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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⑪ 인도의 신 불교와 암베드카르박사의 유산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3/03/13 [10:25]
삶의 동력과 희망의 상징이 된 대보살로서의 암베드카르 박사의 가르침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⑪ 인도의 신 불교와 암베드카르박사의 유산

삶의 동력과 희망의 상징이 된 대보살로서의 암베드카르 박사의 가르침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3/03/13 [10:25]

▲ 아우랑가바드에 대학 경내에 있는 암베드카르 박사 동상에서 경의를 표하는 불교도들.  © CRS NEWS

 

암베드카르 박사가 남긴 유산은 인도 사회에 깊게 뿌리 박혀 있다. 사회정치 개혁가로서의 암베드카르의 유산은 현대 인도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독립 이후 인도에서 그의 사회 정치적 사상은 정치적 영역 전반에 걸쳐 존경받고 있다. 그의 계급타파에 의한 인권신장을 위한 주도적 주창과 운동은 삶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오늘날 인도가 사회 경제적 및 법적 혜택을 통해 사회 경제적 정책, 교육 및 차별 철폐 조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가 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은 독립국가로서 공화국이 된 자유 인도 최초의 법률 장관이자 헌법 초안 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된 데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개인의 자유를 열렬히 믿었고 카스트 ​​사회를 비판했다. 힌두교가 카스트 제도의 기반이라고 비난한 그의 주장은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게 만들었다. 그는 힌두교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다. 그의 불교 개종은 인도와 해외에서 불교 철학에 대한 관심의 부활을 촉발시켰다.

 

▲ 인도 의회(국회의사당)안에 있는 암배드카르 박사 동상.  © CRS NEWS

 

지금도 인도 힌두 주류 사회에서는 그의 주창은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추종자들인 불교도들은 더욱 적극적이다. 인도 사회에서 피부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많은 공공 기관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나그푸르에 있는 국제공항은 암베드카르 박사 국제공항일 정도이다. 델리와 지방의 많은 대학들이 그의 이름을 사용하여 대학이름을 정할 정도로 그의 이름은 존경받는다.

 

마하라슈트라 주 정부는 암베드카르 박사가 1920년대 학생 시절에 살았던 런던의 집을 구입했다. 집은 암베드카르에 대한 박물관 겸 기념관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암베드카르는 2012인도 히스토리 TV18’‘CNN IBN’이 주최한 여론 조사에서 동시대의 유명한 정치인들을 제치고 가장 위대한 인도인으로 선정되었다. 거의 2천만 명이 투표할 정도였다. 인도의 한 경제학자는 경제학에서의 그의 역할은 인도 역사상 가장 높은 교육을 받은 인도 경제학자다"라고 말했다. 또 어떤 경제학자는 "암베드카르 박사는 내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사회 정치적 입장에서는 매우 논란이 많은 인물이었지만, 경제학 분야에 대한 그의 공헌은 놀랍고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국회의사당 중앙 홀에 있는 암베드카르 박사의 초상화.  © CRS NEWS

 

솔직히 암베드카르 박사의 유산에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더 큰 민족주의 운동과의 협력을 희생시키면서 카스트 문제에 대한 그의 일방적 견해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또한 조직 구축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해 일부 전기 작가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 암베드카르 박사의 신 불교운동을 추종하는 인도의 불자들이 축제행진에 참가하여 즐거워 하고 있다.  © CRS NEWS

 

암베드카르 박사의 정치 철학은 인도 전역, 특히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수많은 정당, 출판물 및 노동자 조합을 탄생시켰다. 그의 불교 홍보는 인도 인구의 일부에서 불교 철학에 대한 관심을 되살렸다. 대규모 개종 의식은 1956년 암베드카르의 나그푸르 의식을 모방하여 현대의 인권 운동가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일부 인도 불교도들은 그를 보살로 간주하지만, 그가 스스로 주장한 적은 없다. 1990년대 후반 인도 밖에서 일부 헝가리 로마니족은 자신의 상황과 인도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상황 사이에 유사점을 그려 내기도 했다. 암베드카르 박사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들은 불교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1935년에 자신이 힌두교인으로 태어났지만, 힌두교인으로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힌두교를 억압적인 종교로 보고 다른 종교로의 개종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진정한 카스트 없는 사회가 달성될 수 있는 유일한 지속적인 방법은 일방적 힌두신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고 그들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힌두 종교 텍스트와 서사시를 비판했으며 1954-1955년 동안 힌두교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의 작품을 썼다. 이 작업은 개별 장의 원고를 결합하여 사후에 출판되었으며 대중의 찬성 시위와 반대 시위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뜨거웠다. 

 

▲ 불교도들이 거리 행진 축제에 참가하여 결집력을 보여주고 있다.  © CRS NEWS

 

불교는 고대 인도에서 시작되었으며 아소카 대왕이 불교 이념을 받아들인 후 빠르게 성장했다. 기원후 2세기까지 불교는 인도에 널리 퍼져 있었고 인도를 넘어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중세에 불교는 인도에서 서서히 쇠퇴했고, 이슬람이 국교가 되면서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19세기에 이르러서 인도에서 불교가 다시 소생했고, 20세기 중반 암베드카르 박사에 의하여 불교는 빠른 속도로 부흥하고 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보검스님이 인도 불자들에게 설법하고 있다.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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