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Out of sight out of mind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6/27 [10:45]
대모산을 떠나며

Out of sight out of mind

대모산을 떠나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6/27 [10:45]

▶ “스물 아홉 번 째 생일 축하! 이젠 30-40이 청춘시대다. 힘차게 살아라. 내 나이 60은 장년- 청춘이 신록이라면 장년은 우거진 녹음이다. 녹음 속에서 신록 청춘을 생각하고 있다.”

지난 주말 딸아이의 생일날 아침, 대모산 숲속에 들어가 메시지를 보냈다. 만 나이로 스물아홉이지만 세는 나이로 서른을 맞은 딸아이의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 위로와 용기를 전해 주려했던 것이다. 동시에 내 나이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위한 의도도 담겼다.

▲     © 매일종교신문


▶ 실제 나는 장년의 녹음 속에서 청춘의 신록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애들 둘 낳은 서른 나이에 이미 겉늙은이가 되었었다는 회상을 했으며 혹 딸아기가 같은 생각을 하면 어떡할까 하는 우려를 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내 나이듦과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 일흔 셋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는 그 몇해 전 TV중계로 방송되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시며 “이제 이 종소리를 몇 번이나 들을 수 있을까”하는 쪽지메모를 남기셨다. 그 메모에 담긴 회한이 세월이 갈수록 가슴에 와 닿는다. 15년 전 메모지들을 정리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아버지의 갈등과 허무감, 아쉬움, 적적함,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이다.

요양병원서 1년여 지내시다 여든다섯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도 떠올랐다. 호수공원서 휠체어에 앉아 마지막 세상구경을 하실 때 하염없이 바라보던 시선의 의미는 무엇일까. 10여년 일찍 가신 아버지를 회상하셨을까? 이 세상의 아름다운 숲과 꽃과 호수를 깊이 새겨 놓으셨던 것은 아닐까? 아버지, 자식들과 함께 살았던 정든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신세에 자식들에게 차마 말씀을 못하신 안타까움은 없었을까? 아마도 더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엔 어머니의 시선에 담겼던 상념을 더 많이 찾아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항상 즐거웠던 대모산 숲속의 단상이 딸아이의 생일날에는 왠지 어두웠다. 20여년 정들었던 대모산을 곧 떠난다는 아쉬움 탓인 듯 했다. ‘세상에 영원할 것이 없고, 모든 것은 떠나게 되어 있다’는 상념이 마음을 점령했던 것이다.

근 한달동안 일과 생활에 시달려 긍정적인 생각을 키워주던 숲속 하늘소풍길 단상을 못했던 이유도 있었을 게다. 한달여 페이스북에서도 멀어졌었다. 처음엔 친구 글 못읽고 ‘좋아요’ 못 누르는 것이 마음에 걸리더니 곧 페북 자체를 잊는 일상이 되었다. 일년여 대모산숲 하늘소풍길 단상을 담아주며 나를 위로해주던 페북인데 말이다.

▶ 마음을 이전처럼 회복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열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는 단상을 정리해보았다.

“이제 곧 대모산을 떠난다. 그러나 또 다른 숲길을 걸으면 대모산은 잊혀질게다. 지금 대모산 숲속 쉼터와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이 아쉽지만 곧 이사갈 새 숲과 정을 나누는 일상이 될 것이다. 이승이 아름답고 즐겁다. 그러나 미련남고 아쉬운 이승을 떠나 저승에 가면 저승의 일상에 묻혀 이승을 잊을게다. 전생에서 우아한 왕비였던 쇠똥구리가 쇠똥 속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듯이 말이다. 현재 상태로 영원히 못 돌아오고, 혹 다시 만나고 다시 태어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일과 상태에 대한 사랑과 감사, 만족과 환희일 것이다.”

▶ 단상을 페북에 정리하면서 마음이 밝아지고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아쉬움과 미련을 버리며 나이듦과 죽음도 의연하게 맞이할 듯 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아쉬움과 미련을 눈 밖으로 떨쳐 버리면 마음 속에 새겨둘 여지도 없다.

아버지의 ‘제야의 종소리’ 메모가 허무감, 두려움이 아닌 아직도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만족과 감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은 아름답다’는 환희의 소리가 담겼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시선이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끽하시며 자식들의 행복을 빌었을 것이란 느낌도 와 닿는 것 같았다.

딸은 신록의 청춘이었고 나는 녹음의 장년이 되었다. Carpe Diem, Momento Mori!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