 1,700여 년 존속하다가 긴 잠을 자게 된 것이다. 인도불교가 붓다로부터 법륜을 굴린지 500년 정도 지나서 중국에 불법이 전파되었다.

 

중국에 불법이 전파되고 나서 300년 정도가 지나서 붓다의 진리가 고구려에 전해지고 다음에는 백제에 전해졌다. 고구려 백제에 불법이 전해진 이후 150년 정도 지나서 신라에 불법이 전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가락국에는 기원후 초기에 인도불교가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반도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2천 년 전의 일이 된다. 차차로 연구해 볼 문제이며 무조건 부정만 할 것이 아니라, 상당한 근거와 타당성이 있다는 열린 자세로 긍정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도불교가 8백 년간, 잠을 자다가 이제 되살아나고 있는지는 100년도 되지 않는다. 물론 학술적으로 조명을 받은 것은 19세기가 되지만, 인도에 불교 승가가 출현한 것은 100년이 아직 안 된다. 한국불교도들은 2천 년 대 이전만 해도 인도로 불교 성지 순례를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은 한국불교와 인도 불적지는 매우 가까워지고 있다. 10월부터 3월 사이에 인도 불교성지 순례를 가는 한국 불자들은 그 숫자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때문에 성지순례가 중단되었는데, 금년부터 다시 재개되고 있다. 특히 내년 29일부터 323일까지 43일간 인도 불적지 도보순례가 있게 되는데, 사부대중 85명이 1167km를 두 발로 걸어 부처님 성지를 순례하게 된다. 또한 이 순례에 맞춰서 여러 사찰의 불자들이 중간 중간 방문하는 이벤트가 있지 않을까 한다.

 

한국불교가 인도와 직접 교섭하는 최대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도보순례를 계기로 인도 불적지는 한국불교에 깊이 각인되리라고 믿는다. 고타마 붓다가 좀 더 한국불교에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계기가 될 것이며, 참가 대중은 물론이지만, 한국의 일반인들에게도 고타마 붓다와 인도 불적지가 새롭게 조명 받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국불교는 불교의 여러 종파 가운데서도 선종(禪宗) 전통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중국에 전파된 역사가 2천 년이 지나가고 있다. 중국에 전해진 인도불교는 불과 몇 백 년이 지나지 않아서 중국식 불교로 재편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선종 불교가 상당한 교세를 갖게 되었다. 한반도에는 59(五敎九山)이라는 승가전통이 확립됐고, 선교양종(禪敎兩宗)이 대세를 이루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인도 왕사성 영취산정에서 붓다의 숨결을 듣는 순례객들.

 

한국불교의 현주소는 고타마 붓다 당시의 불교 승가 모습이나 전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고타마 붓다는 아직 우리 한국불교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또한 고타마 붓다가 영취산정에서 발설한 메시지는 한국불교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중국 불교 선종에서는 석존의 가르침을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으로 압축하였다.

 

석존이 영산(靈山)에 있을 때 범왕(梵王)이 금색의 꽃을 바치면서 설법을 청하였다고 하는데, 그 때 석가세존은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자 모든 사람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 망연하였는데, 대가섭(大迦葉)만이 미소를 지었다. 이에 석가세존께서는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으니, 이를 대가섭에게 부촉하노라.”라고 하였다. 그 뒤 이 내용은 중국의 여러 선서(禪書)에 인용되면서 선종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내용으로 채택되었다. 우리나라 선종의 경우에도 석가모니가 왜 꽃을 들었으며, 가섭은 왜 미소를 지었는가?” 하는 것이 화두의 하나가 되어 깊이 참구되었다.

 

선종 불교의 핵심이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문자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말은 언설과 문자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언설과 문자가 지니고 있는 형식과 틀에 집착하거나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뜻이다. 문자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자재하게 활용하는 선의 입장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 급식소에서 팔공총림 임담 대종사님과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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