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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지혜와 사치, 북방 이스라엘의 멸망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3/07 [13:15]
이스라엘의 분열-역사, 그 분의 이야기⑥

솔로몬의 지혜와 사치, 북방 이스라엘의 멸망

이스라엘의 분열-역사, 그 분의 이야기⑥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3/07 [13:15]
▲ 헨델의 오라토리오 ‘솔로몬’에서 시바의 귀환 모습.     © 매일종교신문

열왕기상 4장 22절과 23절에 의하면 솔로몬의 왕궁에서 하루 동안 사용하는 식품소비량이 가는 밀가루 30석, 굵은 밀가루 60석, 소 30마리, 양 100마리에 달한다고 적고 있다. 그 외에도 사슴과 많은 가금류가 소비되었는데 이런 사치와 과소비는 국민의 불만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런 것이 누적되어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원인이 되었다.


솔로몬왕의 또 다른 이야기


성경(열왕기상 3:5~15, 10:1~29)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고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했다. 그의 겸손하고 진심어린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다른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는 놀라운 지혜와 지각 능력을 주셨다. 그에 더하여 명예와 부와 장수도 허락하셨다.

솔로몬 통치시절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어떤 때와 비교할 수 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그의 시대에 귀중한 보석이 풍성하여 은이 자갈처럼 여겨졌다(열왕기상 10: 27). 하나님을 위해 지은 금과 대리석으로 된 장대한 성전에 더하여 솔로몬은 사치스러운 궁전을 건축하고 모든 도시 외곽에 전차와 마부를 수용할 안뜰을 만들었다. 화려한 정원의 꽃들과 희귀한 나무들이 모든 마을을 장식했다.

세계도처의 제왕과 귀족과 왕들이 방문하고 예물을 가져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넣어주신 심오한 지혜들을 듣기를 갈망했다(열왕기상 10:24). 제왕의 방문자 가운데 멀리 시바 땅에서 온 부유하고 아름다운 여왕은 솔로몬왕에 대하여 들은 것이 진실인지 직접 확인하여 솔로몬왕의 지혜로움에 탄복하기도 했고, 모든 것을 직접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솔로몬왕은 그 지혜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열왕기상 3:16~28절의 기록은 솔로몬의 지혜를 엿보게 하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방을 함께 사용하는 독신의 두 여인이 같은 시간대에 남자 아이를 낳았다. 밤에 그중 한 여인이 잠을 자다 아이를 눌러 죽게 했다. 괴로운 여인은 다른 여인이 잠자고 있을 때 그 여인의 살아있는 아기와 자신이 눌러 죽인 아이를 몰래 바꾸어 놓았다. 나중에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던 여인이 깨어나서 죽은 아기를 보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아이를 살펴 본 후 자신이 낳은 아기가 아닌 것을 알았다. 방 저편의 여인은 아기를 꼭 안고 있었다. 이에 두 여인은 살아있는 아기가 자신이 낳은 아기라고 싸우다 왕 앞에 나아와 꿇어 엎드려 재판을 통해 진짜 어머니임을 판결해 달라고 옥신각신 싸우고 있었다.

이때 솔로몬왕은 신하에게 칼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왕은 공평하게 칼로 아기를 둘로 쪼개어 공평하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했다. 이때 한 여인이 급히 왕 앞으로 나가 꿇어 엎드려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 여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소서"라고 왕께 간구했다.

그러나 다른 여인은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옵소서."라고 탄원하는지라(열왕기상 3:26~28)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여인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라!”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러라.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로맨스


성경 열왕기상 10장에는 시바여왕이 예루살렘으로 솔로몬왕을 방문한 사실이 있다. BC 1,000년경 아라비아 남서부 예멘과 말라위에 살고 있던 시바족 여왕인 그녀는 유대 솔로몬왕의 명성을 듣고 예루살렘으로 많은 금, 은, 보석과 향로 등 선물을 가지고 방문하였다. 통상교섭을 겸한 방문인 것으로 믿어진다. 어쨌든 그녀는 솔로몬왕의 지혜와 영화를 직접 확인한 후 그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돌아갔다.

그 후 그녀는 솔로몬왕의 아들 메넬리크를 낳았다고 전해오는데 그 아들 메넬리크가 장성하여 유대인을 이끌고 에티오피아를 건국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에티오피아의 지배자들은 이들의 후손임을 자부하고 있으나 역사적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한편 성경 사도행전 8장에 에티오피아 고위 관리가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기록이 있다. 한편 2009년 3월 한국인 관광객 4명이 국제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조직원에 의해 피살되어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예멘이 시바여왕의 나라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솔로몬왕의 무리한 국가적 사업으로 과도한 세금부담과 강제 노역동원에 따른 불만과 왕실의 사치 등이 국론분열을 초래하였고,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고 이때 애굽에서 돌아온 여로보암을 지지하는 북방 10지파들은 르호보암 왕에게 과중한 세금과 부역의 경감을 요구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경험 많은 충신의 말보다 나이 어린 신하의 말을 듣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

아버지 솔로몬 왕보다 더 가혹한 정치를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즉,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는 너희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더욱 무겁게 하리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징치를 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그는 독재왕정의 전형적인 정책을 답습하였다. 북방지파의 대표들과 백성들은 여로보암을 추대하여 북방이스라엘을 건설하게 된다. 르호보암의 통치의 미숙함으로 왕국의 분열을 막지 못했다, 결국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으로 예루살렘을 수도로 남방 유다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북방 이스라엘


북방의 열 지파에 의해 여로보암은 왕으로 추대된다. 수도를 사마리아에 정한 이래 211년간 19명의 왕이 등장하지만, 이들 중 8명의 왕이 비명횡사하고, 이방의 우상숭배에 젖어 민족의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다. 드디어 마지막 왕 호세아왕 때인 BC 721년 앗수르 왕자 산헤립에게 포로가 됨으로 왕국은 종말을 고하고 만다. 이때 왕과 백성들이 앗수르에 포로가 되어가 앗수르제국 삼바티온강 저편에 분산 이주하여 영원히 귀국을 하지 못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북방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遠因)과 근인(近因)


무능하고 부도덕한 지도자들에 의해 이방의 우상숭배에 동화되는 악행의 결과 결과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국가의 패망과 민족의 비운을 가져왔다.

① 백성들을 예루살렘성전에서의 예배를 금지하고 통제한 것.
② 예루살렘이 아닌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예배하게 한 것.
③ 금송아지에 대한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레위지파 대신 다른 지파 사람들에게서 뇌물을 받고 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심지어 자신이 제사장직을 맡아 분향한 만행.
④ 장막절기의 달을 7월에서 8월로 옮겨 신앙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종교를 통치의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

이상의 것들에 의한 결과로 많은 레위지파들과 경건한 백성들이 남쪽 유대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는 남쪽의 예루살렘에서의 종교행사에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거 참석함으로 그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예루살렘 방문과 교류를 차단하고 황소 예배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혼합 예배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북방 이스라엘은 남부에 위치한 벧엘과 북부에 위치한 단에 제단을 만들어 예배의 중심지 예루살렘을 대신했다. 이러한 정책으로 북방 이스라엘은 배도의 길로 접어들어 결국 앗수르(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앗수르에 포로가 되었던 백성들은 영원히 귀국하지 못했지만, 후일 유대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다가 70년이 지난 후 귀국하는 것과 대조적인 운명을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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