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각 종교와 전통신앙에서 나타나는 저승의 심판 장면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7/07 [11:28]
공정했다는 저승(2)

각 종교와 전통신앙에서 나타나는 저승의 심판 장면들

공정했다는 저승(2)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7/07 [11:28]

▲ 티베트 사자의 서.     ©

공정한 심판을 위해 저승에서 등장하는 도구는 이집트의 '정의의 저울' 외에도 조약돌, 거울(업경대라고도 한다.) 강에 놓인 다리, 기록 장부 심지어 발(足)까지 등장한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 나오는 심판 장면부터 보자.
 
"……그대와 동시에 태어난 선한 수호 령이 흰 조약돌로, 그대와 동시에 태어난 악한 수호 령이 검은 조약돌로 그대 생전의 선행과 악행을 각각 헤아릴 것이다. 그대는 두려워하며 '나는 어떤 악행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더라도 죽음의 왕이 '카르마의 거울에 물어 보리라.'할 것이다. 그가 들고 있던 거울 속에는 그대가 행한 모든 선행과 악행이 선명하게 비칠 것이다. 거짓말은 소용이 없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처럼 희고 검은 조약돌의 수와 거울을 통해 공정한 심판을 행한다.
 
또 있다. 저울이다. 선, 악행의 증거물인 흰 돌과 검은 돌이 저울 양쪽에 올려지고 흰 돌 쪽이 무거우면 그는 해탈하거나 좋은 곳으로 환생할 수 있다. 검은 돌 쪽이 무거우면 그의 환생도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같은 49재를 올리는 중국 한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쪽 불교나 도교에서 심판관은 10명이다. 죽은 이는 죽은 지 7일 만에 부동명왕의 화신인 진광왕 앞에서 생전에 행한 선악의 결산이 기록된 장부를 보게 된다.
 
14일째, 여기서 등장하는 초강왕을 석가여래의 화신으로 보기도 한다. 이 장면에서 저승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이른바 삼도천(三途川). 기독교에서도 '요단강' 건너 저승으로 가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영혼들은 어찌되었거나 강 하나는 건너야 하는 모양이다.
 
삼도의 강에 다다르면 할멈과 할아범 귀신 두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죽은 이들의 옷을 모두 벗긴다. 옷은 영혼의 죄의 무게를 달아보는 것으로, 옷이 무거우면 다리가 아닌 깊은 물길을 건너야 하고, 죄가 비교적 가벼우면 얕은 곳을 건너면 된다. 보통 수준의 영혼들은 천신만고, 다리가 아닌 물속을 걸어 7일 만에 초강왕 앞에 이른다.
 
다음은 21일째. 문수보살의 화신인 송제왕이 고양이와 뱀을 시켜 생전의 사음 죄를 조사케 한다. 28일째는 보현보살의 화신인 오관왕이 저울로 거짓말의 근수를 달아낸다. 35일째, 지장보살의 화신인 염라대왕이 거울 앞에 영혼을 세운다. 생전의 선업과 악업이 드러나는 이 거울이 업경대다. 42일째는 미륵보살 화신인 변생대왕이 저울과 거울을 가지고 지금까지의 심판결과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챙겨본다. 49일째. 약사여래의 화신인 태산왕이 최종판결을 내리는데 이 판결에 따라 이른바 六道, 즉 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도 가운데 하나로 가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생전에 이 시왕에게 예를 드림으로써 미리 이생에서 죄업 사함을 받는 수도 있다.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은 살아생전 시왕에게 공양하고 죄업을 참회하는 칠재의(七齋儀)를 행하면 죽은 뒤에 좋은 세상에 태어 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세계 종교사에 중국의 시왕신앙이 상당히 늦게 생긴 탓인지 심판의 도구도 다양하고 절차도 까다롭다. 서류심사에 다리 건너기에 저울 달기, 그리고 거울이며 고양이와 뱀이 행하는 조사 등 세계적 종교와 신화에 등장하는 도구들이 골고루 섞여 있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정의의 정령(또는 천사)라슈누와 군신 미트라가 자신의 시신 곁에서 사흘을 떠돌다 온 영혼을 심판하는데 장부가 등장한다. 살았을 때의 선행은 저축으로 기록돼 있고 악행은 빚으로 기입돼 있다한다. 이 심판은 저승으로 건너가는 다리 밑에서 행해지며 선행이 많은 자는 쉽게 다리를 건널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다리를 건너다 떨어져 지옥행이다. 불교에서 14일 째에 영혼이 삼도천을 건너게 한다는 것과 내용이 닮았다.
 
다리 건너기는 기독교에서도 등장한다. 6세기 말 교황에 오른 그레고리우스가 쓴 '대화록'이라는 책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나온다.
 
죽었다 살아난 한 병사가 직접 체험한 저승을 교황에게 보고한 것으로, 병사는 검은 연기에 휩싸인 강과 그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보았으며 강 건너 언덕에는 푸른 초원과 빛나는 집들이 있고 그 중 한 채는 황금으로 지은 것이라 증언했다. 그러나 그 다리는 결백한 사람만이 건널 수 있었으며 건너다 아래로 미끄러진 사람은 강에서 솟아 나온 괴물과 아름다운 백색의 존재들이 서로 위아래서 끌어 들이려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근거로 중세 그림들에 '영혼이 다리를 건너는 장면'들이 그려지곤 했던 것 같다.
 
이슬람의 저승에도 다리가 나온다. 무함마드의 언행록 '하디스Hadith'에 나오는 시라트로 불리는 다리다.
 
"하느님(알라)은 지옥위에 다리를 놓으시고 그 위를 건너게 하시 도다. 그들이 외칠 것이다. '주여! 구해 주소서.'라고. 그러나 믿음을 가진 자들은 그 위를 눈 깜짝할 사이에 번개처럼 바람처럼 새처럼 훌륭한 말이나 낙타처럼 지나가리라. 어떤 사람은 무사히 통과하여 구원을 받으나 어떤 사람은 지옥에서 올라오는 갈고리와 가시에 찔리면서 겨우 빠져나오고 또 어떤 사람은 지옥의 불 속으로 던져지리라."
 
한 권의 책도 심판의 자료가 된다. 이슬람의 '꾸란'에는 이렇게 나온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의 행위를 그 자신의 목에 달아 놓았으니 부활의 날, 한 권의 책으로 그에게 제시되리라. 그 때 그들은 활짝 열린 채로 그들의 업적을 보리라. 그리고 말씀이 있을 것이다. '너의 기록을 읽으라. 너의 영혼은 이날 너에 대한 응보자로서 충분하리라."
 
기독교 요한계시록에도 '책'이 나온다.
 
"나는 또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그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책이 펴졌고 또 다른 책 하나가 펴졌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자들은 그 책들 안에 기록돼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인도 시크교에는 장부가 이를 대신한다.
 
"그대가 이승을 떠날 때 신은 그대의 행업을 헤아려 셈하리니 이 모두가 그의 장부에 낱낱이 적혀 있도다. 뜻을 거역한 자들은 소환되리니 죽음의 사자인 아즈라엘이 그들의 머리 위를 배회하리라."
 
아프리카 전통 종교 가운데는 심판 때 두 발을 본다는 것이 있어 흥미롭다. '퐁족의 노래'의 한 구절을 보자.
 
"죽음의 세상 문턱에서 너는 심판관이 보는 앞을 통과 할 것이다. 그의 심판은 진실 되어 너의 두 발을 보게 된다. ……네가 타락한 적이 있다면 그는 알아 볼 것이니 심판관이 너의 발에서 아무런 얼룩을 보지 못한다면……"
 
두 발에 얼룩이 있으면 악행을 했을 것이고 얼룩이 없다면 선하게 살았다는 증거가 된다고나 할 까?
 
하기야 우리의 발도 선악의 행을 지금 기록해 가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많이 본 기사
1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